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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Sep 21. 2016

'우리는 왜 악마를 보아야 하는가?'

다큐멘터리 영화, <The Act of Killing>에 대한 감상

'김PD의 인문학 여행' (20)


'우리는 왜 악마를 보아야 하는가?'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았다. 제목은 <The Act of Killing>, 2012년에 제작되어 국내에는 2014년에 개봉되었다. 감독을 맡았던 죠수아 오펜하이머에게는 하버드를 졸업한 이후에 제작한 첫 작품이란다.


뭘 어떻게 써야 할지 어리둥절하게 만들면서도 영화를 본 감상을 꼭 글로 써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드는 영화였다. 다큐멘터리는 1965년에 실제 일어났던 인도네시아의 학살 사건을 다루고 있다. 지식인, 노동자, 화교를 포함해서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대학살의 주동자는 불법 무장단체 판차실라와 그와 동조하는 '프레만'들. 판차실라가 현재 인도네시아 전국에 300만 명이나 달하는 회원수를 지니는 막강한 실체를 과시한다면, '프레만(freeman)'은 일종의 퇴물이 되어가고 있는 옛날 동네 양아치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물론 1965년 상황으로 돌아가 보면, 그들은 동네 양아치 정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군부와 독재정권의 비호 아래 벌어진 대학살의 주인공들이었다. 다큐멘터리는 40년이 지나 학살의 주인공들에게 자신들이 저지른 끔찍한 일들을 재현해보는 영화를 찍자는 제안이 이뤄지면서 시작되었다. '역사는 승리한 자들의 편이다'라고 자랑하듯 떠들어대며 카메라 앞에서 자신들이 벌였던 살해의 행위를 재현(The Act of Killing)하는 과정을 카메라는 묵묵히 따라가고 있다. 감독의 시선은 철저히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그걸 보는 관객의 시선은 잔인하면서도 고통스럽다.


'인도네시아, 1965년, 대학살'


먼저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도네시아 역사에 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20세기 중반의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우리의 역사에서 벌어졌던 '대학살(genocide)'의 근원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사건도 1945년 2차 대전의 종식과 함께 시작되었다. 11년 동안의 투쟁 끝에 네덜란드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인도네시아는 1956년 2년 자주독립국을 선포한다. 당시 1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수카르노가 내세운 정치 이념은 '나사콤(Nasakom)', 즉  NASionalisme + Agama + KOMunisme을 줄인 말이다. 민족주의와 종교, 공산주의를 혼합하는 일종의 대화합 정책이었다. 때문에 1960년대 중반 인도네시아는 300만 명의 당원과 1,700만 명의 지지자를 확보한 소련, 중국 다음으로 큰 공산당을 확보한다.


문제는 어느 시대나 그렇지만 신생 독립국으로서의 경제적 성과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는 점. 먹고 살기가 불안하기 때문에 민심이 흉흉해지고,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정국을 어지럽게 만든다. 이 와중에 1965년 9월 30일, 당시 대통령인 수카르노를 지지하는 공산주의자들이 주축이 되어 군부 장성 6명을 살해하는 일종의 친위 쿠데타가 발생한다. 친공산주의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서 일어난 친위 쿠데타는 하루만에 진압이 되었고, 이것은 기존 정권에 치명타를 안긴다. 수카르노 대통령은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받고 1966년 5월 실각한다. 그 과정에서 쿠데타를 진압하는데 공을 세웠던 수하르토가 권력을 장악한다. 동시에 군부와 대척점에 있었던 공산당을 와해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영화는 바로 이 시기에 벌어졌던 대학살을 다루고 있다.


'어떻게 이런 기획을 할 수 있었을까?'


애초에 감독에게 인도네시아 노조에 관한 다큐멘터리 제작 의뢰가 들어온 것이 계기였다. 하지만 막상 인도네시아에 초청이 되었지만, 영화는 몇 개월 못 가서 제작 중단이라는 조치가 내려진다. 좌파 세력이 온존할 수 없는 인도네시아의 현지 분위기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1965년 대학살 사건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공산당은 불법이다. 2억 5천만 명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인 인도네시아 사람들 입장에서는 종교를 부정하는 공산주의는 애초부터 손을 잡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100만 이상이나 학살이 이뤄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백그라운드가 있었던 것이다. 종교가 이념을 압살했고, 대학살을 묵인했다.


비록 노조에 관한 영화는 제작이 무산되었지만, 감독은 이 과정 속에서 '인도네시아 대학살'의 반인간적인 만행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대학살의 배경에 미국이 개입되어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동남아시아에서 공산주의 세력이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 했던 미국 정부가 반공주의자였던 수하르토 정권을 암암리에 지원했다는 정황을 포착한다. 무려 40년이나 지났지만, 아무도 그 사건에 관해서 쉽게 입을 열 수 없는 암울한 현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편에서 기록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40년 전에 벌어졌던 대학살의 주역들을 공영방송이 영웅이라 칭송하는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를 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포기하고 말 것인가? 바로 이때 감독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하나 얻게 된다. 누군가 자조적인 이렇게 목소리로 말했다.


