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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Jun 07. 2021

나의 고대 그리스 돌무더기 여행

누구나 절박한 삶의 순간엔 기억나는 여행이 있다

코로나 시대 여행의 허기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여행의 허기를 느끼는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공기가 없는 곳에서 공기의 소중함을 알게 되듯, 여행의 부재를 통해서 여행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는 게 그나마 위안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에게도 여행은 삶의 소중한 자산이었다. 늘 새로운 시작에는 의미 있는 여행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살면서 조금은 남들과 다른 여행이 몇 가지 있었던 것 같다. 첫 번째는 대학시절 무작정 자동차를 몰고 한반도 해안을 따라 전국을 일주했던 경험이었다. 내비게이션 같은 게 없던 시절이라서 지도 하나 달랑 들고 때로는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면서 완주했던 기억이 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여행은 아주 운이 좋게도 '80일간의 세계일주'처럼 하나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지구를 한 바퀴 돌았던 여행이었다. 


그때 여행의 제목을 굳이 붙여 본다면 '디자인의 관점으로 세계 10대 도시를 보다' 정도가 될 것 같다. 다큐멘터리 한 편을 만들기 위해서 서울에서부터 시작해서 도쿄, 상하이, 파리, 암스테르담, 런던, 베를린, 뉴욕 같은 세계의 주요 도시들을 동시간대에 탐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방송 다큐멘터리 일을 하던 때라서 돈도 벌고 여행도 하면서 말 그대로 꿩 먹고 알 먹기식이었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마치 기구라도 타고 지구 곳곳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그 여정은 다큐멘터리 제작이라는 일을 통해 얻은 짜릿한 선물 같은 것이기도 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30일간의 세계일주' 정도라는 제목으로 그 이야기도 마저 하도록 하겠다.  


아무튼. 다시 살면서 조금은 남고 달랐던 나의 세 번째 여행으로 돌아가 보겠다. 그것이 오늘 주제이기도 한 '나의 고대 그리스 돌무더기 여행'이었다. 그 여행은 아주 무모했고 또 그래서 도전적이었다. 제목 그대로 현존하고 있는 고대 그리스의 유적지들을 하나하나 직접 두 발로 땅을 짚어 보겠다는 계획이었다. 신화와 전설의 현장에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고 싶었다.


그 여행 역시 공교롭게도 30일이 걸렸다. 배낭 하나 달랑 둘러메고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시작해서 에페소스, 페르가몬 같은 터키의 서부 해안 도시들을 거쳐, 에게 해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는 섬들을 돌아 그리스 본토로 상륙하는 여정이었다. 참고로 고대 그리스 철학의 시작을 알렸던 이오니아(Ionia) 지역이란 오늘의 터키 서쪽 해안 지역을 가리킨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의 대서사시가 펼쳐졌던 트로이 전쟁의 무대 역시 그 범위 안에 들어간다. 


어떤 창조의 DNA가 공간을 통해서도 유전될 수 있다면 여전히 엄청난 에네르기가 남아 있는 지역들일 것이다. 그런 확신이 나를 여행의 길로 이끌었다. 개인적으로 고백하지만 그때 나에는 방전된 배터리와 같았다. 뭐 하나 만족스럽지 않았던 일상을 어떻게 벗어나서 새로운 나 자신과 만나고 싶었다. 너무 거창할 수도 있겠지만, 누구나 그런 절박한 시기가 한두 번쯤은 있지 않은가. 그때의 내가 그랬다. 창조에 대한 열망, 간절함, 뭔가에 대한 막연한 기대, 그런 것들이 마음을 움직였고 여행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고대 그리스 신화를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그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일종의 경배심 같은 것도 작용을 했을 터. 


그 여행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정말 힘들고 외롭고 배고픈 여행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구와 말 한마디 나눌 사람이 없어서 입술이 말라 버리는 듯했다. 하지만 잃은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 덕분에 나 자신과 정말 오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성찰의 여행이었다. 중요한 것은 어디 어디를 간 것이 아니라, 그 여행을 왜 시작했고 어떻게 여행의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는가와 관련되어 있다. 내 인생을 둘로 나눈다면 빨간색 색연필로 두껍게 그을 수 있는 분기점이 바로 그때였다. 


