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PD의 인문학 여행'
'러시아 졸업생의 축제에서 알렉산드르 그린의 <붉은돛>까지'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모바일과 SNS만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니다.
인문학의 지식과 정보도 연결되어 있다.
애초부터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발전한 것이 지식이고 문화다.
오늘 아침 아주 우연히 붉은돛을 단
배가 폭죽 속에서 강물 위를 유유히
흘러가는 사진 한장을 봤다.
그런데 축제의 제목이 '러시아 졸업생의 축제'다.
9월 1일에 학기가 시작하다 보니
지금쯤은 러시아에선 졸업 시즌이다.
보통 11년 동안 같은 학교에서 동고동락한
친구들이다 보니 우정도 남다르다.
이들은 양복과 드레스로 멋지게 차려입고 파티를 즐긴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되는 것이 바로 '붉은돛'을 단 배의 출항을
축하하는 축제의 시작이다.
그런데 왜 '붉은돛'일까?
물론 러시아는 붉은 색이 어울린다.
장중한 베이스와 바리톤의 화음이 일색인
'붉은군대합창단(Red Army Choir)'에서부터
'붉은광장'까지 온통 붉은 이미지가 강렬하다.
러시아어 '끄라스나야'라는 단어는 붉다라는 의미지만,
아름답다라는 의미까지 포괄한다.
여기에 러시아 혁명과 사회주의 이념을 포괄하는
붉은 깃발의 이미지까지 가세하니 그럴 수밖에.
아무튼 그런데 왜 '붉은돛'이냐, 바로 이것이 오늘 나의 궁금증이었다.
계속해서 연결되는 정보들을 찾아나갔다. 역시 뭔가 있다.
러시아 졸업축제와 붉은돛을 단 배의 출항식,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그린의 소설 <붉은돛>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매일 바닷가에 나가 붉은돛에 얽힌 전설을 따라
누군가를 기다리는 소녀의 꿈을 담은 이야기.
그래서 '붉은돛'은 러시아에서는 희망, 미래, 인내에 관한 상징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어린시절 아솔은 붉은 돛을 단 배를 타고
멋진 왕자님이 그녀에게 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아솔은 매일같이 바닷가에 가서 붉은 돛을 단 배가 오기를 기다린다.
아솔을 제외하고 마을의 모든 사람들은 그녀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아솔은 언젠가 붉은 돛을 단 배가 올것이라는 말을 철썩같이 믿는다.
아솔이 18세가 되어 성년이 되는 날, 이 지역으로 온 어느 배의 선장이
그녀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선장은 아솔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배에 붉은 돛을 달기로 한다.
어느날 마을사람들 모두는 붉은 돛을 단 아름다운 배가 마을로 오는 것을 보게된다.
그 배는 아솔에게 다가오고 배에서 잘생긴 젊은이가 나와 아솔을 데리고 떠난다."
'졸업생의 축제'는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
도시의 축제로 채택해서 세계적인 축제로 발전했다.
화려한 불꽃놀이와 붉은돛을 단 배의 출항이
졸업생들에겐 평생 잊지 못할 추억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준다.
11년 동안 다녔던 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에게
사회가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는 문화적 축제다.
세상 살기 어려운 건 러시아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일 테지만,
저렇게 근사한 졸업 축제의 순간을 사회가 공유한다는 건 문화적으로
역시 저력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게다가 그 출발이 한 권의 책이었다니!
아무튼 우리도 좀 더 멋지고 근사한
졸업 축제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출처: 스푸트니크 한국어판)
#붉은돛 #알렉산드르그린 #러시아 #졸업축제
글쓴이: 김덕영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저자 / 다큐멘터리 PD / 서촌의 복합창조문화 공간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대표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김덕영 지음 (다큐스토리,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