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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용 알비스 Sep 14. 2023

우리에겐 우리의 시간표만 필요합니다

파란만장 자폐인 - 12 : 자폐 당사자의 돌봄에 대한 명상

대학 학부 막학기 시간표는 간단했다!

자폐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결국 모아지면 주위에서 묻는 답은 결국 매한가지라서 기분이 상당히 언짢습니다. 바로 ‘돌봄’ 이야기로 끝나버리는 그러한 사회의 논의구조가 바로 그것입니다. 자폐 당사자 진영에서는 돌봄 이슈에 대해서 역설적으로 관심이 없습니다. 자폐인들도 당사자 사회에서 돌봄이라는 개념에 대한 논쟁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자기들에게는 오히려 그 돌봄 이슈때문에 결국 당사자들의 몫은 결국 사라지게 되니 말입니다.


자폐 관련 논쟁을 당사자 관점에서 계속 지켜보면 결국 그 끝에 가면 돌봄으로 끝나는 문제는 결국 당사자들에게는 “그러면 우리는 뭘 하고 있어야 하나요?”라는 결말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들은 돌봄을 하겠지만 당사자들은 무엇을 하냐는 것이 큰 공백지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그 돌봄이라는 것이 대부분 부모들이 원래 하던 것을 하게끔 하는 ‘자폐인들 사라지지 않게 어디다 놓고 뭘 하게끔 하기’ 그런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다채로운 활동이니 의미 있는 낮시간이니 그런 것을 이야기해도 결국은 당사자들은 그 프로그램의 참여자일 뿐 주도적인 존재는 절대 아닙니다. 대부분의 돌봄 프로그램은 철저한 제공자에 의해서 구성되고, 제공자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일종의 ‘위탁형 로봇’들에 가까운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거기에 그러한 돌봄도 소위 말하는 ‘인프라’가 부족해서 대학교 입학보다 어렵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입니다. 주간활동센터 이런 것이 별로 없고 대기 인원수가 많을뿐더러 더 많은 이용기회라는 명목으로 일정 기간이 끝나면 이용 종료가 되어 결국 ‘도돌이표’ 현상이 발생하곤 합니다. 


과거에는 이 ‘최종 결론’이 시설 수용으로 이어지곤 했지만, 이러한 문제도 이제는 한계점에 부딪혔습니다. 바로 장애계에서 시설 자체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인 이른바 ‘탈시설’ 개념을 들고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가 대한민국 장애계와 정부 간 2010년대 후반부터의 대규모 충돌 사안이기도 합니다. 저는 가끔 이러한 충돌과 갈등이 끝없이 대결만 이어지는 과거 ‘냉전’ 시대와 다를 바 없다고 솔직히 생각할 정도입니다.


이 돌봄 문제는 결국 자폐 당사자들에게는 무엇을 해야 할지 답안지를 주지 않은 채 부모나 전문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갈라먹기 같은 구도로 진행되는 것으로 느껴지게 됩니다. 결국 자폐인 돌봄 이슈 이런 것은 결국 당사자들에게 자신들의 의사와 상관없는 사안으로 변화하게 마련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 갈라먹기는 그곳의 주민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갈라놓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갈라먹기식 국제 구도의 결말이 바로 한국의 역사적 비극이 벌어진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자폐인 당사자들 중에서는 돌봄 이슈가 더 멀리 떨어진 집단도 있습니다. 사실 저 정도는 돌봄의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회사에 가서 아침에 출근해서 18시에 땡 치고 퇴근하면 그만인 그런 삶이 진짜 필요한 삶입니다. 몇몇 돌봄 프로그램 중에는 직업능력 훈련이나 일상생활 훈련 이런 것도 있어서 몇몇 프로그램은 일부러 직업교육을 시키거나, 직업 기초역량 교육을 시키거나, 일상생활 훈련을 하는 경우도 가끔은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프로그램의 제공 여부는 제공자 ‘엿장수 맘대로’식입니다. 사실 자폐인 돌봄 프로그램이라는 것의 ‘표준 양식’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이드라인 정도는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그냥 ‘할 것 리스트’ 수준이라 거의 필수과목 리스트가 아니라 선택과목 리스트에 가깝다고 봐야 합니다.


이런 문제의 틀의 연장선상에 있는 말도 안 되는 사태도 가끔은 있습니다. 바로 자폐인 당사자 중 자기 의지대로 외출할 수 있는 경우에 그 자폐인이 실종된 줄 알고 찾아달라는 부모단체 등에서 나오는 글들이 있는데, 가끔 황당한 결말로 이어지는 것은 자기가 알아서 집으로 되돌아갔다고 다시 글이 수정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당사자가 토로한 이야기인데, 자신은 태연히 방 안에서 잠만 자고 있었는데 집안에서는 그 당사자가 사라진 줄 알고 찾으러 다녔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막상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 집안에서 헛물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등잔불 밑이 어두운 것처럼 당사자는 집 안에 조용히 있는데 그것이 사라진 것으로 오해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몇몇 자폐인 부모들은 오히려 당사자 자녀에게 일부러 주말 이런 시간에 나가서 놀고, 먹는 것도 꽤 든든하게 먹으라고 이야기하는 사례도 들었는데, 그나마 이러한 경우에는 당사자의 외출 역량이 상대적으로 있고 좀 더 살펴보니 당사자도 일정 시간은 노동하는 시간이 있는 등 상대적으로 돌봄 욕구가 덜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폐인 이슈를 돌봄 이슈의 틀 안에서 보면 자폐인 문제는 결국 도돌이표로 끝나게 되는 오류를 저지르게 됩니다. 몇몇 집단에서는 발달장애의 정도를 돌봄 수준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면 결국 그 문제는 돌봄으로 문제의 결론이 회귀되는 오류를 발생시키기에 개인적으로는 돌봄 수준이 높은 자폐인 이런 개념을 채택하지 않는 편입니다.


