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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용 알비스 Nov 26. 2023

'자폐아'라고 하기엔 이미 '으른'이 되어버린

파란만장 자폐인 - 15 : 성인 자폐인의 존재에 대하여

이 사진에서 자폐인이 아닌 사람은? 그리고 여기 있는 자폐인 중 '으른'이 아닌 자는 몇 명? (정답: 2명만 비자폐인, 모두 '으른')

한국에서 자폐와 관련된 단어로 자주 쓰이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자폐아’라는 표현인데, 살짝 보면 이 표현은 절반만 맞는 표현입니다. 결국 한 가지를 부정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자폐아’라는 단어 속에는 바로 ‘성인 자폐인’을 부정하는 의미가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estas 등 한국의 자폐인 관련 집단에서도 ‘자폐아’ 표현은 만 18세 이하 자폐인에게 쓸 때만 별 문제를 삼지 않을 정도입니다. 


한국의 주요 자폐인 서사에서 가장 진전된 서사가 2022년 이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자폐 캐릭터 클리셰’를 완벽하게 깨부수는 데 성공한 첫 번째 대중적 서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자폐인이나 발달장애인 캐릭터를 묘사하면 지적장애를 동반한, 중증에 가까운 남성이 당사자이며 보호자인 가족의 역할과 유년기, 청소년기 양육 과정의 고통이 주로 강조되던 서사였기 때문입니다. 우영우에서는 처음으로 지적장애가 없이 대학원까지 졸업한, 성인 여성, 비장애인들도 하기 어려운 변호사 직업을 가진 자폐인을 타이틀 캐릭터로 삼았다는 점이 가장 진전되었기 때문이죠. 즉, 그 이전까지는 그 클리셰의 전제는 결국 ‘자폐아’를 전제로 했음도 살짝은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 한국 자폐인들의 실제 분포도는 2022년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전체 등록 자폐인 37,603명 중 17,229명이 만 18세 이상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즉, 성인 자폐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며 거의 절반 가까이가 성인 자폐인이라는 점을 거꾸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자폐인에 대한 인식은 우영우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자폐아’라는 단어가 일상적일 정도로 자폐성장애는 그야말로 ‘아동 · 청소년기에만 존재하는 장애 유형’이라는 인식이 매우 팽배했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저는 다행히 그런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그나마 겉으로는 자폐인이라는 티를 드러내지 않는 수준이라 그나마 이런 소리를 덜 들었지 않나 싶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자폐인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직 상상할 수 없는 일인 듯합니다. 요즘에야 한국에서 성인 자폐인의 존재가 점점 알려지고 있고, 그 중심축 중 하나에 바로 저도 있었기는 합니다. 한국에서 ‘자폐인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상상은 이제 현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결국 벌어지게 되는 것은 ‘이제 성인 자폐인이 어떻게 살아가냐?’라는 현실적 고민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돌봄 부담부터 시작해서 고용, 교육 등에 대한 수요도 점점 늘어만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폐인이 어른이 된 것을 이제야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인 자폐인들 중에는 제가 아는 자폐인 중에선 미등록 자폐인들도 상당수 있습니다. 몇몇은 등록 시도를 했으나 등록이 거절되는 등의 일도 있었다는데, 실제로 몇몇은 등록 시도가 거절된 사례였습니다. 등록 거절에 대해 아예 인정을 요구하는 법적 소송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한 당사자도 봤습니다. 


한국에서 성인 자폐인 문제 논의가 이제야 수면 위로 오른 것은 법률상 자폐인 등록 인정 도입 초창기에 자폐성장애를 유아기에 등록한 당사자들이 이제야 본격적으로 성인기에 진입하면서 그들에 대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무시되던 존재들이 이제야 논의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입니다. 그 이면에는 이제야 자폐인 문제가 아동 · 청소년기의 장애 문제로만 해석할 수 없게 되었다는 불편한 현실에 이제야 직면했다는 점입니다. 


