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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Nov 12. 2018

왜 '미래의 우리'는 '현재의 우리'를 배신하는가?

행복의 가치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현재의 우리'는 

'미래의 우리'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수많은 시간을 

희생하며 준비한다. 


현재의 우리가 무언가를 원하는 

이유의 본질에는 

미래의 우리가 그것을 

좋아할 것이라는 믿음이 존재한다.


그러나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라. 

우리의 자식들처럼, 

우리가 낳은 시간의 후손들도

우리의 수고를 마냥 

고마워하지 않는다. 


현재의 우리가 그들이 

꼭 원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들을

땀 흘려 마련해주어도 

그들은 우리의 짧은 판단력을

원망하며 느닷없이 

직장을 그만두기도 하고, 

어디론가 불쑥 

떠나버리기도 한다. 


우리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 

마련해준 것들이 

'미래의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오히려 노심초사하며 

막으려고 했던 일들을 통해

그들이 행복을 느낀다면 

그들은 '현재의 우리'를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바라볼 것이다. 


현재의 우리의 입장에서 

그들은 배은망덕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당연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현재의 우리는 내년의 우리, 

아니면 적어도 

잠시 후의 우리의 기호나

취향 그리고 욕구를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미래의 우리는 

어째서 현재의 우리가 

장만해준 긴요한 물건들을 

창피하고 쓸모없다며

창고에 처박아버리고 마는가? 


사실 우리는 만사를 제처 두고 

그들의 뒷바라지를 해왔다. 

왜 그들(우리의 미래)은 

그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일을 

해주면 실망하고, 우리가 그들의 

안녕을 위해 애써 막으려고 했던 것이 

발생하면 오히려 킥킥대며 

즐거워하는가? 


대체 그들(우리의 미래)의 문제는 

무엇인가?

아니... 혹시 현재의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 Daniel Gilbert, 

<Stumbling on Happiness>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중에서 


...


오늘 아침 늘 하던 대로 

책상 위에 두 다리를

올리고 의자에 몸을 반쯤을 뒤로 젖히며 

책을 읽고 있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던 대목이다.


마치 팽팽하게 감겨 있던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자세를 바로 하고 책상에 앉아 

다시 그 대목을 

읽어 내려갔다. 


왜 그들, '미래의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

'현재의 우리'가 노력한 많은 것들을 

만족할 줄 모르는가?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며 살아왔던

많은 일들, 많은 가치들, 

땀 흘려 노력한 것들,

그 모든 것들의 적절한 보상은커녕 

'현재의 우리'가 어리석다 

조롱하듯 놀리고 있는가?

'미래의 우리'와 '현재의 우리'는 

어디에서 잘못된 단추를 

꿰맞추고 있었던 것일까?


애초부터 욕망의 충족에는 

공허함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의 짜릿함은 

길고 오래 지속될 수 없는 

메커니즘이라도 있는 것일까?


덕분에 오늘 아침 

무수히 많은 질문들을

스스로 던지게 되었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책을 읽으면서 하나하나 찾아보겠지만, 

우선 드는 생각은 

'미래의 우리'가 

'현재의 우리'에게 던져주는

신기루의 뿌연 안개 같은 

허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래를 위해, 

타인을 위해 현재와 나를

희생한다는 것이 갖고 있는 

허무함을 깨닫게 된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자식(우리의 미래)을 위해 

부모가 되어

자신(현재의 미래)을 희생하는 것이

어찌 손익계산서처럼 

정리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반론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글쎄... 

인생은 어차피 선택이다. 

우리의 미래라는 범주 안에 

'자식'을 넣은 사람에게는

어떤 희생도 감수할 

용기가 있을 것이다.


나중에 '미래의 우리'(자식)가 

나(현재의 우리)를 배신한다고 해도

아무렇게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이타적인 자아의 소유자들도 

존재할 것이다.

사실 그렇게들 살았다. 

우리 부모, 부모의 부모 세대들의 

경우에는...


그런데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진짜 그것이 가치로운 인생일까?' 


조금이라도 그런 질문을 던질 

용기가 있는 사람에게는 

'미래의 우리'와 '현재의 우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 장미의 전쟁 같은

불협화음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솔직한 자아,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리라...


2018년 11월 12일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영업종료 18일 전...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5년 동안 서촌의 골목길 안쪽에

자리 잡고 있던 작은 까페, 

'김PD의 통의동 스토리'를

마감한다. 


와인바 사장에서 다시 

다큐멘터리 PD로 현장 복귀한다.

5년 동안의 낯선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깨달았다. 


나의 경우 운 좋게도 곧바로

'아이슬란드'에서 새로운 생활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낯설고 고된 삶이 되겠지만,

이 역시 어차피 인생은 선택이다.

나는 낯선 삶으로 내 인생의 미래를

선택하려고 한다. 

'현재의 우리'가 '미래의 우리'에게

뒤처지지 않도록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려 한다. 

미래를 위한 담보가 아니라 

현재의 순간들에 최선을 다하는 

충실한 현재적 삶에 올인할 계획이다.


그래서 18일 후가 되면 

'김PD의 통의동 스토리'는 

자연스럽게 

'김PD의 다큐스토리'로 

모습이 바뀔 것이다. 

 

'김PD의 다큐스토리'

‘책, 여행, 인생, 다큐멘터리, 기록’...

다큐멘터리+스토리=다큐스토리
docu+story=docustory!


낯선 아이슬란드 생활 도전기에서부터
2004년부터 14년 동안 독점 발굴하고 있는 
동유럽 북한 전쟁고아들에 관한
다큐멘터리 제작 뒷이야기까지 
김PD의 일상과 꿈, 그리고 
세상에 대한 개성 있는 시선이 담긴
커뮤니티로 거듭날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김덕영의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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