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덕영 Oct 06. 2018

방탄(BTS), 당신의 철학은 무엇인가요?

쉰 살의 내가 스물 네살의 방탄에게...


모든 시대에는 그 시대를 담는 음악이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법 같은 힘이 바로 그 음악을 통해 퍼져나간다. 그리고 대부분의 음악이 그렇듯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음악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나 그들의 음악을 즐기고 공유하는 사람이나 모두 비슷비슷한 시대의 아픔과 희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라는 시대를 음악으로 노래했던 비틀즈가 그랬고, 밀레니엄의 신세대를 예고했던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 음악들이 바로 그랬다. 그리고 2018년, 이제 또 하나의 새로운 신화에 방탄소년단(이하 BTS)이 도전을 하고 있다.


실제로 BTS의 음악이 점점 시대를 담는 음악이 되고 있다는 증거는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빌보드 2년 연속 1위를 차지한 것을 비롯해서 전 세계 유수의 음악 전문 차트에서 연일 자신들의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심지어 ‘BTS 현상’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1960년대 ‘브리티쉬 인베이젼’(British Invasion)이라 불렸던 미국 내 비틀즈의 인기와 지금 BTS의 인기가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도 등장했다. 미국의 토크쇼 진행자인 엘렌 드제네스는 자신의 방송 프로그램 ‘더 앨렌 쇼(The Ellen Show)’에 출연한 BTS를 향해서 “비틀즈가 미국에 온 줄 알았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무엇이 지금 전 세계의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일까? 그걸 한마디 말로 정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음악에는 기존의 가수나 아티스트들이 담아내지 못했던 고유한 가치들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들이 부르고 있는 노랫말 속에 단서가 있다. 그리고 그들을 응원하며 든든한 방탄이 되고 있는 팬덤 ‘아미(Army)’의 응원 속에 BTS 현상의 본질이 숨어 있다. 그들은 이렇게 노래한다.


‘주인으로 태어나 왜 노예가 되려 하니,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딴 위험한 정의가 제일 문제야’ (BTS, RM, Do You)


‘흔들리고 두려워도 앞으로 걸어가, 폭풍 속에 숨겨뒀던 진짜 너와 만나... 빛나는 나를 소중한 내 영혼을 이제야 깨달아, 그래서 나는 나를 사랑해. 좀 부족해도 너무 아름다운 걸, 나는 내가 사랑해야 할 단 하나의 존재니까’ (BTS, Love Yourself, ’에피파니’)


누군가에 대한 사랑을 호소하는 노래들에 익숙해 있던 우리들에게 BTS는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이야기한다. 자존심보다는 자존감을, 이기심보다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정의롭게 살아가자고 노래하기도 한다. 기성 세대로부터 나약하고 이기적인 부류라 낙인찍혔던 전 세계 청춘들이 열광하는 이유다.


무한 경쟁과 승자독식의 세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돈과 명예를 위해 쉼없이 뛰어왔던 기성세대들까지도 BTS를 통해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이미 BTS의 성공 공식은 기존의 모든 가치들을 갈아엎고 있다. 메이저들이 독식하던 음반 시장에서 설자리를 찾지 못했던 나약하고 힘없는 창작자들이 어떻게 고유한 가치를 지키며 세계인들과 호흡해야 할지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1960년대 비틀즈가 이뤘던 기존의 제도에 대한 반항과 자유를 공유했던 방식과 일치하는 점이 있다.


‘밤하늘과 별을 바라보는 것을 멈췄고, 꿈꾸는 것을 멈췄습니다. 대신에 다른 사람들이 만드는 시선에 저 스스로를 가뒀습니다...우리는 유령이 됐습니다. 이때 음악이 작은 소리로 “일어나서 너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BTS, RM, 유엔 연설문)


그들의 말처럼 우리들의 가슴과 심장은 늘 음악과 함께 뛰었다. 그것이 우리를 스쳐간 수많은 명곡들, 전설이 된 아티스트들을 지금도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이유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이름을 소리높이 부르는 일. 그것이 오늘 세대를 뛰어넘어 BTS가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아름다운 인생의 메시지가 아닐까. 그리고 그들의 소중한 꿈과 희망이 사라지지 않도록 전 세계 ‘아미’들은 오늘도 그들을 위해 함께 손을 모아 노래한다. 그들을 지키는 든든한 방탄이 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싸움이나 사막을 만나더라도 이제 너희가 그런 어려움을 혼자 마주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줘. 우리가 너의 날개가 되고, 우리는 같이 사막과 바다를 건널거야. 우리는 영원히 함께일거니까. 이제 우리가 함께라면 사막도 바다가 된다.’ (어느 ‘아미’의 유튜브 글)


지금 BTS의 신화는 이렇게 현실이 되고 있는 중이다. 그것이 돈이나 명예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BTS의 철학이 아닐까 싶다.



쉰 살의 내가 스무 살의 방탄에게...


돌이켜 보면, 오로지 돈과 명예를 위해 쉼없이 뛰어왔던 오십 년! 그래 그것이 삶의 본능이었고 삶의 목적이었어. 너희들의 노래처럼 나에게도 밤하늘에 쏟아지던 별을 바라보던 때가 있었지. 그게 언젠지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는 건 꿈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함이야.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지. 그러다 별을 보는 날들이 줄어들고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별들을 보며 나이가 들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거야. 늘 별은 한곳에서 여전히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도...


그래. 나의 가슴과 심장은 늘 음악과 함께 뛰었어. 비틀스가 그랬고, 퀸이 그랬고, 레드 제플린과 딥퍼플을 들으며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 늘 자부심이기도 했어. 음악 하나만으로 든든한 방패가 되었던 때가 있었던 거야. 음악은 그렇게 우리가 살아온 시대를 하나의 아름다운 시로 수놓았기 때문이지. 그것이 문학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도 음악이 살아 있음을 감사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얼마 전 TV를 켜고 깜짝 놀랐어. 너희들의 성공을 돈의 척도로 평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말이야. 마케팅적으로 어떻게 성공을 했느니, 팬들을 어떻게 끌어모았느니...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아. 어두운 밤을 밝히기기 위해 불을 켜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세상은 끊임없이 혼돈 속에서도 갈피를 잡아온 것이 아닐까.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한줄기 빛은 길을 찾는 나그네들에게는 소중한 생명의 불꽃이니까.


너희들이 불을 켜고 지키려는 그 수많은 밤들은 예전에도 있었을 거야.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밤을 휏불을 들고 함께 했던 플라톤의 밤이 그랬고, 압셍트에 취해 자기 귀를 잘라버려야 했던 지독한 번민의 밤을 새운 고흐에게도, 머릿속에 총알을 박아 넣고 싶었던 헤밍웨이의 마지막 처절했던 밤도 아마 그렇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게 너희들이 만들고 있는 세상에 대한 꿈일 거야. 그게 너희들이 품고 있는 노래의 철학일 거야. 쉰 살의 내가 스무 살의 너희들에게 가슴으로 느꼈던 것도 그것이었던 것 같고. 부디 그 아픔, 눈물, 기쁨과 환희가 오래오래 되길 바래. 너희들은 이미 오를만큼 오를 수 있는 높은 산봉우리를 올랐어. 하지만 조금만 더 앞으로 가보길 바래. 갈라진 숲속 두 갈래 길 앞에서 사람이 다녀간 흔적이 별로 없는 그런 작은 길로...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장편소설 <내가 그리로 갈게>가 2018년 세계 최대의 북 마켓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공식 참가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순간에서 영원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