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루이스 칸과 나의 아버지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세상은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기껏해야 한 장의 글을 읽은 사람에 불과하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당신이 살아온 인생의 시간들 속에서 당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인가? 혹은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일은 무엇인가? 분주한 일상의 생활 속에서도 중요한 사건, 중요한 사람과의 만남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삶의 결정적 순간을 장식하는 책 한 권쯤은 존재하는 법이다.
책을 읽고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기도 하고 간절히 찾고 있던 어떤 진리와 정의로운 가치에 이르는 것도 사실 책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어느 날 뜻밖의 한 권의 책에 눈이 번쩍 뜨이고 책을 쓴 작가의 삶이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 순간은 이미 작가의 삶이 자기의 삶 속에 투영된 상태다. 그리고 자신이 발견하지 못했던 자신의 꿈과 미래를 찾게 된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는 이렇듯 한 권의 책이 개입되어 있다. 그들의 인생 터닝 포인트에 놓여 있는 한 권의 책, 그것이야말로 인생이라는 바다 위에서 길을 잡아주는 나침반이다.
우리는 삶을 바꾸기 위해서 여행을 한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떠나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다. 오직 자신이 바라는 어떤 간절함을 찾아서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래서 여행은 떠나기 전과 돌아온 뒤의 모습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삶의 전환점에는 잊지 못할 여행의 기억들이 존재한다. 때로는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삶의 변화가 시작되기도 한다. 그런 여행자들에게는 언제나 의미 있는 책 한 권쯤은 손에 쥐어져 있기 마련이다. ‘책과 여행’, 그래서 나는 이 두 가지가 나의 인생에서 가장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한다.
여행은 떠날 때는 흥분과 기대감으로 교차하며 돌아올 때의 마음은 냉정하고 차갑다. 어떨 때는 그래서 여행이란 떠남만으로 이뤄져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설렘과 긴장, 새로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 그것을 알고 싶고 찾아보고 싶은 마음. 그것보다 우리의 삶을 가슴 뛰게 만드는 것이 또 있을까. 그것에 비하면 여행에서 돌아올 때의 심정은 그저 ‘어서 이 무거운 가방을 풀고 따듯한 샤워나 하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다시 여행 가방을 꾸린다. 그 무거운 여행 가방을 끌고 또 어느 이름 모를 공항과 도시를 한 없이 걷게 된다. 떠날 수 있다는 자체가 우리를 흥분시키기 때문이다.
책과 여행, 시간과 기억에 관해서 나에게도 숨겨놓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 이야기는 루이스 칸(Louis Kahn)이란 한 건축가의 삶과 교묘하게 얽힌 이야기이다. 정확히는 그가 죽고 난 뒤 루이 칸의 아들(나타니엘 칸)이 만든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아버지, 건축가 루이스 칸(My Architect)>에 대한 나의 경의를 담고 있다.
2006년 나는 ‘길(道)’에 관한 다큐멘터리 한 편을 제작한 적이 있다. 우리는 매일매일 걸어 다니는 바로 길(road) 말이다. 이동을 위한 통로이자 생활의 공간에서 빠질 수 없는 길의 존재감. 하지만 때로는 길에 대하여 철학적인 존재감을 부여한다. 인생에 대한 은유가 내포되어 있다. 그렇게 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나는 길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모든 것이 현대화되고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는 것에는 ‘거리(street)’가 있다. 도시가 만들어지고 건물과 건물들 사이의 공간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거리를 만들었다. 길보다는 확실하고 빠르다. 소박한 골목길 따위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분주하고 번화하다. 거리는 현대적인 뉘앙스를 지닌 계획적이고 도시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거리 안에서는 사람보다 자동차, 상가, 고층빌딩 같은 물질적인 대상들이 중심을 차지한다.
또 하나의 색다른 길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루트(route)’다. 루트에는 편안한 안락감 같은 것은 없다. 길이 아닌 곳에서 인간의 힘으로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루트다. 가장 힘들고 위험한 모험을 담고 있다. 인간의 땀과 고생의 흔적이 그대로 스며든다. 같은 목적지를 향해서 나아가더라도 가는 과정이 다르고 때로는 루트 자체를 개척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루트는 동전의 앞뒤 면처럼 도전과 위험이 공존한다.
이렇게 거리나 루트라는 개념과 달리 ‘길(道)’은 본질적으로 인간에게 매우 가까운 개념이다. 제주 올레길이나 북한산 둘레길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어쩌면 사람들이 잃어버린 자신을 찾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이 아닐까. 작은 실개천을 따라 걸어가는 시골길이나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공놀이를 하던 골목길, 풀숲을 헤치며 언덕 위에 서 있는 아름드리나무를 향해 걸어가던 오솔길은 생각만 해도 우리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준다.
