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지용 알비스 Apr 28. 2024

수면 아래에서 조용히 전진하고 있습니다

파란만장 자폐인 - 21 : 자폐 인권 운동과 그 현황에 관한 짧은 소개

옛날과 지금은 많이 다릅니다. 자폐인들이 이제 알아서 움직이는 시대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모르겠지만, 그 이면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수면 아래에서 조용히 전진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자폐인들은 존재를 부정당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서구권은 1980년대 즈음부터 자폐인들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고, 지금도 조용히 그 상황을 바꾸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1980년대는 장애인 운동이라는 개념이 겨우 생겨나는 시대였기 때문에 약 30년 ~ 40년 정도의 시차가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에서 자폐인 관련 문제가 떠오른 것은 2010년대 중후반 즈음에야 그랬기 때문입니다. 


요즘 한국 독서계에 자폐인들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들은 아마 이것을 빼고는 거의 번역서일 것입니다. 자폐인 당사자들이 쓰는 책에 한정하면 그렇습니다. 물론 부모나 전문가들도 자폐에 관한 책을 내고 한국 국내 저자도 있지만, 일단 당사자는 아닙니다. 거의 이 책이 첫 번째 세대일 수준일 것입니다. 이 책은 여러분들에게 자폐인의 존재에 대해서 그동안 이야기가 없었던 당사자들의 진실된 이야기와 그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처음으로 여러분에게 당사자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서구권의 자폐인들은 이미 당사자 조직을 건설했고, 전국 네트워크 조직을 건설하고, 정부 등과 합작사업을 추진하는 등의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알아보러 2018년 영국에 다녀왔었습니다.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만난 당사자들은 이미 영국에서는 활발한 당사자 활동과 투쟁이 전개 중이라고 전해왔습니다. 그것을 보고 2018년 놀랐었습니다. 그때 영국에 갔었던 이유도 바로 그러한 전략과 이론을 전수받기 위해서 갔었으니 말입니다.


몇 년 전 자폐에 관한 연구를 한 외부 인사와 이야기를 하는데, 해외 자폐인 당사자 출신 연구자들이 논문이 왜 이렇게 나왔느냐고 막 따지고 그랬습니다. 자폐와 관련된 연구는 맞았지만 이 학술지는 컴퓨터 UX/UI 디자인에 관한 논문을 싣기 위했던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미 컴퓨터 공학 이런 등등의 분야에서는 자폐인 연구자들이 조금씩 비중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학계는 자폐인들에게 유명한 분야 중 하나입니다. 이미 한국에서도 자폐인 연구자이자 박사학위 보유자 등이 존재하는 상황입니다. 그럴 정도로 자폐인들이 연구 등에 나서는 상황은 이미 있습니다. 자폐인 공학자뿐만 아니라, 자폐인 의대생과 의사들의 모임인 ADI(Autistic Doctor International)도 있을 정도입니다. 한국에서는 자폐인이 의사 면허를 취득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한국인 회원은 당연히 없습니다. 한국 의사 면허 기준에는 ‘정신질환자’의 취득 금지를 조건으로 내걸었기 때문에 이 규정을 적용하면 취득할 수 없고, 한국에서 공개적으로 발달장애인의 성년후견이 해제 사례가 공개된 사례는 거의 1건 수준 밖에 되지 않으니 말입니다.


한국은 자폐인이 활동하기에는 일단 사회적으로 활동할 공단도 없고 사회에 진출한 자폐인의 수도 극히 적은 편입니다. 또한 돌봄 등의 중심 정책이 강력하기 때문에 자폐인 관련 문제는 아직 인식제고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물론 한국에서 자폐 관련 논의가 2010년대 후반에야 공식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해서 2020년대 초반에야 자폐 관련 의제가 공식적인 의제로 지정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기는 합니다. 한국은 진보적 장애 관련 의제에 있어서 서구권의 논의보다 약 20년에서 30년의 시차가 있다는 점이 있다고 봅니다.


또한 한국의 장애 관련 논의의 주도권은 아직 신체장애, 그것도 지체장애 중심의 세력이 여전히 패권을 쥐고 있어서 일종의 패권주의적 성향 때문에 자폐 관련 논의는 이뤄지기 어렵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가 지난 2023년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장 선임파동입니다. 발달장애계 관련 비장애인을 정책적 수요에 따라 선임했으나 신체장애계가 장애당사자 선임을 요구하는 바람에 압력을 못 이겨 사직한 사건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또한 장애계의 대표적인 단체 중 발달장애 관련 단체 중 대형 당사자 조직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지적장애 중심 그룹인 한국피플퍼스트와 한국에서 자폐 당사자 관련 논의 의제를 제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그룹이자 제가 있는 estas 정도가 그나마 규모가 있는 당사자 그룹일 정도입니다. 한국피플퍼스트와 estas는 약간의 반목이 있지만요.


