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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용 알비스 Jun 12. 2023

자폐인에게 레드카펫을 깔아주세요!

파란만장 자폐인 - 8 : 지금, 나에게도 친구라는 것은 있다!

사람들은 내가 자폐인인 것을 말하면 또 의심하는 것이 있습니다. 친구가 있느냐 없느냐 이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우영우 변호사조차 동그라미라는 별나지만 재미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런 친구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논쟁은 치열합니다. 자폐인들은 인간관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문제는 어쨌든 있습니다.


저도 사실 자폐인에 대한 편견 중 하나인 ‘친구가 없을 것이다’라는 명제는 절대 사실이 아니라고 밝힐 수 있습니다. 오히려 친구들과 논 적도 있었다는 것을 밝힙니다. 그렇게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죠! 제 친구 라인은 한쪽에만 있는 것이 아닌 여러 곳에 있습니다. 재미있게 같은 것을 좋아하다가 만난 친구, 같은 활동을 하다가 만난 친구들, 같은 공간에서 친구가 된 부류들, 이제는 그 너머의 친구들까지! 매우 다양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제 친구 중에서 가장 큰 부류는 ‘재미있게 같은 것을 좋아하다가 만난 친구’ 일 것입니다. 게임부터 시작해서 예전에 재미있게 봤던, 지금도 그때 이야기했던 것들 몇 가지를 기억할 정도인 KBS 2TV <미녀들의 수다> 이야기 같은 것도 있습니다. 게임을 같이 했던 친구는 이제는 다른 인연까지 겹치게 되어 오히려 제가 심복이 되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그 친구는 저와 코드가 상당히 비슷해서, 서로 같은 것을 가지고 ‘드립’을 치는 것은 일상입니다. 그리고 해외여행도 죽이 잘 맞아서 같이 해외여행을 가기도 합니다. 특히 2016년 대만 타이베이 여행이나 2023년 도쿄 여행 프로젝트 모두 그 친구와 같이 추진하는 것입니다. 다만 유일한 걱정은 종교 성향이 너무 안 맞아서 이 부분을 일부러 ‘서로 타협하지 않고 내버려 두기’라는 의외의 정책으로 합의했습니다. 즉, 종교 문제는 ‘따로국밥’ 원칙으로 처리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또 하나의 게임 관련 친구는 졸지에 다른 취향까지 똑같다는 사실까지 밝혀져서 지금은 그쪽 이야기도 가끔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6년 핀란드 메탈 밴드 나이트위시 내한공연 때 인스타그램에 공연을 보러 갔다고 올렸더니만 잠시 뒤 그 친구가 예상하지 못한 댓글을 달았는데, 자기도 그 공연을 보러 왔다고 쓴 것입니다. 그래서 졸지에 공연이 끝나고 그 친구를 만나 간단한 음식을 나누며 잡담을 좀 더 했습니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전산기사로 일하고 있는데, 그래서 컴퓨터 관련 조언을 가끔 해주기도 합니다. 이번에 노트북을 새로 장만하겠다고 내가 이야기를 했더니만 ‘거 그건 이렇게 하시고 특정 브랜드는 구매하지 마세요!’라고 그 친구가 조언을 줄 정도였습니다.


<미녀들의 수다> 관련 친구는 한 명 있고, 심지어 몇몇 출연 패널들은 지금도 SNS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 친구는 예전에는 지방에서 살았는데, 얼마 전 서울 근교로 집을 옮기고 직장도 서울권으로 옮겼습니다. 저는 이 친구를 묶어놓을 수 있는 명분이 있는데, 몇 번 돈을 꿔간 것을 이용해서 묶어놓기도 할 정도입니다. 아직 완제가 되지 않아 집에서는 재정 문제를 들먹이면 그때 빌려준 돈을 도로 받아오라는 말이 ‘자동 계산식’처럼 적용되곤 합니다.


몇몇 출연 패널은 직접 만나기도 했었고, 지금도 SNS를 통해 서로가 의식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SNS에서 이야기했다가 다른 친척 귀에까지 들어가서 그 친척한테 호되게 혼나기도 하는 등 대단한 인연이기도 합니다. 특히 가장 관계가 깊은 핀란드인 패널 따루 살미넨은 그녀가 미수다 이후 ‘따루주막’ 주점을 운영했을 때 더 친해져서 가끔 술을 마시러 가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대학 졸업전시회 초청을 받아주고 진짜 나타나서 축하도 해줬고, 한겨레신문에 글을 써서 나와의 관계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아예 제 특징을 알고 있었고 ‘주막’에서의 주량까지 조정하여 ‘주막’에서의 절대 원칙은 ‘막걸리는 마실 수 있지만 500ml까지만 마실 수 있다’라는 철칙을 세웠을 정도입니다. 