그런 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나는 한 건축가를 만났다. 그 역시 아주 독특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 사람이었다. 미국에서 매년 건축가들이 뽑은 가장 위대한 건축가의 명단에 언제나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 다른 어떤 건축가도 흉내 낼 수 없는 숭고하고 웅장한 건축 미학을 선보였던 건축가. 그가 바로 루이스 칸이었다.
그는 옛 소련의 에스토니아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어릴 적 화롯불에서 석탄이 타오르는 것이 너무 궁금해서 가까이 다가갔다가 얼굴에 화상을 입고 평생토록 화상 입은 얼굴 때문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그는 대학 시절 그림을 그려야만 생활비를 벌 수 있을 정도로 가난했다. 훗날 유명세를 탄 뒤에는 큰 돈을 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속적인 부와 명예를 뒤로한 채 오직 진실의 미학과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숭고한 예술의 길을 걸어갔던 사람.
사실 그의 이야기에는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한 가지 이야기가 더 있었다. 그것은 마지막까지 그가 숨기려 했던 그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루이 칸에게는 세 명의 여자가 있었고 세 명의 자식이 있었다. 가장 나이 어린 아들은 루이 칸을 죽을 때까지 사랑했던 한 여인이 낳은 아이였다. 미혼모로 평생을 살아야 했던 여인, 그리고 루이 칸의 숨겨진 아들. 그 아이는 세상에는 드러내 놓고 싶지 않은 존재였다. 세월이 흐르고 그 아들이 어른이 된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감독이 된다. 아들은 자신에게는 늘 멀리 있는 존재처럼 여겨졌던 아버지이자 건축가였던 루이 칸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한 편 제작한다. 그것이 바로 <나의 아버지, 건축가 루이스 칸(My Architect)>이란 작품이다. 작품을 연출한 나타니엘 칸(Nathaniel Kahn)은 이 작품으로 2004년 아카데미상 다큐멘터리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와 같은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어쩌면 이 작품이 나의 가슴을 울린 것은 그들의 삶이 내 삶의 한 부분과 흡사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그 작품을 통해서 루이 칸이라는 사람을 이해하고 싶었고, 루이 칸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나의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둔 뉴욕의 펜스테이션 지하철역에서부터 방글라데시의 다카까지 나에게는 그를 쫓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남들 눈에는 조금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거기에는 그럴 만한 간절함이 있었다. '사랑한다', '보고 싶다', 그리 쉽게 말하지 못했던 아버지와 아들, 루이 칸과 그의 아들, 나와 나의 아버지는 그렇게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며 같은 길을 달리고 있었다.
1974년 뉴욕의 펜실베이니아 기차역. 낡은 코트를 입은 한 노인이 화장실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유난히 작은 키와 화상으로 상처 입은 얼굴 그리고 주소가 지워진 여권. 무연고자로 분류된 이 작고 초라한 노인의 시신은 며칠 동안 시체안치소에 방치되어 있었다.
건축가 루이 칸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74세였다. 신문의 부고에는 그에게 부인과 딸 하나가 있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아내 그리고 배다른 자식들이 있었다. 그는 세 가족을 거느리고 살았던 셈이다. 그의 아들 나타니엘 칸은 당시 11세였다. 그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처음으로 자기의 배다른 누이들 그리고 그 어머니들을 보았다.
뉴욕 시민들이 하루에도 가장 많이 분주하게 드나드는 곳, 60만 명이나 되는 유동 인구가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숨 가쁘게 이동하는 공간. 타임스퀘어나 센트럴 파크 같은 관광지 얘기가 아니다. 바로 집과 일터를 오가는 뉴요커들의 생활의 중심, 펜실베이니아 기차역이다. 뉴욕 시민들에게는 펜실이베니아 기차역이라는 긴 이름보다는 펜스테이션이라는 애칭이 더 익숙한 곳.
어둡고 침침한 형광등 불빛, 색 바랜 타일 조각들, 기차가 들어올 때면 발을 딛고 서 있는 바닥이 덜컹덜컹 울렁거릴 정도로 낡고 오래된 그 기차역 계단 위에 한 노인이 숨을 거둔다. 음습하고 탁한 실내 공기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심장마비로 인한 발작과 호흡곤란으로 통증을 호소하던 한 노인이 그렇게 차가운 지하철 바닥 위에서 숨을 거둔다.
건축계에서는 누구나 그 이름만으로도 고개를 숙이고 침묵하게 만드는 존재, 루이 칸. 하지만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가서야 난생처음으로 배다른 형제, 그리고 또 다른 어머니들과 인사를 나눠야 했던 아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버지를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아들은 그렇게 인생의 길에서 한참 동안을 방황했다. 언젠가는 자신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 하나로 평생 외롭게 아버지를 기다렸던 어머니는 아들의 가슴에 남아 있는 응어리였다.
