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비평

북 비즈니스(book business)

SNS 시대, 책과 작가, 서점과 출판사의 행복한 동거를 꿈꾸다

by 김덕영

'김덕영의 숨은 명작 찾기' (6)

제이슨 엡스타인의 <북 비즈니스> (2001)


"나는 비록 출판업의 몇 가지 개선책을 책임지고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개선책이란 모두 지나간 과거를 되찾기 위한 시도였다. 나는 진보에 회의적이며 고고학적 천성을 좋아한다. 한 번에 앞뒤 두 곳을 바라보는 야누스를 좋아한다. 과거와의 확실한 연결 없이는 혼돈이며 미래는 예단할 수 없다. 우리의 문화에서는 책이 그런 연결, 어쩌면 확실하고 필수적인 연결을 형성한다." - Jason Epstein


제이슨 엡스타인(Jason Epstein), 출판인, 편집인


나는 그의 '고고학적 천성'을 좋아한다. 과거와의 공존을 꾀하는 현재인의 시선에는 뭔가 배울 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딱딱한 그의 책에 끌렸던 것 같다. 어차피 미래가 되면 모든 것이 사실 혹은 거짓이 되겠지만, 자유로운 이동을 허락하는 공간과 달리 시간은 이동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것이 시간이 주는 매력이다. 과거, 현재, 미래, 아무리 많은 SF 공상과학 소설들이 등장해도 여전히 시간 속 여행은 환상특급과 다를 게 없다. 물론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듯이 시간을 롤러코스트 타듯이 돌아다니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제이슨 엡스타인은 미국의 출판문화에서 특출 난 인물이다. 소설가를 꿈꿨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대신 미국 출판문화의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었다. 남들은 사양산업이라 치부하던 출판 산업에서 미래의 가능성을 발견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것을 앞당기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인류문명의 상징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을 통한 비즈니스의 가능성과 미래를 전망했다. 나처럼 글쓰기와 책에 운명을 건 사람들에게는 생활의 교과서 같은 책이었다.


그는 1950년대 랜덤하우스에서 발행한 '앵커 북스(Anchor Books)' 시리즈의 창안자로도 유명하다. 참고로 '앵커 북스'란 책의 대중화와 간편화를 위해서 페이퍼백 포맷으로 개발된 책인데, 장르를 뛰어넘는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출간됐다. 이전까지 하드커버에 낱장들을 실로 묶어서 발행되는 책에 비해서는 팸플릿처럼 가볍고 표지 역시 양장판 하드커버 대신 두꺼운 종이에 인쇄를 한다는 점에서 비용 절감과 책값의 대중화를 이뤄냈다. 이런 페이퍼백 포맷 덕분에 다양한 장르에서 무명에 가까운 소설가들과 에세이스트들이 책을 통해 세상과 마주할 기회를 얻었다.

1950년대 페이퍼백의 등장은 책의 대중화와 작가의 양산이라는 효과를 가져왔다. 북 비즈니스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공항 서적'이란 개념도 작고 가벼운 페이퍼백의 등장이 아니었으면 자리 잡기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뉴욕, 베를린, 파리와 같은 세계적인 도시에는 여행객들의 가방에 실려 있던 페이퍼백 책들이 중고 책방에 수두룩히 쌓이고 있다. 책과 여행, 도시와 여행자의 공존이 책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특징이다. 아예 자신이 여행 기간 동안 읽은 책을 서점에 기증하는 사람도 많다. 출판문화가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둥지를 틀고 재미(fun)와 의미를 동시에 추구하는 건강한 현상들이다.


한 사회 발전에서 차지하는 책의 역할에 자신의 미래를 걸었던 제이슨 엡스타인은 1979년 'Library of America'라는 비영리 단체를 설립하기도 한다. 미국의 고전 문학을 총 망라한 책들을 출간한 단체로 유명하다. 마크 트웨인, 허먼 멜빌, 나다니엘 호손, 애드가 엘런 포와 같은 미국을 대표하는 문학가들의 책이 저렴하게 공급되면서 미국 출판문화의 토대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에서 엡스타인은 출판의 미래에 대해서 의미심장한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출판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었으며 더 이상 돈을 벌기 위해서 혹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책을 만드는 일에 매달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고 말들 했다. 그러나 이런 예언은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틀린 말이 되었다.


