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낭독극 한 편을 제작하려고 하는가?

김덕영의 인문학 여행(76)

by 김덕영

'낭독극이란 무엇인가?'


우선 낭독극이 무엇인지 생소한 분들을

위해서 개념부터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낭독극이란 연극과 문학이 만나

어우러지는 좀 색다른 방식의 연극입니다.

이미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꽤 인기 있는

대중적인 연극 장르이기도 합니다.


시를 낭송하거나 소설의 한 구절을

낭송하듯이 그렇게 연극적인 대사를

배우들이 주고받으면서 진행되는 연극입니다.


배우들의 의상과 분장은 물론이고

연극 무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대 장치나

조명들이 배제된 말 그대로 순수하게

낭송만으로 이뤄진 연극인 것이죠.


미국의 뉴욕 맨해튼 오프 브로드웨이나

대학가에서는 이런 류의 연극들이 꽤나

활성화되어 있다고 합니다.

영어로는 'Stage Reading', 즉

'연극화된 대본 리딩'이라는 뜻입니다.

연극적인 요소만큼이나 '리딩'(reading)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게 특색입니다.



연극이나 뮤지컬과 같은 공연이

많은 자본이 투입되고도 흥행에 참패하는

경우에 대비해서 볼 때는 제작자 입장에서도

매우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큰 자본을 들이지 않고

일종의 시험 무대 성격의 공연으로

관객들의 반응을 테스트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꼭 그런 경제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낭송' 자체의 맛과 재미를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한 후배를 통해서 마인츠라는 도시에서

연극 무대에 올려졌던 낭독극 한 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에겐 매우 충격적이고

신선했습니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암흑 같은 무대,

겨우 대본만 읽을 수 있을 정도의 희미한 불빛.

낭독극을 관람한 뒤 5명의 친구들은 근처에

있는 영국식 펍에서 맥주 한 잔 나누며 공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다섯 명의 친구들이

해석하는 연극이 모두 다른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불이 꺼져 캄캄한 상황에서 볼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자연히 다섯 명의 친구들은 눈을 감고

각자의 기억 속에 있는 추억들을 끄집어냈습니다.

그들은 배우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서로 다른 자신들의 경험을 재구성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강력한 인터렉티브(interactive)적

요소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날 관객은 자신의 경험을 쫓아가면서

무대의 공연에 몰입했습니다.

배우나 감독의 연출대로 움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을 통해 공연을 이해한 것입니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게 무대를 연출했던

감독의 계산이 맞아떨어진 셈이죠.


보통 영화를 보거나 연극을 볼 때, 우리는

늘 자신의 기억을 통해서 무대 위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몰입해 갑니다.

관객들마다 감정이 몰입되는 부분이 다른 것은

각자가 기억하고 있는 인생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겠죠.


볼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현란하고 화려한 조명 빛 아래 쏟아지는

각양각색의 이미지들.

우리는 시각적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시각적 정보들이

우리는 가끔은 현혹시키기도 합니다.

인식의 오류나 판단 착오 등이 이뤄지는

이유들이 그 증거입니다.


시각적 정보는 왜 우리를 쉽게 속일까?


아마도 정보의 특징이 매우 직접적이고

자극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청각이나 촉각, 혹은 미각이나 후각과

달리 시각은 우리의 인식의 판단을

강력하게 좌우합니다.


영어 속담에 '보이는 것은 믿는 것'

(Seeing is Believing)이란

말도 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정말 '보이는 것이 확실히

믿을 만한 것'인가요?


오히려 가장 쉽게 인간을 기만할 수 있는

요소가 시각적 정보가 아닐까...

그래서 저는 가끔 눈을 감고 귀를 열려고

합니다.

남의 말을 더 많이 들어야 남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그들의 말을 경청해야만

판단의 오류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낭독극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은 눈이 감기고 귀가 열리는 예술이었다는

점입니다.


모든 예술이 가야 하는 길,

'자아(ego)로의 여행', 어쩌면 낭독극은

눈을 감고 귀를 열게 하면서

우리들 각자가 도달해야 할 성찰의 길로

인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촌의 작은 골목길에 자리 잡은 지
어언 4년이 다 되어가면서 여러 종류의

공연을 했습니다.

