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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용 알비스 Jun 17. 2024

앞으로도 전설에 남을 그 영국 원정 연수

파란만장 자폐인 - 24 : estas의 전설적인 2018년 영국 연수

제가 있는 estas가 근본적으로 변화한 계기가 있었다면, 단연 2018년의 영국 원정, 즉 조직강화 연수였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거의 최초로 자폐인들이 거대한 프로젝트 자금을 받아서 프로젝트를 수행한 최초의 사건이 아닐까 할 정도의 일이었습니다. 그것도 자폐인 스스로 말이죠.


이 프로젝트의 기원은 사실 실행되기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2016년, estas가 재건된 뒤 우연히 튀르키예계 네덜란드인 비르센 바사르(Birsen Başar)의 한국 방문과 estas와의 대화가 결정적인 이 프로젝트의 기원이었습니다. 이 일은 estas에게는 사상 처음으로 외국 자폐인의 현실을 알 수 있게 된 행사였고, 이를 계기로 더 넓은 세계를 향한 프로젝트가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와중에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자금을 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장애청년드림팀’ 자금을 받아오자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우연히 제가 영국의 Autism Act 2009를 알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영국이면 괜찮겠는데?’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렇게 영국 원정 프로젝트는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 비밀리에 추진된 프로젝트였습니다. 예상보다 늦게 출발하게 된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렇지만 2017년 유치 원서는 면접 라운드까지는 갔지만 탈락했습니다. 준비 부족이 원인이었지요. 아쉬웠지만 절치부심하고 2017년 가을, 결국 재도전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번에는 잘하면 승산이 있겠다는 판단이 들어서였습니다. 사실 저도 재도전을 강경하게 주장했었습니다. 2017년 11월부터 프로젝트는 재가동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2018년 3월 즈음, 프로젝트 윤곽은 대충 만들어졌습니다. 마지막 퍼즐이었던 단장 선임은 제가 결국 관련자를 설득해서 승낙을 받았고, 그 단장을 통해 다시 통역까지 구함으로서 이 프로젝트 인원 편성은 끝났습니다. 진즉에 estas에서 파견될 팀원은 다 선발된 상태였습니다. 


2018년 3월, 저는 몇몇 팀원들을 데리고 서울 시내 어느 Airbnb 방에 모이게 하는 합숙을 진행했습니다. 프로젝트 워크숍을 빙자한 ‘통조림’ 식 유치원서 작성이었습니다. 몇몇 팀원들이 약간 속도가 붙지 않아 결국 시행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다독임 끝에 유치원서는 작성되었고, 다시 4월 하순 서류가 한국장애인재활협회로 넘어가고 이어 서류 합격 통지서가 날아와 다시 면접 시즌을 치렀습니다. 면접은 약간 노림수를 썼지만 어떻게 결국 5월 초 영국행 티켓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본격적인 영국행 프로젝트가 가동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도 짐작했었지만 ‘자폐’라는 유형 자체가 그 티켓을 따는 것에 있어서 승부수였습니다. 당시 프로젝트 역사상 발달장애인들이 출전한 사례는 단 한차례뿐이었고 그나마 발달장애인 특수 교육기관의 선발팀이었기에 진짜 승부수라고 할 수 있었을 정도입니다. 당시 자조모임 기반으로 도전한 팀은 없었습니다. 즉, estas가 파견한 팀이 역대 최초로 자조단체 기반 도전 팀이었던 셈입니다. 그 이후에 다른 자조모임 기반 팀이 등장했긴 하지만요.


그렇게 추가 회의와 논의 끝에 7월이 되면서 공식적인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시아-태평양에서 한국으로 온 장애계 인사들과 교류하기도 하고, 그 이전에는 공식 출범식 등이 진행되는 등 바쁘게 움직여 저는 그 2018년 7월 초는 그야말로 ‘숨 가쁜 3주’라고 부를 정도로 매우 바빴습니다. 당시 다니던 직장의 프로젝트 등과 ‘겹치기 편성’이 되는 바람에 회사 일도 하고 이 프로젝트 일도 하고 개인적으로 해야 하는 일 등 이것저것 할 일이 매우 많아서, 그날을 마친 토요일에 치킨 1마리를 시켜 먹으며 그 보상을 치렀을 정도입니다. 그때는 제 기억으론 당시에도 버거웠던 치킨 1마리를 통째로 혼자 시켜 먹었으니 말입니다. 


다시 8월 9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 제가 나타났습니다. 이제 영국행 짐을 들고 영국으로 진짜 떠나게 되었습니다. 비행 와중에 컵라면이 다 떨어졌으니 두 번째 기내식이나 기대해 달라는 말까지 들으며 런던행 비행기를 타고 인생 최초로도 대륙을 넘어 아예 다른 세계에 도착했습니다. 그 이전에 갔던 외국은 중국 대륙과 대만 뿐이었으니 더 그렇습니다. 친척들 말로는 자기들끼리만 봐도 제가 처음으로 유럽에 간 것이라고 이야기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영국 처음 며칠은 런던에서의 살짝의 여행 시간으로 대영박물관도 가고, Proms도 관람하는 등의 시간을 보내며 영국을 즐겼습니다. 그렇게 잉글랜드에서의 유일한 임무인 자폐 관련 팀을 만나고, 본격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하러 스코틀랜드 글래스고행 기차를 런던 유스턴역에서 타고 5시간여를 달려 도착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내부 사정으로 현지에서 합류하게 된 다른 팀원과 합류하여 진짜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2018년 8월 14일,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필자는 중앙에 서 있고 선전 피켓을 들고 있다.