영미권의 성과에 비해서 한국의 성과는 당연히 거의 없는 편입니다. 최근에야 점점 자폐 당사자에 대한 인식이 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각개전투에 가까운 상황입니다. 각자가 점점 성장해서 판이 커지는 현상입니다. 저도 그러한 케이스 중 하나일 것입니다. 역량 있는 각자들이 각자 약진하면서 세력이 커져지는 현상에 가까운 편입니다. 아직 한국 자폐인 권리운동은 ‘외연 확장’을 중점으로 이뤄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의 조류를 흔히 ‘자폐 권리 운동’(Autism Right Movement)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자폐 권리 운동은 자폐인들의 존재를 인정받는 것으로 시작하여 이제 자폐인들이 요구하는 것을 실현하는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몇몇에서는 자폐인이 중심 그룹으로 성장한 지역도 있고,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가장애보험(NDIS, National Disability Insurance Scheme) 체계에서 가장 활용성을 보인 집단이 자폐인 집단이라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관련 재조정 논의가 있을 정도입니다. 


European Council of Autistic People의 공식 홈페이지 첫 화면


이미 자폐인 집단은 국제조직까지 건설한 상황이고 국제적 연합 연구 논의가 있을 정도입니다. 유럽은 아예 연합 활동 조직인 European Council of Autistic People이 결성될 정도이고, 미국은 이미 Autistic Self Advocacy Network이 강력한 활동 그룹으로 성장한 상황입니다. 


2022년 2월에 〈Open letter to the Lancet Commission on the future of care and clinical research in autism〉라는 긴 제목의 공개 성명서가 발표된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는 자폐 관련 연구 등에서는 이제 당사자들도 조직을 꾸리고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아예 공동으로 전선을 펴서 반박 논문 등을 제기한 바가 있을 정도입니다. 한국에서도 estas에서 일부 협력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제 자폐인들이 범세계적인 조직을 건설할 가능성도 머지않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운동이 성과를 거두는 것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자폐 인식(Awareness)이라는 개념이 자폐 수용(Acceptance)으로 전환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고, 2020년대 들어서 이러한 인식의 전환이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자폐를 아는 문제에서 받아들이고 사회로 편입하는 문제가 과제로 떠오른 셈입니다.


또한 자폐 관련 문제에서 소소한 사건들이 일어나면 자폐인 당사자 관점의 대안 제시 등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럴 때 언제나 달리는 해시태그인 ‘#actuallyautistic’ 은 이제는 당사자들이 다들 달아서 저도 가끔 사용하는 해시태그가 될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비판받는 지점도 몇몇 있습니다.


먼저 자폐 정도가 경증인 그룹들이 중심이 된다는, 일종의 중증 소외론이 가끔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중증 자폐인을 먼저 대중들에게 드러내려는 자폐 관련 부모나 전문가 집단 때문에 역으로 경증 자폐인 소외현상이 가끔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경증 자폐 청년들은 장애인 정책도, 청년 정책도 둘 다 소외당한다는 연구결과도 있을 정도입니다. 


두 번째로 계급적 소외론 문제도 있는데, 자폐 관련 대중 활동을 할 수 있는 그룹이 중산층 이상인데 반면 자폐 관련 보도 등에서는 저소득층 자폐인 문제가 더 많이 제기되는, 일종의 양극화 현상이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노동 가능 여부에 따라서 자폐인 내부에서도 계급이 갈려서 노동 계급 수준이 곧 자폐인 생활지수에 가까운 점도 있습니다. 그와 비슷한 이론이 부모의 계급 상황이 자폐인의 생활지수를 결정한다는 지적입니다. 심지어 자폐 정도까지 부모의 계급 수준의 영향을 받는다는 지적도 가끔 있습니다. 


세 번째로 여성 자폐인 등의 소외현상이 있습니다. 자폐인이라고 해도 주류 서사가 남성이고, 발생 비율도 남성이 압도적인 현실 때문에 여성이나 성소수자 자폐인들도 조금이나마 한국에도 존재하지만 소외당하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여성 자폐인들은 자체 그룹을 결성하기도 하는 등 자폐 버전의 페미니즘을 만들기도 한다 합니다. 그러나 활동성 면에서 자폐인의 남녀차이는 극히 드문 편입니다. 활동성이 더 이 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편이라 하겠습니다.


자폐인들이 수면 아래에서 조용히 전진하고 있습니다. 자폐인들이 점점 세력을 만들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차분하게, 자폐 권리 운동의 깃발이 오르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