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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Nov 16. 2018

쓰면 이뤄진다

글쓰는 사람이 미래를 얻는다

작년부터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후속편을 준비했다. 2013년에 늘 그렇지만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면서 만들었던 책 한 권이 무려 5년 동안이나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4만 여 종의 책이 출간된다고 하는 대한민국에서, 3500여 개의 출판사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1인출판으로 만든 책으로 그 정도면 선전하고 있다.


나는 그 책에서 한 가지에 매달렸다. 돌이켜 보면 그것은 '시작'에 관한 이야기였다. 꿈을 이루기에 나이나 특정한 시기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세계 각국의 사례들을 중심으로 증명하려 했다. 인생이란 결국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며, 그걸 위해서 건강하고 올바른 생각을 갖는다는 것이 왜 중요한 일인지 그 이유와 근거를 찾았다. 1년 여의 리서치를 통해 나는 누구에게나 인생을 멋지게 살 수 있는 기회의 순간은 단 한 번이 아니란 결론에 이르렀다. '시작'을 즐길 수 있다면 누구에게 새로운 시작점이 찾아온다는 믿음이었다. 그걸 실천하기 위해서 인적도 드문 서촌 골목길 안쪽에 '김PD의 통의동 스토리'라는 작은 까페를 오픈했다. 그 모든 이야기들이 5년 전의 일들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나는 다시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왜 '끝' 아니고 '시작'이어야 할까? 


나의 경우에 살면서 제일 힘든 시간은 역시 목표가 없는 순간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무더운 여름날 신선한 바람을 쐬기 위해 무작정 차를 몰고 거리로 나섰다. 보통은 이럴 땐 한강 고수부지에 간다든가, 아니면 북악 스카이웨이를 달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마음속에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차의 시동을 걸었다. 그냥 차가 움직이는 대로, 길이 보이는 대로 달려 보리라.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번뇌를 날려버리기 위해 바람을 가르며 차창을 열고 달리는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날 식은땀이 날 정도로 운전은 힘들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핸들을 어디로 돌릴지 결정이 되지 않다 보니, 차는 말 그대로 그냥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순간순간 달려오는 옆 차들 때문에 사고가 날 뻔하기도 했다. 그날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보겠다는 나는 스트레스를 풀기는커녕 오히려 스트레스만 잔뜩 받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바람에 날리는 신문지처럼 방향과 목적을 상실한 자동차는 사고 위험도 높다. 그렇게 차를 몰고 달리는 것은 낭만적인 경험을 결코 줄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영화는 그저 영화일 뿐이다. 


목적이 있는 삶이 조금은 수월하게 인생을 살 수 있다. 단, 그게 하나일 필요는 없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목표가 있고 자신이 도달하고 싶은 높이의 인생의 산봉우리들이 있다. 그런데 왜 그런 산봉우리들이 우리 인생에서 단 하나여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대자연이 우리에게 선물로 안겨준 무수히 많은 산봉우리들처럼 우리 인생에서 올라야 할 정상은 단 하나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작은 산봉우리들부터 차근차근 올라가 언젠가야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최정상의 봉우리에도 오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단 하나의 목적, 단 한 방의 화살을 위해 시위를 당기기보다 작고 소박한 일상의 다양한 목표를 즐기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다. 


그런 점에서 '시작'을 즐기는 것은 도움이 된다. 끝이 아니라 아직 시작도 하기 전, 여명의 빛을 기다는 설렘, 첫 발자국을 준비하며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매는 것에서 느껴지는 바로 그 긴장감을 느껴 보는 일들이다. 그런 긴장이 삶에 활력이 된다. 나는 그런 걸 믿는 편이다. 


우리는 종종 '무슨 일이든 마무리를 잘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물론 그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나의 경우에도 마무리 하나 제대로 못하면서 매번 시작만 한다고 핀잔을 들은 적도 많다. 그런데 목적 달성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면, '시작' 자체에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도 있는 법. 목적 지향적인 삶이 사는데 도움이 되는 것처럼, '시작' 지향적인 삶 역시 의미 있는 삶은 아닐까. 


글쎄 결국은 사는 건 선택의 문제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모습도 달라지겠지만. 나의 경우엔 언제부터가 가슴 뛰는 '시작'을 사랑하는 일이 더 즐겁고 행복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요즘엔 목표지향적이고 성과지향적인 삶보다 일상의 소소한 가치들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어떤 면에서는 다양성의 가치가 존중받는 세상의 트렌드와도 관련이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시작을 즐기기 위해서는 다양한 것들에 눈을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작은 시작을 위해서 타인의 시작에도 박수를 쳐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시작을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에 대해서 관대할 수 있다. 


이제 와서 얘기지만, 지난여름에 나온 신간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 투>에서는 남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비밀이 하나 있다. 수백 페이지의 이야기들로 가득 찬 그 책 안에서 유일하게 독자가 아니라 나 자신만을 위해 마치 주문을 걸듯이 '수리수리 마수리' 하고 은밀하게 써놓은 글이 하나 있었다. 바로 '도전적인 삶을 살고 싶다면, 낯선 곳에 정착하자'라는 챕터였다. 타인이 아니라, 내 책을 읽어줄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글을 쓰는 독자가 바로 나 자신만을 위해 한 자 한 자 공들여 쓴 글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글을 쓰면서 언젠가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처럼 모든 바람이 이뤄질 수 있기를 희망했다. 


놀랍게도 그렇게 쓴 글, 희망이 현실이 되었다. 앞으로 몇 달 뒤에 펼쳐질 완전히 물 설고 낯선 나의 아이슬란드 생활 도전기는 그렇게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모든 출발은 글쓰기였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나의 종교는 '쓰면 이뤄진다'가 되었다. 


"죽어서 육신이 썩자마자 사람들에게 잊히고 싶지 않다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쓰든지,
글로 남길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하라."
- 벤저민 프랭클린


그래. 나도 가능하다면 그렇게 살고 있다. 가치로운 삶, 글로 남길 만한 이야기들을 몸으로 경험하고 실천하는 인생. 어쨌든 여전히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이야기들은 세상에 넘쳐난다. 그런 점에서 세상은 모두 아이템인 셈이다. 나의 가슴이 뛰는 이야기들을 찾아서 낯선 곳이라도 두려움 없이 걸어가려고 한다. 나중에 그 길이 어떤 길인지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욕망이 나의 발걸음을 그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나는 그렇게 지금 나의 '시작'을 즐기고 있다. 


삶이 조금은 권태롭고 무료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시작'은 그래서 훌륭한 자극이 될 수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분명 그런 많은 '시작'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모두의 새로운 시작이 우리가 살고 있는 가정, 작은 공동체들에 가슴 뛰는 즐거운 '시작'의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다. 싹이 자라 가지를 뻗고 둥지를 키워 언젠가 열매가 열리는 그날까지 시작하고 또 시작하기를, 더 이상 일상의 고민과 삶의 번뇌 속에 갇혀 목적지도 없이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자동차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끝이 있어서 시작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작이 있고 나서 끝이 있는 것이며, 시작이 없이는 영원도 존재할 수 없다.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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