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통의동 다이어리' (109)
며칠 전 오랜 친구 하나가 유명 출판사 대표와 함께 통의동에 있는 나를 찾아왔다. 그의 출현이 늘 반가운 건 진지하게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나의 몇 안 되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늘 그를 만난다고 하면, 나의 마음은 여행가방부터 싸기 시작한다. 그렇게 과거의 어느 시간과 공간으로 날아가는 걸 느낀다. 비가 억수 같이 퍼붓던 신림동 어느 허름한 자취방에서 그와 나눴던 '1980년대의 마지막 인사'. 그렇게 난 그를 통해 시간여행 하는 게 즐겁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그 '1980년대'라는 시대적 공간과 부딪혔고 그래서 누구보다 많은 희생이 따랐던 그의 삶이었다. 많은 운동권 리더들이 줄줄이 금배지를 달기 위해 여의도로 달려갈 때, 그는 아이들의 교육 현장으로 달려갔다.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그는 지금도 강원도 시골 마을로 출강(?)을 다닌다. 정확히 말하면 그곳에 자신이 뿌리내린 새싹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시간을 쏟는다.
그가 이번에 나를 찾은 목적은 아이들 교육에 관한 자신의 경험과 바람을 담은 책을 한 권 쓸 계획이기 때문. 그가 내민 기획서에는 '적정 교육'이라는 굵직한 글씨가 보였다. 조금은 낯설기도 하지만 그의 성격처럼 은근히 도발적인 느낌도 들었다. 그는 책을 통해서 과연 아이들을 탁월한 존재로 키우기 위한 공부의 '적정 시간'은 얼마인가를 묻고자 했다. 한 마디로 학교보다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우리 아이들의 교육이 결코 아이의 미래를 위한 현명한 투자가 될 수 없다 게 그의 주장이었다.
방송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나 역시 몇 가지 교육에 관한 프로그램을 만든 적이 있었다. 실제로 우리 교육 현장은 소수의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 절대다수의 공부 못하는 아이들로 나뉘어 있다. 학교엘 가보면 둘 사이엔 마치 거대한 침묵의 강이라도 흐르는 것 같다. 그래도 예전엔 성적이 중간 정도에 오는 아이들이 많았다. 가운데가 가장 높고 양 옆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일반적인 분포도 곡선이 이제는 마치 파도가 치는 모양으로 바뀐 느낌이다. 앞이 적고 뒤는 많은 모양새. 이런 일들이 나타나고 있는 현상의 이면에는 소위 '변별력'을 키운다면서 아이들의 시험 문제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어려워지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 된다. 시험문제가 어려워지니까 학원 가서 보충을 받아야 하고, 학원 가서 보충 받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아이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걸 꿈꿀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공부에 내몰리는 삶이 반복된다.
사실 그가 이번에 책을 쓰겠다고 결심한 것도 출발은 그의 딸아이 때문이었다고 한다. 집에 와서 다른 아이들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은 공부를 하는 딸아이가 어느 날 과학 시험이 엉망이 되었다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는 딸아이의 과학 시험 문제지를 받아보곤 깜짝 놀랐다. 이건 중학생 정도의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학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짜인 문제지가 아니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계산을 빨리 잘해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훈련된 아이들'만이 쉽게 맞힐 수 있는 문제였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학원식 교육, 거기엔 과학 공부에 재미를 붙이려는 딸아이 같은 아이들이 점수를 딸 수 있는 여지는 없었다. 그날 시험 본 아이들의 반평균 점수가 40점 정도였다는 걸 보면 상황이 어떤지 잘 알 수 있다. 결국 아빠는 학교에 전화를 건다. 담당교사와 직접 통화를 원했지만, 교감 선생님의 형식적인 사과 몇 마디만 받고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아빠와 딸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했고, 결국 학교를 그만두기로 결정을 했다.
이런 사례는 우리 주변에 한 둘이 아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것'이니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능 이유는 간단하다. 절대 다수의 부모들이 자식에게 많은 공부를 시키는 게 자식을 위해서 옳은 일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짜 그런가?! 내가 아는 한 음대 출신 바이올리니스트가 들려준 이야기는 무조건 자식의 성공을 위해서 돌진했던 부모의 욕심이 얼마나 허무한 엔딩으로 끝을 맺는지 잘 보여준다. 이야기를 재구성하면 이렇다.
"엄마, 나는 바이올린이 싫어요."
