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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용 알비스 Jun 02. 2024

한국에도 그런 자폐인 그룹이 있습니다. estas라고.

파란만장 자폐인 - 23 : 한국 최초 자치 자폐인 그룹 estas 개론

저희 estas의 공식 전체 휘장입니다!

제 주위 사람들이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너도 자조모임 그런 것 하니?”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자폐인 조직 만들기 이런 것에 있어서는 의외로 제가 이런 프로젝트의 초창기 기획자이자 ‘관련 분야 전문가’라는 점은 잘 모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이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면 대단히 놀라는 것이 그런 것이 벌써 있었냐는 반응으로 나타나곤 합니다.


아마 한국에서 자폐인 그룹이 형성된 것의 시조새 같은 존재를 이야기하라면, 제가 구상부터 지금까지 대외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자폐인 자조모임으로 출발했지만 이제는 당사자 의견그룹으로서의 역할도 진행하는 estas를 언급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이것의 구상까지 제가 초안을 생각했었던 점이 있었습니다. 2013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당시 소속사이기도 했던 한국장애인개발원 중앙장애아동·발달장애인지원센터에서 연구 프로젝트를 하다가 미국의 People First 같은 발달장애인 당사자 그룹 운동에 대한 개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자세히 보니 지적장애인 중심 운동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자폐인끼리의 그룹을 결성하자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이 아이디어가 결국 실현된 것이 바로 estas입니다. 그렇게 estas가 문제제기를 했던 부분도 지적장애인 중심의 당사자 운동이라는 점과 아직은 완전 자치를 이룩하지 못하고 복지관이나 부모단체의 영향력 밑에 있었다는 지점이었고, 자폐에 대한 당시에는 잘못된 인식이었던 ‘성인 자폐인 존재의 부정’에 대한 반동까지 섞여 지금도 estas는 이 점에서 자폐인 중심이면서 성인 중심 그룹이고 자치 운영 원칙으로 움직인다는 3대 근간으로 삼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을 어떻게 끌어모을까 하다가, 지금은 한국 최초의 자폐인 박사학위 취득자가 된 당시에는 박사과정생이었던 윤은호 (지금은) 박사를 끌어들여 프로젝트를 같이 준비했습니다. 제가 대학생이던 시절부터 한국어 위키백과 편집을 같이 하고 오프라인 활동도 같이 하다가 우연히 둘 다 자폐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결과적으로 의기투합했습니다. 지금도 몇몇 자폐 관련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할 정도이니 말입니다. 그러한 것의 첫 프로젝트가 바로 estas였습니다. 자폐인들은 윤 박사가 끌어들였고, 2013년 9월 13일 중앙장애아동·발달장애인지원센터 회의실에서 역사적인 첫 모임을 열고 그렇게 estas의 머나먼 항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이름도 정해지고 그랬거든요.


모임이라는 것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모른 완전 생 프로토타입에다가 행동 방법론을 전혀 모르고 있으니 우왕좌왕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모임이 유야무야 되는 듯했다가, 2016년 4월 30일, 윤 박사가 강남의 모임공간에서 회원들을 다시 규합하면서 모임이 재개되었습니다. (윤은호는 이때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었던 와중이었습니다!)


2016년 즈음에 이르러 한국사회는 본격적인 변화를 맞이하기 시작했습니다. 발달장애인법이 2015년 시행되는 등 발달장애의 존재를 국가적으로 공인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고, 이제 자폐인이 존재하는 것을 국가가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는 입장 정도는 나오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참여한 첫 활동은 2016년 11월 튀르키예계 네덜란드 자폐인 당사자인 비르센 바사르(Birsen Başar)와의 대담 활동이었습니다. 그 시점엔 한국 자폐인 그룹이란 존재도 알려지지 않았는데 우연히 연락이 닿아 빠르게 성사된 것이었습니다. 이 시점을 계기로 estas는 무언가 큰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바로 estas가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자폐인 그룹으로 성장한다는 목표였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2018년 estas는 2017년부터 추진한 한국장애인재활협회와 신한금융그룹의 합작으로 추진된 장애청년드림팀 사업단 자금을 받아 영국에 다녀왔습니다. 저와 윤 박사(이때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였습니다)를 보면서 주최 측마저 ‘쟤네들은 그 둘이 쌍두마차로 끌고 가는 팀이야!’라고 평가할 정도의 프로젝트 팀이었으니 말입니다. 이 영국 연수는 estas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조직 이론을 전수받기도 했고, 관련 네트워크가 구축되기도 하는 등의 큰 성과를 보였습니다. 


그 이후에도 estas는 국제화에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막 왔을 때 극적으로 열린 미국 교포 출신 활동가로부터 전달받은 일을 비롯해. 코로나19 팬데믹 종료 이후 국제교류가 부활하면서 칠레, 일본 등지의 활동가와 연계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칠레나 일본의 경우 한국으로 관련자가 내한하면서 면담하기도 했었습니다. 일본의 경우 지난 2023년에는 5월 한국 서울에서, 2024년에는 10월 일본 도쿄에서 한일교류회를 열고 열 계획입니다. 국제 연대활동도 진행해 자폐 관련 국제 합동 연서명 성명서에 estas는 한국 대표로 서명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자폐 당사자에 대한 왜곡된 연구 파동이 있어서 국제적 연합이 필요했던 와중에 estas가 한국 대표로 서명한 것입니다.


