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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용 알비스 Jul 07. 2023

직장생활이라는 우주의 보헤미안이 되어

파란만장 자폐인 - 9 : 2013년 2월부터 지금까지, 직장생활 이야기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면, 일자리 사정이 제일 편안했던 시절은 처음 2년과 중간의 1년 몇 달, 즉 3년 얼마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를 빼놓고는 직장 사정이 안정적으로 흐를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2013년, 장애인개발원에서 업무를 보던 필자


지난 2013년 2월 27일, 나는 이 험난한 사회생활의 문을 열었습니다. 졸지에 뽑힌 장애인개발원 생활을 시작으로 2년간의 계약직 여정을 거쳐 엄청난 모험을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시작된 ‘일자리항해시대’는 그야말로 웬만한 일본 컴퓨터게임 대항해시대 시리즈에서나 볼법한 엄청난 모험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런 직장에도 가보고, 저런 직장에도 가보고, 별 빌런들이 있는 직장들도 가보고, 성취를 얻기도 했고, 배신을 당하기도 했고, 심지어 임금체불까지 경험해 봤습니다. 그렇게 매우 험난하게 직장생활 10년을 치른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10년의 생활을 후회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것이 지금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믿습니다. 이제 제 집기의 상당수는 제 비용으로 다 치러냈고, 지금 이렇게 쓰고 있는 컴퓨터도 사실은 제 돈으로 산 것이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지만, 이제는 당당히 내 돈 주고 사 올 수 있습니다. 심지어 제 카메라도 사진생활 18년 만에 진정한 의미의 제 돈으로 산 제 카메라를 손에 쥘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년 가까이 입었던 패딩도 2023년 1월에야 새것으로 제대로 샀을 정도입니다. 예전 패딩은 어린 시절의 제 사진에도 나왔던 패딩이라 역사가 매우 깊었는데 이제야 폐기했을 정도입니다. 


제 삶은 매우 윤택해졌고, 덕택에 다른 부수입도 챙기면서 돈도 벌게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실 제 카메라는 부수입들을 긁어모아서 샀던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부수입과 주수입인 월급을 챙기면서 사는 삶은 매우 큰 진전을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조건에 있어서는 조금 까다로워진 분위기입니다. 다른 직원들도 똑같이 시간을 줄이지 않는 한 8시간 노동 원칙은 필수이고, 최저임금이나 4대보험 보장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심지어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안 썼다고 뭐라고 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졸지에 노동법에 적힌 몇몇 규정은 거의 외우다시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자폐인들에게 최대한 나가서 일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최대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면 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누가 치료, 치료를 떠들어도 결국 그딴 것들에게 되돌려주면 ‘최고의 치료’는 다른 것이 아니라 ‘직장생활 그 자체’가 ‘가장 좋은 치료’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금융치료인지 뭔지 그런 말도 있다곤 합니다만, 어쨌든 직장생활이 가장 좋은 ‘치료’ 방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회의 자폐 관련 정책의 목표가 고용 활성화와 최대한 직장생활을 유도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저는 장애 관련 연설을 나가면 언제나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도 직장생활을 하고 나니 매우 행복하기도 합니다. 가끔 일 사이에 공백이 생긴 날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는 날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직장생활을 매일같이 즐기다 보면 결국 직장생활의 행복은 가까이에 오고, 그 뒤에 오는 짜릿한 주말과 휴일, 휴가는 그야말로 ‘쭉 빨아서 마시는 시원한 음료’ 같은 존재입니다. 특히 여름 시즌이 되면 본격적으로 휴가 논의가 싹트기 마련이라, 여름 시즌, 늦어도 가을 시즌에는 휴가 일정은 그렇게 하나라도 짜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번잡한 7월~8월을 피해 9월 이후에 휴가를 가기도 합니다. 실제로 11월에 휴가를 간 사례가 2016년에 있었습니다.


아마도 저는 몇 년을 더 간다고 해도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차라리 돈 벌 길만 만들어놓고 이 우주를 자유롭게 움직이며 일하며 사는 우주의 보헤미안처럼 살아가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이야기한 적도 있었습니다. 돈 벌 길만 찾으면 언젠가는 직장생활이라는 우주의 보헤미안이 되어 제가 여기저기를 다니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연설을 하고 연구를 하는 등 자유롭게 이 우주를 여행하며 이 우주에서 살아남는 방법도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제가 방송에 적당히 나오면 괜찮을 것 같다는, 엉뚱하지만 어떨 때는 진지하기도 하다는 일본 출신 방송인 사유리와 비슷한 콘셉트로 방송에 가면 꽤 재미있게 살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 사람도 있으니 말입니다.


자폐인이 보통의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것도 엄청난 모험 중 하나라고 봅니다. 자폐인이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자 모험일 수 있고, 직장이라는 세계를 통해 경제적 수익뿐만 아니라 소위 말하는 커리어를 쌓는 기회가 되기에 그렇게 점점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우주를 모험하는 것과 같은 것이 바로 직장생활입니다. 저는 기꺼이 그 직장생활이라는 끝없는 우주여행의 길을 택하고 계속 방랑의 길을 떠나고 있습니다. 우주 어딘가에 있다는 진정한 착륙지를 찾아서 말이죠.


