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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노신 Apr 11. 2021

둘이어서 좋은 점

일의 양이 동일해도 함께 하면 좋은 이유

대학 기숙사를 나와 자취를 시작한 첫 해, 나는 종종 에너지 고갈로 허덕였다.

졸업과 동시에 한 조직에 직을 갖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기에 일과 삶 사이 적당히 에너지를 분배하는 일에 서툴렀던 것이다.


주중에 매일 출퇴근을 하고 나면 주말에는 녹초가 되어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온종일 침대에 늘어져 있기 일쑤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꼭 해야 할 일들은 생겨나기 마련이라 남은 힘을 밑바닥부터 끌어모아 이 일들을 처리하고 나면, 정말로 더 무언가를 할 힘이 없었다.

친구와의 약속도, 가벼운 취미 생활도 당시의 나로서는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이듬해 동생이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오면서 나의 자취방에서 10개월을 함께 지내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서로 생활 패턴과 성향이 달랐던 우리는 여러 가지 문제로 부딪혔다. 혼자 살 때에 비해서 이런저런 제약이 생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동생과 함께 하는 생활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어딘가로 에너지가 줄줄 새어나가고 있는 것 같은 누수의 느낌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누군가가 함께 내 생활을 받쳐주는 느낌, 그것은 생각보다 더 크고 실질적인 힘이 되었다.




동생과 함께 지내게 되면서 2인 가구가 되어 집안일의 규모도 두 배가 되었다(때에 따라선 세배, 네 배가 되기도 했다). 실질적으로 내가 수행하는 집안일의 양 자체는 이전과 같거나, 오히려 늘어났다.

그럼에도 동생과 함께 지내던 시기에 가사가 더 수월하게 느껴졌던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첫째는  사람이 협의에 따라서 맡을 일을 결정하고  영역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면 되는 분업이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상대적으로 소질이 있는 청소와 정리 정돈을 했고, 동생은 본인이 좋아하고 잘하는 생필품 구입과 빨래를 맡았다.

해야 할 일의 가짓수가 줄어들자 이전에는 모든 영역들에 조금씩 고르게 분산해야 했던 에너지가 한 곳에 모아져 신경이 한결 느슨해지고 힘도 덜 들었다.


두 번째는 이 집을 유지하는 일에 나와 함께 힘쓰는 '동료'가 있다는 사실이 주는 위안이었다.

집안일의 생성도 관리도 모두 나에게만 달려 있던 때와 달리 그 일에 나란히 동참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마음이 놓였다.


내가 바쁘거나 힘이 부칠 때면 내 일을 부탁할 수 있었고, 때로 여유가 될 때는 동생의 일을 대신 해 주기도 하면서 우애를 쌓을 수가 있었다.


한 번은 호되게 몸살이 나서 앓아누운 기간이 있었는데, 그 기간 동안 동생이 집안일의 일체를 맡아 주어 나는 몸의 회복에만 신경 쓸 수가 있었다. 함께 사는 사람이 있기에 누릴 수 있는 자연스럽지만 더없이 소중한 보살핌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살면 가사의 규모가 늘어나게 되지만, 시스템을 잘 갖추기만 한다면 혼자일 때보다 더 효율적이고 편리한 가사 운영이 가능했다.

내가 나고 자란 원가족의 경우 가사 분담이 편중되어 있어 이상적인 분업이 실현되지 못했었지만, 언젠가 내가 새롭게 가족의 단위를 이루게 된다면 당사자간의 고민과 노력이 담긴 가사 시스템을 만들어 보고 싶다.


가사를 '함께 책임질 일'로 의식하고 연대하며 동참한다면, 관계와 일상 속에서 더 큰 편안함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권유를 조심스레 건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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