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덕영 Apr 28. 2020

'개봉 다이어리' 2020년 4월 28일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 CGV 극장 개봉 확정!

'개봉 다이어리'라는 이름으로 2019년 12월 17일 바로 이곳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땀 한 땀 손으로 바느질하듯 글을 썼다. 드디어 기적은 일어났다. CGV 개봉 확정이다. 어떤 조직이나 단체의 도움 없이 숨겨진 역사의 현장을 외롭게 헤매고 다닌 것으로부터 치면 16년 만의 일이다. 기쁘고 자랑스럽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다섯 달 전 극장 개봉의 염원을 담아서 쓰기 시작했던 이 글의 제목을 뭘로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엔 '개봉 다이어리'로 정한 탁월한 순간의 선택이다. 역시 말은 씨가 되고, 우리의 언언에는 '지향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그 평범한 진리를 다시 확인한다.


게다가 요즘 가장 뜨거운 이슈는 김정은 사망설이다. 이건 마치 천운이라도 얻은 기분이 든다. 일본 우익들의 실체를 다룬 다큐멘터리 '주전장'이 반일 운동에 편승해서 작년 여름 극장 개봉 후 30만 명이라는 경이적인 스코어를 기록했다. 그렇게 사회적인 분위기만 잘 받쳐주면 우리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도 또 하나의 기적 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튼. 세상 뭐든 알 수 없다. 그래서 세상은 열심히 살아볼 가치가 있는 곳이라 믿는다.


오늘 기분 좋게 극장 개봉의 결과를 담아서 '개봉 다이어리'를 쓴다. 영화 하나 같고 웬 호들갑이냐고 누군가는 떠들지 모르지만, 구체적인 현실로 들어가면 사정은 많이 달라진다. 언제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듯이 우리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 역시 결국엔 그 악마의 디테일에 의해서 평가가 달라지리라 믿는다.


뉴욕국제영화제, 니스국제영화제, 산타크루즈국제영화제(아르헨티나), 퍼스트-타임 세션 2020(런던, LA), 폴란드국제영화제의 본선 진출이란 쾌거, 올 6월 18일 시작되는 평창국제영화제에서는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얻었다. 국내외 미디어들이 앞다퉈서 '특별한 영화'로 소개를 하고 있다. 1년 전 6개의 가방을 끌고 인천공항을 떠날 때만 해도 이런 결과를 낼 수 있으리라 확신하지 못했다. 도대체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왜 세상은 '김일성의 아이들'을 주목하고 있는가?


각도를 좀 달리해서 먼저 질문을 하나 던지고 싶다. '우리의 인문학 혹은 철학은 통일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는가?'


좋은 질문은 좋은 해답을 찾기 위한 가장 첫 번째 과제다. 근본에 대한 질문은 언제나 성찰을 담고 있다. 돈과 명예를 좇아서 하루하루를 뛰어가지만 막상 '도대체 왜 살고 있는 거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진지하게 답을 찾는 순간부터 철학은 기능을 시작한다. 그래서 세상 아무 효용도 없을 것 같은 철학이나 인문학이 여전히 세상에서 빛을 발하는 이유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생존을 향해 질주하다가도 브레이크를 밟고 왔던 길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그 속에서 현재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인식한다. 그건 곧 미래를 향한 준비이기도 하다.


좋은 질문은 늘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준다. 인간의 삶이 그렇다면 조직이나 사회, 국가의 질문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통일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과 질문, 북한이란 비정상적인 사회의 근원에 대한 진지한 질문 역시 그렇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두 가지 질문은 우리에겐 여전히 낯선 질문이다. 일단 지금까지 북한과 통일에 대한 논의는 정치가들이나 북한 문제 전문가들의 몫이었다. 당연히 현상에 주목하고 현실 정치와의 관계에서 답을 찾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해석을 하다 보니 결국은 주관적인 이해관계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전쟁 70주년,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졌던 시기로부터 어느새 7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시기만큼 통일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그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결과로 이어진 것은 없다. 이유가 뭘까?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폐쇄적이고 비정상적인 북한 사회에 대한 진지하고 근본적 질문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상한 나라 엘리스'에서 바로  이상한 나라에 대해 질문을 하지 않는다면 '이상한 나라'  엘리스는 결코 이상한 아이가 아니다.


