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제헌회관'

서촌 통의동에서의 기록, 백열두 번째

by 김덕영

'나의 통의동 다이어리 (112)'


늘 다니던 그대로 작은 골목길을 빠져나와 통의동 우체국 앞에서 왼쪽 편으로 몸을 틀었다. 그렇게 하면 자하문로를 오른편에 두고 경복궁역 쪽으로 길을 걷게 된다. 거의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그 길을 걸은 지도 벌써 2년 반이 넘었다. 서촌과 인연을 처음 맺은 게 2013년 12월이니까 대략 30개월 정도 그 길을 매일 반복해서 걸었다. 하루 한 번씩 왔다 갔다를 반복했으니까, 대략 900일 동안 1,800번 이상 그 길을 걸은 셈이다. 그리고 그렇게 1,800번이나 그 길을 걸어 다녔으면서도 늘 아무렇지도 않게 스쳐 지나갔던 건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오늘 이야기하려는 '제헌회관'이다. 1948년 대한민국 헌법의 기초를 만든 198명의 제헌의회 국회의원들을 기념해서 만들어졌다는 바로 그 제헌회관. 대한민국의 오늘, 법과 정의, 원칙이 만들어졌던 제헌국회의 유산이 남겨져 있던 곳. 오늘 난 우리 동네에 있는 제헌회관에 관한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어찌 보면 너무 무심하게 매일 지나쳤던 그 앞에서, 난 1,800번 만에 대한민국의 정신과 마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법을 만들었다는 건 한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꿈꾸는 번영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것이고 건국의 기초는 그런 점에서 한 나라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니까.


하루 종일 가게 있다 보면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럴 때는 산책도 할 겸해서 동네 편의점으로 향한다. 그날도 아무런 생각 없이 동네 편의점으로 발길을 향했다. 자하문로를 사이에 두고 길 건너편의 서촌과 반대편 우리 가게가 자리 잡고 있는 통의동 쪽의 서촌은 달라도 많이 다르다. 그 두 가지 서촌의 다른 모습은 토속촌 삼계탕 집 근처에서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엇갈린다. 번화한 서촌과 고즈넉한 서촌으로. 그래서 때로는 횡단보도 하나가 서로 다른 두 서촌을 연결하는 다리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길을 건너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서로 다른 목적지가 있다. 갈 길 재촉하는 사람도 있고, 느긋하게 걷는 사람도 있는 법이고. 그날도 그랬다. 한복을 입은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들이 재잘거리며 횡단보도를 건너오는 게 보였다. 횡단보도 앞에 있는 주차장에서는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관광버스에서 쉴 새 없이 내려오고 있었다. 한순간에 재잘거림과 이방인의 낯선 언어들이 한 뭉터기가 되어 내 주위를 맴돌았다. 문득 '저렇게 서촌에 사람이 많은데, 왜 우리 가게 골목길엔 사람이 없는 것일까?' 쓸데없이 그런 생각도 머리를 스쳤다.


바로 그 횡단보도에서 걸음으로 다섯 걸음도 안 되는 위치에 '제헌회관'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불이 나서 사라진 횟집 대신 주차장 자리가 삐죽하게 들어서 있고, 그 울타리 옆으로 오래된 철문 하나, 낡은 현판 하나가 있는 건물이다. 멀리서 보면 예사 가정집처럼 보이기도 한다. 색을 잃어버린 오래된 목각 현판을 제외하면 특이한 것도 사실 없다. 누가 오는지, 누가 관리를 하는지 본 적이 없다. '제헌회관'이라는 조금은 거창한 이름이 무색하게 난 그곳에서 사람이 오고 나가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뭔가 달랐다. 남자 두 명이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 목각 현판 위에 커다란 흰 종이를 갖다 대고 있었다. 한 사람은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종이를 잡고, 다른 한 사람은 연필을 꺼내 들고는 현판 글씨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금세 흰 종이 위에 양각으로 새겨졌던 현판 글씨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뭐하는 걸까? 현판 글씨를 보존하려고 종이에 글씨체를 뜨는 것일까?'


대충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동네 편의점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다시 물건을 사들고 왔던 길로 되돌아서 자하문로를 걸었다. 그러니까 이번엔 자하문로가 왼쪽 편이다. 방금 지나왔던 '제헌회관' 건물, 현판 글씨를 종이 위로 본을 뜨고 있는 남자들의 작업도 그대로였다. 주머니 있던 스마트폰을 꺼내서 별생각 없이 카메라를 켰고, 또 별생각 없이 두 사람이 현판 글자들의 본을 뜨고 있는 장면을 사진으로 남겼다. 두세 컷 정도 찍은 것 같다. 그리고 가게로 돌아왔다. 통의동 우체국 앞에서는 늘 그렇듯이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거리를 뒤로 하고 통의동의 골목길로 들어왔다.


