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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Oct 05. 2016

사탕 한 알의 사연

'김PD의 인문학 여행' (22)

'김PD의 인문학 여행' (22)


'사탕 한 알의 사연' 


얼마 전 일이다.

날씨가 좋아져서 그런지 

요즘 통의동 골목길에는 예전보다

행인이 늘고 있다. 


대부분은 서촌에 여행을 왔거나

오래된 한옥들 사진을 찍기 위해

출사를 나온 포토그래퍼들이다.


행인이 많다 보니 가게 문을 잠그고

밥 먹으러 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

사실 임대표나 나나 좀 그런 것에는

개념(?)이 없긴 했다.

툭 하면 문 잠그고 돌아다녔으니 말이다.


그래서 요즘엔 저녁 식사를

가게 안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대충 냉장고를 뒤져서 먹을 만한 것들을

찾아 후라이팬에 들들 볶으면 그만이다.

때로는 브런치를 저녁 식사 대용으로 삼기도 한다.


그 며칠 전 무엇을 먹고 있었는지는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테이블 위에 몇 가지 

접시를 차려놓고 밥을 먹고 있던 것은

분명했다.


사실 우리 식단은 국물과 반찬,

특히 김치 때문에 '김.통.스'처럼 

와인이나 커피를 파는 곳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눈치 안 보고 밥 먹는 일이 

뭐 대단한 일도 아니고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니지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손님이 없는 경우에는 그렇게 식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 


한 숟가락 밥을 떠서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올려 우물우물 먹고 있을 때였다.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여성 한 분이

가게 안에 들어왔다. 


입 안 가득 뭔가를 우물거리고 있는 

나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오소오세요!"


입 안에 음식물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입술을 오무려서 인사를 했다.

대충 한 눈에 봐도 주인들이 

가게 안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주인은 우물우물 뭔가를 씹고 있고

손님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물거리고...

그런 약간 어색함을 깨듯이 그녀가 말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테이크 아웃해 주세요."


임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눈짓을 한다.

'난 다 먹었어. 내가 할게. 마저 먹어'

나도 눈짓으로 말한다. 

'알았어. 그럼 끝까지 먹을게.

고마워...'


어색한 손님은 가만히 가게 안에

있기가 불편했던지 계산을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천진난만한 주인은 천연덕스럽게

남은 밥을 싹싹 마무리했다.


임대표가 아메리카노를 내리는 사이,

난 테이크 아웃 잔을 준비했다.

창문 너머로 그녀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시선이 몇 번 교차했다. 


'깨끗하게 커피 잘 내리고 있는지 검사하나?'

속으로 그런 생각도 들었다. 

보통은 주문하고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이

90% 이상은 된다. 

나머지 10% 정도는 중정 마당에 나가

한옥 기와 지붕을 구경하거나

가게 안에 붙어 있는 사진들을 감상한다.


그녀가 달랐던 것은 

자꾸 우리와 시선이 마주쳤다는 점이다.

나는 입술 떨리지 않게 임대표에게 말했다.


"깨끗하게 잘 포장해...

좀 까다로운 사람 같아 보여"


임대표는 뭔소리를 갑자기 하고 있는지

모른 체 눈만 꿈뻑꿈뻑 거리고...

계속 우리를 쳐다보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난 깔끔하게 마무리해서 손님에게

커피를 건넸다.


"여깄습니다!"


자! 여기까지가 저녁 6시 경의 상황이다.

그날도 늘 그랬듯이 와인과 위스키를 

서빙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1시를 조금 넘겨서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향했다. 


늘 하던대로 경복궁역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넜다. 임대표랑 가게 얘기랑

연애하는 커플들 얘기를 하면서 

길을 걷던 중이었다. 

누군가 큰 소리로 아는 체를 했다.


"아니! 가게 밖에서도 이렇게 

다정하게 다니시는 거예요?!"


목소리의 주인공을 향해서

고개를 돌렸다.

어디선 한 번 본 것 같은 얼굴,

하지만 누군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사람이 우리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엉겹결에 우리도 "아. 네~" 하면서

아는 체를 했다. 


'그런데 이 분은 누구지?'


순간 저녁 시간에 아이스 커피 한 잔을

테이크 아웃했던 그 젊은 여성이 떠올랐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갑자기 가방에서 뭔가를 찾는다.

'뭘 찾는 걸까?' 

임대표와 둘이서 그녀 앞에서 서서 

어색한 침묵 속에서 몇 십초를 기다렸다.


드디어 그녀가 가방에서 찾을 걸 찾았는지,

손에 뭔가를 가득 움쳐쥐고는

나에게 팔을 뻗었다. 


"드릴 건 없고. 이거 드세요."


손바닥을 벌려 보니 흰종이에 포장된

커피 사탕이었다. 포장된 걸 봐서는 

국산은 아니고, 어디선가 수입한 사탕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사탕 하나 줄려고 

사람을 이렇게 길거리에 세워놓다니!

좀 어이가 없었다. 


난 처음에는 그 사탕이 요즘 유행하는

좀 귀한 사탕인 줄 알았다.

아. 왜 '허니버터스'처럼 물량이 없어서

품귀현상도 생기고, 그래서 유명해지는

과자도 있는데, 사탕이라고 예외는 아닐 테니까.


"감사합니다."


