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고운당' 청사초롱
간판 불이 꺼졌다

나의 통의동 다이어리 (110)

by 김덕영

서촌에 와 보신 분들은 아실 테지만, 서촌은 자하문로를 사이에 두고 소위 '맨하탄'으로 불리는 누하동, 통인동 지역과 길 건너편의 한적한 시골 동네 같은 통의동으로 나눠져 있다. 주말이면 '맨하탄' 쪽은 길가는 사람들과 어깨가 부딪칠 정도로 북적거린다. 반면 통의동은 어떨 땐 흔히 하는 말로 '개미 ㅅㄲ 하나 지나가지 않을 정도'로 한적하다. 늦은 밤엔 인적이 없어 좀 무섭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 중에는 좁은 골목길에 까페가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게 중에는 아예 작은 골목길이 무섭다고 발걸음을 돌리는 사람도 있다. 늦은 밤에는 더욱 그렇다. 사실 난 그 고요한 적막감이 좋아서 통의동에 왔지만, 막상 가게 문을 열고 장사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일단 뭐 사람이 지나다녀야 장사고 뭐고 할 거 아닌가. 그러니 누구 말대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런 곳에서 버티고 있는 것도 나름 참 장한 일인 것 같다. 실제로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70퍼센트 가까이가 2년 안에 폐업을 한다. 우리처럼 와인을 팔고 있는 주류 관련 업종은 3년을 고비로 주인이 바뀐다. 최근의 불경기를 감안한다면 가게 불이 꺼지는 속도로 빨라질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우리 동네 오래된 한옥 게스트 하우스 '고운당'에 불이 꺼졌다. 늦은 밤 좁은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에게는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되었던 청사초롱 모양의 고운당 간판 불이 꺼진 것이다. 100년이 된 한옥에다 하늘을 향해 기개 좋게 뻗은 처마의 곡선 때문에 찾는 이도 많았던 고운당이었다. 영화 '수상한 그녀'를 찍었던 로케이션 현장으로도 유명해지면서 서촌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은 꼭 한 번은 들려서 기념사진을 찍곤 했던 곳. 바로 코앞에 있다 보니, 우리와는 조금 불편한 이웃이기도 했던 고운당. 사실 편안하게 잠을 자고 싶은 사람들에게 바로 옆에서 밤늦게까지 영업을 하는 우리 가게가 그리 예쁘게 보이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사람 사는 게 다 그렇듯이 싸우면서 정든다고, 그렇게 보이지 않는 정도 많이 들었던 이웃이었다.

영화 <수상한 그녀>에 등장하는 고운당 한옥과 마당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집주인과 임대료 조정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 고운당이 문을 닫게 된 이유라고 한다. 어느 동네나 사람이 많아지면 세를 들어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치솟는 임대료 부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게를 접는 경우가 많다. 현실은 현실이니까 어쩔 수 없겠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모든 게 상업적인 이익에 맞춰서 자리를 잡아가는 세상 현실이 야속해 보인다. 뜨는 동네일수록 이런 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사실 원래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단어는 '젠트리', 즉 신사 계급에서 유래된 개념이다. 낙후된 지역에 의식 있는 젠트리들이 들어가서 마을과 공간을 활성화시킨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낙후된 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정작 마을에서 나고 자란 원주민들이 마을을 떠나는 상황이 되고 있다. 1990년대 삼청동이 그랬고, 2000년대 초반에 신사동 가로수 길이 그랬다. 2010년 이후에는 내가 머물고 있는 서촌에서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단순화된 패러다임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낙후된 지역에 갤러리, 공방, 작은 까페들이 들어온다. 그들을 따라 아티스트, 디자이너, 건축가들이 자신의 스튜디오를 오픈한다. 무엇보다 임대료 부담 없이 자신의 창작활동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동네를 어떻게 알고 왔는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블로그가 활성화되면서 작은 동네 하나가 새롭게 뜨는 건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작은 골목길들 사이로 가게들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금씩 늘어나는 프랜차이즈 상점들. 대형 자본이 관심을 갖고 건물을 매입한다. 대부분은 낡은 집들이라서 오래된 집을 보수할 생각 같은 건 아예 하지도 않는다. 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용적률을 어떻게든 늘려서 높은 빌딩을 짓고 임대 수익을 노린다.


문제는 이런 패러다임의 종말이다. 그렇게 치솟는 임대료로 인해서 모세혈관을 구성하던 아티스트들이 짐가방을 싸기 시작한다. 개성 있는 작은 가게들에 불이 꺼진다. 블로그를 장식했던 바로 그 예쁜 사진 속 주인공들이 동네에서 사라진다. 대형 프랜차이즈 간판들로서는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공간의 정체성이 사라진다. 그런 동네에 예쁜 사진을 찍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을까. 젠트리피케이션은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의 문화의 싹을 잘라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개성 있는 동네란 그 동네에 대해서 많은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다. 당연히 동네가 사람 냄새나고 살기에 편한 동네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몰아내는 건 세입자가 아니라 우리 마음속의 고향이다. 동네의 품격을 돈이 몰아내는 형국이랄까.


누군가 불 꺼진 고운당에 다시 주인이 되겠지만, 그 불 꺼진 고운당이 실감이 나지 않는지 자꾸만 나의 발걸음이 그 앞을 서성이게 만든다. 어젯밤에도 몇 번이나 밖으로 나가서 한글로 새겨져 있던 '고운당'이란 글자가 떨어져 나간 하얀 벽면을 무심코 바라봤다. 그 하얀색 페인트 칠해진 벽면이 어찌나 허전하기만 하던지. 어느 새 나에게도 이 동네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 것일까.