몸에 안달이 나기 시작한 건 바로 그렇게 가게로 돌아온 뒤부터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편한 마음, 뭔가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은 느낌, 숙제를 안 하고 일어난 아침, 등교시간 전부터 불안하고 초조했던 심정이랑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이유가 뭘까? 잠깐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쳐 왔던 바로 그 제헌회관의 낡은 현판 때문인 것 같았다. 비록 찾는 이도 별로 없고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진 오래된 건물이지만, 엄연히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기초를 만들었던 1948년 제헌의원들의 정신을 기념하는 역사적인 건물이었다. 그리고 그 건물 낡은 현판에 누군가 종이로 본을 뜨고 있는 순간이었다. 만약 덕수궁 현판에 누군가 종이를 대고 본을 뜨고 있어도 그냥 자리를 떴을까? 분명 아닐 텐데. 이유조차 몇 마디 묻지 않고 그냥 거길 스쳐왔다는 게 너무 부끄러웠다. 한때는 그래도 방송 다큐멘터리를 한다고 스스로 자부심도 있었던 나인데...


'네가 가게에서 서빙만 하다 보니 이젠 정신이 녹슨 게야...'


어쩌면 그런 게 양심일 수도 있었다. 내 안에 살아 있는 불꽃같은 진실에 대한 탐구심이라고 거창하게 말하면 좀 우스울까. 어쨌든 난 다시 제대로 촬영 장비를 갖춰서 현장으로 갔다. 이미 사람들이 작업을 마치고 돌아갈 수도 있는 상태지만, 그렇게 허탕만 치고 돌아온다고 해도 그냥 앉아 있을 수많은 없었다. 아무리 작은 고민이라도 고민이 커지면 고뇌가 된다. 아주 작은 가시 하나가 손가락에 박혀서 하루 아팠던 경험이 떠올랐다. 그러니 적어도 내가 무시했던 현장으로 되돌아가서 '지금 뭐하고 계신 거예요'라고 한 마디는 묻고 돌아와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가게문을 열고 다시 통의동 골목길에 들어섰다. 보통은 느긋하게 걷던 통의동 골목길을 그날만큼은 잰걸음으로 달려갔다. 통의동 우체국 앞에서 한 번 더 생각이 스쳤다. 아직 남아 있을까, 아니면 가버렸을까. 자하문로에 들어서기 위해 몸을 왼쪽으로 틀었다. 다행이다. 그들의 작업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좀 전에 지나칠 때 봤던 것과 달리 이젠 흰 종이 가득 선명하게 '제.헌.회.관'이란 현판 글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설프지만 난 인터뷰를 시작했다.


'실례합니다. 지금 뭐하시는 건지 여쭤 봐도 될까요?'

"현판을 교체하려고요."

'왜요?'

"너무 낡아서요."

'그 정도로 많이 낡았나요'

"여기 보세요. 녹슨 거 보이시죠?"


가만히 몸을 숙이자 현판이 매달려 있는 작은 쇠기둥이 보였다. 그의 이야기처럼 나사 몇 개로 지탱되고 있는 곳에선 꺼멓게 녹슨 게 보였다. 바람이라도게 부는 날이면 무게를 이기지 못해 바닥에 떨어질 기세다. 잘못하면 지나가던 행인들이 다칠 수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에서 '어디서 나온 분들이냐'고 물었다. 남자들은 국회사무국에서 왔다고 자신들의 신분을 밝혔다. 이런 오래된 건축물을 문화재청이 아니라 국회사무국에서 관리한다는 사실이 조금 의아했다. 문화재로 등록하기에는 뭔가 결격 사유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국회와 관련된 건물이기 때문에 예외 조항이라도 있는 것일까. 사실 통의동에는 문화재로 등록되어 보존되고 있는 건물들이 많다. 조선시대와 일제시대, 해방까지 시대 별로 나눠도 될 만큼 소재가 풍성하다. 경복궁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다 보니, 대부분 서촌의 명소 중에는 유명한 위인들의 생가가 의외로 많다. 추사 김정희 생가에서부터 시작해서 소설가 이상의 집, 윤동주의 하숙집, 화가 이중섭, 박노수의 가옥 등 실제로 그들이 살았던 생활의 터전들이다. 다소 박제화된 듯한 분위기를 드러내는 박물관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누군가 살았던 장소가 주는 신비한 기운 때문일 것이다. 육신은 사라졌지만, 영혼을 믿는 사람들에겐 집안 구석구석 그들이 살아 있는 듯한 느낌도 준다. 어쩌면 '제헌회관'이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늘 누군가의 관심 밖에서 자리했던 건물. 남 탓할 것도 없다. 나를 봐도 알 수 있다. 1,800번이나 그 앞을 스쳐갔으면서도 겨우 이제야 관심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불편하고 부끄러운 속내를 숨기면서 난 다시 조금씩 제헌회관 안으로 카메리의 시선을 이동했다.


