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 자폐인 - 11 : 자폐인의 능력치와 그 평균에 대한 명상
세상사람들은 언제나 자폐인의 능력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다들 제각기 다른 말을 합니다. 엄청 능력 있다거나, 엄청 능력이 없다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를 보면 실제 자폐인들은 결국 붕 떠버리는 결론으로 가버립니다. 능력 수치를 수직선상에 세운다고 해도 사실은 정규분포니 뭐니를 들먹여도 결국 ‘평균’이 산출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자폐인이 능력자라고 알려진 이야기는 매우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것들의 이면을 잘 살펴보면 그것 말고는 다른 분야에서는 능력자가 아닐 수 있습니다. 능력이 없다고 생각해도 사소한 것이라도 능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것을 잘 활용해서 특정한 업무를 일부러 자폐인들에게 맡기는 업체들도 간혹 있습니다.
저는 그래도 운이 좋은 자폐인이기는 합니다. 이렇게 글을 잘 쓸 수도 있고, 사진도 찍으라면 꽤 찍을 수 있고, 사진은 아예 작업 프로젝트까지 짜임새를 갖출 수 있는 수준입니다. 연설이나 강연, 대담 이런 것도 자주 나갑니다. 쉽게 말해 입과 키보드와 카메라로 뛰어다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에 나가서 일도 한다면 합니다. 그렇지만 몇몇 자폐인들은 돌봄 부담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소원인 사례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발달장애인 돌봄 서비스나 주간활동서비스, 휴식지원서비스 등은 ‘호환되지 않는 서비스’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제가 거의 하지 못하는 능력이 있다면, 웃기게도 ‘신발끈을 맬 수 없다는 것’이라면 웃기지 않습니까? 실제로 저는 신발끈이 있는 신발은 절대 신을 수 없고, 반드시 신발끈이 없는 단화나 벨크로 테이프를 붙였다 뗐다 하는 방식으로 신는 신발 정도만 신을 수 있습니다. 벨크로 테이프를 붙였다 뗐다 하는 소리는 언제나 거북하게 들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제가 만난 자폐인들은 다들 능력이 있다 해도 그것을 평균을 낼 수는 없습니다. 그 수치뿐만 아니라 역량 분야조차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2018년에 영국 자폐인 자조단체 사람을 만나고 왔는데, 그 단체 관계자는 우리에게 “당신 조직을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역량을 바탕으로 그 역량에 맞춰서 함께 활동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합니다. 일률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닌, 각자의 역량만큼 대로 나눠서 활동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라고 지적했었을 정도입니다. 그 관계자는 자폐 관련 연구 활동으로 이제는 이름 뒤에 OBE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는 특전을 부여받았을 정도로 영국 자폐 연구 활동에서 유력한 인사였습니다. 이런 지적이 나왔다는 의미는 자폐인의 역량이 제각기 다르니 그것을 감안한 조직 운영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학업 수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만난 자폐인들 상당수는 학업 수준이 평균 이상이어서 대학 진학에 성공한 케이스가 중심입니다. 그렇지만 이 비중은 전체 자폐인을 통틀어서는 평균이 아니라 많이 잡는다고 해도 10% 수준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가능했던 원인은 대학 신입생 수가 줄어들면서 이런 학생들까지도 졸지에 입학을 할 수밖에 없게 된 현실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봐야 할 지경입니다. 2000년대 이후 대학 신입생 수가 줄어들면서 정원 유지를 위해 자폐인 학생까지 입학시켜야 할 정도로 사정이 나빠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제가 다닌 학과에 확인해 보니 제가 학과 역사상 최초의 장애학생이라는 타이틀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때 교수님들은 그 시절에 저와 함께 발전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많이 우왕좌왕했었다고 회고하시곤 한다더군요. 그래서 지금도 학과에서는 제가 졸업한 것이 기적적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실제 자폐인 학생들은 대학 입성은 둘째치고 지적장애와 섞인 사례가 더 많아서, 지적장애가 없는 자폐인은 많이 잡아도 전체 자폐인의 2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폐인 당사자 집단에서는 대학입학 지원이 왜 이렇게 적냐고 하소연하는 일도 가끔 있다고 합니다. 오히려 대학을 가는 것이 극소수의 일이니 말입니다.