그 외 다른 패널들과도 SNS를 통해서 소식을 주고받고 있을 정도입니다. 몇몇 패널은 SNS를 통해 근황을 확인할 정도입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인 패널 윈터 린 레이먼드(Winter Lynn Raymond)는 제가 장애등록 사실을 대외적인 인사에게 처음으로 공개한 상대였습니다. 그녀는 그 고백을 들어주면서 저를 격려하는 댓글을 달아줬고, 그녀와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생일 축하메시지 정도는 서로 주고받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그녀의 부친상을 애도하며 ‘당신 아버지는 하늘에서 하느님을 만나러 갔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당신이 한국인을 살렸다’라는 말을 해줬는데, <미녀들의 수다>에서 그녀가 직접 토로한 미국 의료비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의 의료 민영화를 반박하는 대표적인 구호로 쓰이기도 해서 그녀의 한마디가 한국의 건강보험을 지켜줬다고 저는 생각할 정도입니다. 지금 그녀는 결혼했고 가이아라는 딸을 두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같은 활동을 하다 만난 친구도 당연히 있습니다. 오죽하면 저는 CBS 라디오 <한판승부> 인터뷰 과정에서 살짝 언급했을 정도인데, 예전에 제가 민주당 대학생 정책자문단이라고 일종의 정치 교육반에서 활동할 때 만난 친구는 지금도 가끔 만나서 밥도 먹고, 수다도 떨고, 가끔은 그 친구가 경상남도 창원, 정확히는 예전 마산 출신이라 ‘마산아재’라 부를 정도로 NC 다이노스의 팬이라 NC 다이노스가 잠실로 원정경기를 올 때 일부러 표를 사주고 같이 응원을 갈 정도입니다. 


대학시절 예술창작 동아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만난 친구들은 지금은 연락이 뜸해졌다는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다만 몇몇 친구들이 박근혜 정권 시대의 ‘예술인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갔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명단을 읽다 보니 웬만한 제 예술창작 동료들은 죄다 이름에 올라갔다고 합니다. 저는 알 수 없는 원인으로 그 명단에 빠져있습니다. 일설에는 제가 세월호 관련 연판장이 돌고 있을 때 그들이 연판장을 제게 주지 않았던 것이 명단에서 빠진 이유라고 말하고 있다 합니다.


2014년, 대학 동문의 졸업전시회에 참석한 나. 그 동문은 지금도 나에 대한 프로필 사진을 이것으로 하고 있다고


같은 공간에서 만난 친구도 있습니다. 다만 학교 친구라기에는 대부분 대학 동문들이 많고, 초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은 겨우 딱 한 명 있을 정도입니다. 역시나 학교폭력의 여파는 이렇게 남아있는 것입니다. 학교폭력 때문에 초중고등학교 시절은 지워버리고 싶었다는 생각이 이렇게 제 친구관계에 영향을 끼쳐 그 잔재까지 남아있을 정도니까요. 대학 전공이 사진이다 보니 사진 관련 활동을 하는 대학 동문들이 많은데, 동문회 회의에 학과 존폐 문제로 한 번 갔다 왔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가끔 학부 졸업전시회에 가서 만나기도 합니다. 교회 생활도 하다 보니 교회 친구들도 있는데, 교회 누나들은 제게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같은 이미지로 남아있는데 실제로 한 누나뻘인 자매는 다른 동네에서 야구선수들도 오는 닭갈비집을 하는 것으로 유명해서 교회 청년회는 으레 그곳으로 가서 회식을 할 정도입니다. 그쪽 언니는 비행기 승무원이라 항공 여행에 대해 궁금하면 그 누나에게 물어보기도 할 정도입니다. 요즘은 그 누나도 ‘이제 지용이도 항공여행에 대해 좀 알고 있네!’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 외에는 음성대화 기반 SNS인 ‘클럽하우스’를 통해 만난 친구도 있어서, 가끔 클럽하우스 수다방에 가서 놀기도 합니다. 단지 요즘 제 스마트폰에 문제가 생겨 집에서 보안 유지가 너무 어려워서 접속을 제대로 못하는 것은 있긴 있습니다. 음성 대화가 밖으로 새어 나와 정기 대화시간인 야간에 조용하지 못해서 집에서 누나가 자주 타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폐인들끼리도 친구여서, 이제는 아예 estas라는 자조모임을 결성하여 자폐인 그룹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사실 estas는 역사가 오래되어서, 2013년 9월 13일에 결성되었습니다. 본격적인 활동은 2016년부터였고 지금은 대표적인 한국의 대표적인 자폐인 그룹으로 성장했습니다. 외부에서도 estas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니까요!


이렇게 제 친구들 리스트를 뽑아봤습니다. 이렇게 길게 친구들을 소개한 것은 결국 한 가지 편견을 확실히 깨기 위해서입니다. ‘자폐인은 친구를 사귀기 어렵다. 그리고 그 친구는 소수다’라는 편견 말입니다. 그것은 완전히 거짓된 명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속으로 나아가서 다양한 친구들을 만난다면 친구들은 매우 많이 늘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자폐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우리들이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제가 슬퍼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자폐인들도 친구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하나라고 할지라도 진정한 친구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자폐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세상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인연을 만들어 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폐인들에게 친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친구를 만들어낼 수 없게 하는 것이 더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폐인들이 세상에서 살 수 있게 된다면, 저는 자폐인 당사자들에게, 또 자폐인의 부모나 그들과 관련된 전문가들에게 일제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자폐인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레드카펫을 깔아주세요!”라고 말입니다. 레드카펫이 열리면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여 주목받듯이, 그런 친구들이 다양하게 줄지어 등장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자폐인들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다양한 세상과 교류할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자폐인들이 진정 기다리는 ‘레드카펫이 깔리는 순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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