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손으로 만들 수 있다는 기쁨
'인문학 여행' (66)
예전에 영국 런던에 다큐멘터리 취재 차 출장을 갔을 때의 일이다. 일주일 정도 일정으로 런던 시내 한적한 주택가에 방을 하나 얻어 지냈던 적이 있다. 그때 아침 저녁으로 취재를 나갈 때마다 길에서 만났던 할아버지. 이름도 모르고 뭘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지만 그가 했던 일만큼은 기억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사람이 한 사람 있었다. 편의상 지금까지 나는 그를 '미스터 퍼펙트'라고 부르고 있다.
그가 내 기억의 한 부분 속에 그렇게 오래 둥지를 틀고 있는 이유는 바로 자동차 정비 때문이다. 기름진 스패너, 허름한 청바지 작업복, 멜빵까지 달린 나이에 걸맞지 않는 앙증맞은 모습까지 그에겐 남다른 모습이 있었다. 당시 그가 하고 있던 일은 지금은 굴러다니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로 오래된 구식 자동차를 수리하는 일이었다. 푸조 430 모델, 1955년에 생산된 모델로써 프랑스의 자부심이 담긴 자동차다. 한때는 경제성과 예쁜 디자인으로 100만 대 이상 판매고를 올렸다고 한다. 옛날 TV 시리즈 '형사 콜롬보'에서 주인공 콜롬보 형사가 타고 다니던 차가 바로 푸조 403 컨버터블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눈코 씻고 봐도 길거리에서 찾기 어려운 올드카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런 오래된 자동차가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볼 때면 도대체 어디서 부품을 구해오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 푸조 403을 내가 런던에서 머물던 일주일 내내 끙끙거리면서 정비하던 바로 그 할아버지다. 나는 매일 아침 안개 낀 런던 뉴몰든 주택가를 지나면서 '말을 한 번 걸어 볼까', 하고 망설였다. 그러다 출국 전날에서야 겨우 '헬로우'하고 한마디 꺼내게 됐다. 그리고 그 한마디가 인연이 되어 본닛 뚜껑이 열린 낡은 자동차 앞에서 30분 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인연이 있었다.
우연히 마주친 낯선 남자의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을 들려주던 미스터 퍼펙트. 그는 런던을 떠나기 위해 뉴몰든의 거리를 빠져나오는 날, 나를 위해서 깔끔하게 정비된 자동차의 위용(?)을 보여주기도 했다. 평생을 같이 했던 아내와 함께 했던 낡은 자동차였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아무리 멋진 차들이 많아도 고쳐서 타고 다닌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나는 그의 낡은 자동차에서 그가 살아온 인생의 궤적들을 몰래 훔쳐보는 느낌도 들었던 것 같다.
시간이 아무리 지났지만, 커다랗게 벌려진 본닛을 활짝 열어젖히고 기름진 손으로 뚝딱거리며 하루 종일 구닥다리 푸조 403과 씨름했을 그를 생각하면 지금도 짠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나에게 뭔가 손으로 직접 만질 수 있는 기쁨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깨닫게 한 사람이다. 할 수만 있다면 나도 당장에라도 손으로 자동차를 뜯어서 부품들을 죄다 열었다 닦고 조이고 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어쨌거나 그런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나이가 들어서 직접 손으로 뭔가를 만들려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잔잔한 감동이 있다. 얼마 전에 보았던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이라는 영화도 그런 축에 속했다.
1920년도 인디언 스카우트라는 오토바이 한 대를 하루 종일 뚝딱거리며 개조했던 남자. 그에게는 한 가지 꿈이 있었다. 그것은 스피드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미국 유타 주의 소금사막 보너빌의 속도 무제한 경주 대회에 참가해보는 일이다. 그것도 자신이 직접 개조한 구닥다리 오토바이 한 대를 끌고 말이다.
뉴질랜드의 한적한 마을 인버카길에서 평생 평범한 인생을 살아왔던 버트 먼로(Bert Munro)는 목수에서 시작해서 정비공까지 몸으로 하는 일로 평생을 먹고살았던 남자였다. 1899년에 태어났으니까, 말 그대로 19세기형 인물인 셈이다. 그런 그에게는 늘 한 가지 꿈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자신의 1920년 산 '인디언 스카우트'를 몰고 보너빌 소금사막 위를 질주하는 꿈이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이 직접 오토바이 부품들을 개조한다. 애초에 1920년 산 '인디어 스카우트'는 최고 속력이 시속 80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제품이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제작 개발한 엔진을 붙여서 완전히 새로운 오토바이를 만들어냈다. 자신의 꿈을 위해서 자기 스스로의 손으로 쇳물을 녹여서 꿈의 도구를 만들어낸 것이다. 서너 평 남짓한 작업실은 그의 작업장이자 침대가 놓인 안방이었다. 작업대 위에는 기름 떼 냄새나는 온갖 도구들이 제멋대로 나뒹굴고 있다. 그 작업대 위에 세운 선반 속에는 그가 꿈을 위해 만들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했던 온갖 실린더 부품들이 은빛 훈장처럼 반짝거린다. 그는 그 실린더들 사이에 '속도의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라는 넉살도 좋게 이름을 붙였다.
