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PD의 인문학 여행' (18)
6년 전 내가 처음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한 마디의 문장에 미친 듯이 끌렸다. '모든 책에는 저마다의 고유한 운명이 있다.' 라틴어로 원문으로는 'habent sua fata libelli'로 표현된다. 이 말은 2세기 후반 로마에서 작가이자 문법학자로 활동했던 테렌티아누스 마우루스(Terentianus Maurus)라는 사람이 남겨놓고 간 말이었다.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겠다는 마음을 먹으면서 느꼈던 두려움과 부끄러움, 내 안에 숨겨져 있던 거짓과 탐욕, 자유에 대한 갈망 등으로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하고 절망하던 순간. 이 라틴어 경구 한 마디는 나의 영혼을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마치 사슬에서 해방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6년의 시간 동안 나는 그저 '하벤트 수아 파타 리벨리' (habent sua fata libelli)라는 네 마디의 문장만을 외우고 또 외웠다. 그 말을 할 때마다 내가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했는지 모를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내 인생의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였다.
참고로 '아브라카다브라'는 고대 마법사들의 주문에서 기원한 말이다. 기원전 200년 전 고대 로마의 한 의사가 열병을 치료하기 위해 주문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주문을 종이에 적고 매일매일 한 글자씩 지워서 적어나갔다. 마지마 날에는 남아 있는 한 글자가 적힌 종이를 동쪽으로 흐르는 강물을 향해 어깨 너머로 집어던지면서 주술도 끝이 났다. 그러면서 환자의 열병을 치료했다고 한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다. 수세기 동안 전해지던 '아브라카다브라'의 주문은 중세에 들어와 맹위를 떨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흑사병으로 고통받으며 사람들이 죽어가던 시기, '아브라카다브라'는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치료의 주문이었다.
어원적으로는 '아브라카다브라'는 고대 중동의 언어였던 아람어 'abra' (אברא), "이루어지라" 와 'cadabra' (כדברא), "내가 말한대로" 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두 단어를 종합하면, '내가 말한 되로 될지어다'라는 뜻이 된다. 우리말 '말이 씨가 된다'라는 표현과 비슷하다. 헤브라이어로 '압레크 아드 아브라(Abreq ad habra)'가 기원이라는 설도 있는데, 그때는 의미가 좀 시적으로 변해서 '그대의 뜻을 죽음으로 보내라'가 된다. 무엇이 됐든 내가 입을 통해 밖으로 내뱉는 것들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말들이다. 심지어 중세의 신학자들은 '언어의 지향성'을 내세우면서 기도의 중요성을 역설한 사람들도 있다.
어느날이었다. 난 우연히 나의 글쓰기 주문, 즉 '하벤트수아파타리베리'라는 문장 앞에 또 하나의 문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건 바로 '읽어주는 자의 능력에 따라서...'(Pro captu lectoris )라는 표현이었다. 이 두 개의 문장은 이제 나에게 완벽하게 결합했다. 그런데 지난 시간 동안 오직 나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문장 하나가 전혀 새로운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다.
'읽어주는 자의 능력에 따라서, 모든 책에는 저마다의 고유한 운명이 있다.' (Pro captu lectoris habent sua fata libelli)
여기서 '읽어주는 자의 능력'이란 당연히 독자를 뜻한다. 순간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오타투성이 흠집 많은 책들을 위해 나에게 어디 어디 몇 장 몇 줄에 오타가 있으니 고치라고 메일과 문자로 성원해주었던 독자들이 떠올랐다. 나를 사랑해준 사람들도 떠올랐다. 그들은 내가 세상을 향해서 한 걸음을 더 옮길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었다. 서촌 통의동 인적도 드문 골목길에 와인 까페를 하나 차리고 사람들에 문화와 예술을 같이 나누고 즐기는 공간을 만들자는 뜻에 공감해주는 단골들이 떠올랐다.
때로는 그렇다. 온전하게 진실의 순간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조금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걸 깨닫는 것이 참 중요하다. 때로는 조금 뒤늦게 진실의 순간들이 물밀듯이 때로는 가슴 벅차게 다가오는 수도 있다. 그걸 거부할 수 있는 인간은 아마 하나도 없다.
중요한 것은 매 순간마다 조금은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기쁨... 외롭더라도 조금만 더 풀더미로 가득 찬 가지 않은 길을 가는 행복... 뒤늦게 새로운 사실 하나가 결합되면서 완벽한 변증법적 상승 기류를 타는 짜릿함...
이렇게 새로운 사실과 사실이 만나서 완전히 다른 의미로 발전하는 것은 단어만이 아니다. 때로는 세상이 일도 그렇다. 1981년 워싱턴의 힐튼 호텔에서 노동계 인사들과 오찬을 마치고 나오던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암살당했다. 폐에서 피를 토하는 레이건을 경호팀은 신속하게 조지 워싱턴 대학병원으로 이송했다.
수술팀은 레이건이 도착하기 직전 이미 만반의 수술 준비를 하고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레이건을 태운 경호차량이 응급실로 들어갔다. 당시까지 의식을 갖고 있던 레이건은 수술실 옆에 도열해 있던 써전, 외과의사들을 향해 조크를 날렸다.
"당신들이 공화당원이길 바랍니다."
실제로 당시 조지 워싱턴 대학병원에는 보수파인 레이건을 반대하는 민주당 지지 써전들이 상당수 있었다. 물론 레이건 수술실로 들어갔던 써전 중에 골수 민주당 지지자도 있었을 것이다. 보수의 수장, 레이건을 증오하는 써전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은 여기까지였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낙관주의, 상대방에 대한 믿음, 의식을 잃기 직전까지도 잃어버리지 않았던 자신감...레이건의 그 한 마디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레이건 암살 미수 30년을 맞아 몇 년 전 미국에서는 암살 사건을 종합적으로 회고하는 시도들이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수술실로 들어서기 직전 레이건이 했던 그 한 마디 조크에 화답했던 써전들의 이야기도 공개됐다. 그날 레이건의 말에 화답했던 서쩐의 말은 다음과 같다.
"각하! 오늘은 우리 모두가 공화당원입니다."
난 이 말을 듣고 한참 동안을 멍한 표정으로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를 찾는 게 오늘 글을 쓰는 이유다. 머릿속으로는 정리가 되지만, 글로 풀어내려면 좀 걸릴 것 같다. 정말 무엇이었을까? '아! 그래서 우리는 인간이구나...'라고 스스로 느껴지는 뿌듯함, 사는 것에 대한 의미, 타인에 대한 존중, 매너가 있는 삶......
그냥 한 마디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뭐가 됐든 그건 분명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나 싶다.
글: 김덕영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저자 / 다큐멘터리 PD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김덕영 지음 (다큐스토리, 2013)
전화: 070-8987-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