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발동걸린 인생 2'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하기에 '지금'은 누구에게나 충분한 시간이다.

by 김덕영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 2’ 프로젝트


제1화: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하기에 ‘지금’은 누구에게나 충분한 시간이다.


나는 언젠가 역사적으로 이름을 날린 유명한 사람들의 나이에 관한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보통은 사회의 각 분야에서 성공한 부류라고 불러도 좋은 사람이다. 놀랍게도 상당수의 인물들이 5,60세를 기점으로 인생의 갈피를 잡고 인류 문화 발전에 공헌이 될 만한 일들을 해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중에는 7,80세를 넘긴 인물들도 상당히 있었다.


톨스토이가 <부활>을 쓴 나이는 72세.
눈이 나빴던 자기 자신을 위해 벤자민 플랭클린이 이중초점 렌즈 발명했을 때는 78세.
투자자를 찾기 위해 닭튀김 도구를 싣고 여행을 떠났던 KFC 창업자 커넬 샌더스, 그가 1009번 만에 투자 유치에 성공했던 나이는 65세였다.
가난한 농부의 아내였던 그랜마 모제스는 78세에 처음 붓을 잡고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윈스턴 처칠이 <2차 세계대전>으로 노벨 문학상을 탔을 때 나이는 80세.
<레미제라블>을 썼을 때 빅토르 위고의 나이는 61세.


이런 결과들은 조사를 하기 전에 가졌던 내 생각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 무엇보다 나에게는 그들이 원래부터 천재적인 재능의 소유자들이었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이루어낸 업적의 상당 부분 역시 젊은 시절 혹은 적어도 30대 정도에는 꽃을 피웠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들이 정열적으로 창작의 불꽃을 지폈던 시기는 30대가 아니라 60대부터였다.


두 번째는 직업적인 업적보다 아마추어적인 열정에서 이룩된 결과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 ‘아마추어’라는 단어는 미숙련자라는 의미보다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특정한 분야에서 자신의 일이나 연구, 창작을 즐겼던 사람을 일컫는 ‘아마토렘(Amatorem)’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고대 프랑스에서는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었다.


직업적인 의식과 아마추어적인 열정의 차이가 일에서 서로 다른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알고 싶다면 전화기의 발명을 놓고 다퉜던 그레이엄 벨과 엘리샤 그레이라는 두 사람의 전설 같은 일화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오늘날에는 그레이엄 벨이 전화기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전화가 처음 발명되던 1876년 당시에는 엘리샤 그레이가 더 유명했다. 그는 무려 70개의 발명 특허를 갖고 있었고, 미국을 대표하는 전기 연구자였다. 문제는 그가 전화기의 유용성, 즉 오늘처럼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통신수단으로써의 가능성에 대해서 별로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레이엄 벨과의 차이점이었다.

“전화라는 것은 통신수단이 되기에는 결점이 너무 많다. 이 기구는 우리에게 별로 가치가 없다.”


이 말은 전화의 발명 특허를 놓고 그레이엄 벨과 엘리샤 그레이가 다툼을 벌이고 있을 때 미국 최대의 통신 기업 웨스턴 유니언의 최고 경영자가 했던 말이다. 엘리샤 그레이를 전폭 후원했던 바로 그 미국 거대 통신회사 웨스턴 유니언 컴퍼니 말이다. 당연히 전화기의 발명과 혁신 앞에서 누가 더 앞서 나갈 수 있었는지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실제로 엘리샤 그레이는 전화 특허에서도 벨에게 뒤처지지 않았다. 제품 자체 면에서 봤을 때도 그레이의 발명품이 성능에서도 앞섰다. 문제는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제품에 대한 열정의 차이였다. 아마추어였던 그레이엄 벨에 비해 엘리샤 그레이는 너무나 직업적이고 형식이었다.


그레이엄 벨은 그에 비하면 아마추어였다. 누구의 후원도 없었고, 때문에 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그의 열정은 오로지 아마추어의 즐거움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이 전화의 특허 분쟁에서 그레이엄 벨이 엘리샤 그레이를 눌렀던 결정적 요인이었다. 이런 아마추어들의 반란은 한둘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아인슈타인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상대성 이론을 세상에 발표할 당시 그는 직업적인 과학자가 아니었다. 그의 공식적인 직업은 스위스 특허청의 심사관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많지 않다. 한마디로 아마추어 과학자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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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의 발명 특허를 놓고 경쟁을 벌였던 그레이엄 벨과 엘리사 그레이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아마추어라는 말은 학문이나 예술을 애정과 즐거움 때문에, 그 분야에 대해 알고 싶은 열정 때문에 추구하는 사람들을 생업으로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얕잡아 일컫는 말이다... ‘전문가’에 대한 일반적인 존경심과 아마추어에 대한 불신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사실 아마추어에게는 예술이나 학문 자체가 목적인 반면, 전문가들에게는 수단일 뿐이다. 학문이나 예술을 가장 진지한 열정으로 추구하는 사람은 그 일 자체에서 중요한 의미를 찾는 사람, 그래서 순수한 애정으로 그 일에 매진하는 사람이다. 최고의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은 언제나 이런 아마추어들이었다.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는 그동안 인류가 걸어가지 않았던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생명연장의 꿈이 실현되는 시대다. 불가능한 꿈처럼 여겨졌던 ‘100세 인생’은 이제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삶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인생을 즐기고, 인생을 탐구할 시간이 길어졌다는 의미도 된다. 예전 같으면 인생을 정리할 6,70세의 나이가 이제는 무엇을 해도 늦지 않은 시작의 순간이 될 수도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이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온 것처럼, 남은 인생을 방구석에 처박혀 살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은퇴니 명예퇴직이니 하는 말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2,30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들에게는 두 번이 아니라 세 번의 인생도 살아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니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라. '시작'을 사랑한다면 늦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시작'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켰고 끊임없이 인간들을 도전의 길로 이끌었다. 우리가 누리는 풍요와 안락은 그렇게 자신의 '시작'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남겨준 혜택이다. 아마토렘, 무언가를 지극히 사랑했던 사람들 말이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말 그대로 ‘뒤늦게 발동이 걸린 사람들’에 대해서 자료를 찾게 되었다. 그들은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할 수도 있고, 학식이나 권위를 기준으로 보자면 전혀 다른 차원의 인간들일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새로운 일들을 만들어 냈다. 그들의 삶은 보통의 사람들 눈에는 나이가 들었다고 여겨지는 그런 노년에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이제 더 이상 60세는 환갑으로 기념할 나이가 아니라 새로운 전기 시작하는 두 번째 인생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그들도 그랬고 우리도 그럴 것이다. 그 안에서 나머지 인생을 정말 불꽃처럼 살다 가고 싶은 사람은 무엇이든 ‘지금’ 바로 ‘시작’을 사랑해야 한다.


글: 김덕영




서촌의 작은 골목길 까페,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 조금은 독특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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