이번에 추진하고 있는 '낭독극'은

지금까지 열렸던 재즈나
플라멩코, 훌라 공연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공연이 분명합니다.
저에게는 새로운 도전입니다.


일단 이 공연은 순수하게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멤버들의

열정과 의지만으로 무대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낭독극 대본을 쓰고 있는 저 자신에서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도움을 주고 있는

멤버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물음표는 남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 공연을 하려고 하는 건가?'
낭독극 대본 중에도 등장하지만
주인공 중렬은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찾아서 여행을 떠납니다.

잘 나가던 대기업도 그만두고
자신만의 인생을 살려고 마음을 다지고 있죠.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인 신이의 대사가
하나 있습니다.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자꾸 하려고 그래?'

어쩌면 그 대사는 저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대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나는 지금 왜 돈도 안 되는 일을 자꾸
하려고 하는가?'

'김PD의 통의동 스토리'라는 공간을

처음 만들면서 저는 이 공간이

인생의 목표를 재설정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창조의 공간이 되길 바랬습니다.
인생의 먼 길을 달려왔던 사람들에게
재충전의 쉼터가 되길 원했습니다.

그렇게 4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은 보고 즐기는 일상의 문화,
비싼 값을 치르지 않아도 세련된 예술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절반은 성공했다고 자부합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절반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단순한 문화의 향유자, 소비자에서
문화를 만들어가는 창조자로 우리들
자신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능력이 없다고, 시간이 없다고
그동안 꿈의 실현을 미뤄왔던
사람들에게 꿈이 이뤄지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우선은 저 자신부터 연극 무대를
제작한다는 꿈이 이뤄지는 공간입니다.
저는 이처럼 오랫동안 꿈을 가슴에
간직한 열정 있는 창조자들과 만나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이 낭독극 한 편이
오래도록 사람들 속에서 사랑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연극을 통해서
창조적인 열정과 문화를 일상의 작은
공간에서 완성시키는 삶의 현장들을
보고 싶습니다.

그것이 '돈도 안 되는 일'을
꼭 성공시키고 싶은 첫 번째 이유입니다.

이 연극의 성공은 우리 공간에서
만들어질 또 다른 후속작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단계입니다.

이미 2016년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라는 책을 소재로 해서
창작극 '뒤발리에'라는 시나리오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 작품의 특징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건 말 그대로 현실의 뒤늦게 발동걸린
사람들과 함께 무대를 만들어간다는 점일
것입니다.

나이는 들었지만 아직도 창작과
무대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

대한민국이 배출한 음대, 미대, 연극, 영화과

출신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1%의 스타들이 아니라

평범하지만 열정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는

그 예술가들과 함께

또 다른 무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돈도 안 되는 일'이
아니라 아주 큰 성과를 얻어내는 그런
멋진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고령화 시대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앞으로
거대한 쓰나미처럼 고령화의 물결이
사회 곳곳을 덮칠 것입니다.

100세 시대라 말들 하죠.
50세인 사람이 앞으로 살아갈 인생이
지금껏 살아온 50년만큼이나 긴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설계하고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각자 자신의 두 번째 인생을 찾아서
꿈을 찾아서 목표를 찾고 희망의 근거들을
마련해야 할 시점입니다.

저는 이 공연을 통해서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새로운 활력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 곳곳에 뒤늦게
발동걸린 사람들이 넘쳐나길 희망합니다.

비록 작은 무대에서 펼쳐질 공연이겠지만
이 공연 속에 우리들의 미래와 꿈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낭독극 <내가 그리로 갈게>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만들어서 멋진 공연을
펼쳐 보이겠습니다.


글: 김덕영 (작가, 다큐멘터리 PD)




저는 서촌의 작은 골목길 까페,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 조금은 독특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같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으신 분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김덕영의 책들
서촌 골목길 까페, 그 3년의 기록, <나에겐 통의동 스토리가 있다>,
인생에서 성공이란 때론 좀 늦게 찾아올 수도 있다,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49금 장편소설 <내가 그리로 갈게>

<그리스의 시간을 걷다> (책세상), <세상은 모두 다큐멘터리였다> (당대), <유레일 루트 디자인> (오픈하우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