책의 생산과 소통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소수의 독점적 지위를 누렸던 유명 작가들, 거대 출판사들에서 벗어나 책을 통해 자유롭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식산업 사회로 인류가 진화해도 여전히 인간의 지적 호기심은 정체되지 않는다는 점이 입증되었다.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어 지는 심리가 작동된다는 얘기다. 엡스타인의 표현을 빌린다면, 현대인들은 '하나를 알면 그것을 통해 둘을 알고 둘을 알면 더 깊이 있는 무언가를 찾고 싶은 욕망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책의 문화는 인간의 심리와 사고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남의 눈치를 보거나 단순한 유행을 좇는 일에 쉽게 매몰되는 우리네 정서와는 차별적이다. 반성과 성찰, 합리적 의심 등을 통해 사회를 구성하는 개별적인 주체들의 자각과 실천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중심에 '인터넷'이 있다. 개인과 개인이 인터넷을 통해 네트워킹 되어 있고 자유롭게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은 책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었다.


여기서 엡스타인은 출판업에 대한 기존의 자신의 생각들 중에 오류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대형화되고 대량화를 통해 독자를 키우고 출판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방식에 다소 오류가 있었다는 진단이다. 서점의 대형화되고 프랜차이즈화 될수록 사람들의 욕망과 시선을 자극하는 책들이 진열대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그것이 자본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책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바로 여기에 엡스타인의 빛나는 통찰력이 있었다.


"월드 와이드 웹과 경쟁하기 위해서 앞으로의 서점은 오늘날 소매시장을 지배하는 물량 지향적인 슈퍼마켓과는 달라야 한다. 내일의 서점은 웹사이트가 할 수 없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서점은 실체적이고 친밀감이 드는, 그리고 지역적 특성이 있는 장소, 말하자면 공동사회의 전당이 되어야 한다. 서로의 취미를 나누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즐거움과 지혜를 주고받는 커피 바가 있고, 원하는 책을 언제나 발견할 수 있으며 어느 서가에서나 놀라움과 유혹이 샘솟는 그런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 산토리니에 있는 '아틀란티스 북스토어'는 여행자들의 책을 기증받아서 운영을 시작했다. 서점 운영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천장에는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책과 사람 그리고 문화가 공존하는 친밀한 공간으로서의 서점과 책의 역할을 강조한 말이란 생각이 든다. 어차피 서점을 운영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여과는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SNS가 중심이 되는 세상에서 작은 소비재 상품들이 어떻게 활로를 개척해야 하는지 그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관심이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하면서 20년을 보냈다. 어쩌다 눈을 떠보니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가 되었다. 물론 글만 써서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전업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나 책이나 무언가를 기록하고 성찰한다는 점에서 나의 정서에 맞다. 삶의 리듬이 너무 빠르거나 늦지도 않고 적절한 템포를 유지하면서 환경과 교류하고 변화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훌륭한 생존의 수단이다.


그의 말처럼 '과거와 확실한 연결 없이는 혼돈이며 미래는 예견될 수 없다.' 책의 역할이, 다큐멘터리의 역할이 시간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혼돈의 세상을 뚫고 미래를 비추는 빛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실천이고 행동이다. 일단 나는 그의 말을 굳게 믿어 볼 생각이다.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대표)



* 현재 8번째 신간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 2>를 집필 중에 있습니다. 이번 책은 스토리 펀딩으로 제작되어 출간될 예정입니다. 글이 마음에 드신 분들은 작가의 신간 출간에 힘을 보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후원을 해주시는 분들에게는 저자 사인이 담긴 신간을 배송해드립니다.


스토리 펀딩 링크

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9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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