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지용 알비스 Apr 06. 2024

똑같아 보이기에는 매우 거대한 집단

파란만장 자폐인 - 19 : 예상보다 복잡한 자폐인의 이념 지도

자폐인과 자폐인 집단을 보면 같은 특성을 지닐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 사고하는 방식이나 사상적 견해조차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특히 몇몇 자폐인 집단과 그 영향을 받은 세력은 특정 사안에서 공식적인 견해가 같다 보니, 특히 서구권의 자폐인 집단들을 보면 특정 입장에 똑같이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 때문에 오해받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사실은 그 자폐인 집단의 알속을 뜯어보면 그 집단 내부에는 엄청난 균열이 있습니다.


자폐인 집단은 자폐 그 특성 이외에는 ‘모두가 공유하는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국가적인, 지역적인, 계급적인 특성 등이 ‘모두가 공유하는 요소’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자체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한국인이 일본의 제국주의적인 행동에 대해 대부분이 해방 80여 년이 지나고도 여전히 강경한 대응을 주문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저는 자폐인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회자유주의자(Social Liberalist) 성향이 매우 짙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과 비슷한 방식의 노선에 우호적인 편입니다. 그 외에도 군사력 강화 등에서는 오히려 보수 진영과 입장을 같이 할 때도 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제 소속 교단인 성공회의 영향을 받아 이른바 ‘복음주의 진보’(Progressive Evangelicalism)의 영향이 상당히 있는 편입니다. 즉, 상대적으로 진보의 요소가 있지만 보수적 요소 또는 자유주의의 요소가 복잡하게 섞인 특성이라 하겠습니다.


반대로 제 주위에는 보수주의적인 요소가 더 센 집단도 있고, 아니면 완전히 진보주의 성향을 띠는 등 자폐인 집단 내부에서도 대단한 한국이라는 조건이 있어도 어쨌든 이념 스펙트럼이 넓은 편입니다. 그래서 제가 있는 estas는 이러한 이념 스펙트럼의 넓음을 일부러 인정하고, 그 다양한 집단의 상호 견제와 협력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빅텐트 조직으로 나가자는 것이 한국 자폐인들의 새로운 결론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한국사회의 이념 갈등이 매우 복잡하고, 거의 국가를 둘로 쪼갠 것이나 다름없는 수준의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자폐를 둘러싼 이슈마저도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습니다. 저는 상대적으로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 진영을 지지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치료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라고 해도 적대시하지는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치료주의 대 신경다양성 대립을 하면 제 견해는 신경다양성에 더 가까운 중간파 입장입니다. 특히 완전히 인권 중심이 아닌, 자본주의 체계를 반영한 요소가 더러 있는 점도 있습니다. 다른 장애 관련 쟁점에서도 상대적으로 자본주의의 견해를 받아들인 부분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그러한 자폐인의 사고관념의 배경은 자폐라는 요소를 제외하고는 각자가 처한 계급과 사회 환경 등의 요소가 다양하게 자리 잡고 있을 것입니다. 어떤 자폐인은 진보적 사고를 하고 싶어도 보수적인 부모의 영향으로 공개적으로 이념적 성향을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가끔 있습니다. 또 어떤 자폐인은 자신의 신앙적 관념을 표현하고 싶어도, 집안의 견제 때문에 독립 이후에야 신앙적 관념을 잘 표현하기 시작했을 정도입니다. 또 어떤 자폐인은 소속된 집단의 영향 때문에 이념이 형성된 사례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자폐인들의 사고관념과 사고방식은 서로 다른 배경에서 출발한 것이 많습니다.


자폐인들이 서로 충돌하는 부분은 신경다양성과 자폐 권리운동 측 진영과 치료주의의 요소가 있는 진영의 내부 대립도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자폐인들은 반신경다양성 노선을 내걸고 ‘자폐의 치유’ 등을 주장하는 집단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또, 능력주의의 요소가 있는 집단과 형평을 강조하는 집단 등의 대립도 있습니다. 또, 특정 자폐 관련 집단을 둘러싼 대립도 있습니다. 미국의 Autism Speaks 같은 집단을 바라보는 문제로 벌어지는 대립은 그야말로 전쟁터입니다.


심지어 자폐 표현에서도 푸른색에 대한 입장이 estas 내부에서도 찬반양론이 오가는 등의 쟁점 요소입니다. 게다가 해외 자폐 권리운동 세력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빨간색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 사회 특유의 반공주의 정서와 진보 진영의 극우정당 배격 문화와 겹쳐서 한국에서는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요소가 있을 정도입니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빨간당이라면 보수·극우정당을 의미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돌고 있으니 말입니다. 황금색 대안은 또 호의적이냐 하면 잘 알려지지 않아서 문제이고 한국에서는 그런 상징색에 대해 상대적으로 자폐인의 계급적 특성상 잘 반영되지 않은 편입니다. 한국의 확인된 자폐인 집단들이 경제적으로 계급이 낮은 집단 출신이 제일 많기 때문입니다.


