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큐리 13' 우주 개발에 참여했던 여성 파일럿 13명의 감동 실화
'김덕영의 숨은 명작찾기' (5)
1961년 4월 12일, 소비에트 연방 소속 우주 비행사 유리 알렉세예비치 가가린은 인류 최초로 지구 궤도를 도는 우주 비행에 성공한다. 그보다 5년 전인 1957년 10월,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면서 이미 미소 간의 우주 개발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고 있었다. 미국으로서는 연거푸 두 번이나 우주 경쟁에서 뒤로 밀리는 수치스러운 순간이었다.
곧바로 미국은 '머큐리 프로젝트(Project Mercury)'에 돌입한다. 더 이상 우주 개발 경쟁에서 뒤로 밀릴 수 없다는 절박함이었다. 미국은 육해공군의 최정예 비행사들을 선발, 강도 높은 훈련에 돌입한다. 그 결과 7명의 우주비행사 후보들이 선발된다. '머큐리 7'이란 이 과정에서 뽑힌 7명의 우주비행사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1960년대가 가기 전에 미국인을 달에 보내겠다'는 케네디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미소 냉전 시기 체제와 이념에 대한 경쟁의식이 가세하면서 미국의 우주 계획은 한층 강도 높게 진행된다. 그리고 1969년 7월 29일, 드디어 인류는 달에 첫 발을 내딛는다.
호사가들은 미국이 우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것이 결국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이념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이라고 이야기들 한다. 실제로 우주 개발을 통해 과학 기술의 인프라가 빠른 속도로 발전했고, 첨단의 과학 기술이 총동원되면서 항공, 통신, 군사 기술 등의 발전을 가속화시켰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상식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최근 다큐멘터리 한 편이 공개되면서 새로운 사실 하나가 추가되고 있다. <머큐리 13>, 이 영화에서 나사는 극비리에 여성 우주 비행사들을 선발해서 우주에 보낼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공개되었다. 남성 우주비행사 육성 계획인 ‘머큐리7’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이름도 ‘머큐리 13’이라 붙여졌다. 실제로 이들은 남성 우주 비행사들 못지않은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고, 미국의 유인 우주 개발 계획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물론 비공식적인 형태로 말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 계획은 실패하고 만다. 다큐멘터리 <머큐리 13>은 왜 그 참신한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번번이 우주 경쟁에서 소비에트 연방에게 선두를 빼앗겼던 미국은 최초의 여성 우주인 기록도 소비에트 연방에게 빼앗기고 만다. 화제의 주인공은 발렌티나 블라디미로브나 테레시코바. 그녀는 보스토크 6호를 타고 1963년 6월 16일부터 3일 동안 지구를 48바퀴나 돌았다. 타이어 공장과 방직 공장 출신의 평범한 노동자였던 테레시코바가 우주 비행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우주 경쟁이 단지 기술의 경쟁이 아니라 체제와 이념의 대결이기도 했던 상황에서 미국으로서는 단단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반면 소비에트 입장에서는 체제 우위를 만방에 과시할 수 있는 효과적인 선전 도구가 되었다.
다큐멘터리 <머큐리 13>은 1960년대 미소의 우주 경쟁에서 최종적으로 낙오자가 되었던 여성 우주 비행사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준비된 여성들이었고 누구보다 우주선에 타기 위한 간절한 염원을 갖고 있었다. 이들이 우주에 나갈 수 없었던 이유는 신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들의 꿈을 좌절시킨 것은 그 시대의 '편견'과 '관습'이었다.
'여자가 무슨 우주비행사가 되겠다고 그래!'
당시로서는 남자들 뒷바라지, 아이들 돌보기도 벅찬 여자들에게 우주 비행의 꿈은 사치였다. 그들에게 꿈을 꿀 권리가 있었을지 모르나, 잠 들 수 있는 권리는 없었다. 잠을 자야 꿈을 꾸기라도 할 텐데... 그들은 우주에서 잠들 수 있는 권리가 없었다. 그것이 시대의 편견이었다.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우주 비행사가 될 수 없다는 불합리하고 모순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노년이 된 세 명의 할머니들이 '타워 그릴'이라는 레스토랑에서 만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오하이오 주에 있는 '타워 그릴'은 항공 박물관이 인접하고 있어 비행사들에게는 마치 명예의 전당과도 같은 곳이다. 물론 그 명예의 전당에 기록된 이름들 절대다수는 남성이었다.
