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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Oct 13. 2018

24킬로미터의 미학

 도전적인 삶을 위해 낯선 곳으로 떠나려는 이들에게...

개인적으로 <위대한 유산>을 참 좋아한다. 그 글을 쓴 이는 영국이 자랑하는 소설가 찰스 디킨스. 그에게는 한 가지 흥미로운 비밀이 있었는데, 그건 그가 마음이 적적하고 우울해질 때마다 산책을 즐겼다고 한다. 그것도 아주 먼 곳까지 정처 없는 산책(?)을 했다. 놀라운 것은 거리인데, 그의 우울 극복 산책의 거리가 무려 15마일 정도 됐다고 한다. 15마일이면 우리에게 익숙한 단위로 환산해서 24킬로미터다. 그 정도 거리의 이동을 산책이라 불러야 할지 솔직히 난감해질 수밖에 없는 먼 거리의 이동이다.


하지만 그건 자동차를 비롯해서 편리한 대중교통 수단에 익숙해진 오늘날 우리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다. 속도와 이동에 대한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실제로 인간이 뭔가를 타고 어디론가 쉽게 이동하는 수단이 대중화된 것은 대략 100년도 되지 않는다. 미국의 자동차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는 포드의 'T-Model'이라는 자동차가 만들어진 것이 대략 1908년. 지금부터 꼭 110년 전 일이다.


산업혁명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1860년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을 살아가던 찰스 디킨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15마일, 24킬로미터 거리의 산책은 우리가 느끼는 거리에 대한 개념과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기분이 울적하다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 바람 부는 곳을 찾아 이동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무조건 걸었을 수밖에 없었을 테고, 그렇게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경복궁에서 분당 정도의 거리까지 자신이 이동한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물론 산책이라는 게 가벼운 마음으로 나갔다 다시 돌아오는 것을 염두에 뒀을 테니 실제로는 대략 용산 정도에서 방향을 틀어서 다시 광화문 쪽으로 방향을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뭐가 됐든 그 시대 사람들 참 대단하다. 산책을 하다 보면 알 수 있는 것이지만, 혹은 달리기를 할 때도 그렇고,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지 않고는 쉽게 그 먼 곳까지 이동한다는 게 쉬운 건 아니다. 찰스 디킨스 역시 자신의 무언가를 찾기 위해 혹은 버리기 위해 24킬로미터의 산책을 즐긴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아무튼 그 정도면 우울함은 물론이고 살면서 짜증 났던 일까지 모조리 사라져 버렸을 것 같다. 결국은 몸을 움직였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정서의 변화다. 가끔은 그래서 힘들고 마음이 지칠수록 가만히 있지 말고 몸을 움직여 보는 것도 필요한 법일 테고... 어쨌든 그것이 찰스 디킨스가 우울함을 날려버린 지혜이고, 그만의 24킬로미터의 미학이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 이반 일리히라는 사람은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라는 책에서 24킬로미터의 미학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인간이 최대의 가치를 생산해낼 수 있는 속도, 24킬로미터. 이것을 넘어서면 그 속도로 이동하기 위해 치르는 대가가 그것으로 얻는 이익을 훨씬 넘어선다.'


쉽게 말해서 효율적이고 편리함을 찾기 위해 이동 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동 수단 그 자체를 이용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리는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24킬로미터 이상의 스피드를 자랑하는 자동차를 구입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말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자전거는 자동차보다 훨씬 가볍고 속도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그리 크지 않은 이동 수단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삶이 수단에 의해서 왜곡되지 않기 위한 한계 속도가 바로 24킬로미터이어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우리가 가장 즐겁게 자전거를 타고 즐길 수 있는 자전거의 속도이자, 자전거의 미학이다.


이미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이번 글은 구글 검색을 통해 얻는 리서치의 결과들이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24킬로미터'라는 단어를 구글 검색 창에 넣고 얻어지는 자료들을 하나둘씩 모아서 쓰고 있는 중이니까. 그래도 글쓰는 데는 이런 재미가 있다. 그래도 누군가에겐 이런 글 하나가 작은 생각의 씨앗이 되고, 마음을 연결해주는 작은 실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상상을 하는 재미가 있다.


결국은 상상을 위해서 글을 쓰고 판타지를 만드는 게 인간인 것 같다. 판타지라고 해서 그것이 꼭 영화 '반지의 제왕'처럼 거대한 왕국과  이름 모를 종족들의 공성전 같은 것만 떠올릴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먹는 것에서부터 입고 마시는 일상의 모든 것들이 판타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니까. 심지어 성적 판타지로 지루하고 무료한 일상을 극복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들의 일탈을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까닭도 없다. 중요한 것은 삶을 즐기며 욕망을 통제해낼 수 있는 자아의 문제일 테니까 말이다.


