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고양이

나의 통의동 다이어리 (115)

by 김덕영

'서촌 고양이'

어제 저녁을 먹고 느긋하게 중정 마당에 앉아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고 있을 때였다. 그동안 듣지 못했던 고양이 소리가 났다. 아주 작고 앙증맞은 소리였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소리들이었다. 지난달 천둥번개가 치고 폭우가 내리던 날, 고양이 울음소리가 지붕 위에서 크게 들려왔던 적이 있다.

'무슨 고양이 소리가 저렇게 요란할까?'

늦은 밤, 가게 안에는 연인 한쌍이 뭔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언쟁을 벌이던 날이었다. 이전에는 그저 몇 번 울음소리가 들린 뒤에 그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그날은 달랐다. 시간도 길었을 뿐만 아니라, 마치 발톱으로 나무판을 긁어대는 소리도 들려왔다. 순간 이런저런 생각이 스쳤다. 먹이가 부족한 고양이들이 밥그릇 하나를 놓고 싸우는 소리일까. 혹은 암수가 교접하다가 내는 교성일 수도 있을 테고.

어쨌거나 결론은 둘 다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건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낳다가 낸 소리였다. 그렇지 않고서는 귀여운 새끼 고양이가 머리를 쏙 빼 밀고 처마 밑에서 기어 나오는 걸 볼 일도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가만히 지켜보니 처음엔 한 마리였는 줄 알았는데 한 마리가 아니었다. 잠시 지켜보고 있으려니 두 마리가 되고, 거기에 다시 한 마리가 더 가세했다. 무려 세 마리의 새끼 고양이들이 새로 태어난 것이다.

몸집으로 봤을 때는 한 달 정도는 된 것 같다. 어떤 것이라도 다 그렇지만 새끼는 다 귀엽기만 하다. 게다가 우리 지붕 위에서 태어난 새끼 고양이라서 더 정이 갔다. 말 그대로 서촌이 고향인 오리지널 서촌 고양이들이다. 카메라를 들고 그 새끼 고양이들을 촬영했다. 일종의 사람으로 치면, 아기들 백일 기념사진이다. 그렇게라도 새끼 고양이들의 탄생을 축하하고 싶었다.

카메라를 들고 자기들을 찍기 시작하자 새끼 고양이들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도대체 쟨 누구고, 뭐 하는 거지?'하는 눈동자로 말이다. 옆에 있는 어미 고양이야 늘 봐왔던 일이다 보니 별로 관심도 없다. 실눈을 뜨고 금벅거리며 먼 하늘만 바라볼 뿐이다. 조금이라도 처마 앞으로 미끄러질까 봐 새끼 고양이들을 몸으로 막아선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면서 마치 난생처음 사람과 마주친 새끼 고양이들에게 '애들아. 쟤들은 맨날 저런단다'라고
한 수 가르치는 모양새다. 호기심 많은 새끼 고양이들만 그렇게 동그랗게 뜬 채로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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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낳고 사는 걸 보게 되다니...' 서촌에서 터를 잡은 지가 꽤 됐다는 증거다. 참고로 서촌에는 길고양이들이 정말 많다. 누하동, 옥인동, 효자동, 체부동, 창성동, 그리고 내가 있는 통의동까지, 서촌 전 지역이
고양이 천국이다.

언제부터 서촌에 고양이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는지는 잘 모른다. 주변에 물어봐도 명쾌하게 답을 하는 사람도 없다. 한 가지 굳이 추정을 하자면 '인왕산 호랑이' 정도? 물론 농담이다. 그렇다고 인왕산에 살았던 호랑이의 존재까지 부정하는 건 아니다. 인왕산에 호랑이 살았다는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궁궐까지 침입한 대담무쌍한 호랑이를 잡으려고 포수까지 고용했을 정도니 말이다.

당시 조선에서 호랑이 하면 떠오르는 산은 금강산도 설악산도 아니고 바로 인왕산이었다. 아무래도 조선의 수도 한복판에서 시민들을 벌벌 떨게 만든 게 명성의 이유인 것 같다. 병풍처럼 서울을 둘러싼 산들 가운데 유독 장안에서 호랑이가 자주 출몰한 곳은 인왕산이었다. 지형지세가 다른 산에 비해서 별로 높지도 험하지도 않은 인왕산에 왜 호랑이들이 그렇게 많이 살았던 것일까?