실제로 우주 비행의 역사를 살펴보면 여성들의 도전은 거침없었다. 우주에 대한 꿈을 꾸기 이전에 그들은 하늘을 나는 꿈을 꿨다. 비행기 조종석에 올라 립스틱을 바르고 뺨에 파우더를 칠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시대착오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당시 여성들에게는 오늘날 파일럿의 아이콘이기도 한 가죽 점버 같은 것을 입을 권리조차 없었다. 그들은 길게 펄럭이는 플레어 스커프트를 입고 비행기에 올랐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그것이 관습이었다.
비록 소수이긴 했지만 2차 세계 대전 동안 실제로 여성 조종사들은 비행기를 몰고 전쟁에 참여했다. 물론 전투기를 몰고 전선에 투입되는 일은 없었다. 그들의 역할이란 고작 공장에서 생산된 항공기를 공군 기지에 이동하는 정도의 역할에 국한되었다. 미국은 2차 대전 기간 동안 일명 'WASP'(Women Airforce Service Pilots)라 불리는 여성 파일럿 훈련 프로그램을 운용했다. 항공기 조종사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여성들에게 부여된 것이다.
무려 25,000명의 지원자들이 'WASP' 프로그램에 지원서를 냈고 1,830명이 트레이닝 프로그램에 참가할 기회를 얻었다. 당시로서는 놀라운 숫자였다. 그 결과 1,074명의 여성 파일럿들이 트레이닝 과정을 통과했다. 하늘을 날겠다는 여성들의 꿈은 그렇게 무르익어 갔다. 그들 중에는 하늘이 아니라 우주로 날아오는 꿈을 꾸는 여성들도 있었음은 물론이다.
한편 나사(NASA)에서는 '프로젝트 머큐리' 계획에 참여했던 윌리엄 랜돌프 러브레이스 박사의 주도로 여성들의 우주 비행에 관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나사(NASA)가 여성 우주 비행사들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당시로서는 우주 비행사들을 태울 수 있는 조종석의 크기가 크지 않았다. 몸집이 작은 여성들을 이용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뿐만 아니라 우주 공간이 여성의 신체에 미치는 변화를 관찰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특히 임신이나 생리와 같이 남성들과 다른 신체적 특징을 지니는 여성의 생리적 변화를 추적해서 다가올 우주 시대에 대비하겠다는 목적도 깔려 있었다.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여성 우주 비행사들을 뽑는다는 공고가 나가고 25명의 여성들이 도전에 참가한다. 남성들이 최정예 요원들을 미리 선발해서 우주 비행사로 육성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었다. 25명에게 공동의 과제와 실험, 테스트를 실시해서 그중 13명의 요원들을 선발하는 방식이었다. 섭씨 영하 12도의 물을 귀에 붓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를 테스트하는 실험에서부터 고강도 훈련에 이르기까지 남성 우주비행사들은 받지 않아도 되는 이상하고 지독하고 고된 실험이 계속되었다.
특히 13명의 여성들이 모두 기억하는 '감각 상실 수조' 실험은 물이 가득 담긴 수조 속에 들어가 천장을 바라보고 떠 있는 실험이었다. 이 실험을 위해서 여성들은 귀마개와 허리를 감싸는 스펀지 벨트를 착용해야 했다. 인간의 뇌구조는 물속에 오래 잠겨 있으면 평형감각이 둔해지고 마치 무중력 상태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보통 성인 남성의 경우 3시간만 지나도 환각이 시작되고 심리적인 불안정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여성들 중에는 무려 9시간이나 이 감각 상실 수조에서 버틴 경우도 있었다. 참가자 중 한 명인 제이니 하트라는 여성의 경우, 나이가 40세로 9번의 임신과 출산, 모두 8명의 아이들을 둔 어머니였다.
숱한 난관과 시련을 극복하고 뽑힌 13명의 여성들은 이제 우주로 날아갈 순간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자신의 모든 일상을 포기한다. 꿈을 위해선 치루어야 할 대가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통보가 워싱턴으로부터 날아온다. '머큐리 13' 프로젝트 전면 중단이 결정된 것이다. 공식적인 이유도 없었다. 당시 이 프로젝트의 취소 결정을 내린 공문에는 린든 존슨 대통령의 서명과 만년필로 휘갈겨 쓴 경멸적인 문장이 하나 남아 있다. 'Let's Stop This Now!'(이 프로젝트는 이제 관둡시다!)
