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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용 알비스 Feb 19. 2024

감정은 없기에는 충분합니다

파란만장 자폐인 - 17 : 자폐인과 감정의 상관관계

흔히 자폐인들을 보면 감정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감정 표현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나, 자기들이 반응할 때 반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자폐인들을 깊이 살펴보면, 감정이라는 것이 사실은 있지만 표현의 방식이나 정도와 깊이 이런 것에서는 비자폐인들과 매우 차이가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비자폐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사건이 자폐인들에게는 벌집 들쑤시는 사건일 수준의 사건이 생기기도 합니다. 자신들에 대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같은 사회적 사건이어도 그 공감의 정도차이가 매우 크게 드러납니다. 보통의 사건이어도 자폐인들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 비자폐인들에게는 별 일 아닌 사건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자폐인들에게는 별 일 아닌 사건이 비자폐인들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22년 10월 29일의 10.29 참사 같은 사례는 비자폐인들에게는 거대한 충격이었지만, estas에서는 참사로서는 충격이었지만 대규모 집단이 모이는 것으로서는 별 큰일이 아니었습니다. 자폐인들 상당수는 바깥 행사 참석이 엄청난 모험 중 하나이기에 집단 행사라는 것보다는 압사참사라는 다른 이슈로 충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자폐인들은 대규모의 큰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성향이 있는 케이스가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축구장이나 야구장 같은 곳에 가는 케이스는 있지만, 그런 장소는 지정된 통로가 매우 많고 그 중간의 넓은 공간, 즉 그라운드가 있는 등 공간 구조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돌 콘서트 같은 케이스는 자폐인들이 참여하기에는 좀 어려운 행사일 정도입니다. 연극 하나를 보기 위해서도 엄청난 모험을 치러야 하는 것이 자폐인이니 그렇습니다. 자폐인 모임인 estas가 연극을 보기 위해 참석 회원을 모으는 등의 골치 아픈 일이 많았었거든요. (estas는 그 이후 2023년 10월 29일, 제1주기 추념식에 참석했습니다. 또한 제가 아는 영국인 자폐인 당사자 연구자도 10.29 참사 직후 애도 메시지를 제게 보내왔습니다.)


반대로 어떨 때는 감정이 풍부하기도 합니다. 자폐인 모임 estas가 전설의 자폐인 템플 그랜딘의 성장기를 주제로 한 연극 〈템플〉을 보는데 성장 이후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면서 세상과 연결되는 순간 부분에서 참아왔던 눈물이 일제히 터져 나왔던 일도 있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울지 않았지만, 자폐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성장이야기를 다르게 쓴 것이나 다름없는 서사였기에 눈물이 일제히 터져 나온 것입니다. 사실 저도 눈물이 터졌지요.


자폐인들이 이런 감정의 극단적인 차이를 느끼는 것은 복잡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자폐인들은 감정이 대단히 복잡합니다. 심지어 저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나 거대한 처분 등을 경험했기에 몇몇 큰 사안의 변화에는 민감하지 않고, 야구를 그렇게 맨날 보더니만 한국시리즈 우승 정도는 되어야 겨우 크게 승리의 감격을 느끼고 그런 수준입니다. (제가 응원하는 팀은 2022 시즌에 우승을 했었습니다.)


반대로 제가 아는 다른 자폐인은 감정이 풍부해서 이것에도 저것에도 반응하는 등의 감수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감정의 레벨은 대단히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자폐인들은 일종의 스크램블이 돌아기도 합니다. 스크램블이란 공군기지가 항공 공습등을 받는 바람에 전투기가 비상출격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쉽게 말해 ‘급발진’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저도 가끔 몇몇 사안에는 ‘급발진’이 걸리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제게는 학교폭력 이런 이슈가 스크램블이 돌아가는 사안입니다. 가끔 일본이 한국에서 저지른 식민지 피해 등을 망각하는 일본 정치인의 발언에 한국인 전체에게 급발진이 들어가는 것이 같은 의식 회로 구조일 것입니다.


그렇게 감정이 매우 오가는 것은 자폐인들에게는 매우 요동치는 폭풍과 잔잔함이 오가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 것입니다. 자폐인들의 머릿속을 영국의 시핑 포카스트(Shipping Forecast, 주: 영국 BBC 라디오의 해양 기상예보로 영국 방송문화의 대표적인 아이콘 중 하나이다. 특히 매일 0시 48분 방송 버전은 매우 유명하다.) 같이 설명할 수 있다면 시핑 포카스트의 규칙인 350 단어 제한은 없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감정이 오가는 원인에 대해선 현재 어느 연구자도 증명해내지 못했습니다. 매우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이라는 것을 자폐인들은 태생적으로 살아가면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폐인들의 일상은 이전부터 현대인의 삶과 매우 닮았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신 그러한 실제 현대에서의 삶에서 온갖 것이 뒤섞인 세상에 살아남을 때 여과 장치를 가지지 못한 것으로 현실 보정을 했을 것입니다.