스코틀랜드 일정은 지금도 제 영국 자폐인 친구들 상당수가 이때 만난 친구들일 정도로 인연이 깊습니다. 특히 14일 에든버러에서 만난 친구들은 지금도 페이스북에서 온갖 수다를 떨며 인연을 이어나갈 정도입니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제가 많이 진행시킨 점도 있었지만, 윤은호 박사가 많이 수고하지 않았다면 성과는 덜했을 것입니다. 특히 일정을 맞춰주는 작업은 윤은호 박사의 수고가 많았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 영국에 갔을 때 현장 지휘를 한 것에 가까웠지요.


그렇지만 영국에서 전수받은 이론은 매우 많았습니다. 특히 이러한 이론이 훗날 estas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먼저 자폐인 조직 운동이 한국에서는 초창기이지만, 영국 등지는 매우 뿌리 깊은 운동이라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그들 말로는 1980년대에 이러한 운동이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지금 이 이야기를 전하는 것도 한국 자폐인 운동의 거의 초창기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다음으로는 조직을 운영할 때 각자의 역량에 맞춰서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자폐인 조직 SWAN의 조직자 캐트로이나는 estas에게 조직 운영에 있어서 각자의 역량에 맞춰서 일해야 하며, 무리하게 똑같은 분량으로 업무를 분할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점의 영향으로 estas는 최근 일을 할 때 각자 할 수 있는 일은 각자가 알아서 준비하는 원칙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estas에서 활용될 수 있는 조직 원리 중 영국에서 전수받은 것은 확실히 이 두 가지였지만, 영국에서 그 실제를 보고 나서 놀란 영국의 상황도 몇몇 지점이 있었습니다. 


먼저 영국 자폐인들이 지역사회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에든버러에서 만난 자폐인들 중 Nariese라는 자는 제가 개인적으로 물어볼 일이 있어서 약식 인터뷰를 따서 제가 기고하는 에이블뉴스에 소개한 적도 있었고(그 당시에는 Chloe라는 이름을 썼지만, 그 인터뷰 직후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합니다.), 아예 그는(they/them) 2024년 7월 영국 총선에 스코틀랜드 녹색당(Scottish Greens) 후보로 직접 출마할 정도였습니다. 저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매우 활동적이고 당찬 당사자라서 매우 부러워하는 친구이기도 합니다. 


영국인들은 그에 덧붙여 ‘정치적 자조활동(Political Self-Advocacy)’이라 불리는 활동을 한다는 사실도 놀라웠습니다. 아예 의회와 정부까지도 그 접촉의 대상을 넓힌다는 점에서 예상보다 거대한 놀라움을 겪었습니다. 그 이후 estas는 정부와 국회 등까지 접촉 범위를 넓혔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고 돌아온 이후, estas는 더 많은 활동을 전개하고 있고 특히 자폐인 활동가의 국제교류 활동을 더 강화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점점 국제 자폐인 활동에 있어서 한국 대표 단체로 발전하는 등의 성과를 보였습니다. 주최 측도 2018년 최종평가에서 2등상에 해당하는 시상을 했고 2019년 우수 후속활동상을 시상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 노선으로 잡아가는 것을 지켜볼 정도였습니다. 물론 그때 만났던 영국 친구들, 특히 스코틀랜드 친구들은 지금도 페이스북을 통해 계속 수다를 떨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다양한 일본·칠레·미국·오스트레일리아 등 다양한 국적의 자폐인들을 만나 더 많은 교류를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제가 영국에 다녀왔던 연수 이야기 중 활동에 대한 것을 이야기했지만, 개인적으로도 영국까지 장거리 비행기를 타고, 낯선 거리를 지나며, 영국 지하철을 타고, 세계적인 장소에 다녀오는 등의 성과는 언젠가 다시 영국을 다시 찾을 준비를 하게끔 했습니다. 실제로 2020년 같이 찾아온 코로나19 위기와 이사 계획만 없었다면 2022년 단독 영국 여행을 다녀왔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은 다시금 영국 여행을 위한 자금 보충 작업에 여념이 없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2023년 우연히 본 영국 뮤지컬 《식스 더 뮤지컬》의 라이선스 공연을 보고 나중에 넘버(뮤지컬의 삽입곡)의 영어 원판 등을 들으며 진짜로 영국에 가서 ‘여왕님’(《식스 더 뮤지컬》이 헨리 8세의 여섯 왕비 이야기이기 때문)을 만날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실현할 영국 여행 프로젝트 암호를 그 작품의 팬덤 이름을 따 ‘Queendom’이라고 붙였을 정도입니다. 


앞에서 제가 있는 estas가 변화를 크게 겪었다고 이야기했지만, 저도 이제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완벽하게 씻어낸 그 전설적인 시점이 아마도 2018년 영국 조직강화 연수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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