가장 큰 대외활동은 UN CRPD 제2·3차 대한민국에 대한 국가권고안 중 제22조 관련 사안 의견 확보 성공 건이었는데, 이 내용은 자폐인 등에 대한 위치추적기 문제 등에 대해 UN CRPD에 전한 뒤 그들의 판단으로 그러한 위치추적기의 인권적 사용을 촉구하며, 장기적으로는 사용하지 말기를 요구하는 내용으로 대한민국에 대한 국가권고안에 이 내용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국제 활동 분야에서 estas가 그것만 집중하기에는 다양한 국내 활동도 중요했습니다.


먼저 2024년 7월 제3회 행사가 열리는 자폐 관련 아시아 최초 전문 박람회인 ‘오티즘 엑스포’에 2019년 제1회 때부터 정식으로 참여 부스를 받는 형식으로 참여해 자폐 관련 그룹의 존재를 한국 자폐인 사회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2019년에는 당사자 그룹이 estas 달랑 하나뿐이었지만, 코로나19 위기 이후 진행된 2022년 제2회 때는 신경다영성지지모임 세바다와 그 사이 조직된 People First 조직 등이 참여해 자폐 관련 당사자 그룹이 성장하고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특히 2019년에는 아예 estas가 참여신청을 먼저 제안한 것이 아니라 관련자들이 거의 초대하다시피 하면서 참여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가장 눈에 띄기 시작한 대규모 활동이었던 2022년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때의 이야기는 estas 내부에서도 ‘우영우 투쟁’이라는 용어로 그 시기를 하나의 중요한 지점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제작 논의가 오갈 때 estas가 사전에 견제해 놓고 제작에 들어간 탓에 자폐 관련 논의에 결국 불을 댕긴 사건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결국 estas가 당긴 자폐 관련 논쟁의 불은 그렇게 한국 사회를 갈아엎게 되었습니다. estas조차 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성공이 결과적으로 성인·여성·고학력·고기능 및 고인지·직업인 자폐인의 존재를 사회적으로 공인받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estas의 활동을 통해 estas가 첫 번째 활동 목표였던 ‘성인 자폐인의 존재를 알린다’라는 목표는 확실하게 달성했다고 평가할 정도였습니다.


한국사회에 신경다양성이라는 개념에 대한 존재나마 소개한 것도 estas였습니다. 이쪽은 관련 단체인 세바다가 더 열심히 활동하는 사안이지만, 그러한 존재를 언급한 최초의 그룹은 estas였습니다. 2019년 관련 서적이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estas가 신경다양성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살짝 추천사를 통해 전했으니 말입니다. 2024년 현재 estas와 세바다는 몇몇 팀원들은 연합 대화방이 있을 정도로 합작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합작에서 제가 맡는 것은 양측의 전쟁이 발발하지 않게 막는 안전핀으로서의 역할입니다.


최근 estas의 중요한 변화는 회원 구성과 그 특징이 더 다양해졌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중산층 남성 수도권 자폐인들이 중심이었다가, 최근 영남 권역 출신이나 여성 출신 등 출신 배경이 다양해졌고 이념 스펙트럼도 자유주의 성향이 아직은 중심이기는 하지만 보수적인 정치관이나 강경 진보 등의 다양한 정치 이념을 가진 성향의 회원도 증가했습니다. 다만 성인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는데 이는 회칙에 사실상 ‘만 18세 이상만 가입 가능’이라는 ‘성인들의 조직’을 밝혔으니까요.


estas의 조직 이후, 한국에서 estas와 다른 자폐인 그룹들이 점점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조직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아직 estas가 접촉한 적은 없었습니다. 앞으로 언젠가 estas는 다른 행성 같은 한국 내 다른 자생적인 자폐인 집단을 찾아 나설 것입니다. 제가 있는 estas도 복지관-부모단체 등의 영향력 없이 ‘광야에서’ 자폐인 몇몇이 다른 행성, 즉 다른 자폐인을 찾아 나서며 그렇게 우주가 형성되어 모인 집단이었으니 그런 일은 당연히 그럴 것이라 믿을 뿐입니다.


그러나 과제는 계속 남아있습니다. 법인 등기를 정식으로 생성하는 작업도 있고, 관련 홈페이지 등의 체계를 더 확충해 나가는 것도 필요하고, 재정이 더 단단해지고, 더 많은 자폐인들이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고, 점점 지역별 소그룹의 형성을 준비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미 영남 권역은 소그룹의 틀을 미리 만들기도 했습니다. 영남과 수도권 2개 지부(‘가람 모임’이라 부르는)가 설립되었고 미래에는 충청-호남 권 그룹도 생겨나기를 원할 뿐입니다. 더 나아가 해외 estas 연계조직도 만들어야 합니다. 즉, 일종의 estas가 글로벌 프랜차이즈까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자폐인들이 조직을 만들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estas가 증명한 것이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이번 글은 약간 공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는 estas의 기획자가 이 글을 쓴 작가 본인이라는 점이 있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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