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커피를 내리고 밤에는 와인을 서빙하며 틈틈이 글을 쓴다'
우리들 인생의 큰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에는
한 권의 책이 있다.
그러니 돌아보라!
지금 당신 주변에 어떤 책이 있는지...
그리고 생각하라!
어떤 책을 선택할 것인지...
'모든 책에는 고유한 운명이 있다(habent sus fata libelli)', 내가 가장 좋아하는 라틴어 경구이다. 어느새 이 말은 나의 신념이 되었고, 믿음이 되었다. 거의 종교에 가까운 말이 되어가고 있다. 살면서 여러 가지를 경험하면서 얻은 소중한 결론이니 나에겐 더욱 뜻깊은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남은 인생을 지탱해줄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이 문장과의 만남은 2013년에 우연히 일어났다.
2013년, 그해 나에게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 미래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뒤따른 이혼과 결별. 특히 평생을 같이 살 것 같았던 두 아들과의 이별이 가져온 슬픔과 마음의 상처는 예상외로 컸다. 돌이켜 보면 참 힘든 시기였다. 그건 마치 하루하루 술에 취해 다리가 허공에 붕 뜬 기분으로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불안하고 초조했다. 과연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들로 가득 찼던 시간들이었다.
그것이 마흔아홉 나의 인생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커다란 변화가 찾아온다. 그 운명과도 같았던 전환점에서 나는 한 권의 책에 매달렸다. 솔직히 말해서 운명에 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기를 쓰듯 나에게 편지를 썼다.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 바로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라는 책이었다. 앞으로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뭘 하며 남은 인생을 먹고살아야 하는 것인지,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나였고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자도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두 아이들에게 먼 훗날이라도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때 참 힘들었지만, 아빠, 열심히 살았어.
그러니까 너희들도 언제나 최선을 다해줘!"
그것이 내가 그토록 한 권의 책에 매달렸던 이유였다. 언젠가 아이들이 오늘 내가 쓴 글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아주 짜릿한 글쓰기의 동기 중 하나다. 때로는 아이들을 위해 곳곳에 인생이란 보물지도를 숨겨 놓는 재미도 있다. 그걸 찾느냐 못 찾느냐는 결국 녀석들 손에 달린 일이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 보물지도를 숨겨놓는 일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그렇게 사람이 어떤 삶을 살 건 인생의 큰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에는 한 권이 책이 있다. 어쩌면 그것이 책의 운명이지 않을까. 책이란 결국 나를 되돌아보게 만들고 생각하게 만든다. 성찰보다 더 강력한 삶의 에너지가 있을까. 나는 그렇게 믿는다. 믿어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는 사람에게 믿음은 삶을 지탱하는 신념이 된다. 한 권의 책을 읽던, 한 권의 책을 쓰던 책은 그렇게 고유한 운명을 지닌다. 게다가 아주 고귀한 인간들과의 인연이다. 앞서 인생을 살아갔던 작가들이 세상의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갔는지를 알려주니 말이다. 그들도 어쩌면 나처럼 인생의 보물지도를 곳곳에 숨겨놓은 것인지도 모르고...
누구나 그렇게 책과 운명적으로 만난다. 누구나 그렇게 책과의 운명적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어렵고 힘든 시간을 버티게 만들어주는 힘이 되는 책이 있고, 지혜와 건강을 찾게 만들어주는 책도 있다. 돈과 명예, 권력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한 권의 책은 운명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니 그토록 많은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책을 찍어내는 것일 테고. 이유가 무엇이 되었던 세상에 나쁜 책은 없는 것 같다. 물론 어떤 책 평론가는 세상에 나쁜 책들이 많다고 외쳤다. 그래서 그런 책을 보면 종이가 아깝다고 조롱하기도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는 나쁜 책을 읽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책은 언제나 시나브로 마음과 영혼에 여러 가지 색깔로 물든다. 바람이 되어 또 다른 운명을 향해 어디론가 움직인다. 이른 새벽 해가 뜨기도 전에 짐을 싸서 떠나는 낯선 나그네와 같다.
그렇게 힘들었던 순간들을 이겨내기 위해 책 쓰기에 매달렸다. 뜻밖에도 삶은 고되지만, 글을 쓰는 순간은 늘 즐겁고 행복하다.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를 쓸 때도 그랬던 것 같다. 그 책을 쓰면서 나는 한 사람의 위대한 영혼과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80세에 가까운 나이에 화가의 길로 들어섰던 그랜마 모제스(Grandma Moses)라는 할머니 화가였다. 비록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영혼이었지만, 그녀가 남긴 인생의 발자취는 새로운 길을 찾아 헤매던 시기, 나에게 북극성처럼 빛났다.
인문학에서는 운명적인 만남, 깨달음, 통찰을 가리키는 단어가 하나 있다. '에피파니(epiphany)'라는 단어가 바로 그것이다.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나는 서른 명에 가까운 인생들 속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그들 모두가 각자의 운명적인 '에피파니'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새롭게 운명이 바뀌는 어떤 고귀한 순간들이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전원 화가로 불리는 그랜마 모제스. 78세에 처음 붓을 잡고 화가의 길로 들어섰던 그녀는 101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1,600점의 그림을 그렸다. 그녀의 후반부 20년 인생은 80년 동안 살았던 전반부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했고 행복했다.
가난했던 시절 그녀가 그림에 대한 소망을 간직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꽃잎 물감 만들기'라는 전설적인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살림살이가 물감을 살 형편은 못 되었다. 얼마나 그림이 그림이 그리고 싶었는지, 그녀는 결국 꽃잎을 빻아서 물감을 만들었다. 비록 돈은 없었지만, 그녀가 살던 시골 들판에는 널려 있는 게 꽃들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꽃잎 물감을 만들어서 그림 그리기를 계속했다. 하루하루가 모여서 인생이 되듯이 그녀는 그렇게 인생의 전환점을 준비했다.
