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통의동 다이어리 (118)
오늘 아침 낯선 이름으로부터 이메일이 한 통 왔다. 누군가 하고 열어봤더니 놀랍게도 며칠 전 아픈 고양이를 동물병원에 데려다 주었던 바로 그 젊은 여성 중 한 명이 보낸 메일이었다. 클라미디아라는 이름도 낯선 고양이 병에 걸려 힘없이 작은 종이 상자에 담겨 있던 바로 그 두 마리의 고양이들. 메일에 담긴 내용을 살짝 공개하면 이렇다.
“10시 전에 첫 번째로 갔었던 동물병원에서 과도하게 심각하게 얘기를 들어서 남아있던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에 관해서 부적절한 정보를 드린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 들렸던 다른 병원에서 더 자세한 검사와 정보를 얻게 된 걸 더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글의 내용을 통해서 추정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그날 밤 고양이 두 마리를 데리고 독립문에 있는 동물병원 말고 다른 곳을 찾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 갔었던 동물병원이 마음에 안 들었거나, 아니면 다른 동물병원의 의사에게 가서 다른 진단을 받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사실 우리들도 그렇게 한다. 가족 중에 누군가 아픈 사람이 생기면 그리고 그 병이 위독한 병일수록 다른 병원에 가서 한 번 더 진찰을 받아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려고 한다. 그날 그들은 매우 영리하고 적절한 행동을 한 것 같다. 아니 더 드라마틱하게 표현한다면, 길고양이 두 마리를 진짜 사랑했다는 뜻이다. 마치 내 가족이 아픈 병에 걸렸을 때 하는 것처럼 그들은 똑같은 사랑을 길고양이 두 마리에게 베풀었다. 여기에 그들이 갖고 있는 고운 심성을 알려야 하는 나 같은 사람도 존재해야 드라마는 완성된다. 물론 나는 단지 중간에 몇 줄 끄적거려서 그들의 마음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날도 표현했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참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남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을 나는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작은 영웅들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건강하게 발전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떨 때는 우리말 ‘영웅'이라는 단어가 좀 너무 거창해 보인다. 차라리 ‘히어로'란 단어가 더 부담이 없는 것 같다. 두 사람의 행동에는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중요한 가치들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들을 통해서 그걸 발견했고,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쓰게 됐다. 그런데 ‘히어로'들에게서 메일이 도착한 것이다. 그들의 메일에 담겨 있는 내용을 좀 더 보자.
“일단 그 두마리를 검사받은 결과, 클라미디아와 허피스, 그리고 칼리시를 가지고 있던 상태구요. 인간들의 클라미디아와 허피스와는 다른 원인과 증상인가 봐요. 성병이 아니라네요. 길고양이들에게는 흔한 전염병이라고 하네요. 고양이 감기라고 불리구요. 인간, 개 등 다른 종들에게는 전염성은 없어 안전합니다.”
새로운 도착한 동물병원에서 좀 더 구체적인 진찰과 검사를 받은 모양이다. 허피스라는 말은 아마도 우리가 사용하는 ‘헤르페스'로 보인다. 하긴 영어권에서는 헤르페스가 아니라 허피스일 테니 말이다. 인간이나 개와 같은 다른 종에게는 전염성이 없다는 말을 재차 강조했다. 아마도 남은 한 마리, 자신들이 구하지 못했던, 바로 그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인 것 같다.
사실 나는 처음 고백하지만, 이 말 듣기 전까지 내심 걱정을 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 가게 지붕 위에 살고 있는 네 마리의 고양이 가족들도 그렇고 혹시나 나한테도 나쁜 전염병이 옮지는 않을지 은근히 겁도 났다. 그들한테 내 마음을 들킨 것일까. 아무튼 다행이다. 우리 동네 골목길에는 고양이는 물론이고 강아지를 끌고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며칠 전에는 어린 아이들이 살고 있는 가족이 이사를 오기도 했다. ‘히어로'의 편지에는 그런 내용들이 보충적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관리만 잘하고 물과 음식물만 제대로 섭취할 수 있다면, 남은 한 마리의 새끼 고양이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나는 동물애호가가 아니다. 지금도 이런 글을 쓰는 나 자신이 좀 어색하다. 하지만 서촌에 와서 2년 반이란 시간을 보내면서 동물에 대한 나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것 같다. 특히 서촌 고양이들과의 만남은 나에게는 정말 새로운 경험이고 낯설지만 경이롭기까지 하다. 어제는 전혀 새로운 고양이 한 쌍이 우리 가게 현관문 앞에 나타났다. 그 녀석 이름을 아직 지어주진 못했지만, 그냥 편의상 ‘뻔뻔이'로 부르기로 하자. 더 좋은 이름이 생각나면 나중에 바꾸면 되니까. 내가 왜 그 녀석을 ‘뻔뻔이'로 부르기고 했는가는 그 녀석 행동을 한 번 보면 금방 이해가 간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면 고양이들이 슬슬 기동하는 시간이다. 하루 종일 길고 긴 낮잠을 잔 탓에 기지개를 켜며 지붕 곳곳에서 고양이들이 어슬렁거리기 시작한다. 먹이를 찾아서 이제 서촌 골목길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한다. 그런데 짙은 밤색에 검은 줄이 가로로 쳐져 있는 낯선 고양이 한 마리가 얼마 전부터 우리 가게 앞으로 다가왔다. 이 녀석은 지붕 위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다른 고양이들과 달리 아예 우리 가게 현관문 앞으로 다가온다. 슬금슬금 걸음을 앞으로 옮기면서 전방을 주시한다. 눈동자를 내 눈동자 한 가운데 맞추고 내가 뭘 하는지 뚫어지게 쳐다본다. 거기까지만 했으면 내가 그 녀석을 ‘뻔뻔이'라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관문 앞에서 도착하는 순간, 드디어 발 한쪽을 든다. 그리고 조심조심 발 하나를 가게 안에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온갖 귀여운 표정을 다해가며 문 앞에 앉아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예쁜 모습으로 가부좌를 튼다. 중요한 건 그 녀석의 위치가 문 밖이 아니라 가게 안이라는 점이다. 한마디로 ‘먹을 걸 달라’ 뭐 이런 뜻이다.
