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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용 알비스 Aug 26. 2017

아 아 잊으랴 어찌 나는 그 날을

그날을 말하는 나의 한 그릇 음식

2017년, 인천, 고등학교 시절 자주 먹던 그 음식을 다시 먹었다

1절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후렴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2절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불의의 역도들을 멧도적 오랑캐를
하늘의 힘을 빌어 모조리 쳐부수어
흘려온 갚진 피의 원한을 풀으리

3절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정의는 이기는 것 이기고야 마는 것
자유를 위하여서 싸우고 또 싸워
다시는 이런 날이 오지 않게 하리 

-〈6.25 전쟁 노래〉전체 가사

그 문제의 그 날이던 고등학교 시절, 애들은 나를 계속 괴롭히고 오죽하면 내가 바라던 소원이 대놓고 '학교 하루 합법적으로 안 가는 것' 일 정도였다. 나의 존재를 부정하던 말과 행동이 매일 퍼레이드를 벌이는 양 계속 있었다. 그나마 내가 공부를 좀 해서 덜한것이 유일한 다행.


그 시절 영혼을 달래주던 음식이 있었다. 떡볶이에 탕수육 튀김을 올려놓은 '떡탕범벅'이 있었다. 나는 그 음식을 사랑했다. 당시 가격은 2000원이었다. 참고로 지금은 4000원에 팔고 있다.


학교 앞 지하상가 분식집에서 팔던 음식이었는데, 그때 맛은 괜찮았다. 그러니 내가 사랑할 수 밖에. 나를 계속 파괴하는 말이 나에게 다가올때, 달래주던 그 음식이었다.


얼굴에 흐르지 않는, 영혼 속으로 시름시름 울던 나를 달래준 것이다. '3년만 버티면 되, 그러면 이제 해방되는 거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먹은 기억은 지금도 나에게 새록새록하다. 고등학교 시절에 다른 학생들도 치르던 입시전쟁에, 나는 추가로 생존전쟁까지 치러야 했으니 말이다.


결국 해방은 되었지만, 그 전쟁의 상흔은 전쟁 그 이후에 드러나니, 나는 정신과를 2주에 한번씩 가야하는 신세를 지금도 지고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 정신이 완전히 파괴되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장애인 등록 시절 정신장애로 등록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왔을 정도니. (내 공식 장애는 법적으로는 자폐성장애만 있다. 그러나 의학적으로는 자폐성장애에 정신장애 2가지를 가진, 중복장애라고 볼 수 있다.)


올해, 지금은 진정되었지만 이른바 1분기 위기설이 있었다. 초중고등학교 시절 괴롭히던 내 '원쑤'가 결혼했다는 보고가 들어오는 바람에 정신과적으로 완전히 스트레스를 받아서 결국 회사에 반차 한번에 연차 한번을 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의사뿐만 아니라 사무실 관리직원마저도 느낄 정도였고 나는 당연히 그랬다. 

사실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만 했다. 나는 아직 애인이 없고 사귀는 여자도 없다. '여사친'은 많지만. 소개팅 제안도 거의 없다. 소개팅 시도는 있었지만 그 여자가 카톡에서 맞춤법도 틀릴 정도였는데 알고 보니 소개한 사람이 결혼하면 이혼이 아닌 무효로 처리될 수준의 사기를 친 것으로 밝혀져서 무산되었다.


(관련 글 읽어보기: 〈원수가 아니고 '원쑤'〉)


나는 절망했지만, 나는 살아야한다. 나는 장기전 끝에 영광을 이뤘기에 이 문제도 장기전으로 풀어나가야 했다. 나는 장기전의 달인이기 때문이다. 그 날을 기억하면서, 그 그릇 하나에 나를 담아 그 날을 기억하는 것이다. 나는 이 글과 사진으로 그 날을 기억하는 것이다. 마치 한국전쟁을 기억하면서 주먹밥을 먹는다는 것 처럼.


나는 이 한 그릇에, 그 날을 기억하는 마음을 담아 먹었다.



그리고, 갑자기 내가 이 옛날 군가 가사를 생각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나에게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러니까 기억할 수 밖에 없으며 뼈에도 깊히 남아있는,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는 뚜껑 뒤집히는 소리를 하고야 마는 수준(역설적으로 북한 김정은이 덜 위험할 정도로. 그만큼 그가 싫다.)의 말을 과감히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존재가 바로 그 자다.


가사 첫 소절을 내 사정에 맞춰서 바꿔 부른다면, '아 아 잊으랴 어찌 나는 그 날을'쯤 되겠다.


그 노래를 안 부르더라도 나는 입으로, 마음 속에 그 노래를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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