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할아버지 미스터 퍼펙트 이야기
글: 김덕영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저자 / 다큐멘터리 PD, 저널리스트 /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대표)
솔직히 나는 아직도 그의 이름을 모른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스쳐가며 만났던 사람이다.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라는 글을 쓰면서 유일하게 이름 없는 무명씨로 남겨놓았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가 나에게 아주 강렬한 기억을 남겨주었기 때문이다. 난 그를 ‘미스터 퍼펙트’(Mr. Perfect)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는 자동차 수리를 취미로 삼고 있던 영국인 할아버지였다. 그와의 만남은 2008년 런던 시내 남서쪽에 위치한 뉴몰던이라는 곳에서 이뤄졌다.
여름 더위가 물러나던 어느 날 아침, 나는 취재 때문에 런던의 한 민박집에 머물고 있었다. 주변에 테니스 경기로 유명한 윔블던 파크도 멀지 않고 공공디자인 부문으로 정평이 난 킹스턴대학도 근처에 자리 잡고 있어 지적이면서도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그 당시 나는 창조산업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는 런던의 도시 경쟁력을 취재하고 있었다. 한때는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며 산업혁명과 제조업의 왕국을 이끌었던 영국. 하지만 이제 영국에서 공장 굴뚝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요즘은 디자인이나 건축, 패션이나 출판과 같은 문화 산업들이 영국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다. 창조적인 업종들이 아니고서는 런던에서 살아남기도 힘들 정도로 경쟁도 치열하다. 낡고 쇠락한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젊고 생기발랄한 영국으로 변신하는 과정, 런던은 ‘젊은 영국’을 만들기 위한 전진기지 같은 곳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런던에서 노인들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노년의 경험과 지혜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데 별로 가치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다. 신구의 조화로운 발전보다는 젊은이들의 생기발랄함에 우선순위를 두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과연 런던의 오래되고 낡은 전통들은 젊고 새로운 시대와 화합할 수 없는 것인가? 나에게는 은근히 그런 궁금증이 생겨났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한 할아버지를 길에서 만났다. 그는 매일 아침 자동차 보닛을 열어놓고 무언가 열심히 수리를 하는 중이었다. 10일간의 런던 체류 기간 동안 나는 그 할아버지와 매일 아침 마주했다. 그가 온 힘을 기울여 애써 고치려 했던 자동차는 그가 평생을 타고 다닌 정든 자동차였다. 젊어서 공장 노동자로 일을 했다는 그는 취미로 자동차 수리를 배웠다. 목적은 자신의 오래된 낡은 차를 자기 손으로 고치기 위해서였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전통과 현대, 보수와 혁신이 공존을 모색하는 도시 런던, 나는 아침나절이면 늘 길거리에서 자동차 수리에 전념을 하고 있는 그 할아버지에게 은근히 호기심이 생겼다. 하지만 약속된 일정에 늦어서 허겁지겁 지하철역으로 달려가야 했기 때문에 말 한 번 걸어볼 기회도 사실 없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늘 그 할아버지의 자동차 앞을 지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아니, 카센터에 가면 손에 기름때 하나 묻히지 않고 말끔하게 고칠 수 있는 데 왜 저 할아버지는 사서 고생을 하고 계실까…돈을 아끼려고? 오늘은 기어이 볼트까지 다 풀어놓았군. 저러다 부품이라도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그러지...'
런던 체류 일정도 거의 끝나가던 어느 날 아침, 나는 드디어 호기심에 못 이겨 그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말을 걸기 위해 자동차 앞으로 걸어가자, 할아버지의 낡은 자동차는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이제는 거의 비슷한 모델을 찾아보기도 힘든 구닥다리였다. 수동식 기어는 핸들 옆에 붙어 있고 시트의 가죽은 닳을 대로 닳아 반들거였다. 아직도 저런 차가 굴러간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간단하게 신분을 밝히고 내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 바로 무엇 때문에 매일 자동차를 고치고 있는지 묻기 시작했다. 호기심에서 시작한 것이 취재가 되어버렸다. 할아버지는 손에 묻은 기름떼를 닦으며 이렇게 말했다.
“트랜스미션이 고장 났어. 이걸 제대로 고치려면 부품을 통째로 바꿔야 한다는데, 오래된 차라서 부품도 쉽게 구할 수 없고, 고치느니 차라리 폐차를 시키는 게 낫다고 하더라구...”
고장 난 트랜스미션을 고치는 일이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어려운 부품들의 이름만 들어봐도 쉽게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할아버지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아내 하고 이걸 참 오랫동안 타고 다녔거든. 옆자리에 앉아서 이런저런 애기도 하면서 여행도 참 많이 다녔지...”
더 질문을 할 필요도 없었다. 할아버지와 자동차, 둘 사이 에는 또 한 사람의 기억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화제를 바꾸고 싶어 졌다.
“사실 참 궁금했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같은 시간에 나와서 열심히 뭔가를 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거든요. 제가 내일이면 런던을 떠나는데 할아버지 자동차가 깨끗하게 수리가 된 모습을 보고 떠나면 참 행복하겠어요.”
솔직히 그냥 할 말이 없어서 무심결에 내뱉은 말이었다. 별 뜻도 없는 그저 그런 형식적인 말이었다. 게다가 그 자동차라는 게 겉으로 봐서는 절대로 더 이상 움직일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런 걸 낑낑대며 노인네가 애를 쓰며 고치겠다고 하는데, 그냥 인사만 하고 자리를 뜰 수는 없었다. 적어도 덕담이라도 한 마디 하면서 할아버지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아 그래, 내일 떠난다고? 그럼 한번 부지런히 고쳐봐야겠군!”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을 했다. 그리고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그 보닛 속으로 몸을 구부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날 늦게까지 취재는 이어졌고, 일정이 모두 끝난 뒤에는 간단하게 영국식 펍에 가서 일행들과 맥주를 한잔 마시며 런던에서의 마지막 밤을 즐겼다.
