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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Sep 06. 2017

'노인을 위한 영화는 없다'

존경받을 만한 노년의 문화는 있는가?

'김덕영의 인문학 여행' (69)
'노년의 문화가 없으면 
노년에 대한 존경도 없다' 

위의 제목은 평소 나의 지론 중
하나입니다. 노년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지고, 노년의 가치가 점점 사라지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저는 
존경할 만한 노년의 문화가 
사라지는 것이 첫 번째라 생각합니다. 

과학과 테크놀러지가 발달할수록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농경문화가 지배했던 예전에는
농사를 어떻게 지을지 알고 있는 
사람은 그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살고 있는
노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몸과 두뇌 속에 기억된
정보들이 생존의 수단이었던 셈이죠. 
과학은 이런 노년만의 고유한 역할과
영역들을 계속해서 축소시켰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뭔가를 예측하기 위해
경험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데이터가 그것을 대신합니다.
일기예보에서부터
광고나 마케팅은 물론이고 
사회 곳곳에서 예측 가능성을 놓고
한 판 씨름을 하고 있는 느낌도 듭니다.
그런 씨름판에서 경험에만 의존하는
노년이 설 자리가 있을까.

아무튼 그렇습니다. 
현실이 그렇게 변화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선진화되었다는
나라들에서는 한 가지 흥미로운 
변화의 흐름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바로 '노년의 가치'를 재인식하는
흐름입니다.

물론 그것이 메인스트림, 즉
유행이나 일반화된 흐름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처럼 노년의 가치에 대해서
홀대하는 문화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노인을 위한 영화는 없다'

저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나 드라마, 혹은 출판에 이르기까지
노인을 위한 콘텐츠가 별로 많지 않다는
점에 놀랍니다. 

급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노년을 위한 실버 콘텐츠의 생산이
등한시되고 있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정작 세상은 노인들로 차고 넘치는데
노년을 위한 바람직한 가이드들이 
없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곧이어 엄청난 사회적
문제에 직면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수준은 거의 재앙 수준에
이를 것입니다. 
지금 당장 벌어질 일이 아니라서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보다 일찍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는
서구 사회가 노년을 위한 콘텐츠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이런 글을 오늘 쓴 이유는 
마광수 교수의 자살 소식 때문입니다. 
한때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소설가이자 강단의 교수였던 그가
올해 66세로 세상을 떠나는 방식은
참 안쓰러웠습니다.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
아마도 그가 자살을 선택했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노년에 접어든 그에게 삶은
말 그대로 고통이었겠죠. 

이런 셀레브리티들의 잇따른 자살은
사회를 더욱 우울하게 만듭니다.
문제는 이런 개인의 선택이 
단지 개인으로 그치지 않을 거란
점입니다.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무엇을 하면서, 또 무엇을 즐기면서...

목표가 있는 삶이 작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북극성을 찾는 방법이
작지만 현실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년을 대하는 사람들의
따듯한 시선이야말로 그들의 목표가
있는 삶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결국 사회 전체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방식이겠죠.

<세인트 빈센트>에서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과연 우리 안에 성인은 누구일까요?'

여기서 성인이라고 하면 자신을 희생해서
남을 위해 삶을 살아간 사람들을 말합니다.
영화 속에서는 그 성인을 역사책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일상의 현실에서
찾아보라고 말을 합니다.

평범한 뉴욕의 어느 동네.
고집 세고 자기만 아는 빈센트라는 노인이
혼자서 외롭게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그 노인의 집 옆으로 
새로운 이웃이 이사를 옵니다.

남편과 이혼하고 병원에 다니는 엄마,
그리고 열 살짜리 소년.
밤늦게까지 병원에서 일해야 하는
엄마 대신 소년은 옆집 괴팍한 할아버지
집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시간 당 만 원을 받고 베이비시터를
해주기로 한 것이죠.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아이를 데리고
안 가는 곳이 없습니다.
술집은 물론이고 경마장에서 가서
도박도 합니다. 
얻어 맞고 온 아이를 일으켜 세우며
맞지 말고 싸우라고 가르칩니다.
물론 먼저 때리란 뜻이 아닙니다.
적어도 얻어 맞고 살지는 말라는 
말이죠. 

남들의 눈에는 게으르고 거짓말쟁이에다
술독에 빠져 사는 늙은 노인으로 보이는
빈센트라는 인물이지만,
천진난만한 아이의 눈에는
세상을 가르쳐 주는 훌륭한
스승이었습니다.

한 인간을 온전히 보는 것은 
온정적인 시선입니다.
그렇게 사람에 대한 시선이 변하면서
그의 숨겨진 에피소드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냅니다.

평생 사랑했던 부인이 치매로
요양원에 들어가자 8년 동안
그녀의 옷을 세탁했던 성실한 남편.
18살 어린 나이에 베트남 전에 나가
전우를 위해 싸웠던 용감한 군인.

'그는 나를 데리고 경마장에 
갔습니다. 사람들은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도박을 할 수 있는가라고
비난하지만, 저는 그곳에서 
기회와 리스크를 관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요?'

제가 그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입니다.

결국은 존경할 만한 노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존경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겠죠. 
그것이 <세인트 빈센트>라는
영화의 메시지입니다.

너무 큰 것을 기대하지 말며
작고 소소한 일상에서 각자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고유한 영역과
문화를 만들어가는 일.
그것이 아마도 우리 사회가
'노년을 위한 영화'를 만들어가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글: 김덕영 

(서촌 골목길 까페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작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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