한국에서 성인 자폐인을 위한 정책은 거의 없습니다. 이제야 성인 자폐인(공식적으로는 성인 발달장애인) 정책이라는 개념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몇몇은 정책화되었지만 상당수는 돌봄 · 주간활동 · 평생교육 등 ‘부모의 부담만 줄이는 정책’ 위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인 자폐인 당사자들 중 의사표현이 가능하고 학력 수준도 어느 정도 있는 집단에서의 욕구는 그 시점의 비장애 청년과 비슷하게 대학 진학 · 안정적인 일자리 · 독립된 주거 · 부모 등에게서 멀어지는 생활양식 등을 실제로 요구합니다. 


아직 당사자 집단이 본격적으로 떠오르지 않고 공공 분야에서 당사자 자문위원 등이 형성되고 있지만 그 수는 매우 적은 편입니다. 특히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난 자폐인의 숫자는 더 적은 편입니다. 아직 부모의 온실 속에서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폐인 부모들이 세상 속으로 자폐인 자녀를 보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넓은 세상에 나온 자폐인들은 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제야 탈시설 운동의 전개로 ‘시설 수용 욕구’는 윤리적 비판을 받게 되었다는 점이 그나마 진전된 서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탈시설은 국제사회에서도 반드시 이룩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못 박아 둔 사안이라서 더 그런 점도 있습니다.


그래도 점점 자생적으로 성인 자폐인 그룹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미 단단한 조직이 된 estas는 제가 사실상 기획자 수준으로 참여하여 한국을 넘어 국제적으로도 활동하는 성인 자폐인 당사자 그룹이 되었습니다. estas의 강령에 의하면, 회원 자격은 만 18세 이상에게만 정회원의 자격을 부여합니다. 이는 처음에 estas를 조직하면서 “자폐인 중에는 성인도 분명히 있다는 점을 세상에 알리자!”라는 첫 번째 활동 목표를 단단히 하기 위해서 그런 규정이 estas의 정체성으로 발전하면서 남게 된 조항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최근 들어서 제가 들은 소문에는 한국에서도 자생적인 다른 자폐인 조직들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몇몇은 제 귀에도 들리기도 한 집단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 중 아직 그들과의 접촉이 이뤄지지 못해서 아쉬울 뿐입니다. 특히 그들은 성인 자폐인 그룹이라는 점이 가장 독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estas도 처음에 estas의 존재를 확인했던 이들이 가장 놀란 것이 바로 이러한 연결이 ‘자생적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장애인 조직이 복지관 등을 통해 조직되었던 것과 상당히 다른 모습이라는 점에서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점점 한국에서도 성인 자폐인들이 조직이 생겨나는 동안, 한국 사회는 성인 자폐인들의 존재를 이제야 겨우 인정하지만 ‘툭하면 돌봄 타령’ ‘사회적 기업 취업이 성공사례라고 홍보되는 사례’ ‘특기 때문에 유명해진 자폐인, 특히 음악이나 미술에서만’ ‘대학 졸업이 아직도 뉴스거리인’ 이런 인식을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저는 집에서 돌봄이 아니라 오히려 제가 ‘현물세’를 내야 하는 지경이고, 일반 기업에서 일하며, 특기가 있어도 의외로 인정 못 받는 사진 분야의 실력자이자 관련 정책 당사자 출신 연구자 후보생이자 논설 전문가에 에세이 작가인 것이 현실이고 유일하게 그런 인식이 맞는 부분은 ‘대학 졸업이 뉴스거리였던 것’이었습니다. 지역 언론에서 졸업전시회 사실을 보도했었긴 하지만 사실은 제가 일부러 쓰라고 지역 유지들에게 이야기를 해뒀던 것입니다.


그래도 자폐인들은 이제 ‘애들’의 시대를 넘어 ‘으른들’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자폐인 인식도 이제 점점 ‘자폐 으른들’ 시대가 다가오고 있으며 어떻게 보면 이미 와 있기도 합니다. 그런 자폐인 세계는, 점점 열리고 있습니다. 자폐인들은 영원한 어린아이의 존재로 여기기에는 이제 ‘으른들’이 되었습니다. 이미 ‘어른이 된 자폐인들’의 에세이 등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것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이야기도 본격적인 ‘어른이 된 한국 자폐인’ 이야기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자폐인을 바라볼 때 어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자폐인들도 벌써 ‘으른들 시대’가 돼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만 18세 이상의 자폐성장애가 있는 자를 ‘자폐아’ 말고 ‘자폐인’(Autistic)을 사용하는 시대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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