다음 날, 아침 시간이라서 차가 막힐 테니 일찍 서둘러야 한다며 친구들이 전화를 연신해댔다. 늘 하던 대로 민박집을 나와 빨간 벽돌 교회에서 좌회전을 했다. 짐가방을 끌면서 골목길을 빠져나오던 중이었다. 그런데 문득 뭔가 허전했다. 매번 지나가던 길, 매번 마주 보던 건물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게 있었다. 바쁜 마음에도 그게 뭘까, 생각해 보았다. 바로 할 아버지의 자동차였다. 늘 같은 시간에 보닛을 열어놓고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할아버지의 자동차, 호기심에 못 이겨 어제 아침 처음으로 말을 걸어보았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가 아프신가?’
노인들은 하룻밤이 다르다고 하니 혹시 어제 몸살이라도 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할아버지는 그렇다고 치고, 할아버지의 자동차는...? 언제나 아침이면 입을 활짝 벌 리고 ‘굿모오닝~’ 하고 인사해 주었던 할아버지의 자동차가 보이지 않았다.
‘어라. 자동차도 없네.’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일행 중 한 명이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왜 빨리 안 오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곧 도착한다고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이미 내 시선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찾던 중, 차도 옆에 일렬로 쭉 늘어선 자동차들 사이로 뭔가 낯익은 것이 보였다. 잰걸음으로 다가갔다. 최신 모델의 자동차들 틈에 끼어 가지런히 주차되어 있는 할아버지의 낡은 자동차였다. 늘 열려 있던 보닛은 단단하게 닫혀 있고 유리창에 묻어 있던 새똥도 말끔히 세차가 되었다. 낡았지만 깨끗하게 세차를 하고 왁스로 광을 내서 반짝반짝 빛나는 할아버지의 자동차가 그곳에 있었다.
자동차 앞에서 잠시 멈췄다. 할아버지는 안 계셨지만, 그것은 할아버지가 나를 위해 보내는 ‘굿바이’였다. 차는 예상대로 엄청 막혔다. 거의 30분 정도를 남겨놓고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온몸에 땀이 흠뻑 젖을 정도로 뛰어다니며 출국 수속을 마쳤다. 가까스로 탄 비행기 좌석,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순간 나의 마음은 다시 런던의 작은 골목길로 향하고 있었다. 멀리서 자동차 보닛 속에 몸을 집어넣고 있는 할아버지 모습이 보인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날 할아버 지의 하루는 아마 이랬을 것이다.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온다. 자동차를 왜 매번 같은 시간에 고치고 있냐고 묻는다. 참 별걸 다 묻는구먼. 내가 제일 아끼는 거니까 내 손으로 고치고 싶은 거지, 이 사람아... 그래도 아무도 관심조차 두지 않던 노인네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니 고맙네. 즐거운 대화였어. 내일 떠난다구? 그렇구먼. 내일 떠나기 전에 다 고친 걸 보고 싶다고. 어이쿠! 이거 무리인데... 그래도 저 친구를 위해서 한번 실력 발휘를 해볼까.’
물론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는 내 상상 속의 이야기다. 하지만 난 내 상상이 틀리지 않았을 거라 믿는다. 아마 할아버지는 그날 하루 종일 다른 어떤 날보다 열심히 땀 흘려 자동차를 수리했을 것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은 이루어진다고, 할아버지는 단조로운 삶 속에서 나와 나눈 짧은 대화에서 힘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날 할아버지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자동차를 고쳤고 세차까지 말끔하게 했다. 좀처럼 하지 않던 왁스칠로 마무리도 했다.
그날 내가 히드로 공항에 늦게 도착한 데는 할아버지의 자동차도 한몫을 했다. 나는 그날 할아버지 자동차 앞에서 한 참을 서 있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냥 갈 수는 도저히 없었다.
‘자네 말대로 다 고쳤어. 잘 가게, 굿바이! 할아버지는 그렇게 나에게 한마디 인사를 하고 있었다. 나도 한마디 남기고 싶었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가방 지퍼를 다시 열었다. 서둘러서 노란색 포스트잇을 찾았다. 도저히 그냥 갈 수는 없었다. 드디어 가방 맨 아래에서 노란색 포스트잇을 찾았다. 볼펜을 꺼냈다. ‘근데 뭐라고 쓰지?’ 또 생각에 잠겼다. 전화벨은 울리고 있는데 나는 지금 뭐하고 있지...
다음 날 아침 할아버지는 다시 자동차 앞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붙여놓은 노란색 포스트잇을 봤을 것이다.
‘퍼펙트(perfect)!’
내가 적은 메모지를 보고 할아버지의 기분이 좋아지길 바란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자동차에 키를 꽂고 시동을 걸었을 지도 모른다. 부르릉~! 낡았지만 여전히 박력 있는 할아버지의 자동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말 오랜만에 할아버지는 즐거운 여행길에 올랐을 것이다.
히드로 공항에서 비행기에 탑승하기 직전 나는 공항 서점에서 책을 한 권 샀다. 낯익은 것들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이 없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 깊게 느껴져 그냥 주저 없이 샀다. 취미가 없는 인생만큼 재미없는 노년도 없다는 그런 말도 있었다. 그 후로 나는 가끔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을 즐긴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취미가 있고, 그런 취미가 인생을 더욱 즐겁고 신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익숙해져 가는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이 노년에도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던 비결이 아닐까 싶다. 영국에 계시는 미스터 퍼펙트 할아버지를 위해서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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