'고대 그리스 돌무더기 여행의 전과 후' 


그리스 여행을 해본 사람은 경험한 것일 수 있을 테지만, 그리스에서는 정말 햇빛이 너무 강렬하다. 도대체 그리스의 빛이 왜 그렇게 강렬한지 지금 생각해도 잘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특별히 적도에 위치해 있는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리스를 여행한 사람들이 느끼는 빛의 강도는 다른 어떤 곳보다 세다. 오죽했으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지역 터키, 그리스 여행기 제목이 <우천염천(雨天炎天)>이었겠는가. 거세게 내리는 비와 불볕 천지를 여행하다는 뜻이다. 그가 어떤 이유에서 거세게 내리는 비를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도 작열하던 그리스의 태양과 아스팔트를 뜨겁게 달궜던 햇빛만큼은 뚜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리고 이런 그리스의 뜨거운 햇빛을 더욱 뜨겁게 만드는 것은 척박한 그리스 땅덩어리들이다. 고대 그리스 도시들을 여행한다는 목적으로 여행을 하면서 비옥한 옥토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물론 어딘가에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토지들도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그리스 문화를 상징하는 도시들 속에서 옥토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돌밭이라고 보는 게 좋을 같다. 대지가 돌밭이니 산이라고 다를 게 있을까. 나무 하나 제대로 서 있지 않은 돌산을 1시간 넘게 기어 올라가야 정상에 이를 수 있는 게 그리스의 대지다. 서늘한 나무 그늘 하나 제대로 없다. 그리스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빛을 떠올리는 이유는 어쩌면 바로 이런 조건 때문인지 모르겠다. 따듯한 어머니 같은 품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냥 무툭툭한 아버지, 정감 어린 다정한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눈 적 없는 딱 그런 옛날 우리의 아버지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사소한 정은 없지만 왠지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그런 아버지들 말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오죽했으면 플라톤은 자신이 살아가는 모국의 대지를 '앙상한 뼈'라고 불렀다. 언덕, 바위투성이로 가득한 땅은 비옥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였을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검소했다. 그리스식 정찬이라고 해야 곡식을 갈아서 만든 죽 같은 것이 전부였다. 고대 로마나 고대 북유럽 문명처럼 육식에 기반한 식단도 아니었다. 사회적 경제적 처지와 무관하게 누구나 빵 한 조각과 올리브 한 줌에 만족했다. 


그럼 도대체 이런 척박하고 먹을 것조차 변변치 않았던 고대 그리스는 어떻게 인류 문명의 역사에서 가장 숭고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을까? 문명의 자연발생적 조건만으로 본다면 고대 그리스는 이집트나 바빌로니아, 황하 문명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문명이 발달할 수 있는 천연의 조건이 아니라 그 정반대라는 뜻이다. 어쩌면 그 역설적 상황이 인류에게 '생각하는 법'을 만들어준 것은 아니었을까. 누구나 힘들고 고난에 찬 여정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듯이 말이다. 


천재적 여행가 에릭 와이너는 그래서 자신의 책에서 '낙원은 천재와 상극이다'라고 주장했다. 풍요 속에서보다 부족함과 결핍 속에서 인간은 뭔가를 창조한다는 의미다. 먹을 것도 풍족하고 생활하기에 적당한 대지 위에서 살면서 굳이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탐구할 필요가 있을까. 그 근본에 대한 성찰, 자기 자신의 대한 물음이 철학을 만들어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것이 고대 그리스를 강하게 만들었다. 


그리스의 빛은 살아 움직이고 꿈틀거린다. 모든 불태워 없애버릴 듯이 뜨겁고 그래서 죽지 않기 위해서라면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다. 더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부단히 움직여야 한다. 신성으로 가득 찬 그리스 델포이 신전을 찾았을 때가 기억난다. 그곳에서 그리스 인들은 자신의 미래를 점쳤다. 신탁이라는 신의 계시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겸허하게 삶과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놀라웠던 것은 그 델포이 신전을 둘러싸고 있던 산 정상에 아테네 올림포스 경기장을 그대로 본뜬 경기장이 세워져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곳에 오르기 위해 온몸이 땀으로 젖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신탁을 듣기 위해 고대 그리스 전역에서 몰려든 사람들은 신전의 산꼭대기 정상에서 올림픽처럼 운동 경기로 자신의 몸을 단련했다는 증거다. 그런 역동적인 삶이 그리스의 정신을 단련시켰으리라. 


나의 고대 그리스 돌무더기 여행을 다시 되돌아본다. 그만큼 삶이 팍팍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미래가 불안하고 불투명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지금이라도 고대 그리스의 도시 어딘가를 여행한다면 먼지라도 툭툭 털며 일어나 단맛 하나 없는 가칠가칠 한 곡기로 아침을 때우고 그리스라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전장으로 기꺼이 달려 나갈 고대 그리스의 정신들과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들과 만나고 싶다는 열망이 다시 나에게 글을 쓰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그 끝에서 또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얻게 될지 그런 기약조차 없지만, 그래도 그늘 한 점 없던 그리스의 척박한 말라비틀어질 것 같은 대지를 걸어가던 시간으로 기꺼이 돌아가고 싶다. 힘은 들었지만 행복할 수 있어서 좋았던 시간 속으로. 


글. 김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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