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죽어가고 있어요'

나의 통의동 다이어리 (117)

by 김덕영

'고양이가 죽어가고 있어요'


밤 10시를 넘긴 시각. 가게 문을 열고 젊은 여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저기요. 죄송하지만 펜과 종이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네. 물론이죠. 그런데 무슨 일 때문이시죠?'


"전염병에 걸린 아픈 고양이 새끼들이 있어서요."


'고양이요?!'


오늘도 고양이 이야기다. 그것도 고양이 클라미디아라고 하는 전염병에 걸려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새끼 고양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6시쯤에 경복궁 관광하고 서촌으로 넘어왔어요. 우연히 통의동 골목길을 지나다가 고양이들을 봤어요. 그런데 어딘가 아픈 고양이 같았어요."


'그럼 지금 밤 10시까지 고양이들 때문에?'


"네. 그냥 갈 수 없어서요."


'고양이는 어딨죠?'


"저기 상자 안에 있어요"


P6126777.JPG
P6126778.JPG
P6126781.JPG


상자를 열자 작고 힘없는 고양이 새끼 두 마리가 미동도 하지 않고 나를 쳐다봤다. 한눈에 아픈 고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두 눈 가득 눈곱이 잡혀 있고, 몸을 가눌 수도 없을 정도로 지치고 아픈 고양이가 분명했다. 처음에는 가게에 들어와 펜과 종이를 빌려달라고 해서 무슨 일인가 했다. 그냥 몸에 밴 습관처럼 그들을 따라 고양이를 발견했다는 장소까지 갔다. 종이와 펜을 달라고 한 것은 고양이가 숨어 있다는 집 앞에 호소문을 붙이기 위한 것이었다.


"뭐라고 써야 하지...? 한국말이 서툴러서..."


호주에서 15년째 살고 있다는 젊은 여성들이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 그것도 경복궁과 서촌을 중심으로 관광을 하던 중이었다. 저녁 6시에 아픈 고양이 두 마리를 발견했다. 힘이 없어서 도망갈 생각도 하지 못하는 고양이들이었다.


"상자에 담아서 동물병원에 갔어요."


'서촌에 동물병원이 어딨죠?'


"없더라고요. 그래서 택시를 타고 독립문까지 갔어요."


'수의사가 보고 뭐라든가요?'


"고양이 클라미디아라는 전염병이라고 했어요. 눈에 잔뜩 낀 눈곱을 보고 한눈에 알더라고요. 전염성이 아주 강한 병이라고 합니다."


'그럼 그냥 두 마리를 병원에 두고 오지 왜 다시 서촌으로 왔죠?'


"한 마리가 더 있는 걸 봤거든요. 그 녀석은 좀 상태가 괜찮아 보였어요. 그리고 클라미디아가 전염성이 강해서 그냥 두면 다른 고양이들한테도 분명 옮길 수 있어요. 그럼 동네 고양이들은 다 병에 걸리고, 치료를 안 할 경우에는 죽을 수도 있는 무서운 전염병이라고 수의사가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갈 수가 없었어요."


오늘은 좀 우울하다. 사실 난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자꾸 고양이들과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그것도 서촌 고양이들 하고만. 난 그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자기가 기른 것도 아닌 길에 버려진 아픈 고양이 때문에 밤늦은 시간까지 서촌을 헤매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고 흥미로웠다.


병에 걸린 나머지 한 마리 고양이를 찾기 위해서 그들은 무려 4시간 동안 서촌의 골목길을 헤맸다. 그 사실이 너무 부끄럽고 부러웠다. 병에 걸리고 아픈 고양이들을 마치 자기 고양이처럼 끝까지 책임지려는 마음이 내 부끄러운 마음의 실체였다면, 전염병에 걸린 고양이를 격리시켜서 다른 고양이들이 병에 걸리지 않게 해야 한다는 판단력, 그걸 위해서 종이와 펜을 빌려서 골목길에 호소문을 쓰려는 두 젊은이의 행동이 부러웠다. 과연 나라면 쉽게 할 수 있었을까?


'그냥 못 본 척하고 가도 됐을 텐데...'


"그러게요..."


그들은 내 마지막 질문에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물론 두 사람의 손에는 고양이를 담은 상자가 들려 있었다.


'그럼 다시 동물병원으로 갈 건가요?'


"네. 데려다주려고요."


'치료는 가능하다고 합니까?'


"아뇨. 잘 모르겠대요. 아마 한 달 정도밖에 살지 못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아서..."


'아. 잠깐만. 그럼 병원비는?'


"그냥 언니한테 돈 빌려서..."


'성함이나 연락처라도 알 수 없을까요?'


"아뇨. 그건 싫어요."


'아픈 고양이를 살려주기 위해 남들은 하지 못한 일을 하고 계신데...'


"고양이들이 살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살기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이 좀 아파요. 잘 살 수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리고 언니한테 빌린 돈으로 한 거지 제 돈으로 한 것도 아니에요."


그렇게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두 명의 여성들은 서촌의 골목길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의 뒷모습을 그냥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는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초라하기만 했다. 무엇이 나와 그들의 행동에 이런 큰 차이를 불러온 것일까? 과연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길 가는 나그네를 홀대하지 말라. 그들이 천사일지도 모르니...'


어쩌면 오늘 밤 병에 걸린 아픈 고양이 새끼들에게는 천사가 나타난 게 아닌가 싶다. 그들 모두의 앞길에 신의 축복이 가득하길 기원한다.


P6126784.JPG
P6126788.JPG

‪#‎서촌고양이‬ ‪#‎고양이전염병‬ ‪#‎세상엔이런사람도있다‬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 현재 작가는 8번째 신간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2>를 집필 중에 있습니다. 이번 책은 스토리 펀딩으로 제작되어 2018년 6월 30일 경 출간될 예정입니다. 글이 마음에 드신 분들은 작가의 신간 출간에 힘을 보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후원을 해주시는 분들에게는 저자 사인이 담긴 신간을 배송해드립니다.


스토리 펀딩 링크:

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9015


뒤늦게 표지.jpg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김덕영 지음
스크린샷 2016-04-12 오전 9.52.23.png 장편소설 <내가 그리로 갈게>, 김덕영 지음


현재 작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독자들과 만나면서 창작 활동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김통스 노을.jpg 서촌의 복합창조문화공간,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한옥 지붕 위에서 떨어진 새끼 고양이 '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