사탕 3개를 받아들고 임대표랑 하나씩

까먹었다. 나머지 하나는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녀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잘 가라고

인사를 했다. 나도 엉겹결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렇게 그녀와 길거리에서

작은 헤프닝을 끝으로 우리는 각자 갈 길을

갔다.


입 안에 든 사탕을 이리저리 굴려가면서

임대표와 나는 그 알 수 정체불명의 여성에

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집으로 갔다.


여기까지만 알았다면, 아마 난 그 사탕을 준

손님에 대해서 영원히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커피 한 잔 주문하는데 무척이나 우물쭈물 거리고,

커피를 내릴 때도 계속 우리를 감시(?)했던 사람,

그리고 길거리에서 사탕을 주려고 몇 분 동안

우리를 길에 세워놓았던 사람으로 말이다.'


그런데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다.

끝을 보지 않고 전체를 다 봤다고 말할 수 없듯이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에 관한 진실,

그 사람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사람이 누군지 말할 수 있을까.


오늘 아침 임대표가 갑자기 놀라는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저기 있잖아! 얼마 전에 사탕 준 여자 분..."

"왜? 그 사람이 어때서?"

"그 사람 우리 밴드 멤버야!"

"진짜?"


네이버 밴드에 '김PD의 통의동 스토리'라는

걸 만들어서 몇 년째 운영 중이다. 

회원수만 600명이 넘는 나름 큰 모임이다.

우리 역시 그 멤버들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우리에게 사탕을 준 여성은 4월 달에 

우리 밴드에 가입했던 심**이란 분이었다. 

이미 나와도 밴드를 통해서 온라인 상으로

몇 번 대화도 나눈 사람이었다. 


당연히 그녀 입장에서는 

우리가 친숙한 사람이었을 터!

안타깝게도 우리만 그녀가 누군지

몰랐다는 사실! 


난 그녀가 우리 밴드의 멤버라는 가정 하에

그날 있었던 일들을 그녀의 입장에서 재구성했다.

아마도 이랬을 것이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저녁 때 모임이 있는데,

일찍 서촌에 도착했네. 

가만... 여기 내가 밴드로 가입한

그 좀 이상한 까페가 하나 있지.

주인들도 좀 지멋대로이고...

그래 남은 시간 동안 '김.통.스'에나

가 봐야겠다. 가서 첨이지만 

김PD랑도 인사도 하고...'


어쩌면 그렇게 그녀는 경복궁역에서

통의동 골목길까지 발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어스름 어둠이 내리는 골목길.

꼬마 전구 불빛이 비치는 '김.통.스' 간판이

보이자 그녀는 안도의 숨을 쉰다. 


'찾았다. 뭐 어렵지도 않네.

주인들한테 뭐라고 소개를 할까?'


그녀는 약간은 긴장된 얼굴로

'김.통.스' 현관으로 들어선다.

그러다 천연덕스럽게 저녁 밥을 먹고 있는

김PD랑 시선이 마주친다. 

테이블엔 저녁 밥상처럼 차려진

끼니들이 놓여 있다. 

'반가워요! 저 밴드 멤버에요.'하고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려고 했던 그녀는

입 안 가득 뭔가 우물거리는 김PD를 보고

할 말을 잃어버린다.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다가 

결국 한 마디 꺼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테이크 아웃해 주세요."


밥 먹는 주인 앞에서 아는 체를 하기

어려웠던 그녀는 결국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곁눈질로 계속 김PD와 임대표를

번갈아 바라본다. 

한 마디라도 하고 가야 할 것은데...


그 순간 김PD는 임대표가 귓속말로

속삭인다. 


"깨끗하게 잘 포장해...

좀 까다로운 사람 같아 보여"


아...... 난 그것도 모르고.....

그녀가 까다로운 손님이라고만 생각했으니....

그녀는 반갑게 인사라도 하고 싶었을 텐데 말이다.

그것이 저녁 때 그녀와 우리가 

서로 말 못하고 어색하게 마주보고 

있었던 상황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시 밤이 된다.

우연히도 우리는 다시 조우한다.

광화문 한 복판, 횡단보도 앞에서.


'이 사람들 또 만났네.

아까 인사라도 할 걸 그랬어.

그래도 이렇게라도 다시 만났으니 참 반갑네.'


아마도 그래서 그녀는 반가운 마음을

어떻게라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가방을 뒤져서 사탕 세 알을 꺼낸 건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것도 모르는 김PD는 속으로 

'참 이상한 사람도 다 있네'하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공교롭게도 일이 이렇게 될라고 했는지,

그날 그녀가 준 사탕 세 알 중에서

두 개는 우리 둘이 나눠 먹고 

한 알이 남아 있었다. 

가방에 넣고 다니던 거였다. 


그래서 이 사탕 한 알을 버리지 

않았던 걸까? 

모든 사물에는 고유한 인연이라도 

있는 것일까?


아무튼 그 사탕 한 알을 여러분에게 공개한다.

남들이 보면 하잖은 사탕 한 알이겠지만,

우리에겐 참 고마운 마음의 선물이었다. 


글: 김덕영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저자 / 다큐멘터리 PD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늦은 나이에 두 번째 인생에 도전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장편소설 <내가 그리로 갈게>, 2014년

작가의 책들,  <유레일 루트 디자인> (오프하우스, 2010년), <세상은 모두 다큐멘터리였다> (당대, 2011년), 

<그리스의 시간을 걷다> (책세상,2013년)


작가는 서촌 통의동 골목길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하면서 세상과 교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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