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디든 떠날 수 있고,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
'김PD의 인문학 여행' (21)
2006년 난 '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었다. 그때 주목했던 것은 전 세계의 흥미롭고 트렌디한 여러 길들. 기술과 함께 도로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었다. 미국 워싱턴에 설치되었던 자동차가 다닐 때마다 전기를 발생시키는 도로를 시작으로 일본 홋카이도의 멜로디 로드까지. 실제로 이 멜로디 도로는 레코드판의 원리로 개발되었는데, 안전속도로 달려야 노래도 정확히 들린다.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느리면 LP 레코드판이 늘어지거나
패스트로 빨리 감기는 이상한 소리가 난다. 그렇게 다양한 실험들이 길 위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취재 막바지에 이르러 난 한 가지 고민에 빠졌다. 그것은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길로 무엇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였다. 산업화와 계량화, 효율성과 스피드가 미덕이 되어왔던 지난날의 가치관. 낡고 오래된 것들은 뒷전으로 물러나야 했고, 작은 것들은 제 목소리도 내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가 우리의 삶을 오랫동안 지배했다.
작은 골목길의 실종은 그렇게 하나 둘 시작됐다 난 그것이 부끄럽고 아쉬웠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주저
앉아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난 용기를 내서 세계 유명한 길들 사이에 서촌의 낡고 오래된 작은 골목길을 넣기로 했다. 그렇게 이 길과 인연을 맺은 지 8년. 난 다시 서촌의 골목길로 왔다. 이 길을 걷고 있노라면, 8년 전 세계의 길들 사이에 서촌의 작은 길들을 당당히 올렸던 그때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든다. 난 그렇게 매일 이 길을 걸으며 또 다른 작은 길을 찾고 있다.
<하루키에겐 피터캣, 나에겐 통의동 스토리가 있다> (10월 발간 예정). 이번 책의 마지막 Chapter IV 표제는
'나를 찾는 인생이라는 여행'으로 정했다.
서촌 골목길 까페 3년의 기록을 여행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궁극적으로 나에게로 돌아오는, 나를 찾는 인생이라는 여정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난 어디든 떠날 수 있고,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
#서촌 #골목길 #까페 #3년의기록 #통의동스토리 #나를찾는 #인생이라는 #여행
글: 김덕영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저자 / 다큐멘터리 PD
왼쪽부터 신간 <하루키에겐 피터캣, 나에겐 통의동 스토리가 있다>, 중년들의 사랑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내가 그리로 갈게>, 그리고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