그렇게 그가 집을 저당 잡히고 마을 건달들의 환송을 받으며 뉴질랜드를 떠난 것은 1967년 일이다. 그의 나이 68세 때였다. 이미 여러 번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보너빌을 찾았던 그였다. 하지만 왠지 1967년은 다른 때와 달랐다. 뭔가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강렬한 예감도 들었다. 비행기도 없어서 배를 타고 뉴질랜드에서 미국까지 여행을 해야 했고, LA에서 네바다를 거쳐 유타의 소금사막까지 오토바이를 매달고 이동해야 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여행이었고, 여행을 통해 그는 자신의 꿈을 응원해주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경주에 참가하는 날이 되었다. 그의 목표는 다른 차들과의 경쟁이 아니었다. 그가 뛰어넘고자 하는 목표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낡고 힘이 빠진 올드맨이 아니라 언제나 꿈을 향해 도전장을 던질 수 있는 두려움 모르는 패기 있는 한 남자로서 자신과 맞서고 싶었다. 1967년 그의 낡은 오토바이는 무려 시속 331킬로미터의 속력으로 소금사막을 주파한다. 1000cc 이하 급의 오토바이로는 아직도 깨지지 않는 전설적인 기록이다.
영화는 그렇게 한 노년의 '메카닉'이 뉴질랜드의 평범한 마을에서 자신의 꿈을 끌고 미국의 소금사막까지 가는 여정을 담담히 기록하고 있다. 일종의 노년의 로드 무비라고 볼 수 있다. 젊은이들의 꿈을 향한 도전과 다를 게 없다. 오히려 넉살 좋은 노인네의 재기와 유머가 겹치면서 중간중간 입가의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참 부러웠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은 사회가 노인네의 거의 미친(?) 짓에 가까운 도전에도 관대하고 너그럽게 바라보는 시선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고령화 사회다. 앞으로 100세를 넘는 인간들이 도처에 넘쳐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사회는 급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는데, 정작 노년의 문화는 없다. 전통에 대한 존경도 더불어 사라진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과거로부터 지혜를 얻지 못하는 사회에 미래가 밝을 수 있을까.
위대한 영웅의 이야기는 과거를 미화하고 현실의 무게에 허덕이는 많은 사람들을 마취시키는 마약이 아니다. 그것은 별이다. 망망한 밤바다를 항해하는 것 같은 막막한 인생들의 항로에 등대처럼 갈 길을 밝히는 북극성이다. 버트 먼로의 이야기가 그렇다. 그런 평범한 영웅들을 발굴하고 존경하는 태도에서부터 사회의 건강함을 잃어버리지 않는 비결이 있다고 난 믿는다. 그들도 할 수 있다면, 당연히 나도 할 수 있고, 당신도 할 수 있다는 바로 그 건강함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런던의 그 '미스터 퍼펙트'도 나에겐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것이 내가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하는 이유일 테고...
버트 먼로의 1967년 미친 도전을 기리며 인디언 스카우트 모터사이클 컴퍼니는 올해 '50주년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그것은 자신들의 최고 메카닉과 테크놀로지를 총동원해서 최고의 오토바이를 만들겠다는 야심만만한 계획이었다. 그들은 그 오토바이 이름을 'Spirit of Munro'라 이름 붙였다. 버트 먼로의 정신을 이어받겠다는 뜻에서 이름도 '먼로의 정신'이다.
버트 먼로와 같은 조금은 엉뚱한 노인네들 덕분에 아직도 유타 주의 소금사막에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탈 것들을 몰고 오는 먼로의 후예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1970년 '블루 프레임'이라는 초고속 자동차는 시속 1,000킬로미터의 속력을 내며 소금사막 위를 달렸다. 당연히 아직도 깨지지 않는 땅 위를 달린 세상에서 가장 빠른 물건이기도 하다.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이번 주 토요일 8월 26일 저녁 7시 30분,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저자 강연
2부 - 직관에 관한 철학적 이야기들
많은 성원 바랍니다.
현재 작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 출판사이면서 와인 바이기도 한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하면서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작은 음악회와 강연회,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인문학 아카데미까지 일상의 작고 소소한 행복을 찾으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