"피해자들은 절대로 이야기를 안 할 것이다. 차라리 피해자의 시선이 아니라, 가해자의 시선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때?"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해 감독은 피해자에서 가해자들로 시선을 옮긴다. 그리고 마흔 번째로 만났던 가해자 안와르 콩고를 통해서 영화의 스토리를 이끌 주인공을 발견한다. 그 역시 1965년에서 1966년까지 벌어졌던 대학살 과정에서 1,000명 가량을 살해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원래 특정한 직업 없이, 극장 앞에서 암표를 팔면서 먹고살던 평범한 젊은이였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를 즐겨 보고, 제임스 딘이나 존 웨인 같은 스타들을 동경했다. 어느 날 공산주의자들이 미국 영화 상영을 저지하기 시작하자, 안와르 콩고는 생계의 위협을 느꼈다. 본인 스스로 '프레만'이 되어 공산주의자 색출에 가담하게 된 과정을 그렇게 증언하고 있다. 여기서 '프레만'이란 '프리맨'(freeman)의 인도네시아식 발음으로, 자유을 뜻한다. 모순이다. 자유인이 자유를 압살했으니 말이다.


'나는 제작 기간 내내 공포심을 느꼈다.'


감독은 이 영화 한 편을 찍기 위해서 무려 5년의 시간을 버텼다. 학살의 주역들, 천 명이나 되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던 안와르 콩고와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과 어울려 2만 시간 분 이상의 촬영을 했다. 대단한 기개다. 정의를 위해서 진실을 밝히겠다는 각오 없이는 불가능했을 일이다. 이런 감독을 돕기 위해서 베르너 헤오조크 같은 명감독들이 음으로 양으로 지원을 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보면 알겠지만, 'anonymous', 즉 '익명'이라고 자신들의 이름을 밝혀야 했던 수많은 인도네시아 현지인들의 도움도 있었다. 영화 끝나고 검은 배경 속에 끊임없이 올라가는 'anonymous'라 적힌 자막을 보는 것도 잔잔한 감동을 준다. 꼭 놓치지 말 부분 중 하나다.


도대체 무엇이 감독을 그렇게 버티게 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그것이 제일 궁금했다. '나라면 과연......?'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이다. 겁도 났을 것 같다. 감독의 심정은 몇몇 인터뷰와 기사를 통해 미뤄 짐작해 볼 수 있다.


'가해자 스스로 자신이 저지른 학살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내릴지, 어떤 감상에 젖을지, 과연 인간으로서 마지막 양심이라도 보일 수 있을지......'


영화가 무게감 있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그런 감독의 진중한 시선 덕분이다. '대학살'의 진실을 밝히고, 군부독재의 잔인함과 부정과 부패, 치부를 세상에 고발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나에게는 감독의 그 처절하기까지 한 냉정한 시선이 궁금했다. 그걸 위해서 5년의 시간 동안 두려움을 이겨냈던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래서 이 다큐멘터리는 잔인하게 인간을 살해하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지만, 슬플 정도로 인간적이다.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는 한국의 근현대사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마치 계속해서 우리 사의 한 부분을 들여다 보는 느낌이 들 정도다. 해방과 좌우의 이념갈등, 대립, 양민학살, 1980년대 군부독재를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폭도'로 몰려 죽임을 당했던 우리의 역사. 어쩌면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내 속을 불편하게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끝까지 봐야 했다. 아무리 잔인한 묘사가 등장해도 그걸 끝까지 지켜야 봐야 했다. 이렇게 사명감을 갖고 영화 끝까지 본 기억은 별로 없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만들었던 민주주의 역사가 자랑스러웠다. 1980년대 엄혹한 군부독재의 시절 속에서 과연 우리가 정의를 이뤄내지 못했다면, 그래서 지금도 억울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단 한 마디조차도 고발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살고 있다면, 내가 본 저 영화 속 세상은 바로 우리의 현실일 수도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영화였다. 그것이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악마를 똑바로 보아야 하는 이유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끊임없이 자기에게 묻는다. '넌 누구이며, 왜 살아가고 있는가? 너의 과거는 너의 현재와 얼마나 닮아 있고, 또 무엇이 다른가? 그래서 너의 미래는? 넌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가?' 그런 물음을 던지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난 믿고 있다. 이 영화는 나보다는 영화 속 주인공인 대학살의 주역, 애국주의 영웅, 1,000명을 학살하고 스타가 되었던 전대미문의 '인간' 안와르 콩고에게 묻고 있다.


"당신도 정말 슬픈가요?"


글: 김덕영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저자 / 다큐멘터리 PD



왼쪽부터 신간 <하루키에겐 피터캣, 나에겐 통의동 스토리가 있다>, 중년들의 사랑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내가 그리로 갈게>, 그리고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작가는 서촌 통의동 골목길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하면서 세상과 교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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