자폐인들의 낮시간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결론은 돌봄 부담은 어떻게든 생기게 마련이고 그 시간을 보내는 제한 시간도 별로 없는 그런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폐인이 일하러 가면 결국 부모에게도 좋은 것입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통계는 발달장애인이 취업했을 시 돌봄에 들이는 시간이 약 50% 감축된다는 조사통계를 내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저도 사실 옛날이었으면 돌봄 수요가 많았겠지만, 요즘 집에서 걱정하는 것은 오래 일하는 것과 그냥 지각이나 하지 말기를 바랄 뿐입니다. 누나는 제때 집 대출금 상환 부담금을 내는 것 말고는 그렇게 크게 염려하는 사안은 없습니다. 가끔가다 ‘쓱타임’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마트에 접속해서 가공식품이나 공산품 등 생필품을 한 달에 한 번 조달해올 때 제 카드를 빌리는 것 말고는 집에서 그렇게 크게 바라는 사항은 없어졌습니다. 


그 직장생활은 자폐인들에게는 대단히 좋은 것이기도 합니다. 자폐인들에게는 어른이 되어 소속감 이런 것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주말이나 휴일, 휴가를 빼면 계속 일하니 매일매일의 삶이 보장되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으니 말입니다. 단순한 매일매일의 삶이 이렇게 헛되지 않고 결국 잘 지내다 보면 그렇게 시간이 훅 가버리는, 아침에 출근해서 일 별로 안 했나 싶으면 결국에는 일을 다 해버리고, 적어도 오늘 할 분량이라도 마치고 나면 벌써 퇴근시간이 되는 그런 순식간에 시간이 ‘삭제’되는 기적을 맛보기도 합니다.


저는 일을 하다 보면 결국 하루가 훅 가버리는 일을 매번 경험합니다. 열심히 작업을 하고 나고 보니 벌써 시계는 퇴근 시간이 다가왔음을 알리기도 합니다. 으레 퇴근 1시간 전부터는 스마트폰 충전에 들어가는 등 본격적인 퇴근 준비에 들어갑니다. 요즘 회사 업무 버릇이 생겼다면 업무일지를 개인적으로 워드로 쳐 놓는 행위가 있는데, 매일 업무를 했던 기록을 남겨 놔야 나중에 월급 계산이나 업무 관련 오해 등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업무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는 이유로 월급 하루치를 보전받은 사례도 있었습니다. 


자폐인들이 일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당연한 세상이 진정 올바른 세상입니다. 자폐인들에게 업무 기술을 가르쳐주면 업무를 잘 해낼 수 있는 사례가 대단히 많습니다.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바리스타 직무 같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저 같은 경우에는 ‘바리스타 공급을 줄여 구조조정을 하자!’라는 역설적인 발언을 하기도 할 정도입니다. 그만큼 이제 시중에 공급이 많이 늘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도 여기에 해당되는 사례입니다만, 자폐인 중에는 대학에 진학하고 졸업한 사례도 있습니다. 저도 사실 대졸자입니다! 그런데 대졸자에 걸맞은 좋은 일자리는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좋은 일자리 대책이 없어서, 제가 들었던 이야기는 자폐인이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도 장애인 작업장에 가까운 직장에서 일하는, 학력 값을 못하는 일자리에서 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이없어했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채용시험에 도전하라고 해도 조건에 맞으면 도전에 나설 생각이 있긴 있습니다. 실제로 공공기관 채용시험에서 면접 라운드까지 간 적도 몇 번 있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우영우 변호사는 실제로 존재했다면 그야말로 자폐계의 거대한 성공신화급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폐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결정적인 열쇠는 언제나 일자리를 누리며 사는 것에 있다고 저는 언제나 연설하고 다닙니다. 제가 자폐에 대한 인터뷰나 연설을 가면 거의 ‘기승전고용’이 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요즘은 보호작업장의 오류 등에 대해서도 연설하기도 합니다. 보호작업장은 보호도, 작업도 없는 거의 장애인 수용소 같은 느낌도 들고, 월급도 최저임금법을 적용하지 않다 보니 그런 것입니다. 해외에서도 독일에서 비슷한 논란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영원히 직장생활이라는 우주의 보헤미안이 되어 살아가게 될 것 같습니다. 여러 직장에서 불려 다니며 자유롭게 가는, 대학시절부터 말이 많았던 프리랜서로 살아갈 그런 운명일 듯합니다. 직장생활이라는 우주는 끝이 없다 보니, 영원히 보헤미안으로 살아가게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일단 제 운명이라면 운명일 것입니다. 다음에는 어디로 향하게 될까요? 영원히 보헤미안처럼 방랑하는 어느 정거장 위에 저는 서 있습니다.



ps. 드디어 이 프로젝트의 Act 1이 끝났습니다. 다음 이야기부터는 Act 2로 넘어가 자폐인에 대한 오해와 진실 이런 것을 다루게 될 것입니다. 기대 많이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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