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 자폐인 - 20 : 자폐를 둘러싼 용어들의 복잡한 관계에 대하여
특정한 개념에 대한 표현은 논쟁의 요소가 있을 정도입니다. 특히 어떤 집단에서는 특정 표현 때문에 자신들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집단이 있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글자 하나조차도 자신들에게는 모욕으로 느껴지기도 할 정도입니다. 심지어 한국에 거주한 몽골인은 ‘몽골’에 ‘ㄹ’ 자 받침을 빼는 것은 자기 민족에게는 큰 모독이라고 이야기할 정도였습니다.
자폐계에서도 논쟁이 치열한 것이 표현에 대한 논쟁입니다. 자폐라는 표현에 대한 것이 대단한 논쟁의 요소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먼저 의학계에서 많이 쓰는 용어인 ‘자폐증’이라는 용어는 당사자 집단에서는 자신들을 모독하는 단어로 인식될 정도입니다. ‘증’이라는 개념이 자폐를 의학적인 모델로만 보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과, 치료해야 하는 문제점으로 인식하는 것이 자신들에게는 모독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있어서입니다. 비슷하게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단어도 당사자 집단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단어입니다. 특히 ‘아스퍼거 증후군’은 DSM-5의 도입으로 폐기된 개념이라 더 그러한 인식이 생겼습니다. 아직 임상적으로는 ‘아스퍼거 증후군’ 용어의 잔재가 남아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간혹 ‘자폐증을 앓다’라고 쓰는 것을 보면 당사자 집단들이 항의하기도 할 정도입니다. 당사자 집단에서는 그냥 ‘자폐’로 줄여 부르는 경향도 있고, 공식적으로 쓸 때는 ‘자폐성 장애’ 아니면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고 부르는 것이 당사자 집단의 공식적인 문화입니다. 같은 개념으로 ‘자폐증 환자’라는 단어도 세트로 불만을 가지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자폐인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다른 질병에서는 환자가 맞다고 이야기하지만 자폐에서는 환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People with Autism’이라는 개념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는 People First 언어문화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자폐인들은 ‘Autistic People’이라는 단어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당사자들은 이를 ‘정체성 우선 언어’(Identify-First Langauge)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나마 인정되는 표현은 ‘Person on the Autism Spectrum’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자폐’라는 개념을 다른 개념에서 사용할 때는 자폐인들의 분노는 커집니다. 예를 들어 폐쇄적인 문화를 이야기하면서 ‘자폐’를 들먹이는 것은 당사자들에게는 모독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관련이 없어도 자칫 언어의 연계된 인식이 자신들의 이미지를 나쁘게 볼 것이라는 인식이 있어서입니다. 실제로 estas는 그러한 내용에 항의하는 일도 있었을 정도입니다. 당사자 집단들은 자폐 관련 문제가 아닌 곳에서는 쓰지 말아 주길 바란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이는 스스로를 닫았다고 표현하는 인식이, 실제 자폐인의 삶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자폐인들의 실제 삶은 ‘정교한 열쇠’로는 열 수 있지만 ‘보통의 열쇠’로는 못 여는 그런 특수한 문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더 세심한 접근으로는 해결할 수 있지만 단순한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인 때문에 한국어에서는 아예 자폐라는 단어를 폐기하자는 주장까지 제기될 정도입니다. 한국자폐인사랑협회는 아예 영어식 표현인 ‘Autism’을 그대로 음역 해서 ‘오티즘’으로 표기하는 관습이 최근 등장했습니다. 아예 영어로 쓰자는 인식이 생길 정도이니 한국어에서는 더 부정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경우 당사자들은 그냥 ‘자폐’라고만 부르는 것이 솔직히 편하다는 입장이 있습니다. 아직 한국어에서는 대체할 단어가 딱히 떠오르지 않으며, 그 용어가 다시 차별적인 용어가 될 우려가 있을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 있어서입니다. 한국 학교에서는 장애학생들을 편성한 부서를 ‘특수반’이라는 용어가 차별적인 용어랍시고 ‘도움반’으로 바꿨지만 용어의 차별성이 승계되었을 뿐, 전혀 진전되지 않은 용어 사용의 역사가 있어서입니다. 그러니 다시 그런 용어를 쓸 바에는 그 단어를 유지하자 그런 편이기도 합니다. 또한, 한국자폐인사랑협회 측의 의견에 대해서는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로 하면, ‘오티즘’이라 쓰면 그 당사자를 ‘오티즘인’이라 부르는 촌극이 빚어질 것이 뻔한데, 이럴 경우 결국 단어가 꼬인다는 인식이 있어서 그냥 ‘자폐인’이라 부르자면 그냥 ‘자폐인’이고 ‘Autistic’이지 무슨 단어를 두 개나 쓰는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나마 요즘 미디어를 중심으로 ‘자폐증’ 용어 폐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점은 다행이라고 봅니다. 