1945년 해방이 되고 남과 북이 서도 엇갈린 역사의 운명을 선택한다. 미군정 3년이 끝날 즈음, 남한에서는 본격적으로 나라의 틀을 세우는 작업이 시작된다. 그것이 바로 헌법을 만드는 일이었다. 법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권리와 책임, 자유와 의무의 경계가 나눠지고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공동체의 원칙이 만들어지는 작업. 때문에 어떤 나라도 건국의 철학에는 공동체의 숭고한 이상이 담기기 마련이다. 거기에 시간의 테가 덧붙여지면서 사회는 미래를 위한 신화를 만들어낸다. '번영된 나라를 만들겠다는 믿음'. 제헌회관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또 하나의 문이 나왔다. 그 위에는 '제헌동지회'라는 또 하나의 현판이 보였다. 순간 얼마 전 동네에서 만났던 한 노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옛날 제헌국회 시절엔 국회의원들이 참 가난했어. 헌법을 만든다고 지방에서 올라왔는데, 잘 데가 있어야지. 그래서 사실 제헌회관에서 잘 데 없는 국회의원들에게 숙소도 제공하고 그랬다는군."


내친김에 자료를 좀 더 찾아봤다. 2008년 제헌국회 소속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마지막 김인식 옹이 9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마지막까지 통의동에 있는 바로 저 '제헌회관'을 지켰던 인물이었다. 제헌절이면 단골로 인터뷰를 했던 기사도 몇 개 나왔다. 옛날 국회의원들 생활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패기 있게 답변하는 대목도 있었다.


"요새 국회의원처럼 좋은 요릿집에 다니며 편하게 활동한 것이 아니라 설렁탕집을 전전하며 토론을 벌이고 헌법을 만들었으며, 만든 뒤에는 의원 각자의 선거구로 가 주민들에게 헌법의 취지를 일일이 설명했어요. 대통령이나 판·검사 할 것 없이 국민이라면 모두 법을 잘 지켜야 합니다." (연합뉴스, 2006년 7월 14일 자)


우리는 늘 자기를 찾기 위해선 처음 왔던 길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들의 인생이 탐험이 됐든, 성공을 향한 질주가 됐든, 처음 자기가 출발했던 그 길로 되돌아가는 것은 성숙해지기 위한 인간의 본질이다. 늘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였을까. 시인 엘리엇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탐험의 끝은 우리가 출발했던 곳에 당도하는 일이며, 처음으로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아는 일이다."


오늘 나는 그렇게 우리 동네 '제헌회관'과 마주했다. 이 글을 쓰다 잠시 쉬고 있는데, 시인 최영미가 '생활보조금을 받는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기사화시킨 것이었다. 잠시 머리 좀 식힐 겸, 아니 분명 열 받을 거 뻔히 알면서, 기사를 클릭했다. 기가 막혔다. 글쓰기가 뭔 죄가 있다고. 그래도 명색이 베스트셀러 시인이었는데. 시가 사라지고 시인이 죽어가는구나. 이 시대에서 글쓰기를 계속하겠다는 건 호기일 뿐인가.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역시 기사 속으로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도 마음이 가는 걸 막을 순 없었다. 짠하다는 표현은 누가 어떻게 썼는지 모르지만, 참 잘 지어낸 말인 거 같다. 이 순간에는 그보다 더 좋은 표현은 없을 테니까.


어쨌든 오늘 난 1,800번만에 우리 동네 제헌회관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와 그렇게 만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손을 내민 건 그쪽인 거 같다. 상처가 깊은 사람이 먼저 손을 내미는 법이겠지. 그 손을 어떻게 잡느냐는 온전히 내 몫인 것 같다.



글쓴이: 김덕영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저자 / 다큐멘터리 PD / 서촌의 복합창조문화 공간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대표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김덕영 지음

장편소설 <내가 그리로 갈게>, 김덕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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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 070-8987-0408 / e-mail: docustory@gmail.com


현재 작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독자들과 만나면서 창작 활동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서촌의 복합창조문화공간,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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