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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Jul 18. 2022

김일성을 사랑했던 루이제 린저

'한때 우리를 사로잡았던 사회주의에 대한 망령들'


'한때 우리를 사로잡았던 사회주의에 대한 망령들'


1980년대 중반 대학을 다닐 때,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라는 책을 처음 읽었다. 시몬느 드 보부와르와 마찬가지로 전후 현대 문학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는 독일 여성 작가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사랑, 결혼, 임신 그리고 이혼 등으로 이어지는 여성 주인공의 힘겨운 삶을 통해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솔직히 나를 비롯해서 80년대 루이제 린저가 인기가 있었던 것은 그녀 자신보다 전혜린이라는 한 천재적(?) 작가 때문이다. 1934년 평안남도 순천군에서  태어나 조선총독부 고급 관료였던 아버지 덕분에 독일로 유학, 헤르만 헤세 등 독일 문학 작품을 번역한 번역가이자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와 같은 수필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다. 


그녀가 세상에 유명해진 것은 1965년 31살밖에 안 되는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비극적인 요소들도 한몫을 했다. 덕분에 1970년대부터 시작된 '전혜린 신드롬' 같은 것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절망적인 시대, 개인의 고독, 뭔가 자유를 갈망하는 주인공, 이런 요소들은 전혜린의 수필이나 그녀가 번역한 루이제 린저의 작품, 그리고 그녀 인생 자체가 절묘하게 일체감을 이룬다.


무겁게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사회의 공기, 그 속에서 탈출구를 찾기 위해 방황하는 군상들, 그것이 적어도 우리가 젊은 시절 함께 고민하고 아파했던 상처들이다. 그리고 그 상처는 딱정이가 남아 아직도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영화를 준비하기 위해서 2016년 경부터 본격적인 북한 체제, 김일성주의에 대한 책들을 읽고 생각들을 정리했다. 그러다 오래된 책장 서랍 속의 낡은 편지를 발견하듯이 루이제 린저에 관한 기사 모음집이 튀어나왔다. 


'열렬한 김일성주의자였던 루이제 린저' 



1950년대 동유럽 북한 전쟁고아들의 역사를 끝까지 붙들고 있었던 이유는 그것을 통해 폐쇄적인 북한 사회를 순수한 대한민국 사람의 눈으로 직접 분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친북적인 인사라고 해도 북한 사회의 본질로 접근할 수는 없다. 그들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치 북한 사회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자랑하는 친북 인사, 저널리스트들의 말은 알맹이 하나 없는 찐빵처럼 베어 물었을 때 공허하기만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북한 사회와 김일성주의의 본질로 접근해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등장한 1950년대 북한 전쟁고아들의 동유럽 이주의 역사는 마치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원석'을 그대로 손에 쥐어 보는 느낌이 들었다. 1만 명의 북한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사상으로 무장시키기 위해선 북한 내부에서 진행되었던 것과 동일한 교육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숨겨진 북한 아이들의 역사에 주목했던 이유였다. 


나의 오랜 자료집들 속에서 루이제 린저의 자료들을 다시 꺼낸 것도 바로 그 시기였다. '평생 김일성을 존경하고 심지어 사랑까지 했다'고 소문까지 났던 루이제 린저, 그리고 31살에 생을 마감한 천재 수필가 전혜린. 


그 오래된 자료들은 뭔가 낡은 창틀이 서로 닳아 맞지 않고 삐걱거리는 모습처럼 내가 다가왔다. 자유와 고뇌의 상징, 그리고 그들이 마음에 품었던 김일성이란 우상의 존재로서 말이다. 한때 젊은 시절 우리는 그렇게 루이제 린저와 전혜린을 만났다. 


루이제 린저는 1980년대 '김일성이 이끌어가는 북한을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라 칭송했다. 무슨 허상을 본 것인지, 루이제 린저에게 북한은 지구 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지상낙원'이었다. 2002년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 단 한 번도 루이제 린저는 자신이 칭송했던 지상낙원에 대한 언급을 사과하거나 취소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묻히기를 바랐을 뿐이다. 


도대체 과연 그녀는 북한의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김일성을 통해 어떤 인간성을 발견한 것이기에, '북한에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가 존재한다'고 칭송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아쉽게도 이미 세상을 떠난 그녀에게 답을 들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녀가 원했던 것처럼 조용히 묻혀갈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난 15년 동안 북한 전쟁고아들을 취재하면 정반대의 모습을 보았다. 그곳엔 '지상낙원'이 아니라 '지상 최대의 지옥'이 존재한다. 그 나라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어쩌면 빛을 위해 어둠이 존재하듯이,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과연 무엇이 진정 '인간의 모습을 한 사회'일까...


루이제 린저와 그녀가 그토록 찬양했던 김일성과의 사이에서 웃지 못할 해프닝이 하나가 전해지고 있다. 그 일화를 소개하면 오늘 글을 마치고자 한다.


1980년대 초반, 정확히는 80년부터 82년까지 세 번이나 북한을 방문했다. 80년 방문 당시에는 남한에서 광주사태가 한창 벌어지고 있던 시기였다. 그녀가 북한을 방문하자 김일성을 자신을 추종하는 루이제 린저를 환영한다는 제스처를 취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호혜와 이벤트를 벌였다. 


남과 북이 치열하게 체제 경쟁을 하던 시기, 세계적인 작가인 루이제 린저 같은 여성은 김일성과 북한 체제를 선전하기엔 아주 좋은 소재였다. 어느 날 루이제 린저가 다시 북한에 입국한다는 소식을 들은 김일성은 그녀의 베스트셀러였던 <생의 한가운데>가 어떤 책인지 궁금해졌다. 


"이 보라우, 거 루이제 린저 동무의 <생의 한가운데>라는 책 좀 갖고 와 보라우!" 


김일성은 그렇게 특유의 거만한 제스처를 써가며 루이제 린저의 책을 찾았던 모양이다. 적어도 그녀의 대표작 정도는 읽어야지 그녀가 평양에 왔을 때 뭔가 대화도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북한에서 루이제 린저의 책은 단 한 권도 구할 수 없었다. 개인주의와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인간의 삶 다룬 그녀의 책이 북한에서 출판될 리 만무했다. 


루이제 린저가 그토록 칭송했던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북한'에서 자신의 베스트셀러는 한 페이지도 출간되지 않았던 것이다. 혹시 루이제 린저 그녀는 이 웃지 못할 해프닝을 알기나 했을까?


그래서 훗날 운동권들을 통해서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결국 루이제 린저의 책은 남한에서 공수해서 북으로 반입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때 80년대 김일성을 위해 루이제 린저의 책 <생의 한가운데>를 밀반입시킨 운동권들이 문재인 좌파 정부 때 청와대 들어가서 활동하지는 않았나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은 그냥 입으로 전해지는 전설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그건 자유다.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지식인의 허상, 얄팍한 거짓 휴머니즘에 사로잡힌 작가 하나가 어떻게 북한에 의해서 농락당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다. 


안타깝지만 2022년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제2의 '루이제 린저'를 꿈꾸는 지식인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들의 거짓말이 대한민국 사회를 망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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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덕영 감독과 리버티국제영화제를 위한 공식 후원 계좌:

국민은행 878301-01-253931 김덕영(다큐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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