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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노신 Jan 30. 2021

어쩐지 자꾸 남아서 버리는 엄마표 반찬

'조금만'이라고 했는데…

"반찬 좀 해서 보내줄까?"


매일매일의 끼니가 고민인 상황에서 반가워야 할 엄마의 말에 "으응, 아니" 하고 말을 얼버무리게 된다.

사실은 지난번에 보내준 멸치 볶음, 콩자반, 미역국이 아직 냉장고에 남아 있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엄마 힘든데 뭘 그래"라며 말을 돌린다.


자취생에게 반찬은 매우 유용하다. 밥만 있으면 한 끼 해결이 쉽다.

하물며 딸을 위해 직접 재료를 고르고 정성껏 조리해서 보내준, 어려서부터 먹던 내 입맛에 꼭 맞는 엄마표 반찬이라니!

택배 상자를 열며 뭉클하는 마음과 함께 '이번에는 꼭 다 먹어야지'하고 다짐을 한다.

하지만 반찬은 늘 냉장고에서 한동안 자리를 잡고 있다가 종래에 버려진다. 엄마의 수고가 낭비되고, 나로서도 좋지 않은 마음이 드니 언제부턴가 마다하게 되었다.


사실 엄마표 반찬은 내가 혼자 먹기에는 조금 (조금 많이) 많다.

"조금만 해서 보내줘"라고 당부를 해도 막상 받아보면 계란 장조림이 2L짜리 반찬통에 담겨 있다.

부지런히 먹어도 혼자서 다 소화하기엔 상당한 양이다.


그리고 집에 반찬이 있어도 매일 먹고 싶은 것이 달라지는 사람인지라,

'그래도 반찬 먹어야 하니까 참자'하기보단 '반찬은 내일 먹으면 되니까 오늘 먹고 싶은 거 먹자'하다가 일주일이 금방 가는 것이다. 그사이 반찬은 쉬이 상해버린다.


그렇게 한동안 엄마의 '반찬 공수'를 피해 도망 다니다가, 최근에 한번 내가 먼저 "반찬 좀 해서 보내줘"라고 말을 꺼냈다. 엄마의 카레가 너무  먹고 싶었던 것이다.

주문이 되자마자 일사천리로 제작된 대용량 카레가 이내 도착했고 나는 며칠간 즐겁게 카레를 먹었다.

그리고 남은 카레는 다시 냉동실에 보관되어 있다.


카레와 함께 엄마가 보낸 계란 장조림을 '오늘은 먹어야지'하며 꺼내보니 상하진 않았지만 조금 맛이 변했다.

살릴 수 있을까 싶어 냄비에 부어 한번 팔팔 끓이는데 마침 엄마가 전화가 왔다.

계란 장조림 끓여서 먹어도 되겠지? 했더니 "아서라, 2주인데 아까워하지도 말고 그냥 버려. 병원비 더 든다."라고 한다. 아직 절반도 넘게 남았는데 아까웠지만 급성 장염으로 앓아누워 링거 맞던 때가 생각나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의 넘치게 많은 반찬은 결국 나를 걱정하는 마음의 크기임을 안다.

그래서 '조금만, 조금만'이라는 나의 말에도 엄마는 '조금만, 조금만 더'하다가 참지 못하고 만다.

"남아서 버리는 게 낫지, 너 부족하면 안 되지."

뭐라 반박할 수가 없어서, 나는 괜히 식어가는 장조림을 뒤적여 본다.


'엄마, 다음에는 내가 더 부지런히 먹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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