일단 느끼는 것은 외부 요인이 더 큰 것으로 보입니다. 외부에서 수많은 자극은 여과 없이 들어오고 이러한 폭풍 같은 충격에서 살아남는 것은 어렵습니다. 비자폐인들은 자극을 여과하기 쉽지만, 자폐인들은 자극을 여과한 뒤에 그 뒤 처리를 하는 것도 일이고, 어떠한 경우에는 ‘여과 장치’를 ‘바깥에서 사 와야 하는’ 실정입니다. 아니면 창고에서 여과 장치를 찾아오기는 하는데 그 속도가 대단히 늦을 수도 있습니다.


또 몇몇 사안은 적용 체계와 사회가 요구하는 체계가 다른 등 어떤 이는 ‘언어가 다른 집단’이라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자폐인의 감정을 그대로 이해하기에는 비자폐인들은 매우 어려운 일 중 하나입니다. 물론 비자폐인의 감정을 자폐인들이 해석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감정의 체계가 다른 것에 대해 최근에 자폐인 당사자들이 새롭게 주장하는 이론은 이른바 ‘이중공감이론’(Double Empathy Theory)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폐인의 감정 체계를 비자폐인과 대봐도 일종의 병렬식 체계지 직렬식 체제가 아니라는 해석입니다. 비슷한 일을 경험하는 것은 자폐인들끼리도 그런데, 자폐인들끼리 이야기를 할 떼는 잘 통하더라도 비자폐인이 섞이면 대단히 복잡해지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제가 아는 자폐인들은 자폐인과 비자폐인 각자끼리 ‘고요 속의 외침 게임’을 하면 어느 정도 효과적이겠지만, 자폐인과 비자폐인을 섞어서 그 게임을 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매우 복잡하고, 또 체계까지 다른 자폐인들은 결국 ‘호환이 안 되어서’ 세상에서 결국 쫓겨나게 됩니다. 그것이 흔히 말하는 자폐인 차별이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세계에서 자폐인들이 사는 방법은 그러한 세계 속에 강제 편입되거나, 외따로이 살면서 분리되거나, 아니면 제거되거나 그럴 것입니다. 사고와 공감을 못 한다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제거하기에는 실제 자폐인들의 코드와 비자폐인들의 코드가 다르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콘센트 모양까지도 다를 수 있을 지경입니다.


전기공학에서는 전압과 주파수라는 개념을 사용한다고 들었습니다. 가끔 해외여행을 갈 때 먹히는 것과 안 먹히는 것의 상관관계 이론으로 이것이 적용되기도 합니다. 전압과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전자제품은 호환되지 못합니다. 최근 들어서 공학의 발전으로 프리볼트 체계 제품이 보급되고 있는 것이 매우 큰 다행이라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제 세상에 필요한 것은 사고체계와 감정을 서로 이해하는 프리볼트 같은 인식체계일 것입니다. 아예 소위 ‘돼지코’라 부르는 어댑터 같은 그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2023. 11. 25, 서울 신촌. 개신교 노방선교를 해도 결국 지나치는 사람들


자폐인의 감정이 없기에는 매우 풍부합니다. 다른 이들은 관심 없어도 감정을 느낄 수도 있고, 다른 이들에게는 난리가 나도 자폐인들에게는 천하태평한 일이 있습니다. 저는 실제로 몇몇 사안에서는 전혀 불안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심지어 다들 난리가 난 사안이어도 프랑스어식 표현으로 유명한 ‘Je m'en fou’(이건 내 일이 아니다)와 ‘Ca m'est égal’(이 사안에 관심 없다)의 정신이 발휘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어떠한 일에서는 다른 이들이 저렇게 행동할 때 자폐인들이 행동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것은 비자폐인들에게는 이상한 행동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어떨 때는 그것이 더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기업 운영을 할 때 감사 부서 이런 부서, 즉 일종의 ‘부정부패 감시 부서’ 이런 곳이라면 오히려 자폐인들 스타일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언론인도 비슷하게 다른 이들은 못 잡아도 의외로 잡아낼 수 있는 실력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특정 시스템, 특히 IT 유지보수 부서 같은 곳에는 알맞을지도 모릅니다. 어떨 때는 다른 사회운동가로도 활동할지도 모릅니다. 이미 그레타 툰베리가 그러한 가능성을 증명하였으니 말입니다. 알려졌다시피 그레타 툰베리도 자폐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지 꽤 되었습니다.


자폐인들이 감정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실제 감정 속은 매우 깊고 어떨 때는 온도가 다를 것임을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감정이 없어 보일 때도 있지만, 그 속에는 거대한 우주가 숨어있거나, 그 이면을 벌써 알거나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일방적으로 감정 없다고 생각하기엔, 자폐인의 감정은 없기에는 풍부합니다. 어느 게임 속 초능력 악당의 대사이지만, ‘내 마음에는 다 보여’ 일지도 모르니까요.




추신 : 최근 몇 주간 대외적인 일이 많아서 집필이 느려졌습니다만, 최근 안정을 되찾으면서 작업에 여유를 높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열심히 달려가겠습니다. 이제 Act 2도 점점 끝나고 있습니다! 약 2 챕터 더 하면 Act 2가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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