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몇 가지...

by 김덕영

우리가 '2'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몇 가지...

신간을 준비 중에 있다.

제목을 뭐로 할까 고민 고민하다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 투>라고 정했다.


2013년에 쓴 책에 이어 일종의

두 번째 시리즈다.

조금은 아쉽고 만족스럽지 못한

우리 인생이지만, 결코 포기하지 말자,

아직 기회는 충분히 남았으니

다시 또 도전하자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특히 나이 들어 무력감에 빠진

중노년층들에게 뭔가 힘이 되는

책을 내고 싶었다.

그렇게 5년 만에 다시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를 썼다.

7월 말 출간 예정인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 투> 표지 시안


보통 전편에 이어 후편을 발행하는 경우

숫자를 쓰는 게 보통인데,
이번에는 과감하게
한글로 '투'라고 적을 생각이다.

이렇게 결정하기까지엔
적잖은 고민이 있었다.
일단 숫자 '2'를 표지 중앙에
크게 집어넣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

디자인적으로 '2'라는 숫자가
전면에 배치되면서 '인생2라운드'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부각되었다.

이번 책이 '뒤늦게 발동걸린'이라는
단어가 어필했던 또 한 번의,
또 다른 기회를 컨셉으로 만들어진
책이라는 컨셉이 명확해졌다.

이번에도 직접 원고는 물론이고

본문과 표지 디자인도 내 손으로

만들고 있다.


무모해 보이기도 하고,

답답할 만큼 느린 작업이지만,

그래도 뭐 아직은 할 만하다.

원고를 쓰는 즐거움이 묵직한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는 느낌이라면,

책의 디자인을 하는 작업은

올리브와 발사믹 식초를 곁들인

샐러드에 치즈 한 조각 베어 무는

느낌이다.


힘들기도 하고 부족한 것도 많지만

아직은 재밌다.

그런데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문득 숫자 '2'에 주목하게 됐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내친김에 '2'라는 숫자,

둘째라는 개념에 대해서

정리를 했다.


디자인의 컨셉을 글쓰는 작가의

컨셉과 의도에 맞게 재구성하는

작업이라서 흥미롭기까지 하다.

마치 내가 디자이너가 되어서

글을 쓴 작가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 느낌도 든다.


좋은 디자인이란 선과 색감만이

아니라 철학과 아이디어와도

함께 공존해야 하기 때문에

나로서는 이 역시 즐겁고 재밌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도대체 우리가 그토록

추구했던 '최고'라는 것은 무엇일까?

1등이라는 것은 또 무엇이며

우리는 꼭 1등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사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1'에 집착해왔다.
'일등', '첫째', '최고'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세상이었다.

그런 사고방식은 알게 모르게
우리를 과도한 경쟁으로 몰고 간다.
반드시 남을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교육, 경제, 정치, 문화, 심지어 예술에서까지
우리의 '1'에 대한 집착은 끊이지 않았다.
과연 그것이 정말 우리를 최고로 만들었을까?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었을까?

대답은 '노우'이다.
철학이 없는 최고에 대한 집착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제 '1'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번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 투>를
작업하면서 숫자 '2'에 대한 조금은
색다른 개념을 정리하고 있다.

'으뜸과 버금'으로서의
숫자 2가 지니는 의미를 발견했다.

우리말에 버금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는 '으뜸의 바로 아래.
또는 그런 지위에 있는 사람이나 물건'을
가리키는 단어다.

'무엇 무엇에 버금갈 만큼 훌륭하다'라는
문장에서처럼 최고로 훌륭한 것 다음으로
훌륭한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최고로 훌륭하다'와
'최고에 버금갈 만큼 훌륭하다'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일단 후자가 훨씬 여유로워 보이지 않는가?
최고랑 비교해서 별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라면, 굳이 꼭 '최고'가 되어야 하는가?

글쎄, 나의 경우엔 만약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후자를 선택할 것 같다.
'버금갈 정도'로 하면서 여유를 즐기는 삶을
선택하겠다.

게다가 그 '최고'라는 개념도 따지고 보면
절대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개념이다.
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 우리가 절대적 최고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동양철학에서는 예전부터
우리말 버금에 해당하는
'仲'(버금 중)자를 높이 평가했다.

사람 인 변에 가운데 중 자를 넣은
이 '버금 중'은 현실의 인간들 속에서
최고를 가리키는 단어였다.
왜냐하면 어차피 절대적 최고는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영역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공자가 '중니(仲尼)'라는 자(字)를
쓰는 것도 어떤 면에서 보면 이런
사고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둘째이면서도, 첫째에게 버금갈 정도로
훌륭한 존재.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첫째를 기준으로 그에 못 미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둘째를 기준으로 현실의 이상과 목표를
조율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고방식은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다.

나의 경우엔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후자가 맞는다.
내 취향에도 맞고, 살아가는 인생의
방식에도 적합하다.

최고가 되기보다는
끊임없이 최고에 버금가는 것을 추구하면서
삶의 여유와 행복을 찾는 생활.
어쩌면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 투>에서
찾고자 했던 가치가 그런 것들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다시 한번 더 도전해도
되는 것이다.
무엇이 됐든, 즐길 수 있는 자가
오래가고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믿음
그걸 나 스스로 지키기 위해
이번 책을 쓴 것 같다.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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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프로젝트를 위해서 열심히 준비 중에 있습니다.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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