그렇게 학업 능력 수치도 결국 평균을 내기 어렵다는 증명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잘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의 수치가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서 평균을 내기 어렵다는 의미에서 평균을 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폐인의 역량이 꽉 차있는 것도 아니지만 텅 비어있는 것도 아닙니다. 각자마다 역량이 달라서 이를 통일해서 평균 내는 것이 어렵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농담을 섞어서 이야기를 하면, 자폐인들의 역량이 너무 다르게 편성되어있다 보니 이를 바탕으로 그런 역량을 100% 풀 가동하는 하나의 회사를 차린다면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라는 농담을 해봅니다. 무슨 어벤저스 같은 부류 같은 것이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농담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자폐인의 능력은 각자에게 다르게 주어져있으며, 그 역량의 크기는 차이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휘하게 되는지는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에 달려있습니다. 심지어 말을 할 수 없다는데 글을 잘 쓰는 자폐인도 있을 정도입니다. 말하는 능력 대신 의사소통할 사안을 글로 써서 말하는 경우입니다. 농인들이 쓰는 필담과 비슷한 메커니즘입니다. 만약 이런 자폐인이 연설을 해야 한다면, 그럴 때 바로 TTS(Text to Sound)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을 위한 다른 의사소통 방식으로 보완대체의사소통(Augmentative and Alterative Communication), 즉 AAC라는 방식도 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잘하는 능력도 알고 보면 그 세부 역량을 따지고 보면 그 수준차이는 또 있습니다. 제가 아무리 글을 잘 쓴다고 해도 광고 선전을 위한 글이나 감성적인 시를 쓰는 것은 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에세이나 연설문, 논설 이런 분야는 매우 잘 쓰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이성적이고 주관적인 글만 잘 쓰고, 감성적인 글이나 객관적인 글은 못 쓴다고 보시면 됩니다. 재미있게 말하면 저는 ‘프로포절’은 할 수 있어도 ‘프러포즈’는 못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진 찍는 것도 마찬가지로 저는 현장에서 디지털카메라로 취재하는 것은 매우 능숙하지만, 스튜디오에서 찍는 사진은 전공 수업을 듣던 시절에도 스튜디오 촬영이 대부분인 광고사진은 성적이 좋지 않았었을 정도로 스튜디오 사진에서는 능력이 전혀 없는 것으로 증명되었고, 필름 촬영은 이론상 가능하지만 저도 흑백사진 현상과 인화를 간신히 배울 정도로 겨우 할 줄 아는 수준입니다. 컬러필름사진은 전혀 현상과 인화를 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사진을 배웠다고 하지만 암실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대학교 사진교육 커리큘럼이 필름사진에서 디지털사진 중심으로 매우 많이 바뀌어서 그런 것도 살짝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적어도 사진에 대해서 볼 줄을 알아서 예전에는 위키백과 사진대회의 한국 지역대회 심사위원으로 초빙될 정도였고, 그 의미는 한국 지역대회 입상작은 제가 선정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저 자신을 되돌아봐도 다양한 곳에 역량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가끔씩 몇몇 분야에는 맞지 않는 것을 보면 그냥 할 수 있는 분야와 할 수 없는 분야는 확실히 나눠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죽하면 예전 직장 사장은 저를 평가하면서 “장지용, 자네는 창의적인 직무보다는 전통적인 사무업무에 종사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라는 평가를 했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창의적인 직무에 도전했지만 연거푸 실패하는 등, 창의적 직무는 확실히 어울리지 않아서 그 실패 이후로는 오히려 전통적인 산업에서 전통적인 사무업무 위주로 구직 방침을 확실히 잡는 등, 회사 일조차 잘하는 분야와 잘 못 하는 분야는 매우 다르다는 점은 확실히 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발달장애인 일자리랍시고 무슨 미술가 채용, 합창단이나 연주단 조직 이런 것을 보면 “쟤네들은 뭘 믿고 저러는 것이냐?”라는 것을 생각할 정도입니다. 실제로 그런 분야에 입성하는 자폐인은 거의 성공신화 급 수준의 경우에나 가능할 정도이기도 합니다.
흔히 자폐인의 특성에 대해 스펙트럼이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이 사실은 당사자들에게도 인정될 정도로 유명한 사실입니다. 저는 이것을 “똑같이 다르다”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능력치는 스펙트럼이 여기서도 적용되는데, 그 능력을 수치로 환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그 측정은 어렵고 어디까지인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분야입니다. 심지어 돌봄을 요구하는 수준까지도 평균을 낼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제게는 돌봄 서비스라는 개념은 적용되지 않는 개념이고 반대로 취업지원·고용유지 관련 서비스가 필요한데 반면, 다른 자폐인들에게는 정 반대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둘 다 맞는 말입니다.
저는 자폐인들의 능력을 평균 내는 것은 객관적인 다른 지표가 있을 때, 예를 들어 특정한 주제를 공정하게 평가를 하고 나온 점수 같은 것이라던지 자폐인이 운동경기를 나가서 기록을 세우고 온 뒤 같은 것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이 세상에는 평균을 낼 수 없는 부분도 가끔은 있습니다. 제가 있는 자폐인 패거리들을 봐도 각자의 능력은 너무 달라서 그것의 평균은 절대 산출이 불가능합니다. 각자마다 능력이 균질한 것이 아닌 ‘똑같이 다른’ 바람에 그런 것입니다.
MBC TV <무한도전>은 아예 평균 이하들의 이야기라고 했지만, 자폐인들의 이야기는 평균이 안 나옵니다. 그렇게 우리는 평균이 절대 나올 수 없는 존재인데 평균을 내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