실제 estas의 의외의 논쟁으로, ‘고/저 기능’과 ‘고/저인지’ 용어 간의 갈등이 있는데, ‘고/저 기능’ 대신 ‘고/저인지’라는 표현을 쓰자는 주장이 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실행기능 이론을 적용하는 형식으로 둘 다 사용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이는 고기능-저인지 또는 저기능-고인지 관계도 성립할 수 있고 실제로 비슷한 사례를 봤기 때문에 저는 둘 다 인정하는 편입니다. 그만큼 인지 중심으로 판단해야 하나, 기능 중심으로 가야 하나 이 자체도 자폐계 내부 논쟁 중 하나입니다. 현재도 이 사안은 estas 내부에서 답이 없는 문제 중 하나라서, 이러한 문제도 각자의 판단에 맡기자는 결론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 외 자폐를 둘러싼 논쟁은 각자의 계급적 특성과 사회적 환경 등의 영향을 받은 것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확실한 사실은 한국 자폐인들, 세계 자폐인들 모두 동일한 정서를 크게 가지고 있는 지점이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굳이 세계 자폐인 집단들이 공통적으로 배격하는 것을 꼽자면 ‘서번트 신화 서사 폐기’ 정도는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결국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전선은 부모 집단 등과 자폐인 당사자 간의 대립 구도입니다. 자폐인 당사자 집단과 부모 집단 등은 일부분 반목하는 요소가 있는데, 이는 돌봄 등의 이슈에서 많이 충돌합니다. 특히 estas는 부모 집단과 완전히 적대적이지는 않고 협조할 수 있다면 협조할 수 있다고 해도 절대 반대 방향으로 갈 것임을 선언한 분야 중 하나가 바로 ‘돌봄’ 문제입니다. 자폐인 당사자들은 돌봄 이슈를 자신들을 방해하고 결국 할 일 없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변화하고 새로운 것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처음에 한국 자폐인들은 자폐인 특유의 ‘감각과민’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해한다고 해도 그것은 개인의 문제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감각과민’을 인정하면서 ‘감각과민’으로 인해 벌어지는 문제점을 자폐인 집단의 공통된 어려움의 요소로 인정하되 그 정도와 내용은 각자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최근 들어서 몇몇 내용은 한국 자폐인들이 다들 인정하고 있고, 심지어 공개적으로 자폐인이면서 감각 문제 때문에 특정 복장 등을 할 수 없다 보니 힘들어하는 여성 자폐인의 기록까지 나오게 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사실들을 접하게 되거나 새로운 것이 발견되기도 하는 등 자폐인 사회가 무조건 변화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한 것은 사회 변화와 각자의 각성 등의 영향을 받게 마련입니다. 심지어 세계 자폐계의 여러 접촉을 통해 서로가 서로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변화하기도 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저는 영국에 다녀오면서 배워온 이론 몇 가지를 지금도 한국 내 조직에 적용할 것을 주문하거나, 강연 등을 할 때 그 이론을 소개하며 전수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영국인들이 소개한 별자리(Constellation) 이론이 있는데, 이는 자폐인의 다양성을 표현할 때 수직선상에 놓을 수 없음과 지원이 매우 필요하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저는 이것을 한국에서 자폐에 대해 설명할 때 살짝 소개하기도 할 정도입니다. 자폐인이 ‘똑같이 다르지만 지원은 언제나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외에도 업무에 있어서 각자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일하자는 원칙도 영국의 자폐인 조직인 SWAN의 캐트로이나 스튜어트(Catriona Stewart OBE)가 가르쳐 준 지적사항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이 지적사항은 자폐 바깥의 일에서도 그 원칙을 적용하여 일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교회 청년회 활동을 할 때 부서 활동을 하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폐계의 목소리가 고기능-고인지 집단이 제일 크게 내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가끔 제기되는데, 해외 일부 집단에서는 저기능-저인지 집단에서도 소규모로 관련 자폐인 권리운동이 궐기하는 등의 요소가 있어서 이들이 상호 보완과 일종의 다양한 배경 등으로 발전하는 이론을 채택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이런 집단에서는 AAC나 컴퓨터 등을 활용하여 의사표현을 하는 사례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저기능-저인지 자폐 관련 집단도 공식적으로는 고인지-고기능 자폐인을 적대하지 않으며, 그들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는다고는 밝혔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미 분열된 국가?


이렇게 자폐인 집단은 예상보다 다양한 집단이고, 그 특성은 천차만별입니다. 그렇게 똑같아 보이기에는 자폐인 집단은 매우 거대한 집단입니다. 어떻게 보면, Divide Nations, 즉 분열된 국가일지도 모릅니다.



알려드림 : 이번 챕터는 드디어 마지막 Act인 Act 3의 시작입니다. Act 3에서는 자폐와 그것을 둘러싼 사회와 그 집단들의 세계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알고 보면 더 깊숙한 자폐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걸 자폐인이 하면 대박이에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