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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May 12. 2016

똑바로 선을 그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왜 제복 입은 사람을 존중해야 하는 것일까?

  며칠 전 미국에서 친구가 들어왔다. 30여 년 전 미국에 유학을 가서 영주권을 얻고 가정을 꾸린 그는 이제 어엿한 사업가가 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그와 술잔을 기울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외국에서 오랜 생활을 하고 돌아온 한국인들이 그렇듯이 그의 한국 생활에도 적응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은 듯 보였다.


   모든 비난의 화살이 첫 번째로 쏟아지는 곳은 역시 도로다. 특히 자동차 운전할 때 튀어나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난폭성이 그날도 화제에 올랐다. 친구 왈, 미국에서 운전할 때는 그렇게 느긋하기만 했던 자신이 한국에서 운전대만 잡으면 왜 난폭하게 차를 모는지 그도 이유를 알 수 없단다. 교차로에서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경적을 눌러대고, 차선을 바꾸기 위해 방향지시등을 켠 차들한테 양보조차 하지 않으려는 자신의 모습에 깜짝깜짝 놀란다고 한다.


   한마디로 미국에서는 미국식 생활 방식대로, 한국에선 한국식 생활 방식대로 행동한다는 뜻이다. 친구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문득 예비군 훈련받을 때가 생각났다. 군대 갔다 와서 예비군 훈련받아 본 사람들은 아마 다 인정하겠지만, 멀쩡하게 배울 만큼 배웠다는 사람들이 예비군 훈련복만 입으면 다들 왜 그렇게 행동이 오뉴월 더위 먹은 개처럼 축축 처지는지 모를 일이다. 왜 예비군 복만 입으면 졸리고 만사 귀찮고 배고픈 걸까.  


  그건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뭔가 단단하게 조여 있던 게 한순간에 풀어헤쳐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같은 예비군 훈련을 받는 사람이라도 계급장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장교들의 경우에는 좀 다르다. 교육받기 위해 의자에 앉아 있을 때도 각진 자세로 유지한다. 행동에도 여전히 절도가 남아 있다. 지금은 달라졌겠지만, 옛날엔 예비군 훈련장만 가면 늘 볼 수 있었던 동전 따먹기라는 게임이 있는데, 내 기억 속에 대위 계급장 달고 그걸 하는 사람은 본 적은 없다. 결국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리는 늘 '형식'보다는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선입견을 갖고 살았다. 게다가 은연중에 우리 안에는 유교적 형식주의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 같은 것도 있는 것 같다. 형식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오히려 역설적으로 내용에 대한 무차별적인 동경으로 뒤바뀐 모양새다.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우리는 형식보다는 늘 내용을 강조하는 환경에 둘러싸여 살았다. 공교롭게도 내용에대한 지나친 강조, 형식에 대한 반감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의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원칙은 지켜봤자 골치만 아픈 것이라는 무원칙적인 자기중심주의 같은 것이다. 형식을 겉치레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라고 표현을 달리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친구와의 술자리를 마칠 때가 되었지만, 난 그게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난 친구를 졸라 그의 미국 생활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그 친구가 미국에서 살면서 지켰던 생활의 매너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 안에는 어쩌면 우리와 다른 형식과 내용의 관계, 결과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으며 과정을 챙기려는 노력들이 숨어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들에게는 내용을 규정하는 형식에 대한 리스펙트(respect) 역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선을 그을 때는 똑바로 그어야 한다는 근거와 이유가 있었다. 그런 생활의 작은 이유들은 문화와 공동체에 대한 생각, 즉 매너로 이어졌다. 그것을 우리와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곳 중 하나가 군인에 대한 생각이다. 그들은 제복을 입은 사람들에 대한 태도가 달랐다.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전달되는 전사 통보서'


   몇 년 전부터 미국에 이민 간 한국인들 중에서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시민권을 따기 위해서 미군에 입대하는 경우가 있다. 학비를 제공받을 수도 있고 복무 후에도 이방인의 굴레를 벗고 이민사회의 변방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미국 시민으로 살아갈 수 았는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미군에 들어가는 한국 청년들이 늘어나면서 전사자 역시 증가하고 있다. 내 친구가 있는 미시간에서도 많지는 않지만 이라크 전쟁 때 실전에 투입되었다 전사자가 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었다고 한다.