그녀의 '꽃잎 물감'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어떻게 꽃잎을 빻아서 그림 그릴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인간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끝까지 도전해 보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런 욕망 덕분에 세상은 늘 새롭게 창조된다. 그랜마 모제스의 신화는 가난과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꿈을 잃어버리지 않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삶의 의미와 행복의 가치에 관한 생생한 증언이었다.
결국 나는 그랜마 모제스처럼 사람들의 영혼을 울릴 수 있는 있는 이야기들을 찾아 나섰다. 생각이 아니라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뭔가 강력한 것, 막힌 동굴을 단 한 번에 뚫어버릴 수 있는 다이너마이트처럼 폭발력 있는 이야기들을 찾아서 글을 썼다. 그것이 2013년 때의 일이다.
'당신의 인생 레시피는 준비되었나요?'
행복한 삶이란 결국 내가 바라는 삶이다. 나를 기쁘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삶이다. 목표가 있는 삶이고 그래서 포기하기 싫은 삶이다. 문제는 우리의 삶이 늘 행복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나에게도 행복한 삶이 필요했다. 우선 나를 좀 기쁘게 만들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뭔가 재밌는 일이 없을까?
결국 나는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라는 책을 직접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다. 책의 모든 과정을 혼자서 한 번 해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결국 그렇게 해서 원고는 물론이고 본문 편집과 표지 디자인 제작까지 모든 것을 혼자서 만들었다. 책의 본문을 편집할 때는 보통 문서를 쓸 때 사용하는 '한글' 프로그램으로 본문을 디자인했다. 쿽이니 인디자인(Indesign)이니 하는 출판 전용 프로그램들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한글' 프로그램에 있는 PDF 출력 기능을 활용한 것이다. 전문가들 눈에는 부족한 것이겠지만 , 어쨌든 책의 형식이나 기능에 문제가 있었던 적은 없었다. 교정까지 작가가 하다 보니 오타가 좀 많았던 것을 빼고는 말이다. 지금도 내 책은 내가 스스로 편집하고 있는데, 다행히 요즘엔 디자인이 많이 늘어서 인디자인 중급자 정도 실력은 되는 것 같다. 당연히 보기에도 수준이 좀 올라간 느낌이 든다.
돌이켜 보면 참 절박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어물쩡 거리며 시간을 낭비할 수도 없었다. 일단 인생의 목표를 향해서 화살 한 방은 날리고 싶었다. 그래야 어디쯤 그 첫 번째 화살이 맞는지 알 수 있을 테고, 그래야 두 번째 화살은 정확하게 과녁을 조준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사람들이 인생에서 날릴 수 있는 화살이 한 방이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원하는 만큼 찾아오기 때문이다.
결국 그 책과의 인연으로 나는 경복궁, 서촌 통의동 골목길에 작은 까페 하나 오픈하게 된다. 한 권의 책이 이어준 낯설고도 재미있는 인연이었다. 그곳에서 세 권의 책과 두 편의 시나리오, 한 권의 소설을 썼다. 이 정도면 지난 5년 동안의 시간은 나름 즐거웠고 최선을 다한 시간들인 것 같다.
"낮에는 커피를 내리고 밤에는 와인을 서빙하며 틈틈이 글을 썼다."
가끔은 '낮에는 커피를 내리고 밤에는 와인을 서빙하며 틈틈이 글을 쓰는' 서촌의 골목길 작가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오는 손님들도 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벌써 눈빛부터 다르다. '김PD가 누구지?'하면서...
이제 나는 다시 두 번째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지난 시간 한 권의 책이 이어준 인연으로 여러 곳에서 강연도 했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났다.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들은 세상에 기록될 가치가 있는 소중한 것들이었다. 특히 나처럼 인생을 조금은 도전적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가슴 절절하게 다가오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모아 두 번째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을 세상에 소개하려고 한다.
아쉽게도 세상은 처음 첫 편을 냈던 5년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고령화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으며, 여전히 수많은 청년들은 일자리 때문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젊은이들의 한숨 소리도 잦아들지 않았다. 대기업, 잘 나가는 직장에 다니는 2,30대들조차도 벌써부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는 시대.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100세 시대라고들 하지만, 60세 정년퇴직 이후에는 특별한 대안이 없다.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 모두의 모습이다. 복지 선진국처럼 국가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각자가 자신의 길을 찾는 것이다. 스스로 묻고 답을 얻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확실한 동기다. 사람은 목표가 있을 때 열정도 타오른다. 힘들고 벅찬 삶의 조건들을 이겨낼 용기는 결국 자기 자신 안에 있다. 그걸 자각하는 순간 삶에 목표가 생긴다. 목표가 있는 삶이 사는데 수월할 수밖에 없다. 따라 배울 수 있고 각자의 삶에 영감을 줄 수 있는 인물들을 찾아주기 때문이다.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 2>에서는 전편에서 모두 담지 못했던 삶의 지혜와 감동적인 인생들을 담아낼 생각이다. 그래서 인생의 '에피파니', 그 운명의 전환점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한편으로는 이 척박한 세상에 또 한 권의 책을 낸다는 게 부담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작은 책 한 권에도 분명 고유한 운명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번엔 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가슴은 벅차게 두근거리고 있다.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 현재 신간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 2> 집필과 <한국전쟁, 동유럽으로 보내진 북한 전쟁고아들>에 관한 논픽션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글이 마음에 드신 분들은 신간 출간과 프로젝트 펀딩에 힘을 보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후원을 해주시는 분들에게는 저자 사인이 담긴 신간을 배송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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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9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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