얼마 전 미디어를 보니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용어를 자막에서 사용하는 등 점점 개선되는 기미도 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아스퍼거’ 등의 용어를 사용하려다가 estas가 사전에 견제하면서 제작진들이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용어를 공식 용어로 채택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또한 자폐인 당사자들은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폐 인식’(Autism Awareness)을 ‘자폐 수용’(Autism Acceptance)으로 변화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습니다. 아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대중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단계가 되었다는 것이 그러한 인식의 기초일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러한 개념이 채택되어 공식적으로 용어 변화까지 있게 되었는데, 이는 미국 내 자폐인들이 투쟁을 통해 얻어낸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변화는 한국에는 완전히 수입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한-미간 자폐인 교류가 거의 없다는 점과 사회문화적 차이 등이 이러한 간극의 원인이라 하겠습니다. 한국은 인식 자체가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시대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자폐 관련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2010년대 후반 즈음이지만, 영미권 등은 1980년대부터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1980년대 자폐 관련 문제의 정도는 자폐에 대한 존재 여부에 대한 논쟁이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공식 석상에서의 문제점이고, 다른 사회에서는 더 심각한 문제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스퍼거를 모욕적인 단어로 표현하는 사례는 당사자 집단 중 열성적인 사람들에서 유래했지만 이제 그러한 단어는 당사자 집단들이 불만을 가진 표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한국의 인터넷 문화가 인권을 중시하는 것을 혐오하는 문화가 있어서입니다. 특히 남성층 문화해서는 징병제 등의 영향으로 차별적 문화가 팽배하다 보니 소위 말하는 ‘셀프디스’ 이런 것이 아닌데도 부정적으로 여기는 문화가 많아서입니다. 또한 한국인들은 상향평준화되는 것을 원하지만 실제 사회적 운영 원리는 하향평준화로 시행되는 것도 원인입니다.
그다음으로는 자폐인에 대한 ‘배려’라는 관점이 너무 심각하다는 점입니다. ‘배려’를 해야 할 곳에서는 하지 않고, ‘배려’를 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는 ‘배려’를 너무 심각하게 진행한다는 것이 문제점입니다. 저도 사실 특정한 것에 도전하고 싶을 때는 ‘배려’라는 명분으로 제한되지만 정작 ‘배려’를 받아야 하는 공공분야 입사 도전과 직장 적응 같은 곳에서는 전혀 적용된 적이 없었던 것이 대표적인 경험입니다.
자폐인 중에는 성인이 분명히 있고 한국에서도 거의 절반 수준이 성인인 현실을 존중하지 않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폐아’라는 단어를 남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개인적으로 화나는 것은 만 18세 이상을 지칭하는데 자신의 자녀라는 이유로 ‘자폐아’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태도가 제일 화나는 지점입니다. 물론 부모들에게는 만 18세 이상이어도 자신의 자녀는 그저 ‘애’라는 인식이 있는 경향이 간혹 있어서 그런 지점이 있지만, 적어도 성인이 된 자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존중을 하지만 자폐인 자녀들에게는 ‘보호’와 ‘배려’라는 것이 심각하게 작동하는 점이 문제라 하겠습니다. 그러한 반동 작용이 있었던 것 중 하나가 제가 있는 estas의 회원 자격 조건의 두 번째 항목이 ‘만 18세 이상일 것’이라는 조항이 들어간 것도 이러한 차별 문화에 대한 반동 작용으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친구’ 이런 관점 등의 단어는 솔직히는 불만인 표현으로, ‘내 친구’라는 개념에서는 사용할 수 있어도 ‘자폐 친구’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당사자들은 ‘자폐가 있는 내 이웃이나 친구’라는 좁은 개념이자 정확한 의미의 ‘친구’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지만, 비당사자들은 ‘자폐인 집단’을 뭉뚱그려서 ‘자폐 친구’라고 부르는 경향이 가끔 있습니다. 무슨 공산권 국가에서의 ‘동무’ 개념은 한국의 강력한 반공주의 문화에 의해 한국어에서는 폐기된 개념이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이럴 때는 공산권 국가의 ‘동무’ 문화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의아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공산당이 싫다는 나라에서 이럴 때는 공산당식 사고를 하는 것이 정말 어이없을 지경입니다. 무슨 재한 러시아인 유튜버 크리스티나 옵친니코바(이른바 ‘소련여자 크리스’로 활동하는)의 말장난도 아닌데 말입니다.
자폐를 둘러싼 용어전쟁은 앞으로도 진행될 전망입니다. 자폐를 둘러싼 단어들을 어떻게 사용하고 정의하느냐에 대한 논쟁은 결국 자폐를 둘러싼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사자들이 선호하는 단어, 비당사자들이 선호하는 단어, 법적인 단어, 학술적인 단어 등의 대충돌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입니다. 그러한 것의 논쟁은 언제야 완벽한 합의에 이르게 될까요? 몇몇 분야에서는 합의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들끼리는 합의되어도 사회 전체적인 합의는 일단 없다는 점이 이럴 때는 아쉬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