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나도 모르게 무대에 올라와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지원서를 낸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 나는 이곳에 서 있었다.
주어진 배경, 정해진 등장인물, 예상 가능한 갈등 구조,
그리고 사람들은 말한다.
“너만 잘하면 돼.”
“다 그렇게 살아.”
“그 나이면 이 정도는 해야지.”
무대는 너무 자연스럽게 세팅되어 있었다.
심지어 내가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만큼.
처음엔 별 의심 없이 따랐다.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웃을 땐 웃고, 울어야 할 땐 울고, 박수칠 때 함께 박수를 쳤다.
그게 '정답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어색해졌다.
모두가 환호하는 장면에서 나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고,
사람들이 외워둔 듯 쏟아내는 대사 속에 나는 점점 고요해졌다.
혹시… 이건 내 연극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타인의 시선으로 쓰인 각본을 연기하고 있었던 걸까.
그럼 진짜 나는 어디 있었던 걸까?
그리고 그 질문이 꼬리를 물 때,
드디어 나는
‘이 무대는 한 번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자각은 두려웠지만, 동시에 자유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