"아니야. 지금까지 열심히 했잖아. 그러니까 이번 대학교 시험만 잘 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자."
"네.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착한 아들은 이번에도 엄마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 속에서 자신을 위해 뒷바라지를 해준 부모님을 실망시켜드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들은 열심히 노력해서 명문대 음대에 입학을 한다.
"엄마. 이제 저 다른 것도 좀 배우고 싶어요."
"무슨 소리야. 여길 어떻게 들어왔는데! 대학은 졸업해야 먹고 살지! 엄마 말 들어. 대학 간판도 없이 뭘 할 수 있을 거 같아. 한국에서..."
아들은 이번에도 엄마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사실 엄마의 말이 전적으로 틀린 것도 아니다. 어떻게 들어온 대학인가. 하지만 아들은 밤하늘의 별을 보는 게 좋았다. 여행을 하고 글을 쓰면서 자유로운 인생을 살고도 싶었다. 바이올린 하나에 인생을 걸 만큼 자신도 없었다. 그래도 엄마가 시키는 거니까 열심히 하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4년이 지났다.
"엄마. 이제 졸업했으니까 저도 제 인생을 찾아보고 싶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아니야. 조금만 더 참자. 줄리어드 정도는 나와야지 음악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야. 한국에선..."
졸업과 동시에 새로운 인생이 찾아올 것이라 기대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아들은 엄마의 말을 따른다. 다행히 미국의 명문대에서 입학 허가서도 날아왔다. 아들은 커다란 여행가방을 싸면서 유학길에 오른다. 그리고 부모는 자식의 유학에 필요한 학비를 대기 위해 뼈 빠지게 일을 했다. 언젠가 아들이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대학교수 혹은 유명한 연주자가 될 것이라는 꿈 하나만을 믿고서 말이다. 성실하고 착한 아들은 다행히 이번에도 별 탈 없이 유학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아들의 귀국을 환영하기 위해 공항으로 달려갔다. 마음속으로는 커다란 플래카드에 '환영! 우리 아들 명문 음대 졸업!'이라고 적어서 두 손에 높이 쳐들고 싶은 마음이었다.
드디어 오랜 유학 생활 때문인지 조금은 핼쑥해진 얼굴로 입국심사장을 빠져나오는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들이 자기 키만큼이나 높이 쌓인 짐가방들을 끌고 나오는 걸 보면서 엄마는 이제 모든 게 끝났다는 심정이 들었다. 자신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아들의 미래가 바로 저기에 있었다. 늘 신문에서 봐오곤 하던 유명한 연주자들의 입국 장면이 오버랩됐다. 그들과 동급의 위치에 서서 귀국하는 아들의 모습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엄마는 한숨에 달려가서 아들을 끌어안았다.
"아들! 고생했다. 이제 끝났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
"엄마도 수고 많으셨어요. 지금까지 절 돌봐주시느라..."
"그래. 자랑스럽다. 아들아..."
엄마는 아들 키만큼 높이 쌓인 짐가방들이 담긴 카트 손잡이를 잡으면서 말했다.
"이건 엄마가 끌게. 넌 좀 쉬어."
엄마는 아들을 대신해서 카트를 끌면서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내 아들은 미국의 명문 음대를 졸업했다'라고 공항 로비가 떠나가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렇게 공항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향할 때였다. 엄마는 뭔가 허전한 게 느껴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입국심사장을 빠져나오는 아들을 만난 순간부터 내내 뭔가 비어있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끌고 가는 카트 위에 쌓인 짐가방들을 가만히 하나하나 다시 세어 봤다. 뭐가 빠진 게 있나, 하고 말이다. 아들은 한 걸음 앞에서 걷고 있고. 순간! 엄마는 아들의 빈손이 보였다. 평생 아들의 뒷모습은 늘 같았다. 바이올린 가방을 손에 들고 묵묵히 앞으로 걸어가는 모습. 그런데 오늘 아들의 손에는 바이올린이 들려져 있지 않았다. '도대체 바이올린이 어디로 간 거지?' 엄마는 실수로 바이올린 가방을 떨어뜨린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봤다. 하지만 어디에도 바이올린은 없었다. 엄마는 소리를 질러 아들을 불러 세웠다.
"아들! 바이올린 가방이 없어! 어디 갔지?"
몇 걸음 앞서 가던 아들이 그제야 엄마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엄마를 향해 걸어와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바이올린 팔아버렸어요. 학위 받자마자 바로 그날로 팔아버렸어요."
