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원 화가, 그랜마 모제스(Grandma Moses) 이야기
글: 김덕영 (docustory@gmail.com)
사람은 한 평생을 살면서 몇 번의 전환점을 맞게 될까? 누군가에게 그것은 기회일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겐 시련이 될 수도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삶과 운명이 교차하는 전환점이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이전의 삶보다 더 풍요롭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전환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거나,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인생을 보람되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삶의 전환점을 주도적으로
맞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찾아온 삶의 변화와 그 순간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개척한 사람들이다.
지금부터 소개할 사람은 누구보다 인생의 전환점을 화려하게 맞이한 사람이다.
그는 그 순간이 오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재능을 갈고닦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전환점을 맞이한 순간부터 그의 인생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는 미국 최고의 화가 중의 한 명이었던 ‘그랜마 모제스’라는 할머니였다.
놀랍게도 그녀가 처음 붓을 잡고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 그녀의 나이는 78세였다.
그랜마 모제스는 1860년 뉴욕 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당시 미국은 흑인 노예제를 놓고 남북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던 시기.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가난한 시골 농장에서 그녀는 10명의 형제들과 함께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고, 12살부터는 부모님의 농장에서 일을 해야 했다. 하루하루 고된 노동의 대가로 그녀가 얻은 것은 한 끼 식사가 고작일 정도로 가난한 삶이었다.
1887년 그녀는 토머스 모제스라는 농부와 결혼을 했다. 그녀의 나이 17살 때였다. 결혼 생활 동안 모두 10명의 자녀가 태어났지만, 가난한 살림 때문에 5명의 아이가 병으로 사망했다. 자신의 아이를 다섯 명이나 잃어버린 어머니, 그 시기부터 그녀는 세상을 관조하는 능력을 키워 나갔다. 그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천진난만한 그림과 동화 속 주인공 같은 등장인물들은 그녀가 돌보지 못한 아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비극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그녀의 삶은 더욱 고달픈 인생으로 빠져든다.
한 가족의 가장으로 생계를 위해 자수를 배우면서 한 뜸 한 뜸 천에 자수를 놓아 생활비를 벌었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랜마 모제스는 그림을 그리듯이 천에 수를 놓으면서
자신의 빈곤한 삶을 위로했다. 하지만 그 일도 오래갈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손가락에 관절염이 생긴 것이다. 그녀는 손가락조차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바늘을 천에 꿰뚫는 정교한 작업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생계를 이어가는 일이자, 자신이 가장 즐겁게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사라진 것이다.
창작의 열정을 가슴에 품은 자들은 이런 역경 속에서도 어떻게든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어느 날 우연히 그녀의 동생이 작은 붓 몇 자루를 선물했다. 그녀의 그림 그리는 재주를 남다르게 보았던 동생이 그림을 그려보라고 권한 것이었다. 작고 가는 바늘로 수를 놓아야 하는 자수보다는 관절염에 걸린 그녀에게는 훨씬 수월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그녀의 삶은 완전히 뒤바뀐다. 그녀는 78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붓을 잡고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그랜마 모제스는 붓을 들고 전원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마주했다.
그녀는 자신이 태어나고 생활했던 전원 풍경을 화폭에 옮겼다. 가족들이 살고 있는 아름다운 시골 풍경과 잔잔한 농가의 일상들이 작품의 소재가 됐다. 무엇보다 그런 그림을 그리는 일이 그녀에게는 가장 즐거운 일이었다. 그녀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하나 둘 생겨났다. 마을 사람은 그녀의 그림을 사서 자신들의 집에 걸어 놓았다. 그녀는 생계를 위해서 그림을 팔기 시작했다. 작은 것은 2달러, 큰 그림은 3달러 정도밖에 안 되는 가격이었다. 그림을 팔아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그녀의 마음속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딸이 읍내에 약을 사러 갔다. 약국 주인은 어머니인 그랜마 모제스의 그림에 대해 몇 마디 질문을 던졌다. 약국 주인 역시 그랜마 모제스의 그림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사람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날 약국 주인과 딸은 그랜마 모제스의 그림을 한데 모아 약국에서 전시를 하기로 합의했다. 마을 사람들도 그녀의 그림이 전시된다는 소식에 반가워했다. 가난한 그녀의 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드디어 약국 쇼윈도 앞에 그녀의 그림들이 진열되었다. 그랜마 모제스의 소박한 첫 번째 전시회였다. 화려한 뉴욕의 화랑이나 화가들로 넘쳐나는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과 같은 곳에 비하면 초라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래도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전시회였다.
