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 자폐인 - 22 : 신경다양성에 대한 짧은 소개
전 세계적으로 다양성 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전통적으로 장애 이슈도 그렇게 다양성 이슈에 편입되고 있고, 그 외에도 자폐에 대한 부분은 또 다른 다양성 이슈로 독립된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폐를 다양성의 한 갈래로 보는 이론이 등장했습니다. 이를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라 부릅니다. 신경다양성은 자폐 이외에도 신경 등의 특성에서 오는 여러 이슈인 정신장애, ADHD, 난독증 같은 학습장애 등의 이슈도 넓은 의미의 다양성 이슈의 한 갈래임을 주장하는 이론입니다. 즉, ‘자폐등의 이슈는 신경의 오류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 신경 구조나 체계가 다른 것’이라는 의미로 주장되는 이론입니다. 이 신경다양성은 1990년대 이후 공식화되었고, 한국에는 2010년대 후반 이후에야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2010년대 후반에야 이 이슈에 대해 알게 될 정도입니다. 제가 estas의 영국 연수단의 일원으로 영국 스코틀랜드에 갔을 때, 현지인들은 이 개념에 매우 동의하고 있었으며, 장점이 많다고 평가했으니 말입니다.
자폐인들은 이제 신경다양인(Neurodivergent)으로도 발전하게 되었고, 이러한 연계를 통해 정신장애-ADHD-학습장애 등 다른 이슈들과의 연계와 합작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자폐에 대한 인식 중 하나가 ‘자폐는 장애인가 아닌가?’에 대한 이슈는 아직도 설왕설래하는 이슈지만, 자폐는 다양성의 일부라는 이슈는 이제 자폐인 사회에서 ‘정당한 것으로 수렴된 사안’ 중 하나입니다. 신경다양인들은 신경다양인이 아닌 자, 즉 신경전형인(Neurotypicial)에 대한 인식은 ‘결함을 가지지 않은 자’가 아니라 ‘너는 그 특성이 없다’라고 해석하는 편입니다. ‘너는 없는데 나는 있다’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 의미는 우리는 ‘이상한 것이 아니라 따로 갖춘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신경다양성 이슈는 자폐인 집단들에게 처음 도입되었을 때 매우 큰 환호를 받았습니다. 이는 자신들을 이상한 것, 오류로 판명된 그런 존재가 아니라 그냥 다른 것이라는 논의가 자신들에게 해방될 수 있는 이념이라는 인식이 생겨서입니다. 자폐인권운동은 이 신경다양성의 영향을 통해 발전한, 마치 두 기둥과 같은 존재처럼 발전해 온 당사자 주도 현대 자폐 이슈의 이론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수정 신경다양성 이론도 등장하였고, 언제나 그랬지만 혁명에는 반혁명이 함께 따라붙듯이 신경다양성에 반대하는 자폐인 그룹도 있습니다. 수정 신경다양성 이론은 이른바 ‘뉴로리얼리즘’이라 하는데, 일종의 ‘신경현실주의’ 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부모 등의 집단이 강력한 자금력과 동원력을 발휘해서 최근 유력 인사들까지 접수하게 되었지만, 당사자 집단으로선 복잡한 이유가 아직 자폐인들 중에는 이에 맞설 수 있는 대형 세력이 존재하지 않고, 관련 연구를 지원하는 자금 등의 출처 등에서 맞서기가 어려운 구석이 있어서입니다. 당사자들만을 직접 지원하는 체계는 현재 복지 체계에는 있어도 학술연구 등의 체계에서는 없는 편입니다.
이 수정 신경다양성 이론은 흔히 ‘중증 챙겨라 주의’이기도 한데, 부모 등의 집단이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명분이 바로 ‘중증 자폐인 무시하냐?’라는 반박 때문입니다. 이들은 복지 등의 지원 요구가 사회활동이 가능한 자폐인들보다 더 크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명분으로 당사자 활동그룹의 요구보다 부모 집단 등의 지원을 요구하며, 특히 당사자들의 활동을 반대하지는 않아도 ‘적당히만 해라’ 그런 인식을 가진 것입니다. 그 외에도 자폐인들의 다양성에 집중한 나머지, 자폐인이 겪는 여러 어려움 등의 문제점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존재합니다. 한국은 이미 그런 주의가 대중들에게 깔려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지경입니다. 사실 한국의 신경다양성 논쟁 등은 선두 세력에 비해서 20년 ~ 30년 정도 뒤쳐진 이슈이기 때문입니다.
