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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Aug 11. 2016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은 왜 객석이 바다로 향해 있을까?

'김PD의 인문학 여행' (17)

'그들은 왜 바다를 향해서 극장을 만들었을까?'


2010년 고대 그리스 유적지들을 탐험하면서 이스탄불에서부터 아테네까지 여행을 할 때의 일이다.  


난 조가비를 펼쳐놓은 듯한 예쁘장한 모양새의 고대 원형극장에 매료됐다. 피라미드가 고대 이집트를 상징하듯, 원형극장은 고대 그리스를 상징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전제군주의 절대권력과 죽음의 메타포라면, 고대 그리스의 원형극장은 민주적 시민사회와 활력 있는 삶의 메타포다. 난 그래서 거대한 피라미드보다는 '극장'이 좋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amphitheatre)은 객석이 모두 바다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철학의 시원이 되었던 '밀레토스(Miletus)', 신탁의 도시 '델피(Delphi)', 스파르타-아테네 동맹의 보물창고 '델로스(Delos)',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가 함께 연극을 관람했다는 '에페소스(Ephesus)',  에게 해의 아름다운 섬 '산토리니(Santori)', '일리아드'의 영웅들이 활약했던 고대의 도시, 미케네(Mycenae)까지 그곳에 남아 있는 고대 원형극장들은 애초부터 객석이 전부 바다를 향하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다.


물론 수 천 년의 세월이 흘러 에페소스 같은 경우는 바다가 땅으로 변했다. 지금 가서 보면 바다는 보이지 않고 척박한 땅만 보일 뿐이지만, 극장의 돌계단에 앉아 탁 트인 평야를 바라보며 '저 넓은 땅이 바다였다니'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왜 그들은 바다를 향해서 극장을 만들었을까?



"극장은 전망이 좋은 곳이자, 도시에서 가장 핵심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곳이었다. 때로는 극장에서 시민들이 함께 모여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 토론을 하기도 했다. 이럴 때의 극장은 무대가 아니라 토론의 광장이었다." - 졸저, <그리스의 시간을 걷다>


원래부터 바다를 좋아했던 민족이라서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향해 객석을 설계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연극에 열광했다. 연극이 상연되는 날이면 모두가 극장으로 모여들었다. 그것은 곧 도시의 방어에 구멍이 생길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늘날로 치면 영화나 오락거리에 열광해서 한눈을 팔 수 있는 순간을 의미한다. 어찌 보면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그러면서도 문화와 예술에 탐닉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다 같이 연극도 보고, 그러면서도 도시의 방어를 시민들 스스로 함께 책임지는 방법은 없을까? 극장의 객석을 바다로 향하게 설계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에게 극장은 곧 방어의 전진기지였다. 모두가 같이 공연을 즐기고 다 함께 공동체를 지켰다. 이럴 때 극장은 예술의 경연장이 아니라 도시를 지키는 망루로 기능했으며, 객석의 시민들에겐 도시 국가의 위험을 제일 먼저 발견하는 파수꾼의 역할이 부여됐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가 제일 잘 나갈 때의 이야기다. 역사적 원형이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그 안에 삶의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원형'이다. 그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다.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알고 미래로 나아가는 것.


요즘엔 '사드 정국' 속에서 올림픽 승전보를 즐기며 하루하루를 사는 재미가 있다. 오래된 그리스 돌덩이들 이야기를 꺼낸 것도 지금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 안보와 관련된 치열한 논쟁의 한 복판을 지나며 느끼는 착잡한 생각들을 좀 정리해 보자는 취지였다.


삶을 즐길 권리란 사회를 지키는 책임과 의무와 함께 부여된다. 기록에는 찾을 수 없었지만, 고대 그리스에서도 연극 도중에 적들이 쳐들어 온다며 거짓말 하는 사람들 때문에 공연이 취소되는 사건이 있었을 것이다. 한두 번은 모르겠지만 자꾸 반복된다면, 그런 선동꾼들은 도편추방이라도 시켜서 외국으로 쫓아내지 않았을까?


요즘엔 소위 배웠다고 하는 지식인들이 '사드 위협론'에 가세해서 사드 도입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정작 더 위험한 것은 '사드 위협론'이 아니라 논리의 과장과 오류,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정보의 남발이 아닐까 싶다. 논리적으로 치면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 좀 과격하게 표현하면 '선결문제 허위의 오류'다. 이유는 사드의 논란이 어디서 출발했는지만 살펴보면 간단히 알 수 있다. 원인이 북쪽에서 왔지, 남쪽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니까...누가 뭐래도 북쪽의 핵미사일 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것이 옳다. 거의 모든 사드 반대 논거의 핵심에는 이런 선결문제 미해결의 오류가 존재한다. 그것으로 답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논리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뜻이다.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란 문자 그대로 '문제(논점)를 먼저 해결하는 것이 요구되는 오류', 즉, 문제(논점)을 해결하지 않은 채 논점의 주장을 사실로 가정하여 사용하는 오류를 뜻한다. 누가 이런 오류에 빠지고 있는가를 잘 지켜보면서 올림픽을 관전하는 것도 시민사회의 필수요건이다. 고대 원형극장에 앉아 연극을 관람하던 고대 그리스 시민들처럼...

‪#‎고대아테네‬ ‪#‎원형극장‬ 
‪#‎사드정국‬ ‪#‎선결문제요구의오류‬



글쓴이: 김덕영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저자 / 다큐멘터리 PD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100세 시대, 늦은 나이에 두 번째 인생에 도전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김덕영 지음 (다큐스토리, 2013)


중년의 사랑을 그린  장편 소설, <내가 그리로 갈게>, 김덕영 지음
현재 작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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