얼마 전에는 서촌에 살았던 한 외국인이 쓴 책의 표지를 보고 발끈해서 페이스북에다 장문의 댓글을 남긴 적도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서촌을 사랑한다는 뜻을 담은 책 제목과 어울리지 않게 표지 사진은 서촌이 아닌 다른 지역의 사진을 붙여놓은 게 화근이었다. 한옥을 사랑한다고 직접 한옥에서 살기까지 했던 외국인이었다. 한옥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까지 높였던 사람이었다. 명문대에서 교편까지 잡았던 사람이 정작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체성의 혼란을 줄 수 있는 그런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게 난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외국인이 한옥을 사랑하니까 무조건 존경하고 애정 어린 시선을 보여줘야 한다며, 득달같이 달려가서 소위 '좋아요'를 남발하는 사람들이 이해가지 않았다.


한옥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의 고유한 것을 지킨다는 것이고, 그 본질은 정체성에 있다. 서촌을 사랑한다는 사람이 서촌이 아니라 복촌의 사진을 표지로 한 책을 낸다는 자체가 정체성의 혼란이 아닐까. 물론 책이 팔려야 하기에 조금이라도 좀 더 근사하고 예쁜 사진,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사진을 표지로 삼고 싶은 욕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나라면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왜냐하면 전통을 다룬다는 것은 곧 그 안에 깃든 사람들의 이야기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책을 더 많이 팔아서 인기는 얻을지 몰라도 그 공간에 함께 살던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튼 서촌에는 별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이 모여서 이 작은 공간을 개성 있게 구성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조선 시대 옛 지도에도 나오고 있다는 바로 우리 동네 골목길, 바뀐 도로명으로는 효자로 7길이다. 덕분에 통의동 골목길은 관광도로로 지정될 정도로 인기도 있다. 혹시라도 이 길을 걸어보고 싶은 분을 위해 오는 방법을 안내하고 싶다. 모두 세 가지의 방법이 있는데 저마다 분위기나 색깔도 다르다. 우선 제일 첫 번째 방법은 경복궁역 3번 출구를 나와서 쭉 직진하다가 통의동 우체국 사잇길로 진입하는 방법이다. 오래된 레스토랑과 음식점들이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80년대에는 정치인들의 밀약의 장소이기도 했다. 당연히 사과 상자에 담긴 현금 다발들이 오고 갔던 곳이다. 그곳으로 들어오면 나름 제법 큰 주차장도 있어서 차를 갖고 오는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다만 우리 동네로 들어오는 골목길이 워낙 작아서 끝까지 눈을 크게 뜨고 있어야 한다. 자칫 길을 놓칠 수도 있을 만큼 작은 골목길이므로.


두 번째는 청와대 검문소에서 좌회전을 해서 차가 다니는 도로를 따라 진입하는 방법이다. 나는 그곳을 '통의동 불르바르'라 이름 붙였다. 다른 동네에 비하면 작은 길이지만 그래도 통의동에선 제법 큰길이라서 고급 의류 상점들이 많다. 그곳을 따라 쭉 직진하다 보면, 효자골프라는 녹색 간판이 보인다. 그 건너편으로 아주 작은 골목길이 나 있다. 그 안쪽으로 들어오면 30미터 앞에 있는 우리 가게 간판을 발견하게 된다.


마지막 세 번째는 가장 험난한(?) 방법이다. 대림미술관 쪽으로 진입하는 난코스다. 어드벤처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방향 감각이 좋은 사람들에게는 추천할 만하다. 구불구불 골목길을 돌고 돌아서 길이 막힌 것 같은 작은 골목길들 사이로 계속 직진하다 보면 어느새 와인병들이 담장 옆으로 길게 늘어선 가게 하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곳이 바로 '김PD의 통의동 스토리'가 있는 곳이다.


어느 곳이건 너무 작고 후미진 곳이라서 '도대체 어딨지?' 하는 마음이 들 수 있다. 길이 없다는 편견을 극복하면 골목길 안쪽에 있는 작지만 아담하고 개성 있는 동네가 보일 것이다. 사실 통의동은 그런 작은 골목길을 구경하는 재미, 예상치 못한 뜻밖의 발견으로 잠시 동안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는 맛이 있다. 나도 그 맛에 이끌려 통의동까지 온 것이었으니까.


인적도 드문 이 작은 통의동 골목길에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아쉽다. 간판 불이 꺼진 채 어둠에 잠겨 있는 고운당 담장 옆을 지나는 것도 싫다. '어이! 김PD! 손님들이 시끄워서 잠을 못 자겠대'하며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시며 화부터 내시던 고운당 주인아저씨가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고운당 주인아저씨랑 나란히 사진 한 장 찍은 게 없는 것 같다. 참 나도... 뭘 하며 살고 있는 건지... 오늘밤에도 별은 빛날 것이다. 불이 꺼진 고운당 덕분에...


고운당 앞에 선 주인 부부





지은이: 김덕영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저자 / 다큐멘터리 PD / 서촌의 복합창조문화 공간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대표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김덕영 지음
장편소설 <내가 그리로 갈게>, 김덕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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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 070-8987-0408 / e-mail: docustory@gmail.com


현재 작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독자들과 만나면서 창작 활동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서촌의 복합창조문화공간,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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