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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Sep 05. 2017

낭독극 '내가 그리로 갈게' 줄거리

12월 공연 예정 작품

평범한 삶을 살아오던 신이에게

어느날 불행이 닥친다.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장례식을 마치고 며칠 후,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던 신이는

세탁소 여주인이 남편의 옷속에 들어있던

편지라면서 건네준 편지 한 장을 받는다.


놀랍게도 편지 겉봉에는

정.세.희라는 낯선 여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순간 신이에게 여자의 본능이 발동한다.

‘혹시 부적절한 관계?

남편에게 애인이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이 편지를 뜯어 볼 것인가?

아니면 불 태워버릴 것인가?

한 통의 편지 때문에 고민과 갈등이 시작된다.

신이는 하룻밤을 꼬박 편지 때문에 새운다.

도대체 죽은 남편은 과연 누구에게

이 편지를 보내려고 했던 것일까?

죽은 남편에게 자신도 모르는

애인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편지를 뜯는 것이 옳은 일인가?

아니면 죽은 남편의 명예를 위해서

여기서 그만 덮을 것인가?

만약 남편이 살아 있었다면,

신이는 당장에라도 침대로 달려가

자고 있는 남편을 발로 차서 깨웠을 것이다.

‘도대체 이 편지는 무엇이고,

이 정.세.희라는 여자는 누구인가?’라고

따져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이미 죽은 존재다.

남편이 죽었다는데 고민이 있었다.

어차피 생을 달리한 죽은 자가 아닌가.

그렇다면 여기서 편지를 불 태워 없애버리는 게

죽은 자에 대한 도리가 아닌가.


하지만 호기심,

그 욕망을 인간이 이겨낼 수는 없는 법.

때로는 손수건 한 장 때문에 비극이

시작되기도 한다.

‘오델로’의 데스데모나와 오델로도

결국엔 바닥에 떨어진 손수건 한 장에서

갈등이 시작되지 않았던가.


결국 신이는 편지를 열기로 마음 먹는다.

떨리는 손으로 남편의 책상 서랍 속에 있던

커터 칼을 꺼내든다.

그리고 서서히 편지 봉투 속으로

칼날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형광등 불빛에 반사된 불빛 한줄기가

신이의 눈을 찔렀다.

순간 신이는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로

가득 찬 수술실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불편하지만 낯설지 않은 시간과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

마치 살아 있는 속살에 매스를 대는

외과의사 신이가 경험하게 되는

비극적 운명의 시작이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다.


한편 죽은 중렬을 기다리는

또 한 명의 여인이 있었다.

바로 까페 마고에서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는

세희가 그 주인공이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 했던 세희.

그녀는 어느 날 뜻밖의 남자 중렬의 등장으로

새로운 인생의 재미를 느낀다.

자신을 괴롭혔던 남자 성호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남자다.


세희는 성호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벌써 오랜 시간 동안 그녀를 괴롭혀 온 존재다.

몸을 빼앗긴 남자에게 세희는 이유 없이 집착했다.

그런 집착이 부질없는 짓임을 깨달은 뒤에도

성호와의 불편한 관계는 계속됐다.

중렬의 등장은 세희에겐

또 다른 운명의 시작이었다.

마치 구렁텅이에 빠진 자신의 인생을

구해줄 수 있는 존재와도 같았다.

그렇게 중렬에 대한 애정이 싹 텄다.

그렇게 사랑이 시작할 즈음, 중렬이 사라졌다.

공교롭게도 중렬이 사라지고 나서,

자신의 괴롭히던 성호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중렬, 그는 대기업 부장으로

평범한 인생을 살아 온 남자다.

지극히 평범해서 더 이상 평범하고 싶지 않은

일탈을 꿈꾸며 살아왔던 남자.

그에게는 고대 그리스의 돌덩이를

찾아나서겠다는 오래된 꿈이 있었다.

시간 여행자가 되어 자신이 원하는

자신의 인생을 살겠다는 꿈.

아마추어 고고학자가 되거나

여행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중렬은 일상 속에서

새로운 탈출구를 찾아나섰다.

그리고 그 와중에 세상의 희망을 찾아나서려는

세희를 만난다.


둘은 세상의 관습과 남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하지만 세희의 첫 남자였던 성호는 스토커처럼

세희를 괴롭히며 그녀의 일상 속에

거머리처럼 달라붙는다.

중렬은 성호로부터 세희를 지켜내고

세희와 함께 고대 그리스의 돌덩이를 향한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인가?


성호, 지금까지 마흔아홉 인생에서

그는 부러운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살았고,

실제로 그럴 능력도 있었다.

다만 단 한 가지 그가 갖지 못한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세희의 마음이었다.


갖은자의 거만함, 여유,

여자는 하룻밤 정욕의 대상이라 생각하는

마초적 존재.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아킬레스건이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 세희다.

세희는 그가 장난삼아 하룻밤 불장난처럼

섹스를 했던 대상이다.

세희에게는 그날이 처음이었다.

성호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몸이 아파 도와달라는 사람을

외면할 수 없었던 청순하고 순진했던 여자에게는

결코 간단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성호와 세희는 처음부터 그렇게 달랐다.

같아질 수 없는 운명처럼.

그날 아무렇지도 않게 섹스가 끝났지만,

세희는 성호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날 모텔 복도를 걸어나오면서

세희는 속으로 다짐했다.

‘이 남자는 절대로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호에게 세희는 다른 존재였다.

장난이 운명이 되었다고나 할까.

마치 이른 아침 짙은 안개를 뚫고

잠깐 빛나는 노란 불빛의 신호등이라고나 할까.

멈춰야 할 때와 움직여야 할 때는

구분해주는 잠깐 동안의 경고등처럼

성호의 운명도 거기서 멈춰야 했다.

아니면 방향을 바꿔 유턴을 하거나.


세희에게 성호는 그저 나쁜 남자일 뿐이다.

남녀의 사랑이란 게 늘 그렇지만,

그때부터 묘한 운명의 갈림길이 시작된다.

세희가 성호를 멀리 하는 순간부터

성호의 스토킹이 시작됐다.

어느 날 성호는 세희에게 중렬이란

새로운 남자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과연 안개 낀 도로 위에서 성호는

어떤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이들 마흔아홉 중년의 사랑 이야기에는

시대를 뛰어넘는 아픔이 있다.

요즘 같은 이십 대들의 눈에는

그들의 사랑도 사랑으로 보일까.

처절하고 가슴 절절했던 마흔아홉들의 인생.

중년의 사랑은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같다.


질주하는 기차 안에 앉아

차창 밖의 풍경을 감상할 겨를조차 없다.

목적지까지 도달하기에도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차,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 차 있다.

누가 어디로 몰고 가는지 알 수 없는

열차에 탄 기분이 든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금 이 기차에서 뛰어내려야 한다.


하지만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두 손을 잡는 순간부터 기차에서

뛰어내릴 용기가 생긴다.

만신창이 상처 입은 몸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살아 남기 위해선 뛰어내려야 한다.

어차피 브레이크 고장 난 기차에 앉아

짧은 안락함에 빠져드는 것은

파멸을 향해 달리는 것과 같기 때문.


용기 있는 자여!

이제 바람을 가르며

당신의 브레이크 고장 난 고속열차에서

뛰어내려라!


김덕영 作品

동명 장편소설 <내가 그리로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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