내 생각엔 바위 때문인 거 같다. 물론 지금보다 훨씬 숲이 우거졌을 거라는 전제 아래서 말이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참고하면 몇 가지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그 그림 속에는 인왕산의 과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커다란 바위 암벽들이 줄줄이 이어지며 산 정상까지 이어지고, 그 바위 암벽들 사이로는 마치 여인네 치마폭처럼 소나무들의 행렬이 경복궁을 향해서 강물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inwangjesaekdo.jpg 겸재 정산의 '인왕제색도' (1751년)


인간의 시각이 아니라 호랑이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인왕산은 조선의 왕궁으로 들락거리는 최고의 먹잇감(?)들을 표적 삼아 한걸음에 기습적으로 물고 달아날 수 있는 천혜의 지형이다. 서촌에 고양이들이 많이 모이는 것도 어찌 보면 인왕산 호랑이들의 기운이 남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새끼 고양이들 때문은 아니었지만, 지난달부터 같이 가게를 책임지고 있는 임대표가 '고양이들이 많아진 것 같으니 먹을 것도 부족한 게 아니냐'면서 고양이 밥그릇을 하나 만들었다. 눈치 하나는 빨라서 그릇에 음식물을 담아놓기가 무섭게 배고픈 고양이들 한 두 마리씩은 꼭 달려든다. 요즘엔 아예 가게 문 앞까지 와서 고개를 빤히 쳐들고 나를 바라볼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야옹'하고 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니들 오늘은 왜 밥 안 주니?'하고 따지는 느낌도 든다.

천적도 없는 서촌의 고양이 생태계에서 이렇게 자꾸 먹이를 주는 게 잘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웃들은 고양이 때문에 동네가 지저분해진다고 먹이를 내놓지 말라고 난리들이다. 사실 좀 걱정도 된다. 개체수가 너무 많아질 수도 있고, 배고픈 고양이들 때문에 동네 골목길에 내놓은 종량제 봉투가 모조리 구멍나 버릴 수 있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더럽고 냄새나는 여름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공교롭게도 그런 고민을 할 즈음, 어제 우리 가게 기와지붕 처마 위에 둥지를 튼 새끼 고양이들을 만났다. 제 새끼를 먹여 살린 능력이 없는 어미는 가장 약한 새끼 고양이를 물어 죽인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 얘기 들으니 지붕 위로 세상 구경을 처음 나온 새끼 고양이들이 갑자기 더없이 측은해지기만 한다. 하루 사이에 녀석들한테 이상하게 정이 가기 시작한 건 아닐까. '차라리 인왕산 고양이라도 되지...'

서촌엔 진짜 고양이들이 많다. 찾아보면 조그만 동상들도 많고 심지어 고양이 문방구도 있을 정도다. 우리 가게 지붕에도 고양이를 사랑하는 설치미술가 한 분이 철사로 조립한 고양이 한 마리를 만들어주시기도 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지붕 위에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쥐라도 잡으라는 뜻이었다. 눈썰미 좋은 사람은 그렇게 만들어진 고양이 모형을 놓지지 않는다. 사진 찍기에도 딱 좋은 사이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매일 저녁 고양이 밥그릇에 먹을 걸 담아놓는 임대표의 닉네임이 '서촌 고양이'란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참 우연치고는 묘한 인연이다. 저럴라고 '서촌 고양이'라고 자신의 닉네임을 정한 걸까. 우연일지 모르겠지만, 서촌의 길고양이들에게 매일 밥 주는 고양이들의 엄마, '서촌 고양이', 임대표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인기는 요즘 이상할 정도로 점점 커지고 있다. 어쩌면 그건 다 고양이 덕분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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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덕영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저자 / 다큐멘터리 PD / 서촌의 복합창조문화 공간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대표




뒤늦게 표지.jpg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김덕영 지음


스크린샷 2016-04-12 오전 9.52.23.png 장편소설 <내가 그리로 갈게>, 김덕영 지음


12493948_924494087618610_7853859928047968692_o.jpg <그리스의 시간을 걷다>, 김덕영 지음, 책세상 (2012년)

작가의 글을 더 읽고 싶은 분, 작가를 응원하고 책을 구입하고 싶으신 분은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Tel: 070-8987-0408 / e-mail: docustory@gmail.com


현재 작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독자들과 만나면서 창작 활동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김통스 노을.jpg 서촌의 복합창조문화공간,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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