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지붕 위에서 떨어진 새끼 고양이 '산'이

나의 통의동 다이어리 (116)

by 김덕영

'모든 추락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 이건 1988년에 발표된 이문열 장편소설 제목이다. 살짝 그의 제목을 비틀어 봤다. '모든 추락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라고.


얼마 전 서촌 통의동에 있는 한옥 기와지붕 사이에서 고양이 새끼 세 마리가 태어났다. 서촌에서 태어난 말 그대로 고향이 서촌인 고양이들이다. 매일 저녁 해가 뉘엿뉘엿해질 때면 하나 둘 모습을 나타내는 녀석들. 배고픈 새끼 고양이들을 위해 그때부터 어미 고양이도 저녁거리를 찾아서 기와지붕 위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한다. 난 이 녀석들에게 인, 왕, 산이란 이름을 붙여줬다. 그 옛날 호랑이 살았다는 인왕산에서 따온 이름이다. 인왕산 호랑이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세 마리 중에서 두 마리는 아주 건강하고 몸집도 제법 큰 반면에 나머지 막내 고양이는 왠지 모르게 비쩍 마른 몸매에 크기도 두 마리와 비교해서 작다. 이름과도 어울리지 않게 '산'이다. 녀석은 늘 두 형제들과도 떨어져서 있다. 같은 어미의 배에서 나온 녀석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 허약한 체질로 보인다. 어젯밤 그 '산'이가 지붕 위에서 떨어졌다. 그것도 처음이 아니다. 벌써 이번 주 들어서 두 번째 일이다. 도대체 지붕 위 서촌 고양이 가족들 사이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며칠 전 오후에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처절한 새끼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그냥 보통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인간의 말로 통역할 수 있는 통역기라도 목에 달아준다면, 아마 이런 소리였을 것이다.


'엄마~! 엄마~! 나 지붕에서 떨어졌어요. 도와주세요. 배고파요. 제발요...'


우리 가게는 한옥을 개조했다. 그래서 가게 안에 중정으로 통하는 마당이 있다. 밤에는 달빛이 물들고 별을 헤아릴 수 있는 공간이다. 유리로 된 칸막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난 몇 시간 동안 이 새끼 고양이와 숨바꼭질을 했다. 잡으려면 도망가고, 사라지면 나타나 지붕을 쳐다보며 다시 처절하게 울어대는 식으로 말이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고양이들은 극한 상황이 되면 약한 놈을 어미가 죽이는 경우도 있대.' 상상하기도 싫지만 지붕 위에서 살고 있는 고양이 가족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한옥 기와들 사이에 생긴 틈에서 둥지를 틀고 사는 녀석들이 우리 가게의 중정 마당 안으로 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딱 두 가지밖에 없다. 철없는 새끼 고양이들이 지붕 위에서 뛰어다니다 발을 헛디뎌서 아래로 곤두박질친 경우가 첫 번째이고 또 하나의 가능성은 바로 비정한 고양이 생태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바로 그 비극적인 사태를 말한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들었다. 먹이가 부족해지고 환경이 나빠질 경우 가장 약한 녀석은 일부러 어미가 더 우수한 종을 지켜내기 위해서 포기하는 것이다.


어젯밤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가게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며칠 전 중정 마당에서 들었던 바로 그 처절한 울음소리였다. 이번에는 중정 마당이 아니었다. 골목길 안쪽 어디선가 나는 소리가 분명했다. 랜턴을 켜고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갔다. 막다른 골목길 안쪽에서 비에 젖은 몸으로 떨고 있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바로 '산'이었다. 며칠 전 중정 마당에서 나와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 끝에 간신히 잡아서 지붕 위로 올려줬던 새끼 고양이 한 마리. 녀석은 내가 자신을 발견하자마자 자포자기한 표정이다. 예전처럼 잽싸게 구석으로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모든 걸 포기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가게로 돌아와 장갑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그때까지도 새끼 고양이 '산'이는 좀 전에 있던 모습 그대로였다. 여느 고양이라면 사람이 사라진 틈을 타서 어디론가 도망이라도 쳤을 것이다. 가게에서 장갑을 챙겨서 다시 그 골목길로 오기까지는 도망칠 시간이 충분했다. 갑자기 녀석이 불쌍해졌다. 어쩌면 '산'이는 내가 집으로 돌아갈 유일한 희망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나는 다시 집 떠난 새끼 고양이 구출 작전에 나섰다. 장갑을 끼고 손을 뻗어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숨어 있는 녀석을 끄집어냈다. 몸에 손이 닿는 순간 따듯한 온기가 전해졌다. 생선뼈라고 해도 아마 믿길 정도로 연약한 갈비뼈가 손끝에 느껴졌다. 두 번째 만남이지만 녀석의 온몸에 손을 대고 체온을 느껴 보긴 처음이다. 작은 몸집이지만 쿵쿰거리며 뛰고 있는 심장의 두근거림도 느껴졌다.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녀석을 끄집어내서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아직은 어미의 품 속에서 자라야 할 작고 귀여운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어떻게 이렇게 두 번씩이나 집을 벗어나 이렇게 홀로 버려질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이나 동물이나 살아가기에 쉬운 세상은 아니다. 그래도 돈 걱정 없는 고양이들은 사람 사는 동네 어디라도 먹을 것이 있을 것이라 여겼다. 음식물 쓰레기 통을 뒤지는 녀석들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그렇게라도 먹을 게 있겠지, 하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디까지 그건 인간의 시선일 뿐. 고양이들의 생태계에서는 그들만의 생존의 법칙이 있는가 보다. 그렇지 않고서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계속해서 지붕 위에서 굴러 떨어질 이유가 없다. 어쩌면 이런 상상도 해본다. 어미 고양이가 세 마디의 새끼들 중에서 가장 연약한 '산'이의 목을 물고 처마 위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물고 있던 새끼를 인간들이 살고 있는 세계로 던지는 것이다. 어미 고양이는 아마 본능에 충실한 행동일 수도 있다. 그렇게라도 해서 크고 힘센 놈을 키워내야 하니까. 그게 자연의 법칙이라는 걸 스스로 이미 터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새끼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생각이 좀 복잡해졌다. '그럼 이제 어떡해야 하나? 만약 세 번째 사건이 또 일어난다면, 이런 가정은 모든 사실이 된다. 어미에게 버려진 새끼 고양이로소이다.'