대부분의 길고양이들은 야생의 습성이 본능적으로 유전된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탓에 무엇이든 경계를 멈추지 않는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갖다 줘도 녀석들은 그걸 덥석 물지 않는다. 우리 ‘인.왕.산'이 엄마만 해도 그렇다. 배고픈 새끼들한테 먹을 걸 주려는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절대로 먹이를 줘도 그걸 바로 먹지 않는다. 냄새를 맡아보고 발로 건드려 보고, 심지어는 입에 넣었다가 뱉기도 한다. 그렇게 검증을 다 하고 안전하다고 확신이 든 다음에 입에 넣고 먹기 시작한다. 그런데 ‘뻔뻔이'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고양이 같다. 한번은 고양이들의 인삼이라고 불리는 황태 조각을 하나 잡고 입에 가져가 본 적이 있다. 다른 고양이들 같으면 아무리 황태라고 해도 절대로 다가오는 법이 없다. 그런데 역시 ‘뻔뻔이'는 달랐다. 손가락이라도 물 것 같은 기세로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낼름 황태를 집어간 적이 있다. 짐작컨대 분명 사람의 손에 의해 길러졌던 녀석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누군가 기르다 버린 것일까. 아니면 주인과 함께 산책을 나왔다가 길을 잃어버린 녀석일 수도 있고.
문득 그런 생각을 하니까, ‘뻔뻔이'가 측은해졌다. 사실 서촌 길고양이들 중에서 ‘뻔뻔이'가 제일 잘 생겼다. 눈빛이 선하고 어떨 때는 아양도 떠는 모습이 여간 귀엽지 않다. 몸집이 큰 다른 고양이들이 싸늘한 경계의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에 비하면 ‘뻔뻔이'는 다정한 녀석이다. 그런데 어젯밤에 그 ‘뻔뻔이'가 여자 친구를 한 마리 데리고 왔다. 생김새도 비슷하고 ‘뻔뻔이'보다 눈빛이 더 초롱초롱하고 털도 곱게 자란 녀석이었다. 두 마리가 가게 현관문 가까이 다가와 자기들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예쁜 자세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밥 달라'는 소리다.
갑자기 ‘뻔뻔이' 때문에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이렇게 자꾸 고양이 소식이 늘어나는 것은 새로운 고양이들이 자꾸 우리 가게 앞으로 오기 때문이다. 어쩌면 고양이들한테 우리 가게가 소문이라도 난 것일까?
아무튼 아픈 고양이를 데리고 다른 병원까지 찾아갔던 보람이 있었나 보다. 그녀가 보낸 이메일에는 새끼 고양이들의 근황도 적혀 있었다.
“저희가 데려간 고양이들은 첫번째 병원에서 들었던 얘기와는 달리 하루하루 기력회복하고 있구요! 점점 밥도 잘먹고 배변도 잘하고 이래저래 나아지고 있어요. ㅎㅎ 애들이 경계심도 겁도 없이 잘 놀고 사람도 무서워하지 않는 거 보면 이 동네 분들이 좋은 분들이라 잘해주셨었나 봐요. 완치 후에는 보호소 (입양될 때까지 안락사 안 시키고 케어해주는 곳이 있나봐요) 알아봐서 보내려구요.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두 분 다 너무 친절하시고 좋으신 분들 같았어서 남은 고양이들에 대해서도 마음이 놓여요. 다음에 제 친구와 함께, 그때는 볼펜을 빌리러가 아니라 식사하러 다시 한 번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날 밤 새끼 고양이들은 정말 가망이 없어 보였다. 첫 번째 그들을 진찰 했던 수의사의 진단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녀석들이 점점 건강해지고 있다니! 우리의 숨은 ‘히어로'들도 그날 가망이 없어 안락사를 시켜야 한다는 수의사의 말에 충격을 받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했는데 말이다. 그들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나 보다.
세상 사는 게 어떨 때 보면 참 재밌다. 물론 힘들 때도 많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 같다. 길 가다 아픈 고양이 새끼를 보고 그걸 잡아서 동물병원에 데려다주었던 그런 사람들도 세상엔 살고 있다. 물론 난 아직도 그들과 똑같은 상황에 처한다고 해도 아픈 고양이를 내 손으로 잡아서 동물병원까지 데려다 줄 자신은 없다. 하지만 그들 덕분에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다른 종류의 생명체가 지닌 삶도 소중하다는 것을 가슴에 느끼게 되었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탓일지 모른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까 마음의 여유는 생겨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것은 내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약하고 힘없는 존재를 아끼고 보호하려는 마음, 그것은 이미 내 안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걸 발견하고 느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일 테고.
오늘 아침은 고양이 덕분에 ‘히어로'들한테서 메일도 받고 기분이 좋다. 새끼 고양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다시 서촌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어차피 그들에게는 이곳이 고향일 테니까 말이다. ‘잘 살아라.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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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덕영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저자 / 다큐멘터리 PD / 서촌의 복합창조문화 공간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대표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김덕영 지음 (다큐스토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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