똑똑하고 총명한 아이들한테 무조건 남들의 평균적인 규준에 맞추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그들의 창의성이 송두리째 뽑혀나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람은 모두 똑같을 수 없고 각자의 고유한 달란트가 있는 법, 당연히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자신만의 인생을 사랑하려 애쓰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어떤 판타지가 되든 일단 이야기의 끝은 보려는 불굴의 의지가 아닐까.


지금 먼 길을 떠나는 친구가 있다. 글쎄 그들을 다시 보게 될지, 어디서 또 보게 될지 지금으로선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고 먼 길 떠나는 친구에게 가지 말라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모든 만남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법이니까. 그래도 늘 그렇듯이 나는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다.


'도전적인 삶을 위해 우리 낯선 곳에 정착하자! 나도 떠나고 너도 떠나고 우리가 있던 곳은 언제가 텅 빈 곳이 되겠지만, 그래도 떠나자 다시 돌아올 기약도 하지 말고 떠나자...'


시간이나 공간이 뭐 그리 대수일까. 떠나면 다시는 안 돌아올 수도 있을 수도 있고, 단 하루 만에 짐을 싸서 다시 자기가 있던 원래의 위치 그곳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것이니까. 다음 시간, 다음 공간을 누가 알기나 할까.


'그런데 말이야... 사람이 진심이 통하면 어떤 장벽도 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어떤 먼 거리도 단숨에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난 그렇게 되리라 믿어...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우리가 함께라면 사막도 바다가 되는 법이니까. 그곳은 어느 곳일 수 있고, 그 순간은 영원할 수 있는 법이니까. 그래서 혹시 누가 알아? 비 개이고 아주 눈부시게 화창한 봄날 아침,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스치듯 만나게 될지 말이야... 아니면 태평양의 바닷속으로 석양이 물들어가는 캘리포니아 오렌지 비치가 될 수도 있고...'


아무튼 그렇다. 우리는 결국 도전적인 삶을 위해 지금의 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한다. 찰스 디킨스가 우울함을 날려버리기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나 24킬로미터나 되는 먼 곳까지 산책을 즐겼듯이 그렇게 일상의 아침을 맞이해야 한다. 시속 24킬로미터의 속도로 질주하며 낯선 곳으로 나아가 보자고... 그건 우리한테도 해당되는 말이니까.


나의 '24킬로미터'에 관한 검색은 이렇게 몇 가지 의미 있는 자료들을 남기고 끝이 났다.


미국 최초의 고속도로는 1920년대 개통된 24킬로미터 길이의 브롱크스 리버 파크웨이였다. 파크웨이(Parkway)라는 말에서 느껴지듯이, 중산층이 여가를 즐기기 위해 만든 도로였다. 트럭이나 버스는 통행 제한을 했다. 넉넉한 숲, 부드러운 곡선, 나무를 심은 중앙 분리대, 그래! 미국의 고속도로를 달릴 때면 느껴지는 아름드리 통나무 중앙분리대는 정말 속도를 중시한 도로 미학의 완성체라 아니할 수 없다. 심지어 도로변 광고판도 배제됐다.


그런데 1950년대 이후 미국인들은 더 이상 운전을 재미있는 활동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빨리 달려서 빨리 도착하는 것이 최고였다. 그것이 '슈퍼 고속도로'로 현실화됐다. 뉴욕 맨해튼 심장을 관통하는 8차선 고속도로를 만들려는 계획도 있었다. 그런 속도와 경쟁을 통해서 펜실베이니아 턴파이그에는 속도 무제한 도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단 돈 1.5달러만 내고 240킬로미터의 정도의 거리를 단 2시간에 주파할 수 있는 도로였다. '슈퍼 패스트!'


그런데 또 지구 반대편에는 정반대로 속도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네팔 테라이 평원에는 최고 속도가 24킬로미터의 절반밖에 안 되는 12킬로미터로 달리는 기차가 있다. 12킬로미터로 달리는 기차라니... 나는 실험을 위해서 차를 몰고 속도 계기판을 12킬로미터에 맞춰놓고 달렸다. 속 터지는 줄 알았다. 그 기차는 머리에도 사람들이 탄다. 바람을 가르며 12킬로미터의 속도로 네팔의 평원을 질주한다. 아니 질주라기보다는 그냥 칙칙폭폭 달려간다. 그 지붕 위에 타 본 적은 없지만, 그런 기차 지붕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삶의 풍경은 어떨 모습일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해진다. 그것이 일상의 판타지가 분명하다. 괴물과 싸우는 영웅들의 모험담 하나 없는데도 판타지엔 역시 그걸 상상하는 짜릿한 즐거움이 있다.


행복이란 게 뭔지......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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