신경다양성을 반대하는 그룹도 당연히 존재합니다. 신경다양성을 반대하는 그룹은 대표적으로 의학계가 있으며, 일부 당사자 집단 중에도 의학적 치료로 자폐를 ‘소멸’하고 싶고 신경다양성 같은 것이 없었으면 한다는 이론도 제기되기도 합니다. 의학계는 여기에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면서, 의학적인 근거를 들며 다양성이기에 앞서 몇몇은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이러한 신경다양성 반대 그룹은 찬성 측 당사자 활동 집단과는 상극을 이루는 집단이기도 해서, 당사자 집단도 그렇게 분열된 집단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의학계가 모두 신경다양성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며, 의학계 내부에서도 신경다양성 이론을 반영한 혼합형 이론을 제기하는 그룹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또한 국제 자폐인 의사회(Autistic Doctor International)까지 존재하는 점은 이러한 영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신경다양성 논의가 2010년대 후반부에야 본격 제기되었습니다. 자폐인들이 점점 조직을 결성하고, 당사자 간의 연결이 인터넷 등을 통해 가속화되면서 한국에서도 estas를 시작으로 관련 논의의 싹이 트고 있습니다. 특히 2021년에는 신경다양성을 estas보다 더 중점 이슈로 삼은 한국 내 최초의 신경다양성 중점 활동집단 ‘세바다(‘세’상을 ‘바’꾸는 ‘다’양성, 3Oceans)가 출범해 활동을 시작하고 있고, 2022년 이후에는 estas와 협력적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신경다양성 이슈가 한국 내에서 본격화된 이슈는 아닙니다. 아직 자폐 등의 인정이나 공개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집단들이 남아있고, 한국의 자폐 등 신경다양성 정체성 관련 판정 체계가 깔끔하지 않고 좁게 판정되는 등의 영향력이 있어서, 마치 ABS 체계가 도입되지 않은 야구에서의 볼 판정과 같이 판정의 범위가 제멋대로 식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ABS 체계 이전 야구에서는 볼 판정의 일관성이 전혀 없어서, 특정 투수에게만 판정이 유리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도 있었고, 특정 투수 길들이기 이런 이슈라는 해석도 있었을 정도여서 그런 것입니다.
한편 한국은 정신이나 신경 관련 이슈에서는 치료 중심주의가 팽배하고, ‘잘못된 것’으로 해석해서 그나마 나은 것이 정신건강의학과 보내서 치료에 집중하게 하려는 것이 있고, 심지어 무속인이나 성직자를 찾아가 ‘악귀가 있으니 그 악귀를 빼내라’ ‘부적 등을 붙여서 악귀를 빼내라’ ‘악귀가 있으니 기도 등으로 몰아내달라’ 등의 주술을 시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서 그 ‘악귀’로 규정된 것이 바로 ‘신경다양성으로 간주되는 정체성들’이 들어가는 경우도 가끔 존재합니다. 최근에 들어서야 정신건강의학과 체계가 일상화되면서 이러한 주술 등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 겨우 다행이라 평가할 수 있는 지경입니다.
다양성 관점이 아직 부족한 한국사회의 문제점도 있습니다. 한국은 국가주의나 집단주의 문화가 아직은 강력하기 때문에, 이러한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명분이라는 이유로 단일성을 요구하는 문화가 남아있는 편입니다. 또한 주류 집단을 구성하는 성분이 아직 특정 요소로 일관성이 뚜렷한 지점 등이 있어서 다양성의 정착을 상징하는 다양성을 가진 자들의 주류집단 진입이 아직 잘 이뤄지지 않았고, 그나마 주류 집단으로 진입한 곳은 연예계 정도일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정치계나 경제계, 법조계 같은 집단에서는 아직 다양성을 구색 맞추기에 가깝게 하는 정도라서 이 점이 신경다양성의 주류화를 아직 머나먼 이슈로 만드는 원인입니다. 하긴 한국은 아직 다양성의 공존을 공식화하는 상징적인 입법인 차별금지법조차 논의와 제정 시도는 있어도 완전히 제정되지는 않았으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제 신경다양성 이슈가 확산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자폐인들에게는 개인적인 오류 같은 것은 있어도 자폐 그 자체는 오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이론이 이제 학습장애-정신장애-ADHD 등 원인이 비슷한 이슈들과 결합하여 이제는 잘못된 것이 아니며 그냥 다른 것이라는 점을 이제 널리 알려야 할 시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제 세상에 뿌리내려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자본주의적인 해석을 하자면, 이제 ESG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저출생 등에서 빚어진 인력 부족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이 바로 신경다양성에 있다고 봅니다. 특히 이러한 이들도 결국 고용 등을 통해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끼치고 사회 전반을 발전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어서입니다. 실제로 신경다양인들이 경제활동을 하게 되고, 그러한 이들을 많이 고용한 기업은 의외로 성과를 내는 사례도 존재합니다. 독일의 Auticon 같은 곳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한국은 다양성 이슈에서 인종 다양성을 2010년대에야 본격적으로 실현이 그나마 가능해진 사회구조이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가 바로 신경다양인의 다양성을 활용해서 다양성 이슈 해결의 열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저는 자폐인들이 겪는 어려움 등의 문제를 존중하고, 또한 저마저 여러 어려움을 겪어봤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것의 어려움을 덜어내고 ‘사실 그게 틀린 것은 아니고 다른 것이니까 어떤 점은 그냥 그런 것으로 챙겨줘.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니까 너무 힘들었던 것이야’라고 평가합니다. 그러한 짐을 벗어던지기 위해서라도, 그러한 어려움을 덜어내기 위해서라도 신경다양성으로 이 자폐 등의 문제를 풀어나가고 싶습니다.
이 《파란만장 자폐인》을 함께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다가와서 이런 이야기를 전하지 않으면, 그 누가 이 세상을 바꾸게 될까요? 그것을 이뤄내기 위해서 이 책이 있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