1988년 올림픽의 열기가 뜨거웠던 그 해. 이문열의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는 베스트셀러가 되어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가난하고 작은 나라에 불과했던 대한민국이 세상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우뚝 서는 올림픽이 그 해 열리고 있었다. 이미 '젊은 날의 초상'이 '사람의 아들'로 명성을 떨쳤던 그였던 지라 새로운 책에 대한 기대도 컸다. 그래도 이문열은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라도 있다고 말하지 않았나. 아무리 희망이 없는 세상에 굴러 떨어져도 마지막 한 가닥 실오라기 같은 희망은 남는 것이란 사실을 그는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대중적인 소재와 통속적인 구성으로 작가 이문열에게 적지 않은 돈을 안겨주었던 작품이다. 하지만 그래서 정작 본인은 제일 싫어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예술과 돈이라는 게 늘 그렇게 서로 상극이다. 아직 전업 작가의 삶이 어떤 것인지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나 같은 사람 입장에서는 그냥 좀 부럽기도 하다.


각설하고 그의 말이 맞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라도 달아줘야 한다. 그래서 어미 고양이한테 뭐라고 한 마디 따지고 싶었다. '아무리 고양이라도 배 아프게 낳은 새끼인데, 넌 어떻게 그리 비정하냐!'. 마침 어미한테 버려진 새끼 고양이 '산'이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가게로 돌아오는데 지붕에 위에 어미가 우아한(?) 자태로 앉아 있었다. 난 두 손에 움켜쥔 내 손바닥 만한 새끼 고양이를 하늘 위로 치켜올렸다. 여기 네 새끼가 있다. 태어날 때 이름은 없었겠지만, 너의 흔적, 냄새, 몸짓, 울음소리까지 기억하는 네 새끼 고양이가 여기 있다. 그러니 제발 이젠 그만 새끼를 버리는 일은 없도록 하자. 속으로 한 소리가 아니다. 난 어젯밤 어미 고양이에게 그렇게 따졌다. 이럴 땐 인간과 고양이의 언어를 연결해주는 통역기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내가 어미한테 소리치고 있을 때, 새끼 고양이 '산'이의 몸이 떨렸다. 아무리 작은 미물이라도 감정이라는 게 있다는 증거가 아니었을까.


다시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서촌 고양이 가족들에게도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고 있을 것이다. 작은 고양이 새끼 한 마리를 통해 난 오늘도 인생을 배운다. 너무 거창하다고?! 글쎄. 모든 건 우연히 일어난다. 우리 가게 한옥 지붕 위에 고양이들이 둥지를 튼 것도, 그 어미에게서 어느 날 세 마리의 새끼 고양이 들이 태어난 것도, 내가 그들에게 이름을 '인, 왕, 산'이라 이름을 지어준 것도 모두가 다 그냥 우연일 뿐이다. 하지만 그런 우연 속에서도 꼭 일어나야 했을 법한 것들이 있다. 그런 일들은 대부분이 마주치는 눈빛, 손끝에 느껴지는 작은 떨림, 따듯한 체온 같은 것들에서 시작된다. 우연과 운명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하루하루가 그렇게 시작되고 끝나고 있지 않은가. 지금 당신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도 어쩌면 그렇게 작은 우연들 속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하지만 당신이 그를 가슴에 품고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건 우주가 된다. 별들이 쏟아지는 은하계, 천 년의 고목들로 우거진 숲이 된다. 그렇게 보면 우연이나 운명이나 같은 것에서 시작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오늘은 도서관에 가서 책을 몇 권 빌려올 생각이다. 전에 읽다가 재미없어서 덮어버렸던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한 권이고 나머지 한 권은... 글쎄... <고양이 행복하게 키우기> 정도가 아닐까.



서촌 고양이 '산'이를 구출하는 장면


글쓴이: 김덕영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저자 / 다큐멘터리 PD / 서촌의 복합창조문화 공간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대표. 현재 작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독자들과 만나면서 창작 활동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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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김덕영 지음
장편소설 <내가 그리로 갈게>, 김덕영 지음
서촌의 복합창조문화공간,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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