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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용 알비스 Dec 20. 2023

내성적이기엔 저는 E입니다

파란만장 자폐인 - 16 : 자폐인의 내향성에 대한 오해

최근에 있었던 서울대학교 학생과 접견 와중에 (2023. 11. 25) 나는 흰색 옷을 입고 있다.

제 MBTI를 자주 조사해 보면 으레 ENTJ 성향이 짙은 것으로 나옵니다. 엄청나게 사령관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지요. 자폐인들은 대체로 내성적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E’가 뭡니까, 바로 외향적 성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사령관보다는 고급 참모가 더 적성에 맞다는 평가가 있지만, 하여튼 뭔가 세상과 분리된 삶을 사는 것은 역설적으로 제겐 좋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제 친구는 그 제 MBTI라고 알려진 ENTJ 성향을 보고선 “자폐인한테서 ‘E’가 나온 것은 나도 처음 보는 일이야!”라고 이야기했을 정도입니다.


저는 사람 만나러 가는 것을 그렇게 크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과거 2005년 시절엔 사람을 두려워했지만, 그 이후 점점 세상 속으로 들어오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인지 TV에서 자주 시청하는 프로그램 상당수가 여러 사람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입니다. 특히 외국인 출연자들이 나오는 프로그램들을 좋아합니다. 실제로 지금 당장 누군가가 “살면서 봤었던 TV 프로그램 중 가장 인상 깊었던 프로그램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면 저는 당장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KBS 2TV 《미녀들의 수다》 (2006~2010)”라고 대놓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알다시피 해당 프로그램은 외국인 여성들이 집단을 이뤄서 대규모 출연하던 프로그램으로 지금도 몇몇 출연자들은 방송 출연 활동을 이어가거나, 최소한 유튜브로 안부를 전하는 일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저는 몇몇 출연 패널들과 SNS 친구관계를 통해 나름대로 서로의 존재를 지금도 의식합니다.


그래서 제가 자폐인 모임에서 자주 하는 일은 기업식으로 치면 ‘대관업무’입니다. 몇몇은 제가 가진 네트워크를 이용해야 일할 수 있는 곳도 있고, 아예 저를 협상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한 점은 자폐인들이 하기 어려운 일인데, 그나마 제가 직장생활을 꽤 오래 했기 때문에 이런 ‘대관업무’ 성 업무를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것입니다. 자폐인 모임이나 장애인 단체 이런 쪽에서는 그나마 ‘대관업무’가 가능한 것입니다. 물론 기업체에 가서 ‘대관업무’를 하는 것은 그야말로 대단히 어려운 문제 이긴 하지만요.


심지어 다른 신경다양인 그룹 사람들 중 하나는 특정한 곳과 협상할 때 자기와는 일이 가끔 안 맞는데 정작 제가 협상하면 일이 술술 풀리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면서, 그러한 것의 원인을 묻기도 했습니다. 물론 정답은 직장에 다니면서 배운 기술인 어떻게 보면 소위 말하는 ‘처세술’을 어떻게든 배웠기 때문에 가능했기도 했습니다.


처세술은 역설적으로 자폐인들에게 힘든 개념입니다. 자폐인이 처세술을 갖춘다는 것은 마스킹이 겨우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 처세술로 세상을 사는 것은 생존에는 도움이 되지만, 결국 나중에는 지쳐 쓰러지기도 합니다. 저도 최근에는 뭔가 큰 일을 하고 나면 며칠은 큰 일을 벌이지 않는 편이기도 합니다. 2018년 영국 연수 과정에서 7월 초는 회의다 행사다 뭐다 하면서 매우 많은 일정을 뛸 정도로 바빠서 ‘숨 가쁜 3주’라고 불리던 연속된 일정들을 마친 그 마지막 토요일, 푹 자고 나서 치킨 한 마리에 모든 힘든 것을 풀어버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렇지만 자폐인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바로 ‘자폐인은 내성적이다’라는 평가입니다. 상당수 자폐인들이 결국은 사회적 냉대 이런 것을 당하며 결국 세상 속에 나아갔다고 해도 세상의 냉대 속에 결국 자기 문을 걸어 잠그고 사회적인 ‘두문불출’해버리는 그런 일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자폐인들의 사회성이니 뭐니 하면서 살아가는 것에 크나큰 지장이 생기기도 합니다. 저도 몇몇 태도는 방어적인 태도이기도 한데, 이는 대외적인 공격 등을 너무 많이 받았었던 과거의 잔재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것으로 인해 세상에 나온 처음에는 많이 고생하기도 했고, 몇몇 사안은 최근에야 그 마침표나 사실상 ‘상황종료’ 선언을 할 수 있는 수준의 사건도 있습니다.


그렇게 실제로는 세상을 향해 나서고 싶어 하는 자폐인들은 매우 많지만, 그들과 세상이 소통하는 방법을 잘 모르다 보니 결국 세상의 문법에 맞추기 어려운 자폐인들은 실망하면서 세상을 거부하고 도로 문을 걸어 잠그게 되어 내성적으로 변하게 되기도 합니다. 