김일성 일가, 백두혈통만이 나라를 지배할 수 있는 세상 유일의 이상한 나라, 주체사상이라는 사상으로 온 국민이 무장되어 있는 아주 특이한 나라, 지도자 한 사람의 운명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바뀔 수 있는 무척이나 비정상적인 사회구조. 그 모든 이상한 것들을 근본에 서서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있었던가? 내가 알기에 우리에게 그런 질문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그냥 북한은 70년 동안 이상한 나라였고, 우리는 엘리스처럼 이상한 나라 속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했다. 혹은 반대로 이상한 나라에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또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제 잠시 멈춰 서서 근본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 도대체 이 모든 이상한 일들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왜 그런 일이 우리의 북녘 땅에서 벌어진 것일까?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에는 북한 사회의 비정상성과 폐쇄성이 형성되었던 1950년대를 소재로 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남과 북은 10만 명의 전쟁고아들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처절하게 파괴되었다. 그 결과 남한은 해외 입양, 북한 '위탁 교육'이라는 형식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고향을 떠나야 했다. 비운의 역사였고 한국 현대사에서 일어난 또 하나의 '디아스포라', 민족의 이동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시기는 냉전의 시기였다.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에 맞서 사회주의 연대를 부르짖으며 소련은 비밀리에 북한 전쟁고아들의 동유럽 이주를 지시했다. 2차 대전 직후라서 자기 나라 아이들 먹여 살리는 것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유럽의 다섯 나라들은 우여곡절 끝에 북에서 온 최소 5천 명 이상의 전쟁고아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동화처럼 은폐된 시골 마을, 오래된 중세 시대 귀족의 성 속에서 생김새와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이 살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그렇게 7년을 살았다. 말이 통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은 유럽의 아이들과 친구가 됐고, 자신들을 돌봐주는 선생님들을 '어머니' 혹은 '아버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작은 평화가 시작되었다. 소박하고 행복한 삶이 시작되었다.


1956년 아이들은 갑작스럽게 유럽의 친구들과 헤어져야 했다. 함께 살리라 믿었던 유럽의 부모들과 강제로 이별을 고해야 했다. "갑자기 떠났어요. 떠나는 마지막 날, 하루 종일 호숫가에 앉아서 서로 껴안고 울기만 했어요. 언제라도 잊지 말고 다시 꼭 만나자"고 약속을 했지요. 불가리아에서 만났던 한 할머니가 전한 이야기였다. 그녀는 60년 전 북한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뛰어놀았던 동창생이었다.


아이들의 사진과 이름을 하나하나 앨범에 남겨놓고 세상을 떠난 아름다운 체코 여인도 있었다. 치매에 걸려 더 이상 대화가 불가능해지자 그녀는 자신이 소중하게 갖고 있던 사진 앨범 하나를 세상에 남겼다. 앨범을 받아 표지를 넘기자 그녀가 크레파스로 그려 넣었던 천진난만한 그림들, 북으로 돌아간 아이들이 보낸 편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사진 앨범을 목숨처럼 아끼며 평생을 살았던 이유는 북한의 아이들과 한 '다시 만나자'라는 약속 때문이었다.  


그들의 약속, 그들의 헌신은 나에게도 큰 힘이 되었다. 적어도 그들이 지녔던 인류애, 소박한 삶에 간직된 아름다운 이야기들만큼은 세상에 기록에 남겨야 했다. 그것이 이 다큐멘터리를 포기하지 않고 15년이나 버틴 이유이기도 했다. 적어도 유럽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나눴던 약속은 어느 정도 지킨 셈이다. 나에게 이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은 애초에 작은 휴머니즘으로 시작했지만, 북한과 김일성, 주체사상의 본질을 이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것이 이 영화가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1950년대 동유럽, 북한 전쟁고아들의 삶 속에는 우리가 모르는 엄청난 비밀과 숨겨진 역사가 숨겨져 있었다고 말이다.


이제 극장 개봉이라는 목표를 마음에 품고 시작한 '개봉 다이어리'는 오늘로서 역할을 다했다. 솔직히 처음 글을 쓰며 '개봉 다이어리가 뭐야?'라고 속으로 읊조렸던 기억이 난다. 좀 창피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도 뭐,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개봉 다이어리'라고 제목을 달고 글을 쓰길 잘했다고 믿는다. 어쨌든 이뤄냈으까 말이다.


이제 조금은 더 달콤한 꿈을 꾸고 싶다. 우리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극장을 찾는 꿈이다. 그래서 마음속에 '두 개의 고향'을 지니며 평생을 살아갔던 북한의 전쟁고아들이 다시 유럽의 친구들과 만나 함께 포옹하며 정든 친구들과 해후하는 꿈이다. 이뤄질까? 글쎄. 세상 일을 누가 다 알 수 있을까.


어쨌든 참 오랜만에 브런치에 돌아와 글을 쓴다. 마치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역시 고향은 든든한 마음의 뒷배가 되어준다. 어려움을 딛고 앞으로 치고 나가라고 소리치는 친구 같다.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앞으로 6월 25일 개봉일까지는 두 달이 남았다. 언제나처럼 최선을 다할 것이고, 올바른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부터 용기를 내서 다시 써나갈 다이어리의 새로운 이름은... 어쩌면 '흥행 다이어리'? ㅎㅎ


글: 김덕영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 감독)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에서는 서포터스와 후원자들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영화에 도움을 주시고 싶은 분들은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docustory@gmail.com

010-4732-7001

국민은행 878301-01-253931 김덕영(다큐스토리)


https://band.us/@kimpd









매거진의 이전글 삶의 든든한 뒷배를 찾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