"그를 사랑했기 때문에 난 후회하지 않아. 그를 통해서 너를 얻게 되었잖아."
어머니는 늘 그렇게 아들을 타일렀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 어머니에 대한 미련을 안고 성장한 아들은 다큐멘터리 감독의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카메라를 들고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였지만 그가 세상에 남겨놓은 건축물들이 아버지와의 시간 여행을 인도한다. 그리고 그렇게 아버지의 영혼이 담긴 건축물들과 만나면서 아들은 조금씩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어차피 여행의 시작은 원망스러웠던 아버지를 만나 이유라도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로부터 들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대신 아버지가 남겨놓은 건축물들을 통해서 아들은 아버지와의 화해를 시도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길은 결코 아니었다. 평생을 작은 오두막에 살며 남편을 기다렸던 자신의 어머니, 흐릿한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짧은 기억들, 목적지를 향한 아들의 발걸음은 그래서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때로는 그래서 뒤틀려 있는 자신의 감정도 숨김없이 드러낸다. 세상 사람들은 숭고하고 웅장한 완성미를 선보였다 칭송하는 아버지의 거룩한 작품들 앞에서 아들은 감히 휘파람을 불며 롤러 블레이드를 탄다. 세상 사람들은 건축의 최고 경지를 보여준 성전이라 부르는 건물들 앞에서 보란 듯이 건물 사이를 뛰어다닌다. 그것은 세상에 없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자 어릴 때 투정 한 번 제대로 부려보지 못했던 아들만이 할 수 있는 솔직하고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태평양이 바라 보이는 캘리포니아 해안가에 자리 잡은 그곳, 석양이 노을질 때면 빛이 건물 사이 커다란 중정 마당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빛과 침묵의 건축가'라 불리는 루이스 칸은 이 커다란 빈 공간을 설계하면서 '하늘을 향한 파사드로 남겨두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들은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 그곳에 와서 롤러브레이드를 신나게 타며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이걸 만든 게 우리 아버지야!'
그건 어린 시절 아버지 자랑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던 한 아이의 가슴에 맺힌 회한이었는지 모른다. 슬프지만 슬프게 보이지 않으려 애쓰는 아들의 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다. 그런 화면을 뒤로 하면서 닐 영(Neil Young)의 불렀던 'Long may you run'이 흘러나온다. '좀 더 멀리 가볼 수 있잖아..' 그래서일까. 난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언제나 가슴 뭉클하고 눈앞이 뿌옇게 된다. '참, 인생이란 게 뭔지', 하고 속에서 뜨거운 게 솟구친다.
사실 어린 시절 나는 항상 건축 자재더미와 함께 살았다. 마당 건너 작은 창고에는 삽이며 곡괭이며 시멘트, 합판 들이 늘 쌓여 있었고 드라이버나 몽키 스패너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그렇게 톱밥과 흙더미들 속에서 나의 어린 시절 기억들이 대부분 만들어졌다.
나의 아버지도 일종의 건축에 종사한 분이셨기 때문이다. 뭐 대학의 정규 건축학과를 졸업해서 전문적인 건축가의 길을 걸어간 분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그냥 보통 ‘집 짓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몇 차례의 부도와 실패를 거듭하면서 ‘집 짓는 사람’이셨던 나의 아버지는 결국 재기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서 실패한 아버지는 가족으로부터도 멀어져 갔다. 아주 멀리.
그리고 그런 아버지에게는 어느 날 새로운 여자가 생겼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배다른 동생도 태어났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아버지의 존재는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기억 때문에 나에게 아들의 존경을 한없이 받는 아버지의 존재란 늘 복잡한 감정으로 다가온다. 그걸 한마디로 부러움이라고 해두자. 다시 다큐멘터리 영화로 돌아가자.
이 영화에서 아들은 시대를 풍미한 건축가 루이 칸에 관해 객관적인 시선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아버지’라는 단어를 쓰기보다 그저 그의 이름을 덤덤히 부르는 아들, 남들의 환호성에 귀를 닫고 일부러 냉정하게 바라보려는 시선까지 모든 게 조금은 독특하다. 하지만 아버지의 품속에서 잠들어 보지 못한 아들끼리는 통하는 게 있는 법이다. 나의 눈에는 그래서 그의 냉정함이 더 애처롭게 느껴졌다.
웅장하면서도 자연주의적인 가치를 건축물에 표현해낸 수준 높은 건축가로 평가받는 루이 칸, 하지만 솔직히 따져보면 그것은 그가 죽고 난 뒤의 평가다. 죽은 자에 대한 평가는 원래 후하지 않은가. 1974년 펜실베이니아 기차역에서 그가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을 때 그의 마지막을 알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일그러진 얼굴만큼이나 외롭고 처절한 죽음이었다. 너덜너덜해진 옷과 낡은 여권, 오죽했으면 갈 곳 없는 주검들이 향하는 공중 시체안치소에서 그의 시신은 3일이나 머물렀다.