  미군 전사통보는 세인트루이스에 위치한 미 국방부 전사자 예우 담당국에서 처리한다. 그곳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는 바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가족에게 전사 통보서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들이 세인트루이스에 위치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미국 지도를 펼치면 알 수 있듯이 세인트루이스는 미국의 중앙에 있는 도시다. 미국 어느 곳이든 가장 빠른 시간에 갈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이다.


  도대체 그들이 그토록 신속하게 전사자 통보를 가족에게 알리는 건 무슨 이유 때문일까? 여기엔 낮과 밤, 새벽의 구분이 없다. 무조건 가장 빠른 시간에 도착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다 보니 이라크 전이 한창일 때는 전쟁터에 자식을 보낸 부모의 경우 새벽에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기라도 하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고 한다. 미군 전사 통보서는 밤늦은 시간이나 새벽 시간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좀 무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좀 더 자료를 찾아봤다. 그리고 우리의 전사자 예우의 사례를 대비해 보니 답이 나왔다.


   '천안함 폭침 당시 몇몇 유가족들은 아들의 실종 사실을 뉴스를 통해서 알았다. 지난 연평도 포격사건 때 우리나라 해병대원 두 명이 전사한 일이 있었다. 그때 두 해병대원의 유가족들은 전화로 전사통지를 받았다. 미국은 전사자의 유가족들에게 운구 담당 장교가 직접 방문하여 전사를 통보하고 美국방장관의 서명이 들어간 전사통지서를 전달하게 된다. 시신 운구부터 장례까지 모두 책임지고 실행한다. 또한 유가족들에게 전사를 통보하고 난 후에야 언론보도를 할 수 있다. 언론보도로 아들의 실종 사실을 알게 된 우리나라와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군사전문 사이트에 한 네티즌이 올린 댓글)


   과연 자식의 사망 통지를 전화나 TV 뉴스를 통해서 접하게 되는 부모의 심정은 어땠을까. 난 미국과 한국의 두 가지 사례를 시선을 보면서, 형식은 분명히 내용을 규정한다는 깨달았다. 제복을 입은 자들에 대한 예우는 더욱 절도 있는 선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 대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의무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슬픔을 영광과 명예로 극복할 수 있는 작은 출발이 된다. 나와 우리를 위해서 희생한 존재라는 가치 있는 죽음에 대한 리스펙트.


   난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늘 똑바로 걷기보다는 비뚤비뚤, 때로는 일부러 지그재그 인생을 살려고 한 적도 있다. 물론 그게 마음까지 비뚤어진 건 아닐 테지만, 그래도 아무 이유 없이 틀을 벗어나고 싶었고 형식을 타파하고 싶었다. 그랬던 내가 요즘엔 자꾸 형식의 미학에로 눈이 간다. 분명 어떤 경우에는 똑바로 선을 그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틀은 깨기 위해서도 존재하지만, 내용을 지키기 위해서도 존재한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 것일까.


    이 글을 쓰다 알게 되었는데 미군 전사자의 유해 송환을 소재로 한 영화가 한 편 있었다. 2009년도에 개봉된  <챈스 일병의 귀환(Taking Chance)>이라는 영화였다. 위험한 전쟁터를 젊은 부하들에게 맡긴 채 안전한 곳에서 근무하던 미 해병대 마이클 스트로블 중령이 우연히 전사자 명단에서 자신과 출신지가 같은 19살의 챈스 일병을 발견하고 그의 유해를 고향까지 운구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였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한 젊은 병사의 유해를 대하는 시민들의 자세였다. 명예로운 죽음이 될 수 있도록 그들이 제일 먼저 한 것은 유해 앞에서 선을 똑바로 세우는 일, 바로 그것이었다.


(2016년에 <하루키에겐 피터캣, 나에겐 통의동 스토리가 있다>에 실린 글)

케빈 베이컨 주연의 영화 <Taking Chance> 2009



글: 김덕영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저자, 다큐멘터리 영화 <Two Homes> 감독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김덕영 지음


장편소설 <내가 그리로 갈게>, 김덕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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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docusto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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