"뭐라고! 너 그게 무슨 말이니?"
"엄마가 약속했잖아요. 여기까지만 하기로... 유학만 끝내면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기로 했잖아요."
"아니... 그게...."
"엄마. 난 바이올린 하기 싫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거 찾고 싶어요."
이 둘의 대화는 허무하지만 그렇게 끝났다. 명문 미국 음대 졸업을 메가폰이라도 있으면 떠들고 다니고 싶었던 그 강남의 엄마는 그날 파김치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몇 날 며칠 동안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끙끙 앓기만 했다. 당신은 이 이야기가 너무 과장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사실이다. 이야기는 오늘날 '탁월함', '성공'을 향해 아이의 손을 잡고 쉼 없이 질주하는 우리 시대 엄마들의 자화상이다. 문제는 과연 '탁월함'의 정의가 무엇인가, '성공'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있다.
난 개인적으로 지금 우리가 꿈꾸고 있는 자식의 미래를 준비한다며 쏟아붓고 있는 교육에 대한 투자는 모두가 산업화 시대에 걸맞은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조직 속에 들어가 실력을 인정받고 승진을 거듭하는 인재, 순응하는 인재형의 양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이젠 그런 인재들이 세상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세상이 변했다. 거대한 톱니바퀴 속 하나가 되어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는 사람이 인재로 인정받는 세상이 아니다. 혼자서 스스로 제 운명을 개척할 능력을 갖고 있는 자, 그게 지금 세상이 바라는 인재들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런 인재들은 온실 속에서 키워지지 않는다. 그들을 키우는 건 거친 사막, 황무지, 파도치는 바다, 칼바람 부는 차가운 북극의 대지다.
경제, 정치, 문화, 예술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이젠 혼자서도 뭐든 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되고 있다. 수많은 고도의 집적된 IT 기술들로 둘러싸인 환경들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심지어 대자본 투입이 필수적인 제조업 부문에서도 아웃소싱과 기술혁신으로 1인기업의 탄생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미 출판이나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에서는 혼자서 큰 수익을 올리는 성공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창의적이고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인재들을 키워내는 교육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런 문제제기도 이미 십 년이 넘었다. 그럼 낡은 문제의식이 여전히 제기되는 이유는 뭘까? '뜻이 좋으면 뭘 해. 현실은 그렇지 않은 걸', 결국 현실은 이상과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는 우리들 스스로의 자조적인 체념에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 것은 아닐까. 중요한 건 지금 이 시각에도 우리의 낡은 사고방식을 비웃으며 성공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그날 친구와 우리 일행은 이 모든 문제의 해결이 부모가 바라는 '성공'에 대한 개념이 바뀌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작은 결론을 얻었다. 가치관과 정체성, 결국 철학의 문제로 귀결된다. 근본에 대한 질문을 하는 건 모든 게 철학의 이슈가 된다. 더 근본적이고 더 큰 성공을 위해서 시선을 돌려야 할 때이다. 그래서 이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아들아. 너 스스로 서야 해. 너의 행복한 미래, 너의 즐겁고 재밌는 인생을 위해서. 그리고 삼성에 들어가는 게 성공의 전부가 아냐. 네가 제일 행복한 걸 찾아, 최선을 다하렴! 굿바이! 마이 칠드런!"
다행히도 학교를 그만 둔 내 친구의 딸은 운좋게도 지인의 도움을 받아 영국으로 단기 유학을 떠났다. 학교가 싫다며 울먹이던 아이는 결국 영국에서 새로운 자신의 적성을 찾았다. 바로 음악에 대한 재능이었다. 현재 그의 딸은 서울에 있는 대학교 작곡과에 입학해서 즐겁게 학교를 다니고 있다. 좀 특수한 경우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가 경험했던 딸아이의 학교 이야기는 다행히도 해피한 결말로 마무리가 되고 있다. 만약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극약처방 같은 결정을 내리지 못했었도 결말이 해피했을까. 그건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미래란 그렇기 때문에 흥미롭다. 모든 게 두려울 수도 있지만, 모든게 가능할 수도 있다. 난 솔직히 '학교를 그만두자'라는 말을 딸에게 꺼낼 때 그의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짠해진다. 그리고 여전히 궁금한 것도 많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참 잘 한 거 같다.
"굿바이 유어 칠드런(Goodbye your children)!"
지은이: 김덕영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저자 / 다큐멘터리 PD / 서촌의 복합창조문화 공간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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