"왜 우리들의 꿈이 실현되지 못했는지 다들 알 거예요. 당시엔 견고한 남성 기득권층 인맥이 있었어요. 우리가 너무 잘해서 싫어한 것 같아요." (월리 펑크 Walley Funk, '머큐리 13' 프로젝트 참여자)
'여자들은 생리를 하잖아요. 여자들을 우주 비행에 나서게 하려면 생리대를 가득 실어야 합니다.' 믿어지지 않지만 그것이 그 시대 남자들의 사고방식이었다. 남자들은 우주 개발과 모든 도전의 결과물들을 독차지하려고 했다. 영웅은 남자여야 했고, 여자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뺏기고 싶지 않았다. '머큐리 13' 프로젝트란 7인의 남성 우주인을 위한 보조적인 참고 자료였고 테스트였다. 가혹한 훈련과 이상하고 기괴한 실험들이 진행된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일지 모른다. 미스터리한 우주 공간 속에서 인간의 신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하지만 이들의 어리석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1963년 6월 소비에트 연방이 발사한 우주선 스푸트니크 6호에 드디어 여성이 조종대를 잡는다. 주인공은 앞서 말한 노동자 출신의 발렌티나 블라디미로브나 테레시코바였다. 남성 권위주의와 여성에 대한 편견이 지배하고 있던 미국으로서는 제대로 한 방 먹은 셈이다.
'머큐리 13'에 참여했던 열세 명의 우주 비행 지원자들은 즉각 청문회를 열고 자신들이 받았던 부당한 대우를 세상에 알렸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에서 시작해서 우주로 날아오르겠다는 열세 명 여성들의 소망은 그렇게 역사 속에서 사라져 갔다.
2005년 우주 왕복선 디스커버리 호에 탑승할 우주비행사들의 명단이 공개됐다. 모두 7명의 탑승자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은 사령관으로 지명된 아일린 콜린스. 무려 50년 만에 여성 우주비행사가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일린 콜린스는 개인적인 자격으로 디스커버리 호의 발사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볼 수 있도록 '머큐리 13'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할머니들을 초청한다. 그것은 일종의 같은 여성으로서 우주 비행에 도전했던 꿈을 이루지 못한 여성들에 대한 예우였다. 그들의 헌신적인 노고에 대한 인정이었다. 발사 당일 NASA는 개인 자격으로 초대받았던 할머니들을 VIP급으로 격상해서 디스커버리 호의 발사 장면을 지켜볼 수 있도록 좌석을 바꾼다. 그것이 오늘날의 '관습'이고 '매너'였다. 그날 하늘을 박차고 올라가는 우주 왕복선을 바라보며 할머니들의 눈시울은 붉게 물들었다. 자신들의 이루지 못했던 꿈이 그 안에 함께 타고 있었다.
여덟 명 아이들의 어머니이자 부조리한 남성 중심주의에 반기를 들고 전미여성단체를 결성했던 제이니 하트의 딸은 카메라 앞에서 이제는 세상에 없는 어머니를 회상하며 이렇게 증언한다.
"어릴 때 우리는 같이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어요. 엄마는 말했어요. 너도 이렇게 하늘을 날 수 있어. 우리의 비행기는 구름 가까이 다가갔어요. 나는 걱정이 되었어요. 구름이 딱딱해 보였거든요. 그 딱딱한 구름에 비행기가 부딪쳐서 죽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들었어요. 어머니는 웃으면서 구름 속으로 비행기를 몰고 갔어요. '이거 봐. 괜찮지. 너도 이렇게 할 수 있어.' 우리가 탄 비행기는 그렇게 구름을 뚫고 하늘 위으로 날아 올라갔어요. 그건 정말 근사했어요."
지금까지 달 위를 걸었던 12명의 사람들은 모두가 남자였다. 하지만 그 숫자가 우주 비행에 남성이 우월하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은 단지 그 시대를 지배하는 사고방식이었다. 한계를 극복하고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일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님을 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는 깨닫게 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 글을 쓰고 있는 한 남성에게 주는 열세 명 위대한 여성들의 메시지였다.
"1세기 전부터 여성들은 하늘을 날았습니다.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저 혼자만의 힘이 아닙니다. 1960년대 머큐리 계획에 참가했던 13명의 여성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 내가 여기에 설 자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일린 콜린스, 미국 최초의 여자 우주 왕복선 조종사)
우주 왕복선 디스커버리 호의 여성 사령관으로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한 아일린 콜린스는 백악관에서 개최된 환영 만찬식에서 종이에 적혀 있던 13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남자들만이 꿈꿀 수 있던 우주 비행이란 원대한 꿈을 먼저 꿨던 여성들. 그들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사람들은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그것이 시대의 유산(legacy)을 대하는 그들의 방식이었다. 어쩌면 위대함이란 과거를 잊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는 바로 그 시선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 현재 8번째 신간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2>를 집필 중에 있습니다. 이번 책은 스토리 펀딩으로 제작되어 출간될 예정입니다. 글이 마음에 드신 분들은 작가의 신간 출간에 힘을 보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후원을 해주시는 분들에게는 저자 사인이 담긴 신간을 배송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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