자신의 외모에 심한 콤플렉스를 가졌고 유대인에 대한 멸시에도 견디기 힘들어했지만, 그는 언제나 당당했다. 최선을 다한 삶이었기에 그의 말년은 눈부시게 찬란했다. 오늘날까지 전 세계 건축가들에게 존경과 찬사를 받고 있는 그의 작품들은 모두 죽기 얼마 전에 만들어졌다. 그가 뉴욕 펜스테이션에서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쓰러지기 직전 여행을 하고 돌아온 곳도 파리나 런던 같은 곳이 아니라 뜻밖에도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라 불리는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였다. 그곳에는 루이 칸의 일생일대 최대의 역작 중 하나가 만들어지고 있던 중이었다.
영화는 비틀어져 있던 아버지와 아들이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정상궤도를 찾아 나선다. 평생 외롭게 다른 여자의 남자였던 아버지만을 기다리며 살아왔던 어머니 그리고 얼굴도 모른 채 살아왔던 배다른 누이들과도 그렇게 감독은 하나하나 화해를 시도한다. 그 시점부터 아들이 잡은 카메라의 시선은 미국을 벗어나 또 다른 나라로 향한다. 뜻밖에도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더럽다는 곳이었다. 세상의 찬사를 한 몸에 받던 최고의 건축가가 왜 그 더럽고 냄새나는 곳에서 마지막 인생을 보냈을까? 그것은 아들이 가장 알고 싶었던 아버지의 이야기였다. 인도에서 시작해서 마지막 종착점인 방글라데시까지. 그의 작품들 가운데 최고라고 평가받는 작품들은 거의 그가 죽기 얼마 전 바로 이 버려진 땅에서 만들어졌다.
이제 영화는 아버지가 노년의 마지막 힘든 몸을 이끌고 헌신의 힘을 쏟은 한 곳으로 향한다. 바로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이었다. 그곳에서 감독은 오래전 아버지와 함께 공사에 참여했던 현지 건축가를 만난다. 그 역시 세월의 흔적은 지울 수 없는 법, 주름 잡힌 손으로 악수를 나누며 그는 아들에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아버지 루이 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갖고 있는 것이라고는 가난과 흙더미밖에 없었던 우리들이 그를 찾아갔을 때, 놀랍게도 그는 흔쾌히 설계를 맡아주었어. 우리는 거의 맨주먹으로 이 국회의사당 건물을 만들었지. 이 건물은 우리에게는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이야. 그래서 이 건물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거야. 그게 너의 아버지야. 너희에게는 소홀했을지 모르지만 우리에겐 은인이야. 너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해야 해...”
눈물을 글썽이며 옛날을 회상하던 그 건축가의 입을 통해서 아들은 비로소 위대한 건축가인 자신의 아버지와 만난다. 그리고 그 순간 아버지의 품이 그토록 그리웠던 아들은 아버지가 왜 늘 바쁜 사람이어야 했는가, 왜 늘 기다려도 오지 않는 나쁜 아버지였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물과 가난의 나라 방글라데시 그리고 루이 칸의 영혼이 담긴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건물. 아버지의 행적을 찾아 멀고 먼 길을 돌아온 아들은 마침내 이곳에서 오래된 여행의 마침표를 찍는다. 나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왜 건축에 대해서 그동안 아무 이유도 없이 본능적인 매력을 느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건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왜 건축이라는 말에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을 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멀리서나마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봤던 한 아들로서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아버지와 아들은 그렇게 운명처럼 닮아가게 되어 있다.
어느 누구에게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조금은 낯설고 어려운 일이다. 자랑할 만한 것이 많은 아버지를 두었다면 이야기하는 게 쉽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사실 적지 않은 용기도 필요로 한다. 철이 들기 전까지 아버지의 존재는 그저 내 삶의 작은 부분 이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별로 간절히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끄럽고 그저 그런 기억.
인생이란 게 늘 그렇지만, 그 아버지의 존재가 사라져 버린 순간부터 아들은 진짜 아버지와 만나고 싶어 진다. 공교롭게도 나의 아버지도 루이 칸처럼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나도 그의 죽음을 한참 뒤에야 알 수 있었다.
과연 난 언제쯤이면 ‘집 짓는 사람’이었던 나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될까. 아들로서 부족했던 그에게 이런 자리를 잠깐 빌려 한마디 건네고 싶다.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지은이: 김덕영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저자
다큐멘터리 PD
서촌의 복합창조문화 공간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대표
작가의 책은 교보, 영풍, 반디앤루니스 등의 시내 유명 서점과 예스24, 알라딘 등지에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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