진짜로 돌봄이 필요한 자폐인들도 물론 존재합니다. 그렇긴 하지만 자폐인들 100%가 돌봄을 필요로 하는 것은 그것도 아닙니다. 자폐인들의 돌봄 필요 이런 것은 결국 당사자들에게는 자기들은 뒤에 있고 부모나 전문가 등이 자신과 상관없이 멋대로 흥정하게 되는 오류를 저지르는 꼴이기도 합니다.


자폐인에게 돌봄은 대중들이 생각하기에는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충분조건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필요조건은 100% 옳은 것이고, 충분조건은 옳다고 해도 100%가 아닐 수 있는 개념이기에 그런 것입니다. 자폐인들 중에는 자기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케이스도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자폐인들 중에는 자기 활동 일정으로 모든 것이 꽉 찬 사람을 본 적도 있습니다. 그러니 모두가 돌봄 필요가 있다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몇몇은 아예 해외 방문 일정을 수행한답시고 여권까지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사실 저도 여건에 따라서 해외 일정도 발생할 수 있기에 상시 사용 가능한 개인 여권이 제 서랍 안에 있습니다. 또한 돌봄을 한답시고 하는 프로그램을 뛰어넘어 자기가 활동하고 싶은 수요조사를 최소한 거치는 것도 필요합니다. 실제로 몇몇 자폐인 평생교육 사업 일부에서는 수요조사를 거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상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슈는 자폐인을 어떻게 돌보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하여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돌봄의 요소를 줄이고 그 자리에 당사자 자신의 자율적인 삶이 있어야 자폐인이 이 세상에서 잘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돌봄만으로 자폐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결국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그 와중에 당사자들은 어디에 있는지를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금 자폐인에게 돌봄이 필요하다는 말을 되짚어보면 마치 제국주의 시대 열강들이 아시아인이나 아프리카인들은 ‘미개’하답시고 ‘문명’이라는 자기들의 ‘돌봄’이 있어야만 한다는 논리와 무엇이 다른지 가끔 생각하게 됩니다. 알고 보면 그 아시아나 아프리카에는 서구와 다른 문명이 존재한 경우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말입니다. 특히 아시아의 경우 체계적인 국가 체계가 있어서 서구권과 겨룰 수 있을 정도의 짜임새 있는 ‘문명’도 존재했었으니 말입니다. 아프리카도 에티오피아는 이탈리아 침략자에 결연히 맞서서 1896년 아두와 전투에서 이탈리아 침략자들을 쫓아낼 정도였기도 합니다.


우리 자폐인들은 우리의 삶이 있고 우리들이 살고 싶은 방향으로 살아야 합니다. 돌봄이 굳이 필요하다고 해도 안전한 공간의 확보와 그 달성을 위한 지원 정도로만 그치면 그뿐입니다. 안전만 보장하면 우리 자폐인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고, 배우고 싶으면 배울 것이며 즐길 수 있다면 즐길 것입니다. 부모나 전문가들은 그저 우리가 할 일의 아이디어나 아이템 등을 제시하거나 여건만 마련해 주면 됩니다. 다른 것은 굳이 필요한 것이 아니며, 행동은 당사자 주도성이 있되 그 뒤에 뒷바라지의 요소에서는 자폐인들도 기꺼이 비자폐인들의 도움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굳이 필요한 돌봄은 ‘뒷바라지’ 선에서 멈추면 됩니다.


자폐인 문제를 돌봄으로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욕구는 이제 끝나야 합니다. 자폐인의 문제는 곧 돌봄의 문제로 해결하는 것은 결국 당사자가 비어있게 되는 오류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부모나 전문가들은 자기들이 ‘오더’를 내려놓은 것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돌봄’이라고 주장하겠지만 우리 당사자들에게는 ‘아니올시다’에 가깝습니다.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부모나 전문가들은 계속 시간표를 만들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사자들에게 행복한 것은 내 삶은 내가 살지 누가 살아주냐 이런 것에서 출발합니다. 자폐인들에게는 자폐인들의 시간표가 따로 있습니다. 부모나 전문가들은 몇 가지 충분조건 요소를 넣고 뒷바라지만 하면 되고 그것이 당사자들이 진정 요구하는 ‘돌봄’입니다. 자폐인의 삶은 마치 대학교 수강신청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폐인의 삶은 대학교 수강신청 후 짜이는 시간표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나오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시간표만 필요합니다. 다른 것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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