며칠 후, 그 시골 마을에 뉴욕의 미술품 수집가가 우연히 지나갔다. 그는 마을 약국 앞에서 눈에 띄는 독특한 그림들에 시선을 사로잡혔다. 추상적이고 거만한 뉴욕의 직업 화가들의 그림에서는 절대로 발견할 수 없는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살아 있는 그림이었다. 농사짓는 사람들, 시골 마을의 소박한 결혼 등을 자연스럽게 표현한 작품들이었다. 뉴욕에서 온 미술품 수집가는 즉석에서 돈을 치르고 그림을 몽땅 샀다.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기다려왔던 그랜마 모제스의 그림에 대한 열정이 꽃을 피우는 순간이기도 했다. 바로 이 순간이 성공한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는 운명적인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것은 미술품 수집가였던 루이스 J. 칼도어라는 사람이 작은 시골 마을 약국 앞을 지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하지만 성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의 운명은 이런 우연을 통해 자기 궤도를 찾아나간다. 그날 뉴욕의 화상은 단번에 그랜마 모제스가 오랜 시간 노력해온 그림에 대한 열정을 발견했다.
1938년 드디어 그랜마 모제스의 그림이 뉴욕 맨해튼의 고급 화랑가에서 세상에 공개되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전시 첫날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의 모든 그림이 팔려나갔다. 사람들은 그림을 그린 주인공이 80세에 가까운 시골 할머니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뉴욕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그녀의 그림은 미국과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그림은 엽서로 제작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잃어버리고 있었던 마음의 고향을 그녀의 그림을 통해서 발견했다. 물질적인 풍요와 테크놀로지가 지배하는 냉정하고 이기적인 사회 속에서 그녀의 그림은 사람들의 마음에 안식처를 제공했다.
그녀는 이제 일약 스타가 됐다. 당대 최고의 화가들만이 참가할 수 있다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파리의 국립 근대미술관, 모스크바의 푸시킨 미술관 등에서도 초청을 받아 전시회가 열렸다. 라이프 잡지는 그녀의 일생을 다룬 기사를 내보냈고, 1952년에는 그녀의 일생을 소재로 한 자서전 <내 삶의 역사 My Life’s History>가 발간됐다. 프랑스와 영국, 독일 등지에서 무려 15번이나 전시회가 열렸다. 1960년 넬슨 록펠러 뉴욕 주지사는 그녀의 100번째 생일을 맞아 ‘모제스 할머니의 날’을 선포하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그녀가 마지막 죽기 직전인 100세 때 25점의 그림이나 그렸다는 점이다. 그중에는 백만 달러가 넘는 그림도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도 자신의 열정을 불태운 삶을 살았다.
그랜마 모제스는 78세 때 처음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10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1,600점의 그림을 세상에 남겼다. 미술사에서는 실로 경이적인 사건이었다. 모두가 늦었다고 삶을 포기하는 순간, 그녀는 새롭게 인생을 시작했다. 그것은 가난하고 고달픈 삶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반부의 인생과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삶을 멋지게 살았던 그랜마 모제스의 삶은 그래서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도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불행이나 절망에 빠져 한탄하기보다 현재의 삶을 즐기려고 노력했던 낙관적인 인생관, 좌절하지 않고 꾸준하게 그림을 그린 성실한 인생관, 그것이 없었다면 그녀의 화려한 후반부 인생도 없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는 삶의 전환점은 있다. 단지 그것을 자기 스스로 발견하지 못할 뿐임을 그랜마 모제스는 증명했다. 인생이란 무대에서 주인공은 나이가 들고 늙어도 역시 자기 자신이다. 그 누구도 인생의 무대에서 자신을 대신해서 연기할 수 없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인생에서 꿈꾸는 방법을 잊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