저는 그나마 자폐를 제대로 발견할 때 즈음에 그동안 제가 드러냈던 특성이 개인적 독특함인지 자폐 때문인지를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관련 기록에도 ‘이 자는 마스킹을 하지 않았다’라는 특이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이 역설적으로 이제 더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그런 기원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와중에도 외향적인 성향이 억눌리지 않고 SNS를 즐기고 집회나 시위에 한번 수틀리면 나가게 되고 그런 것의 기원이 이렇게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대학 시절에 활동한 동아리가 사실 약간의 운동권 기질도 있었기도 했었거든요.


저는 내성적이기는커녕 E자를 증거로 하는 대단히 활동성을 즐기는 자폐인이기도 합니다. 내성적이고 수줍기는커녕 나서기를 좋아하고 그런 것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자폐인들끼리의 일에서도 직접 나서서 해결하는 성향이 지금도 남아있을 정도입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 일도 경험하기도 하지만 그런 것이 없었다면 다른 자폐인들이 선뜻 나서기 어렵거나 동력 있게 행동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비자폐인들과 일할 때 내성적인 요소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한 번은 업무를 너무 무모하게 진행하려 드는 사장을 제지하면서 “이것은 안 되는 일입니다. 전혀 가망이 없는 사안이거든요!”라고 보고를 올린 적이 있는데, 그 사장이 오히려 “안 되면 되게 하라”를 지시사항으로 내려서 오히려 제가 위축될 정도였습니다. 그 사안은 너무 현실성 없는 사안이었기에 오히려 업무를 보수적으로 집행했어야 하는 사안이었거든요.


어떤 일은 시간을 재서 일을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시간을 재다 보니 아직 시간이 맞지 않아 아직 준비할 필요가 없는 사안이었는데 비자폐인 직원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고 또 뭐라고 해서 이럴 때 어이없었기도 했습니다.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일하기 위한 시간을 재고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이후 시간을 다 재고 일했을 때는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ENTJ는 일을 다 재놓고 미리 다 해놓는다고 이야기를 하던데 바로 그럴 때였습니다.


이렇게 자폐인이 내성적이 되는 또 다른 요인은 사회적 압력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자폐인들의 행동 스타일 이러한 점이 비자폐인들에게는 그것이 민폐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그러한 것이 오히려 자폐인들에게는 억압으로 들릴 수도 있는 것이, 특히 다른 이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순전한 개인적 행동조차 하지 말라고 하는 경우가 있어서입니다. 심지어 저나 우영우조차 반향어의 잔재가 있는 것을 하지 말라고 한 소리 들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지금도 저는 집에서 전혀 반향어의 잔재가 있는 것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한 것이 바로 ‘마스킹으로 인한 부담’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마스킹 부담 때문에 자폐인들의 정신적 체력은 약해지고, 결국 외향적이던 자신의 성질이 죽어서 내성적으로 변하게 되어 결국 편견이 그렇게 쌓여만 가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만나본 자폐인들은 활동적인 성향도 가끔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활동적인 성향 때문에 오히려 더 자폐인 사회는 풍부해지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단지 제가 만나본 자폐인 중 MBTI가 E인 다른 사람은 아직 못 봤지만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자폐인들의 숨겨진 MBTI는 ‘E’가 숨어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내성적인 성격의 기원은 결국 밖으로 나가고 싶은 자폐인들을 보호·안전·예의 이런 명목으로 가둬놓았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자폐인들은 오히려 내성적인 삶을 살기엔 어떨 때는 에너지가 있기도 합니다. 그런 내성적 성격의 이면에는 억압당한 자신의 활동성을 결국 품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참아가면서 솔직히는 활동력을 보여주고 싶지만, 각종 사회의 규제는 이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제가 있는 자폐인 그룹인 estas의 모임에서는 그래서 ‘모임에 방해되지 않는다면 개인적인 성질이나 루틴 등의 행동을 해도 얼마든지 인정’이라는 비공식 규정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저도 돈이나 시간의 여유가 충분하면 휴일이나 휴가 등을 이용해 야구 응원을 가기도 하고, 아예 대놓고 촬영을 다녀오거나 맛집을 찾아 나서는 등 활동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단지 제게 돈과 시간의 여유가 허락하지 않을 뿐이지만요. 주위에서 이런 식으로 그런 에너지를 분산해 보라는 충고를 들었던 적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자폐인들은 알고 보면 외향적이고 싶은 이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가 ‘똑같이 다릅니다’. 오히려 자폐인의 내향성 속에는 주위의 압력 이러한 것 때문에 강제로 눌려진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바깥으로 에너지를 보이고 싶어도 그러한 것을 난동 이런 것의 프레임에 가둬놓는다면, 그야말로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자폐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떻게 보면 외향적 요소가 있다면 그것을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폐인들은 스스로를 가둬서 자폐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문을 제대로 열지 못해서 가둬진 것에 가깝다는 것이 언제나 제 생각이라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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